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마신 2부 (마신강림)-63화 (63/234)

< 19화 복수의 시작 (3) >

“하나.”

천여운이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충성을 맹세 한 무림인들도 곤욕스럽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죽임을 당해야 하는 입장에 처해진 무림인들은 이 순간이 생애 최악일 수밖에 없었다.

병장기를 쥐고서 망설이는 충성을 맹세한 무림인들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에는 복잡한 감정이 섞여 있었다.

“이...이 간악한 마귀 같으니!”

-팟!

분노를 참지 못한 제갈보현이 무위의 격차 따윈 잊고서 천여운을 향해 신형을 날리려 했다.

하지만 이를 용천 그룹의 중진들이 내버려 둘리가 만무했다.

“어딜!”

-타타타탁!

어느새 뒤에서 나타난 음마종의 항유린 부장이 제갈보현의 혈도를 제압하고서 강제로 바닥에 엎어뜨리고 말았다.

“큭!”

같은 화경의 경지였지만 내상을 입은 데다가 이성까지 잃은 제갈보현은 너무도 쉽게 당해버렸다.

위에서 짓누르고 있는 항유린이 그의 머리채를 잡아들어 올리고서 말했다.

-꽉!

“으윽!”

“잘 지켜봐. 후후후.”

항유린의 얼굴에는 희열이 가득했다.

그 오래 전 교주인 천우진이 수감되는 것을 힘없이 지켜봐야만 했던 복수를 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릴 만큼 요동쳤다.

‘이게 복수인가.’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은 그녀만이 아니었다.

회장인 천유장 역시도 저들의 괴로워하는 모습에 가슴이 떨려왔다.

27년이나 당했던 수난을 떠올리면 저들이 동료에게 검을 겨누는 모습에서 어떠한 동정심도 생기지 않았다.

천여운이 두 번째 숫자를 셌다.

“둘.”

‘아아아....’

‘이를 어찌한단 말인가.’

하나를 셀 때와 달리 충성을 맹세한 무림인들의 얼굴은 초조함으로 물들었다.

살기 위해서 무림 협회를 나와 천마신교에 충성을 맹세했으나, 동료들을 직접 죽인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배신자 놈들.”

“무림 협회에서 네놈들을 피로 응징할 거다.”

머뭇거리고 있는 그들을 바라보는 무림 협회의 무림인들이 비난을 했다.

허공에 떠있는 천여운의 이기어검만 아니었다면 배신자들을 응징하거나 도망가고 싶었지만 그들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드디어 천여운의 입에서 마지막 숫자가 나왔다.

“셋!”

-팟!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충성을 맹세한 무림인들이 고통스러운 얼굴로 무림 협회의 무림인들을 향해 병장기를 휘둘렀다.

“큭! 용서하시게.”

“으아아아아!”

-푹! 푹!

“끄악!”

“컥! 이, 이놈들! 끝내....”

비명과 피가 난무하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병장기를 휘두르고 찌르는 무림인들의 얼굴은 고통과 괴로움으로 가득했고, 당하는 무림인들의 얼굴은 배신자들을 향한 분노와 공포로 뒤덮여 있었다.

“이 배신자 놈드으으으을...”

“이러고도 네놈들이 정파인이라고...크헉!”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그들은 죽어가면서 천여운이 아닌 배신자들을 증오했다.

끝내 자신들을 찌르는 동료를 향한 실망감이 이런 상황을 만든 천여운보다 더 컸던 것이었다.

-챙!

“엇?”

그때 가만히 당하고 있던 자들 무림 협회의 무림인들이 병장기를 뽑았다.

“네놈들 뭐하는 거야?”

“뭘 해? 가기 전에 너희 후안무치한 놈들을 죽이고 가겠다!”

“에잇! 나도 마찬가지닷!”

-팟!

병장기를 뽑은 무림협회 무림인들이 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처음에는 천여운이 두려워 가만히 당하던 그들은 어차피 죽을 바에는 배신자들을 죽여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것이다.

“선조님.”

천유장이 나서서 반항하는 무림인들을 제지시키려 했지만,

“내버려둬라.”

“넷?”

천여운은 이를 내버려두게 했다.

‘어째서?’

천유장을 비롯한 중진들이 이를 의아해 했지만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상황이 묘하게 바뀌어갔다.

처음에는 동료들을 공격하는 것에 괴로움만으로 가득했던 충성을 맹세한 무림인들의 모습이 달라지고 있었다.

“크아악! 배신자라고? 누가 배신자라는 거냐!”

“네, 네놈들이 저지른 일을 왜 우리가 감당해야 하냐고!”

“전부 네놈들이 자초한 것이 아니냐!”

