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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마신 2부 (마신강림)-75화 (75/234)

< 23화 공증 (4) >

판은 제대로 깔렸다.

그러나 천유성은 절대로 방심하지 않았다.

만의 하나의 확률로 천여운이 이를 따르지 않는다면 그에 대한 방비도 되어 있었다.

'허(許)냐? 부(不)냐?'

그가 천여운의 답변을 기다렸다.

그 답변에 따라서 모든 상황이 달라진다.

그때 천여운이 입을 열었다.

"내가 잔머리를 굴리지 말라고 했던 말을 전혀 주의 깊게 듣지 않는군."

결과는 부(不)였다.

천유성이 순종적인 얼굴을 지우고서 날카로워진 눈빛으로 고개를 들었다.

"정녕 감정적으로 구실 겁니까?"

"얼로당토하지 않는 부탁을 들어줄 거라고 착각하진 않았겠지?"

"어쩔 수 없군요."

-슥!

천유성이 자리에 일어나서 손가락을 튕겼다.

-딱!

그러자 천여운이 앉아 있던 좌석과 반경 2미터 가량의 바닥에 변화가 생겨났다.

붉은 LED 라이트가 켜지며 바닥에서 요란한 팬 소리가 들려 왔다.

-치칙! 치칙!

거기에 엄청난 전력이 소모되는지 레스토랑 전체의 LED 등의 불빛이 현저히 약해졌다.

"이건 또 무슨 장난질이지?"

"후우, 선조님께 악의는 없습니다. 당신의 성정 상 혈손이라고 제 말에 무조건 따라주지 않을 거라고는 어느 정도 예상했으니까요."

그 말과 함께 천유성이 누군가를 쳐다보며 눈짓을 했다.

그는 바로 여문형 세프였다.

눈짓에 맞춰 여문형 세프가 천여운을 향해서 양손을 뻗었다.

그러자,

-쩌저저저적!

천여운을 포함한 그 주변이 전부 얼어 붙어버리고 말았다. 그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머리를 제외한 몸통 전체를 얼음 속에 가둬버린 것이었다.

"하?"

천유성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제가 본교의 전설이라 불리는 당신을 상대하면서 아무 것도 준비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까?"

천여운이 앉아 있는 저 자리는 특수 제작된 기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것은 공안국 특수부에서 사용하는 산공 효과를 가진 특수 수갑과 같은 원리로 만들어졌다.

다만 그 효과는 수갑의 100배에 이른다.

절대고수인 천여운을 위해서 이 근방 1km 이내에 소요되는 모든 전력을 끌어왔다.

"아무리 선조님이라고 해도 움직이실 수 없을 겁니다."

"네놈이 감히!"

비막헌이 노기가 치솟아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척!

"움직이지 마라."

그런 그의 목에 몽환검종의 종주인 몽해중이 날카로운 도를 겨냥했다.

사케나와 유소화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최상위 종파의 종주들인 사마경과 양자명이 어느새 등 뒤로 나타나, 병장기로 그들을 겨냥하고서 움직이지 못하도록 막았다.

"어여쁜 아가씨들에게 검을 쓰지 않게 했으면 좋겠소이다."

사마경이 이죽거리는 목소리로 경고했다.

그때 유소화가 여문형 세프를 바라보며 심각한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빙마!"

"호오. 역시 평범한 비서가 아니셨구려. 그를 알아보다니."

천유성이 그녀의 눈썰미에 놀라워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여문형 세프는 과거 악명을 떨쳤던 이능력자였다.

얼굴이 많이 달라져서 능력을 보고서야 알아보았다.

'저 자가 어떻게?'

빙마(氷魔).

반경 100미터까지 얼음 폭풍을 일으킬 수 있는 이능력자였다.

SS급 게이트 키퍼라는 칭호가 생기기 전부터 S급 게이트 키퍼로 명성을 날리던 자였는데, 그가 아직도 키퍼였다면 SS급 칭호를 받았을 거라는 소문이 있을 만큼 엄청난 이능력자였다.

'옥에 갇혀 있던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는 팔 년 전에 사라졌다.

능력을 게이트 관련된 일만이 아닌 민간인들을 죽이는 데도 사용하여 무기징역으로 비밀감옥에 갇힌 것으로 알고 있었다.

