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마신 2부 (마신강림)-74화 (74/234)

< 23화 공증 (3) >

천여운을 바라보는 천유성이 당혹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치 아무런 사심이 없다는 듯이 말이다.

"제가 어찌 위대한 천마이시자 선조님께 수작을 부릴 수 있겠습니까?"

천유성이 두렵다는 눈으로 천여운을 바라보았다.

그를 미심쩍게 쳐다보던 천여운이 이내 진기를 거두었다.

-우웅!

몸을 구속하고 있던 진기가 사라져서야 천유성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천유성이 허리를 구십도로 숙여서 예를 표했다.

그렇게 밑을 내려다보고 있는 천유성의 눈매는 날카롭기 그지 없었다.

'역시 방심할 수 없구나.'

천유성은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몇 번이나 시물레이션을 돌려서 스스로의 감정을 통제했기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당황했을 지도 몰랐다.

'전설은 전설답다. 너무 예리하다.'

천유성은 공증을 받는 일이 어려워 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여운이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일말의 신뢰감도 없었다.

그렇다고 적대적인 느낌도 아니었다.

'생각을 읽을 수가 없다. 하지만 확실한 건 나를 전혀 믿지 않고 있다.'

이런 유형의 사람을 설득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만반의 준비는 마쳤다.

패는 넉넉하다.

"흠."

고개를 숙이고 있는 천유성을 바라보는 천여운의 눈빛은 여전히 미심쩍었다.

그가 들은 것과는 정 반대의 성향을 지녔다.

[혈손이시기에 이런 말씀을 드리기가 참으로 송구스러우나, 장자이신 천유성 이사는 참으로 경솔하고 가볍기 그지없습니다. 무공에도 재능이 없어 퍼스트 게이트 사건이 없었다면 차남이 신 천유장 본부장이 소교주의 자리를 물려받을 거라는 소문이 교인들 사이에 허다할 정도였습니다.]

백종서의 모친인 금오연이 해준 말이었다.

들은 바로는 개차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인물이 바로 천유성이었다.

그런데 전혀 달랐다.

'천유장 녀석보다 무공이 더 뛰어나군.'

풍기는 기운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완숙한 화경의 경지에 올라있다.

게다가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매우 신중하면서도 조심스럽다.

[천마이시여. 저희 회장께서는 그때의 사건 후로 큰 충격을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변하셨지요. 지금은 누구보다도 본교를 살리기 위해 앞장서고 있습니다.]

열차에서 고왕현 부장이 했던 말에 더욱 가까웠다.

정말로 그는 변한 것인가.

허리를 펴고 일어난 천유성이 공손하게 머리를 숙인 채 말했다.

"선조님. 여기서 계속 있는 것보다 안으로 들어가시는 게 어떨지? 안에 만찬을 준비해두었습니다."

야간 조명을 밝혀두기는 했지만 이곳은 대화를 나누기 좋은 공간은 아니었다.

천여운의 허락이 떨어지자, 천유성이 직접 그를 레스토랑 내 만찬장으로 안내했다.

만찬장의 방 구조는 독특했다.

방 세 개를 미닫이 벽을 통해서 한 장소로 바꿀 수 있는 식이었다.

테이블은 총 세 개.

긴 탁자에 마주보는 식의 두 좌석만 있는 테이블.

그리고 두 테이블은 다수가 앉을 수 있도록 좌석을 갖춰놓아져 있었다.

각 테이블의 옆쪽에는 오픈형 주방이 갖춰져 있었는데, 흰 요리사복을 입고 있는 세프들이 요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탁탁탁!

도마를 칼이 닿는 소리부터 국물 요리가 끓는 맛있는 냄새가 만찬장을 가득 메웠다.

"이쪽에 앉으시죠."

천유성이 두 좌석만 있는 자리에 상석으로 안내했다.

"비서 분들과 그쪽은...."

천유성의 시선이 부속실장 비막헌에게로 향했다.

자신이 아닌 천유장 일파에 속해있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입니다. 이사님."

"후후, 제법 담대하군. 선조님을 따라서 왔다고는 하지만 말이야."

"저는 오직 천마를 모실 뿐입니다."

"상석에 가까운 자리는 줄 수 없음을 양해하길 바라네."

그 점은 이해 못할 부분이 아니었다.

비막헌에게 있어서 이곳은 적진의 한가운데였다.

최대한 내색은 하지 않고 있었지만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직은 제 아우와 내왕이 좋지 않아서 비 종주와 비서 분들은 저쪽 테이블에 앉혀도 괜찮겠습니까?"

천유성이 천여운의 허락을 구했다.

어차피 상관없었기에 천여운이 고개를 끄덕이자, 샤케나가 아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저는 주인님의 옆 테이블에 앉고 싶은데."

물론 천여운을 걱정해서 하는 소리는 아니었다.

그냥 그의 곁에서 떨어지기 싫을 뿐이었다.

"테이블이 달라도 같은 공간에서 식사를 하는 것이니, 우리 아름다운 비서 분들께서 양해해주길 바랍니다."