충성을 맹세한 무림인들도 자신들을 배신자로 몰면서 비난하고 공격하는 그들에게 분노를 토해내며 공격했다.

어느 순간 학살이 아닌 진심으로 서로를 베게 된 것이다.

이 광경을 지켜보는 제남시 무림 협회의 중심인 제갈보현과 황보윤의 눈빛은 비참함과 통탄으로 물들어갔다.

무능력하게 이를 지켜보는 심정은 너무나도 괴로웠다.

-부들부들!

저 참혹한 싸움에 껴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이런 상황을 만들어낸 천여운에게 분노할 수 밖에 없었다.

누구할 것 없이 두 사람이 동시에 천여운에게 소리쳤다.

“어찌 이런 짓을 벌인단 말이냐!”

“귀하가 이러고도 인간이라 할 수 있단 말이오!”

이런 그들의 항의에 천여운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무감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어쨌다는 거지?”

‘이, 이놈은 정말....’

제갈보현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는 천여운에게 질렸는지 말문이 막혔다.

처음으로 누군가를 보면서 악마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 그와 달리 황보윤은 더욱 다그쳤다.

“어쨌다고? 하! 귀하는 강자라는 이점에 취해서 저들을 서로가 해하도록 몰고 가지 않았소이까? 그대가 하는 행동은 무인으로서의 저들의 명예를 모욕하는 것이오. 그냥 죽이는 것도 아니고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이오?”

“웃기는 놈이로군.”

“뭐요?”

-저벅! 저벅!

천여운이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허벅지에 얼음검이 박혀서 무릎을 꿇고 있는 그에게로 몸을 낮춰서, 눈을 마주친 후에 말했다.

“저들에게 선택권이 없었나?”

‘!?’

황보윤이 인상을 찡그리며 답했다.

“힘으로 억눌러 놓고 무슨 선택권이라는 것이오!”

“네놈 말따나 무인으로서 그리 모욕당하기 싫다면 자결이라는 좋은 방법이 있지 않나?”

“그, 그런....”

고지식한 황보윤의 말문이 막혀버렸다.

뭔가 궤변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반박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천마신교에 충성을 맹세한 저들은 스스로 살 길을 선택한 것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고 대항을 선택한 것도 무림 협회의 사람들이었다.

“네놈들이 선택한 것이다.”

“큭!”

논리로는 도저히 당할 수 없다고 생각한 황보윤이 말을 돌렸다.

좀 더 근본적인 무인으로서의 그를 꾸짖으려 들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건 아니오. 무인으로서 부끄럽지 않소. 설사 복수를 위해서라고 해도 귀하와 같은 강자라면 적어도...”

-꽉!

“웁!”

천여운이 황보윤의 입을 움켜쥐었다.

“제법 괜찮은 놈이라 여겼는데, 네놈도 입만 나불대는군.”

“웁웁!”

“그렇게 잘났다는 놈들이 계략을 꾸며서 본교를 교주란 녀석을 수감시키고, 네놈들끼리 작당해서 본교를 와해시켰느냐?”

“읍읍읍.”

‘그, 그건...’

황보윤의 눈동자가 떨렸다.

천여운이 말하는 것이 27년 전의 일임을 알고 있었다.

당시 무림의 축이라 불리는 사대 세력 중 하나인 천마신교를 무너뜨리기 위해 다른 세 세력이 힘을 하나로 모았다.

부끄러웠지만 사파와 마도를 몰아내고 정의가 넘치는 무림을 만들기 위한 결단이라 생각한 그들 모두의 결정이었다.

“네놈들 정파인들은 늘 협과 의를 입에 달고 살지.”

천여운의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우드득!

이빨이 부러지고 턱에 금이 갔다.

오므려진 입에서 피와 침이 섞여서 흘러내렸다.

“끄으으으으읍!”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황보윤이 손을 들어 올려 천여운을 밀쳐 내려했다.

그러나 그의 등 뒤에는 이사 환명오가 있었다.

환명오가 들어 올리려는 그의 오른손을 뒤로 꺾어버린 뒤에, 왼손에 도를 박아 넣었다.

-으드득! 푹!

“끄으으으!”

“움직이지 마라.”

황보윤은 어이가 없었다.

움직이고 싶어도 허벅지에는 얼음검이 박히고, 두 손마저 망가뜨려 버렸다.

뭘 어쩌란 말인가.

고통스러워하는 그에게 천여운이 말했다.

“협.....의.....개소리 집어치워라. 아무리 화려하게 포장해도 네놈들도 한 꺼풀 벗기면 그저 대가리만 굴릴 줄 아는 저 밖에 모르는 일개 인간일 뿐이다. 저게 그 답이다.”

