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화 지금 간다 (1) >
코끝이 역하게 느껴질 만큼 사방이 피비린내로 진동했다.
숲으로 들어가는 산등성이 앞에는 수백 구에 이르는 시신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시신들의 사이에서 거친 호흡을 내뱉는 오십여 명의 무림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천마신교에 충성을 맹세한 무림인들이었다.
처음에 187명이었던 인원이 고작 53명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우리가 대체 뭘 한 거지?’
‘크윽....’
그들의 표정은 자괴감과 허탈감으로 뒤섞여 있었다.
처음에 먼저 공격해서 4할 이상을 죽이지 않았더라면 대항하는 무림 협회 무림인들과 싸우느라 전멸했을 지도 몰랐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너무나도 큰 희생을 치렀다.
-삑!
이것을 촬영하던 용천 그룹의 서총 본부장이 녹화 버튼을 종료시켰다.
서로를 해하는 과정이 영상 기록으로 남았기 때문에 이제 저들로서는 발을 빼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새로운 본교의 종파 탄생인가.’
저들은 이제 원래의 문파명이 아닌 천마신교의 방식대로 종(宗)으로 개명할 것이다.
가령 목양검문은 목양검종으로 거듭나게 된다.
제남시에 있는 무림 협회 지부를 이끌어 나가는 고수들을 전부 제거했으니, 제대로 신입 신고를 치른 셈이었다.
“하아....하아....”
지쳐서 거친 호흡을 내뱉고 있는 무림인들 중에는 간옹 역시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의 몸은 온통 상처로 가득했다.
‘빌어먹을....’
간옹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가 착용하고 있는 고글에 금이 가있었다.
‘이런 난전이 될 줄이야.’
고글에 떠있는 정보 표시창에 전송 실패라고 띄어져 있었다.
아무래도 무림 협회의 무림인들과 싸우는 도중에 고글이 망가져서 그런 듯 했다.
급하게 저장된 것만이라도 보내려 했는데, 망해버렸다.
[전송률 5%. 더 이상 전송을 할 수가 없습니다.]
고작 5퍼센트라면 얼마나 녹화된 것이 전송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가장 중요한 무림인들을 협박하는 장면 같은 것은 전혀 전송이 되지 않았을 확률이 너무 높았다.
‘어느 정도 쓸 만한 영상들만이라도 전송되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다면 팀원들의 희생이 허무해질 것이다.
간옹의 시선이 몇몇 사람들에게로 향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지친 얼굴로 서있는 두 사람이었는데, 그들은 자신의 팀원들이었다.
난전 끝에 고작 자신을 포함해 세 명만 살아남았다.
‘고작 세 명이라.....결과가 어찌 되었든 철수는 기정사실이로군.’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제남시에 있던 60여 명의 조직원들 중에 살아남은 숫자였다.
하지만 목숨을 부지한 것이 다행일 지도 몰랐다.
저 괴물로 인해서 조직 자체가 붕괴된 곳이 한 둘이 아니었다.
‘제대로 미친놈이야.’
간옹의 시선이 어딘가로 향했다.
무림인들은 그렇다 쳐도 저들마저 건드릴 줄은 몰랐다.
그가 보고 있는 산등성이 한편에 얼음검들이 꽂혀서 죽어 있는 시신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게이트 키퍼들이었다.
방위국과 관련된 단체라 섣불리 대놓고 손을 쓰기 어려운 조직임에도 불구하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천여운은 정말로 모든 게이트 키퍼들을 죽여 버렸다.
그것도 혼자서 말이다.
‘괴물 같은 놈.’
간옹은 무림 협회의 무림인들과 싸우는 도중에 그것을 보았다.
천여운의 손짓 한 번에 허공에 떠있던 얼음검들이 게이트 키퍼들을 사지로 몰아넣었다.
거의 학살에 가까웠다.
그 광경을 보면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중력마녀!’