천유성이 천여운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비밀감옥에 갇혀 계신 아버님을 구하기 위해서 노력한 것은 호법들만이 아닙니다. 저 역시도 오랫동안 찾아 헤맸죠."

그렇게 찾아낸 비밀 감옥 하나에서 얻은 자가 바로 여문형이었다.

천유성이 천여운의 뒤쪽에 서있는 누군가를 바라보면서 명했다.

"시작해라."

"네."

그 누군가는 차를 따르던 여 종업원이다.

옆에서 시중을 드는 종업원인 줄만 알았는데, 천유성의 수하였던 모양이었다.

그녀가 몸이 얼어붙어 있는 천여운에게 다가와 손을 뻗었다.

"뭘 하려는 거지?"

"천마이신 당신께 큰 해를 입힐 생각은 없습니다. 단지 저에 대한 인식만 바꾸려고 합니다."

"인식을 바꿔?"

"그녀는 다른 사람의 기억을 조작할 수 있는 이능력자죠. 매우 위험한 능력이라 우리 여 세프와 비밀 감옥에 수감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좋은 능력자를 감옥에서 썩히게 내버려 둘 수 없잖습니까?"

천유성이 득의양양해했다.

그가 믿고 있던 비장의 한 수는 바로 그녀였다.

여차할 경우에는 천여운의 기억을 조작해서 자신을 돕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

'전설의 마신을 손에 넣게 되다니!'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는지 입 꼬리가 벌어졌다.

이 능력자인 여 종업원이 천유성에게 물었다.

"어떻게 바꿀까요?"

"흠, 나를 끔찍이 아끼시는 스승이 좋겠군."

대외적인 이목을 고려했다.

천마인 천여운을 자신의 수하처럼 데리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가 자신의 말을 잘 따라주기만 해도 충분했다.

구체적인 기억조작의 명령을 받은 그녀가 천여운의 머리로 손을 가져갔다.

그때 천여운이 입을 열었다.

"네 녀석들에게서 마기가 느껴지지 않았던 것도 그 준비에 포함된 것이냐?"

그 물음에 천유성이 웃으면서 답했다.

"하하하핫, 당연한 게 아닙니까? 선조님께서 천마기로 저희에게 자해라도 하라고 명하신다면 저희가 막을 도리가 없잖습니까?"

천유성은 참으로 치밀하게 준비했다.

마기가 무공을 증폭시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버렸다.

천마기의 통제에서 자유롭도록 말이다.

"부디 소손의 이 불충을 용서하소서. 본교가 다시 부활하게 된다면 꼭 용서를 구하도록 하겠습니다."

말과는 달리 천유성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온갖 전략을 동원하여 천여운과 같은 절대고수를 제압에 성공했다는 것에 극도의 쾌감을 느꼈다.

"용서?"

천여운이 한숨을 내쉬었다.

실망스럽다 못해서 어처구니가 없다는 눈빛이었다.

이미 자신이 모든 상황을 컨트롤하고 있다고 확신한 천유성이 이죽거리며 말했다.

"그 감정이 곧 저를 향한 애정이 되실 겁..."

"네놈은 안 되겠군."

"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끄웩!!"

천여운의 머리로 손을 뻗던 여 종업원이 갑자기 피를 토했다.

그러더니 창백해진 얼굴로 자신의 가슴을 움켜쥐고서 뒷걸음을 치더니, 이내 바닥에 쓰러져서는 온몸을 뒤틀었다.

"아아아악!"

경련을 일으키며 비명을 질러댔다.

"뭐야? 갑자기 왜 그러는 것이냐?"

"심장이....심장이! 꺄아아아악!"

알 수 없는 현상에 천유성이 당혹스러워 하는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쩌저저적!

천여운의 전신을 두르고 있는 얼음에 균열이 일어났다.

천유성의 두 눈이 커졌다.

'이게 무슨?'

반경 1km의 전력을 끌어낸 산공 기기였다.

공력을 절대로 끌어낼 수 없을 거라 생각한 천여운이 움직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빌어먹을!"

이변을 눈치 챈 여문형이 천여운을 향해 손을 뻗었다.

-휘이이이잉!

그러자 천여운의 주변으로만 차가운 얼음 회오리가 몰아치며, 머리만이 아닌 그의 전신을 얼어붙게 만들려고 했다.