천유성이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매너 있는 말투로 말했다.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그녀에게 호감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미녀를 좋아하는 것은 모든 남성의 공통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런 매너에 별 관심이 없기에 시큰둥한 표정으로 투덜거리며 가버렸다.

"뭐래. 인간 주제에."

"뭐?"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하지만 천여운의 앞이었기에 내색할 수 없었다.

사케나와 마찬가지로 유소화 역시도 무뚝뚝한 얼굴로 머리만 살짝 숙이고는, 샤케나와 함께 세 번째 테이블의 좌석으로 가 버렸다.

'도도하구만.'

천유성이 속으로 혀를 차며 자리에 앉았다.

"용정차입니다."

-쪼르르륵!

자리에 앉자 흰 와이셔츠에 붉은 조끼를 입은 예쁜 여자 종업원이 천여운의 앞에 있는 찻잔에 뜨거운 차를 따랐다.

모두가 자리에 착석하자 천유성이 말했다.

"각 종주들은 천마께 예를 갖춰 한 명씩 인사를 하도록."

명이 떨어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순서대로 자신의 소개와 인사를 시작했다.

첫 번째로 한 것은 당연히 부회장인 왕신이었다.

-척!

한쪽 무릎을 꿇고서 고개를 숙인 뒤에 포권을 취한 왕신이 자신을 소개했다.

"무쌍검종의 종주인 왕신이라고 합니다. 본 종을 거두어주신 천마를 뵙게 되어 무한한 영광입니다."

'호오.'

천여운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오대고수였던 무쌍검 왕전을 초빙했을 때만 하더라도 대 장로 직을 맡기는 했지만 완전히 천마신교에 정착을 하진 않았었다.

이제는 한 종파로 완전히 거듭난 것이다.

'무공이 제일 뛰어나다 했더니, 명불허전이군.'

한 시대를 풍미한 오대고수의 후예들이라고 할 만 했다.

아마도 천유성 세력의 최고 전력일 것이다.

다른 중진들도 차례대로 일어나 자신을 소개했다.

"몽환검종의 종주인 몽해중 전무입니다. 본교의 전설이신 천마를 뵙게 되어 너무도 영광입니다."

그렇게 차례대로 중진들이 인사를 마치자, 천유성이 테이블 옆에 있는 메인 세프로 보이는 대머리에 눈썹이 없는 남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제일 중요한 사람을 잊을 뻔 했군요. 여문형 세프입니다. 북경과 아랍의 오성 호텔의 메인 세프 경력에 미슐랭 3스타를 받은 유명한 세프입니다. 워낙 제 입맛에 맞아 종종 이 레스토랑을 이용합니다."

천유성의 말에 그가 고개를 숙이며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여문형입니다."

"그럼 맛있는 요리. 부탁합니다."

"네. 회장님."

웃으면서 답한 여문형 세프가 요리를 시작했다.

홀 뒤편에 있는 메인 주방 쪽에서 종업원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만찬장으로 무언가를 들고 왔다.

코스 요리의 시작은 당연히 수프였다.

"삭스핀 게살 수프입니다."

"드시죠. 선조님."

종업원이 스프를 내려놓고 물러나자, 천유성이 수프를 권했다.

가장 윗사람인 그가 숟가락을 들기를 모두가 기다리는데, 천여운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입을 열었다.

"요리는 됐고 본론으로 들어가지."

"네? 기차에서 저녁 식사를 하지 않으셨다고 들었습니다만."

"식사를 하러 네 녀석을 보러 온 것 같으냐?"

"..........."

차가운 말투에 밝아지려 했던 만찬장의 분위기가 일순간에 냉랭해졌다.

'쉽지 않군.'

식사를 하고 주류를 통해 어느 정도 완만한 분위기를 형성하려 했던 그였다.

하지만 천여운의 표정을 보니 그건 힘들 듯 했다.

"후우, 어쩔 수 없군요."

"네놈이 날 부른 이유부터 들어볼까?"

천여운의 물음에 천유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탁!

그리고는 바닥에 두 무릎을 꿇고서 머리를 숙인 채 말했다. 마치 반성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아우인 천유장을 먼저 보셨으니 현재 본교의 상황에 대해서 들으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엉망이더군."

-쿵!

그 말에 천유성이 바닥에 머리를 세차게 박았다.

의외의 행동에 천여운의 눈빛에 의아함이 깃들었다.

"무슨 짓이지?"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것이 제 부덕함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제가 당시에 어리석지 않고 힘만 있었더라면 본교가 이렇게 분열될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정확하게 상황 판단을 하고 있었다.

교주가 함정에 빠져서 부재한 상황 속에서 그가 굳건한 위치를 지켰더라면 세 파벌로 나뉠 일도 없었을 지도 몰랐다.

"참 빨리도 깨닫는 구나."

"입이 열 개라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변명할 여지가 없습니다. 벌을 내리신다면 달게 받겠습니다."

'이 녀석.....'

천유장과는 완전히 다른 태도를 취해왔다.

먼저 선수를 치는 것이었다.

-딱!

엎드려 있던 천유성이 손가락을 튕기자, 입구 쪽에 서있던 교인 한 명이 서류 가방 하나를 들고 왔다.