천여운의 옆에 서있는 흰 블라우스에 검은 스커트의 여인이 보였다.
SS급 게이트 키퍼인 중력마녀 유소화였다.
그녀의 등장에 게이트 키퍼들이 기뻐하며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쳤는데, 그녀는 그들을 돕지 않았다.
천여운의 무력만큼이나 꽤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어떻게 중력마녀를 회유한 거지?’
SS급 게이트 키퍼는 누구라도 탐낼 만한 전력이었다.
그런 그녀가 용천 그룹의 산하로 들어갔다면 보통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전부 보고해야 해.’
보고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영상 전송도 실패했기에 직접 보고를 해야만 했다.
간옹은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모두 집중하시오.”
그때 용천 그룹의 회장 천유장이 살아남은 무림인들에게 뭔가를 공고하려는지 큰소리로 말했다.
“우선 그대들의 충성심을 이것으로 확인하게 되었소이다. 본교의 교인이 된 것을 환영하는 바이오.”
천유장의 그 말에 살아남은 무림인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당연히 기쁠 리가 없었다.
그런 그들의 반응을 무시한 채 천유장이 계속 말을 이어갔다.
“지금부터 뒤처리를 할 것이니 잘 듣길 바라오.”
천유장은 죽은 무림인들과 게이트 키퍼들의 시신 처리 및 살아남은 무림인들이 방위국에 어떻게 보고하면 될지에 대해서 설명을 했다.
그렇게 설명이 끝나고 모두가 시신의 뒤처리를 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이것만 끝난다면 무사히 해산할 수 있었다.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
간옹을 비롯한 두 명의 팀원들은 내색하지 않고 모든 것에 따르는 척 움직였다.
그런데 시신을 처리하고 있는 간옹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잠시 따라오시죠.”
그는 용천 그룹의 중진 중 한사람인 환명오 이사였다.
간옹이 내심 당혹스러웠다.
특별히 의심을 갈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는데, 어째서 자신을 불렀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부른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런....’
자신의 팀원 두 명 역시 다른 중진들을 따라서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간옹은 이를 어찌해야 할지 고민했다.
이 자리에서 도망을 시도하기에는 이미 그는 많이 지쳐 있었다.
게다가 상대는 화경의 고수였다.
‘별 수 없구나.’
일단은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알겠소이다.”
간옹이 자연스럽게 쓰고 있던 고글을 벗으려고 했다.
그런데 그것을 환명오가 제지했다.
“멈추시오.”
“그, 그냥 고글을 벗으려던 것 뿐이오.”
“그 상태 그대로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앞으로 걸어가시오. 만약 다른 행동을 하려 한다면 별로 좋지 않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말해줄 수밖에 없소.”
-두근! 두근!
간옹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당장 얼굴에 쓰고 있는 고글을 부숴야 했는데, 환명오가 도를 뽑고서 조금이라도 손을 까딱이면 벨 듯 한 기세를 풍기고 있었다.
‘젠장.’
차라리 고글뿐이라면 나았을 것이다.
부숴버린 후에 자결이라도 하면 될 테니 말이다.
그런데 그의 품속에는 조직의 윗선과 연결할 수 있는 구형 핸드폰이 있었다.
‘차에 두고 내렸어야 했는데....’
얼떨결에 이것을 들고 나온게 문제였다.
도에 베이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품속에 손을 넣고 핸드폰을 부숴버릴까 고민을 했다.
바로 그때였다.
-드르르르! 드르르르!
‘엇?’
품속에 있던 핸드폰의 진동이 울렸다.
당황한 간옹이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데, 환명오가 그의 목에 도 날을 갖다 대며 말했다.
“움직이지 마라.”
더 이상 그를 존중하는 말투가 아니었다.
환명오는 빠르게 간옹의 안주머니에서 구형 핸드폰을 빼냈다.
구형 핸드폰은 수신자 번호가 적혀 있지 않은 상태로 울리고 있었다.
“구형? 칫.”
