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화 A등급 위험개체 (3) >
-쿠웅!
천여운의 검초에 머리가 통째로 날아간 알파 시바라가 쓰러졌다.
어찌나 거대한 몸이었는지 쓰러지는 순간에도 그 중량 때문에 땅바닥이 흔들릴 정도였다.
‘......저게 정말 인간이라고?’
무림인들 사이에서 최대한 전력을 보존하기 위해 적당히 싸우는 척하면서 알파형 개체에서만 시선을 떼지 않고 있던 간옹이었다.
A등급 알파형 개체답게 화경의 고수들조차 혼자서는 절대로 상대할 수 없을 만큼 알파 시바라는 괴물 그 자체였다.
그런데 그 괴물이 허무할 정도로 쉽게 바닥에 쓰러졌다.
‘저런 인외의 존재를 상대했으니.....’
이제야 1팀과 2팀이 어찌 그렇게 쉽게 전멸했는지 알 수 있었다.
간옹이 아까 전 윗선에서 했던 말을 떠올렸다.
[당신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A등급 알파 개체와의 싸움에 타깃이나 무림 협회의 전력 소모에 따라서 탈취 여부를 결정하세요.]
‘무리야.’
무림 협회의 피해는 고작 2할 정도에 불과했다.
너무 빨리 알파 개체가 잡혀 버려서 자신들의 팀원으로는 탈취는커녕 접근도 힘들었다.
아무리 초진동 검을 가지고 있어도 전력 차가 너무 심했다.
-슥!
간옹이 자신의 가슴팍에 꽂혀 있는 고글을 머리 위로 걸쳤다.
고글은 영상을 녹화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
‘놈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걸 최우선으로 하자.’
윗선에서도 안 될 경우에는 최대한 타깃에 대한 전력 분석을 우선시하라고 했다.
억지로 나섰다가 다수에게 노출될 바에 그게 나았다.
‘아! A등급 코어를 취하려는 건가?’
천여운이 쓰러진 알파 시바라의 등 위로 올라타는 모습이 보였다.
기감으로 어디서 코어의 에너지가 흘러나오는지 감지한 천여운은 익숙하게 알파 시바라의 등 한가운데에 서서는 손바닥을 내밀었다.
한데 알파 시바라의 몸이 들썩거리기만 할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천여운이 인상을 찡그렸다.
‘역시 신체 구조가 인간과는 완전히 다르군.’
보통 이 정도 진기라면 체내에서 코어를 뽑아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확실히 강기에도 어느 정도 내성을 지닌 육신답게 이를 버텨냈다.
‘그렇다면.’
천여운이 무형검을 등에 찔러 넣었다.
-푹! 스스스슥!
자연스럽게 원을 그린 후에 천여운이 진기를 일으켰다.
그러자,
-쿠쿠쿠쿠! 팍!
알파 시바라의 체내에 있던 사람의 몸통만 한 붉은 코어가 모습을 드러냈다.
확실히 놈의 거구에 걸맞는 크기의 코어였다.
아직까지 게이트 입구의 파장이 연결된 코어의 외피가 여전히 붙어있음에도 불구하고 풍기는 에너지가 보통이 아니었다.
천여운이 코어를 잡고 있는 손에 공력을 일으켰다.
-쩌저저적!
붉은 외피에서 균열이 일어났다.
유리가 깨지는 것처럼 외피가 표면 전체가 갈라지더니 이내, -파앙!
완전히 부서진 코어의 내부에서 강한 에너지 파장이 터져 나왔다. 파장이 사방으로 빠르게 퍼져나가는 순간, 곧바로 사태에 변화가 일어났다.
“크와아아아아!”
“크카카카! 크카카카!”
도로를 지나쳐 제남시로 진입하려던 일반 시바라들이 괴상한 울부짖음을 보이더니, 이내 방향을 틀어서 북동쪽으로 돌아가려 했다.
“와아아아아아!”
“놈들이 돌아간다!”
무림인들과 게이트 키퍼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참으로 신기한 현상이었다.
코어가 부서져 게이트가 닫히는 파장이 퍼질 때마다 위험 개체들은 필사적으로 게이트로 돌아가려 했다.
“놈들이 이탈하지 못하게 지켜라!”
“방심하지 마라. 한 놈도 시 내부로 진입시켜선 안 된다.”
그렇다고 해도 간혹 게이트로 돌아가지 않고, 남아서 혼란을 야기시키는 위험 개체들도 있기에 무림인들과 게이트 키퍼들이 눈을 떼지 않았다.