천여운이 고개를 돌린 곳에는 무림 협회의 정파인들끼리 서로를 해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어느새 그들의 반수 이상이 죽어서 바닥은 시신으로 넘쳐났고 피 냄새가 사방에 요동을 쳤다.

살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는 자.

살고자 하는 동료를 이해하지 못해서 해하려는 자.

협(俠)과 의(義)는 어디에도 없었다.

‘이건....이건....으으으.’

황보윤은 어떠한 반론도 떠오르지 않았다.

뭐라고 반박하기에는 그의 눈앞의 현실은 절대적 신념으로 여기던 정파의 협과 의와는 괴리가 있었다.

황보윤이 괴로움이 가득한 눈으로 중얼거렸다.

“우으읍, 대처....대처....정의론 오디있돈 멀이뇨....”

‘대체....대체...정의란 어디 있단 말이냐....’

입을 움켜쥐고 있어서 발음을 제대로 못했지만 그가 무엇을 중얼거리는지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멍청하군. 무인이라는 놈이 그딴 소리나 지껄이다니.”

-꽈악!

“끄우우우웁!”

-콰득!

천여운은 그의 턱 관절을 그대로 뜯어내버렸다.

피범벅이가 되어 죽어가고 있는 황보윤에게 천여운이 비웃음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힘이 정의다.”

그런 그의 말에 황보윤이 허망한 눈빛으로 고개를 떨궜다.

천여운이 몸을 일으켜 세워서, 벌벌 떨면서 이것을 지켜보고 있던 제갈보윤에게 다가갔다.

그는 직감적으로 자신의 차례임을 알아차렸다.

항유린이 자신의 혈도를 점해서 억누르고 있지만 않다면 체면이고 뭐고 도망가고 싶은 심경이었다.

“천유장.”

“넵!”

천유장이 천여운의 부름에 얼른 다가왔다.

“복수를 하고 싶다고 했지? 처형해라.”

“감사합니다!”

복수의 기회가 주어지자 천유장의 얼굴이 환해졌다.

저들끼리 상잔하게 만든 것도 복수였지만 직접 손을 쓰고 싶어서 안달이 나있던 그였다.

천유장이 검을 빼들고 제갈보현에게로 다가갔다.

-스릉!

날카로운 검광에 제갈보현이 몸을 부르르 떨며 입을 열었다.

“천유장!”

이미 죽음은 기정사실이었다.

그렇다면 죽기 전에 할 말은 다하고 싶었다.

“이걸로 네놈들 마교가 부활할 거라는 헛된 망상 따윈 버려라. 해체하여 27년 전 만도 못한 힘으로 무림 전체를 상대할 수 있을 것 같나?”

“유언은 그게 다인가.”

천유장이 검을 위로 치켜 올렸다.

단번에 그의 목을 베어버리려는 것이었다.

제갈보현이 떨리는 목소리로 천여운 쪽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저 괴물 하나만 믿고 까부는 것도 지금 이 순간뿐이다. 천유장. 세상에 괴물이 저놈뿐이라고 여기지마라.”

그 말에 천유장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제갈보현의 말이 사실이라면 천여운에 버금가는 고수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말이 아닌가.

천유장이 혹시나 하는 생각에 물었다.

“혹시 협회장을 말하는 것이냐?”

천유장 역시도 소문을 들었었다.

무림 협회의 협회장이 생사경의 고수일지도 모른다는 소문.

현경의 고수도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마당에 그저 허황된 이야기라 여겼었다.

제갈보현이 입 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괴물의 상대는 괴물뿐이지. 하지만 그분은 10년 전부터 괴물이었다.”

제갈보현이 믿는 바는 바로 그것이었다.

천여운 같은 괴물이 천마신교가 와해된지 한참이 지난 이 시점에 나타났다는 것은 이제 갓 생사경의 경지에 올랐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제갈보현이 다시 한 번 천여운을 힐끔 쳐다보고는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성장 중인 괴물은 완성된 괴물을 이길 수 없다!”

그런데 그에 대한 천유장의 답은,

“아 그러셔.”

‘!?’

제갈보현이 인상을 찡그렸다.

마지막으로 그들을 도발하고 죽으려고 했는데, 원했던 그런 반응이 아니었다.

적어도 경계심 정도는 보일 줄은 알았다.

그런 그에게 천유장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래. 성장 중인 괴물이 완성된 괴물을 이길 리야 없지. 생사경의 고수가 무슨 수로 자연경의 고수를 이기겠어.”

“뭐엇?”

놀란 제갈보현의 두 눈이 커졌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촥! 뎅구르르르.

머리가 잘려나갔기 때문이었다.

< 19화 복수의 시작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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