환명오가 짜증을 냈다.
품속에 플랙시블 스마트폰과 연결하는 USB-H타입의 추적 장치가 있었다.
단순 충전 기능뿐인 이런 구형과는 연결할 수가 없었다.
“일단.....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해라.”
-달칵!
핸드폰을 받은 환명오가 간옹의 귓가에 이를 갖다 댔다.
조금이라도 허튼 소리를 하면 당장에라도 목을 베어 버릴 기세를 내뿜으며 말이다.
‘후우.’
간옹이 숨을 고르며 환명오의 눈치를 보았다.
전화를 받으라고 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간자인 그들에게는 적에게 핸드폰을 빼앗겼을 때를 대비한 매뉴얼 정도는 있었다.
전화를 받을 때 첫 인사가 바로 그것이었다.
‘접니다.’
라고 말을 하면 적에게 들켜서 핸드폰을 빼앗겼다는 의미였다.
그러면 저쪽에서 알아서 연락망을 끊을 것이다.
간옹이 매뉴얼대로 말했다.
“접니다.”
그런데 간옹이 핸드폰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태도에 환명오가 입을 벙긋거리며 말했다.
‘허튼 수작 부리지 마.’
이에 간옹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답했다.
“.......그, 그분을 바꿔달라고 하십니다.”
‘뭐?’
“저희 윗선에서 그분과 통화하시길 원하십니다.”
간옹이 바라보는 곳은 수풀 앞의 언덕 위에 서있는 천여운이었다.
환명오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인상을 찡그렸다.
* * *
“호.”
천여운이 흥미롭다는 얼굴로 환명오가 넘기는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지금의 그의 앞쪽에는 간옹을 비롯한 그 팀원 두 명이 제압된 상태로 무릎을 꿇고 있었다.
천여운은 충성을 맹세한 무림인들과 무림 협회 사람들이 싸우기 시작하면서 이들의 존재를 눈치 채게 되었다.
무공을 익힌 것 때문에 제남시 시청에서 보았던 자들보다 기운을 잘 갈무리하고 있어서 그것을 드러내서야 알아냈지만 결정적으로 무기 덕분에 확신할 수 있었다.
“초진동검.”
간옹을 비롯한 두 명이 들고 있는 검은 초진동검이었다.
그들은 처음에는 이 무기를 사용하지 않다가 위기가 닥치자, 눈에 띠지 않게 짧은 순간에만 사용해왔다.
이를 천여운이 놓칠 리가 없었다.
그래서 이들을 잡아서 자결을 시도하기 전에 전신을 얼려버린 후에 조사를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예상지 못한 상황이 생긴 것이다.
‘꽤 대담한 녀석이군.’
놈들의 윗선에서 먼저 접촉을 시도할 줄은 몰랐다.
천여운이 구형 핸드폰을 받아들었다.
“말해라.”
-역시 그릇이 크시군요. 통화를 허락해줘서 감사합니다.
변조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여운이 혀를 차면서 놈에게 말했다.
“음험한 놈이로군. 목소리까지 숨기다니 말이야.”
-저희 쪽의 비밀을 엄수해야 하니까요. 후후후.
익명성과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믿고 있어서 그런 건지, 여유가 넘치는 그의 태도에 천여운이 말했다.
“수하들이 죽어도 상관없나 보지.”
당장에라도 그들이 죽을 수 있음을 알렸다.
천여운의 손짓에 간옹과 팀원들의 등 뒤에 있던 중진들이 그들의 팔 관절을 꺾어버렸다.
-으득!
“끄아악!”
“끄헉!”
그들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일부러 핸드폰 너머에 있는 놈이 들으라고 하는 짓이었다.
이에 변조된 목소리가 말했다.
-후후후, 재미있으신 분이로군요. 그런 협박은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아실 텐데요. 그들 정도는 저희에겐 하나의 패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는데?”
천여운은 지금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저들 역시도 변조된 목소리를 듣는 게 가능했다.