그 순간 천여운의 전신에서 불꽃이 치솟았다.

-화르르르륵!

"부, 불꽃?"

불꽃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몰아치던 얼음 회오리와 더불어 몸을 구속하고 있던 얼음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수증기처럼 증발해버리고 말았다.

-솨아아아!

당황한 여문형이 좀 더 힘을 끌어내려 했다.

그때 그의 몸이 강제로 뜨더니, 이내 천여운에게로 날아와 목이 잡히고 말았다.

-꽉!

"컥!"

"요리사가 불꽃을 가까이 해야지."

-화르르륵!

"으헉!"

천여운의 손에서 흘러나온 화기(火氣)가 여문형의 몸으로 옮겨 붙었다.

한기를 일으키려고 해도 그 수준이 완전히 달랐다.

-화르르르륵!

"끄아아아아아악!"

순식간에 번진 화마가 그의 전신이 삼켜버렸다.

비명을 지르면서 천여운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아등바등 치던 그의 몸이 강력한 화기에 의해 검게 그을려, 재가루가 되어 부서져 내렸다.

-푸스스스!

천여운이 타다 남은 여문형의 머리통을 바닥에 던졌다. 그리고는 발로 짓밟아버렸다.

-콰직!

"마, 말도 안 돼."

경악한 천유성이 뒷걸음을 쳤다.

천여운이 그런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바닥을 향해 진각을 밟았다.

-쾅!

-파치치치칙!

번쩍이는 강한 스파크가 연달아 튀어 오르더니 바닥이 갈라지면서 설치되어 있던 산공 기기가 파괴되어버렸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그 엄청난 전력으로도 천여운을 제어하지 못한 것이었다.

대체 어느 정도 수준의 공력을 지녀야 이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놀랄 일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푹!

"끄아아아아악!"

비명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사무종의 종주인 사무경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그 앞에 피가 뚝뚝 흐르는 심장을 움켜쥐고 있는 사케나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가 해맑게 웃으며 천여운에게 소리쳤다.

"주인님. 먹어도 되요?"

"이, 이런 미친 년!"

이에 당황한 다른 종주가 그녀를 공격하려 했지만,

-쾅!

"끄헉!"

강력한 중력장에 억눌려 바닥에 짓눌려지고 말았다.

이것을 일으킨 자는 중력마녀 유소화였다.

"끄으으윽!"

초절정의 고수인 종주가 십성 공력으로 끌어올려, 중력장에서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유소화가 손가락을 까딱이자,

-쾅!

"끄악!"

종주의 몸이 더욱 바닥을 파고들었다.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마저 들렸다.

'대, 대체 저 년들은...'

단순한 비서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마찬가지로 괴물들이었다.

어이가 없어 하는데, 천여운이 냉기가 흐르는 차가운 얼굴로 엄청난 위압감을 내뿜으며 그에게로 다가왔다.

'히익!'

당황한 천유성이 발걸음을 떼려고 했으나,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이것은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모, 몸이....'

심후한 진기가 그를 억지로 짓누르고 있는 것이었다.

누구의 짓인지는 뻔했다.

그의 손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한 천유성은 다급히 방향을 선회했다.

"서, 선조님!"

그가 다급히 용서를 구하기 위해 무릎을 꿇으려고 했다.

-촥!

그 순간 날카로운 예기가 느껴졌다.

뭔가 싶어서 예기가 느껴진 곳을 쳐다보았는데, 그의 양쪽 허벅지에 붉은 선이 생겨났다.

'!?'

선은 이윽고 분단으로 이어졌다.

양쪽 다리가 잘려나간 천유성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꽈당!

바닥에 넘어진 그에게 엄청난 고통이 엄습해왔다.

"끄아아아아악! 내, 내 다리! 내 다리가...."

-꾸욱!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천유성의 머리를 천여운이 발로 밟아 눌렀다.

어찌나 세게 밟았는지 얼굴이 곤죽이 될 것 같았다.

"끄에에에에! 서, 선조님! 제발!....제발 용서를!"

-꾸우욱!

애걸복걸을 하는 데도 그 힘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끄에에에! 선조님! 저, 저는 혈손입니다! 당신의 직계 후손이라고요!"

그런 그에게 천여운이 차갑게 식은 목소리로 답했다.

"어쩌라고."

< 23화 공증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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