서류 가방에서 태블릿PC를 꺼내서 교인이 천여운의 앞에 올려놓았다.

태블릿PC의 화면에 PDF로 된 서류가 펼쳐졌다.

"이게 뭐지?"

천여운의 물음에 천유성이 답했다.

"한 번 검토해주십시오."

PDF 서류의 가장 첫 페이지에 적혀 있는 제목은,

[천마신교 재건 계획서]

였다.

천여운이 태블릿을 터치하여 페이지를 빠르게 넘겼다.

PDF 서류에는 천유성 일파에서 계획하고 있는 천마신교를 되살리기 위한 계획들이 세부적으로 나열되어 있었다.

-스륵! 스륵! 스륵!

'읽고 있는 게 맞는 건가?'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가 매우 빨랐다.

거의 초 단위로 넘기고 있었는데, 정말 읽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백 장에 달하는 PDF 서류를 2분 만에 완독해버렸다.

이를 전부 읽은 천여운의 입에서 피식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게 네 녀석의 계획이느냐?"

"그렇습니다."

천유성이 아까 전과 달리 상당히 긴장된 눈으로 천여운을 바라보았다.

PDF를 정확하게 읽었다면 안에 모든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것은 70퍼센트 이상은 정말로 행해질 계획이었다.

"선조님께서 용서하실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 부디 소손에게 기회를 주십시오. 벌을 받더라도 본교를 되살린 후에 다시 죄를 청하겠습니다."

-쿵!

천유성이 다시 한 번 머리를 바닥에 박았다.

최대한 자신을 낮춰서 천여운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였다.

'계획은 완벽하다.'

그것은 자부할 수 있었다.

이대로 계획이 달성된다면 천마신교는 그 동안의 이미지를 탈피하고서 다시 양지로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천여운이 진정한 선조라면 이를 절대로 무시할 수 없을 거라 여겼다.

'본교를 되살리려면 당신 역시도 저를 도울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의 전설이라고 해도 당신은 이제 장이 아닌 말입니다.'

천여운만 자신의 뜻에 따라준다면 계획은 훨씬 앞당길 수 있다.

그는 누가 뭐래도 본교가 낳은 최강의 세 전설 중 한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때 천여운이 태블릿 PC를 집어 들면서 입을 열었다.

"꽤 그럴 듯하구나."

천여운의 그 말에 천유성이 환해진 얼굴로 고개를 들면서 말했다.

"이해해주시는 것입..."

그런 그의 말을 천여운이 잘랐다.

"그런데 말이야. 이 모든 계획의 첫 번째 전제에는 네 녀석이 교주가 되는 것이 깔려 있구나?"

".......그렇습니다."

본교를 통합하기 위한 기본 전제였다.

모두가 교주의 자리를 노리고서 싸우는 입장인 만큼 교주후보의 위치로는 본교를 통합하는 것은 요원한 일이었다. 계속해서 세 파벌의 분쟁만 이어질 뿐이었다.

"세 파벌의 분쟁은 유혈 사태만 일어나게 됩니다. 그렇지 않아도 분열된 본교의 힘을 어리석게 약화시키는 꼴입니다."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니었다.

자그마치 27년 동안이나 대치 상태가 이어졌으니 말이다. 천여운이 더욱 차가워진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네 녀석은 스스로의 힘으로 본교를 통합하지 않고서 교주로 먼저 취임을 하시겠다?"

"명분을 얻게 되면 분열된 본교인들은 다시 하나로 이끌 수 있습니다."

"그 명분은 누가 주는 것이지?"

천여운의 물음에 천유성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천마령의 수호자인 대호법이 뜻을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천마령의 율법을 주관하는 자.

그가 바로 천마령의 수호자인 대호법이다.

교주가 부재했을 때, 천마령을 발동하여 그 후임을 발탁할 수 있는 권한 역시도 가지고 있었다.

"천마령이 발동되는 이상. 두 파벌을 따르는 본교인들 역시도 이를 거부할 수 없습니다."

천유성의 히든카드는 바로 그것이었다.

이를 위해서 대호법을 설득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했는지 모른다.

천마령은 초대 조사인 천마의 인장이다.

누구도 거역할 수 없다.

단 한 사람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천마.'

왜냐하면 천마라는 칭호가 곧 천마신교 그 자체였다.

천여운이 이를 인정하지 않게 된다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고 만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천마인 천여운이 이를 인정하고 공증하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두 파벌에 속해있는 모든 교인들이 따라야만 했다.

-쿵!

천유성이 머리를 바닥에 박으면서 외쳤다.

"더 이상 본교인들끼리 피를 흘리지 않고 통합할 수 있도록 천마께서 힘을 빌려주십시오. 제 교주 취임을 공증해주시기 바랍니다!"

-쿵! 쿵! 쿵!

그의 외침에 천유성 일파의 교인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바닥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며 따라 외쳤다.

"공증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간절함으로 모두가 청했다.

하지만 엎드려 있는 천유성의 표정은 그렇지 않았다.

그의 입 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당신이 진정으로 본교를 생각하는 천마라면 이 간청을 거부할 수 없을 겁니다.'

< 23화 공증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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