저들의 윗선에서 버리는 패라고 직접 말하게 해서 배신을 유도하는 것이었다.
그런 천여운의 말에 그들은 아무 말 없이 결의에 찬 표정을 지었다.
-제가 말했죠. 후후후, 그리고 그들은 이런 상황에 훈련받은 자들입니다. 그 입에서 뭔가를 얻으시려고 한다면.
-달칵!
뭔가 버튼을 누르는 소리가 났다.
“끄아아아악!”
그 순간 세 사람 중의 한 사람이 비명을 지르더니, 이내 온몸이 붉게 달아오르며 열기가 치솟아 그대로 흐물흐물 녹아버리고 말았다.
그 자의 뒤에 있던 항유린이 혈도를 점해보려 했지만, 애초에 혈도의 위치가 보통 사람들과는 완전히 달라서 어떻게 해볼 수가 없었다.
-이렇게 된답니다. 괜한 짓은 하지 않아주셨으면 합니다.
언제든지 폐기 처분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보인 변조된 목소리였다.
득의양양하게 말한 변조된 목소리가 말했다.
-이런 얘기는 무의미하니, 이제 슬슬 비즈니스 이야기를 해보는 게 어떨까요?
“비즈니스?”
천여운의 한쪽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놈은 지금 자신의 페이스에 천여운을 끌어당기고 있는 것이었다.
-아시겠지만 저희 쪽에서 누군가의 의뢰를 받고 귀하를 처단하려 했다는 것은 눈치 채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변조된 목소리의 여유 넘치는 말에 천여운이 말했다.
“꽤 쉽게 말하는군.”
-굳이 숨길 이유가 없지요. 저희 쪽에서 보낸 자들을 전부 귀하께서 처리하셨는데, 고작 그 정도도 눈치 못 챌 만큼 작은 그릇은 아니실 테니까요.
“그렇다면 그 대가도 잘 알겠군.”
천여운의 목소리에 살기가 묻어났다.
이에 변조된 목소리가 그를 타이르는 말투로 말했다.
-고정하시지요. 저희는 귀하와 아무런 은원 관계가 없답니다. 전부 의뢰를 받고 하는 일이라서 말이죠.
천여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역시 놈들은 누군가의 의뢰를 받고 움직이고 있었다.
-뭐 짧은 영상이었지만 귀하의 그 엄청난 무위는 잘 보았습니다. 영상만으로도 전율이 느껴지더군요.
변조된 목소리가 감탄했다는 듯이 말했다.
그것은 상대를 띄워주기 위한다기 보다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꽤 재미있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말과 함께 변조된 목소리가 뭔가를 틀었다.
-천마이시여. 소손과 본교인들에게도 부디 복수를 할 기회를 주시옵소서!
핸드폰에서 들리는 자신의 목소리에 천유장이 인상을 찡그렸다.
언제 영상을 찍어서 보낸 건지 몰라도 꽤 성가신 정보가 저들의 손에 들어갔다.
-천마가 두 명이라. 참 재미있군요. 천마신교에 전설이라 할 수 있는 자가 현세에 두 명이나 되다니 말이죠.
“두 명이라니 무슨 헛소리를...”
-슥!
"흡!"
그 말에 참지 못한 본부장 서총이 화를 버럭 지르려는 것을 천여운이 손을 들어 제지시켰다.
그리고는 놈에게 날카로운 눈빛으로 말했다.
“천우경 놈의 사주를 받았군.”
천여운의 그 말에 변조된 목소리가 잠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윽고 놈이 입을 열었다.
-.......이것 참. 제가 실수를 했군요. 비즈니스 용도로 쓰려던 정보를 이렇게 어이없이 들킬 줄이야.
“비즈니스 용도?”
-의뢰자에 대한 비밀을 엄수하는 것이 이 바닥의 철칙이니까요. 물론 예외도 있죠. 차를 갈아타는 것과 같다고 해야 할까요?
“네놈 지금 나와 거래를 하고 싶다는 말을 하는 거냐?”
-크....역시 눈치가 빠르십니다. 저희는 두 천마 중에 귀하 쪽이 더 진짜 천마이실 거라고 확신합니다만.
천여운의 무위가 담긴 영상을 보고 확신한 변조된 목소리였다.
어디까지 영상을 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간옹이 보낸 것을 보고서 마음을 완전히 천여운 쪽으로 돌린 모양이었다.
-저희는 ‘진짜 천마’이신 귀하와 거래를 맺고 싶습니다.
“거래라.....”
-A등급 코어를 손에 넣으셨더군요.
“그래서?”
-그것을 저희 쪽에 넘겨주신다면, 그 대가로 귀하를 암살 의뢰한 그분이 있는 위치 정보와 암살 의뢰를 중단하도록 하겠습니다.
놈은 의뢰자인 천우경을 버리고 천여운과 거래를 하고 싶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파격적인 제안이라는 듯이 변조된 목소리가 말을 이어갔다.
-천마와 교주직을 놓고 경쟁하시는 관계를 생각한다면 저희가 제안한 정보가 절대로 손해일 거라고 생각지 않습니다만. 그리고 저희와 장기적인 비즈니스 관계를 맺으신다면 귀교가 하나로 통합되도록 지원 역시도...
“웃기는 놈이로군.”
그때 천여운이 그의 말을 자르고서 말했다.
그 말에 의도를 알아듣지 못한 변조된 목소리가 물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네놈이 뭔데 본교의 일에 멋대로 끼어든다는 것이지?”
천여운의 목소리가 매우 차갑게 식어 있었다.
-많이 불쾌하셨나 보군요. 너무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후후후, 저희는 그저 비즈니스 관계를 맺게 되면 도움을 드리고자...
“필요 없다.”
천여운이 단번에 거절했다.
-......저희 도움 없이 찾기는 힘드실 텐데요.
“네놈부터 찾아주지.”
천여운의 그 말에 변조된 목소리가 시원하게 웃었다.
-하하하하하핫, 이런 반응은 또 처음이군요. 거래를 하자고 했더니, 저희를 찾겠다라? 그게 가능해 보입니까?
“불가능할 것 같나?”
천여운의 질문에 변조된 목소리가 혀를 차면서 말했다.
-쯧쯧, 안타깝군요. 이 구형 핸드폰은 전화 기능 이외에는 어떠한 것도 되지 않습니다. 게 다가 저희의 자체 기술로 해킹 자체가 불가능한 물건이죠. 저희가 그 정도로 안일해보이십니까?
다른 것은 몰라도 자신들의 조직이 기술력 하나 만큼은 시대를 뛰어넘는다고 자부하는 변조된 목소리였다.
그런 그의 말에 천여운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내가 왜 네놈의 개소리를 지금까지 들어준 것 같으냐?”
천여운의 시야로 개안된 증강현실 속에 지도가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수백 개의 흰빛의 입자가 굴곡을 그리며 우회된 주파수의 오차범위를 엄청난 속도로 줄여나갔다.
-하하하하, 이쪽 천마 분께서는 허장성세가 꽤나 크신 분이로군요. 귀하는 절대로 저희를 찾을 수 없습니다. 거기엔 제 손목을 걸 수 있습...
[발신지를 찾았습니다.]
천여운이 입 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꽤 가까이에 있군. 태안시.”
-!?
순간 변조된 목소리가 말이 없어졌다.
그런 그에게 천여운이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간다.”
-달칵!
핸드폰의 전화가 끊겼다.
같은 시각.
태안시(泰安市)의 동북쪽에 있는 한 폐건물.
그곳의 지하에서 흰 연구복을 입은 40대 초반의 한 사내가 구형 핸드폰을 멍하게 쳐다보다가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 이게 무슨..."
< 20화 지금 간다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