다행히 시바라들은 다른 개체들보다도 귀소본능이 높은지, 공격을 당해도 도망치는데 전력을 다했다.
-고오오오오!
외피가 완전히 부서져서 모습을 드러낸 사람의 머리만한 코어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A등급답게 어마어마했다.
‘대단한데?’
천여운이 내심 놀라워했다.
C등급 코어와는 비교도 안 되는 기운이 이 안에 응축되어 있었다.
‘이 정도라면 순수한 기운만으로는 영물의 진원에 버금갈 정도다.’
물론 영물과 완전히 비교하기는 힘들다.
영물의 경우 속성의 기운부터 시작해 뛰어난 재생 능력 등, 여러 신비한 효능들이 잠재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단순한 에너지로 볼 때는 A등급 코어는 진원에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오오오!”
“저게 A등급 코어.”
무림인들과 게이트 키퍼들의 입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A등급 코어는 모든 사람들이 탐을 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보물이었다.
처음에는 놀라기만 했던 그들의 눈빛에 탐욕이 감돌았다.
‘정말 아쉽구나. 처음 보는 자의 손에 A등급 코어가 들어가다니.’
내상을 입은 황보윤이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제남시도 여태껏 A등급 게이트가 열렸던 것은 근 10년 만에 있는 일이었다.
저것을 정제한다면 비약적인 내공의 상승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오대고수 중 일인인 풍제 주사경 역시도 A등급 코어를 취해서 현경의 경지로 발돋움 했다고 하던데.’
그 소문 이후로 무림인들은 더욱 코어에 집착했다.
하지만 무림인들이라고 해서 바보는 아니었다.
절대적인 역량의 무위를 보인 천여운을 상대로 누가 코어를 탐낼 수 있겠는가.
‘대체 저 자의 정체가 뭐지?’
자신들이 본 것이 틀리지 않았다면 분명 무형검을 펼쳤다.
현대 무림을 좌지우지 하는 오대고수조차 생사경의 고수로 등록된 자가 없었다.
‘아니. 저렇게 젊다니?’
‘고작 이십대 초반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데...’
천여운의 겉모습만 본다면 많이 줘도 이십대 초반을 넘기기 힘들었다.
나이가 전부는 아니지만 무공이라는 것은 연마의 시기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내공이나 무위가 더 쌓이기 마련이었다.
모두가 의구심을 품었을 때 제갈보현이 나섰다.
-탁!
부상을 당해서 다리를 쩔뚝거리면서 천여운 앞으로 다가와서는 무림의 인사 방식인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제갈 문화 재단의 이사장인 제갈보현이라고 하오. 귀하 덕분에 알파급 위험 개체를 쉽게 제압할 수 있었소이다. 그 점을 감사드리고 싶었소.”
-탁!
이사장을 따라서 제갈 문화 재단의 사람들이 포권을 취했다.
공손하게 감사의 인사를 건넨 제갈보현이 포권을 풀고서 본론을 꺼냈다.
“한데 귀하께 묻고 싶은 게 있소이다.”
“뭐가 묻고 싶다는 거지?”
천여운이 냉랭한 목소리로 그의 말에 반문했다.
이에 제갈보현이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그래도 먼저 신분을 밝혔으니, 예의상 자신의 소개 정도는 밝힐 거라 여겼는데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무림 협회에서 20여년간 있었지만 귀하와 같은 절대고수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없소이다. 대체 누구신지 여쭤 봐도 되겠소?”
제갈보현이 궁금한 것은 두 가지였다.
지금 질문은 자신이 먼저 인사를 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라 여겼지만, 천여운의 냉랭한 태도에 직접 물을 수밖에 없었다.
‘블레이드 식스의 계열사인 백예 사장도 모르는 눈치인 것을 보면 미등록 무림인일 지도 모른다.’
이 정도 실력자라면 알아둘 필요성이 있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천여운의 대답은 그를 황당하게 만들었다.
“네놈에겐 내 이름을 알 수 있는 자격 따윈 없다.”
“뭐, 뭐요?”
참으로 오만하기 짝이 없는 대답이었다.
제남시를 이끌어가는 무림 협회 지부의 간부이자, 제남사성의 일인인 자신을 상대로 이렇게 예를 무시하는 대답을 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제갈보현이 다소 노기가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귀하의 무위는 인정하는 바이지만 꽤 지나치시구려.”
그의 말에 동조하는지 각 파의 수장들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제갈보현은 정도 무림의 명문이라 할 수 있는 오대세가 중 하나인 제갈세가의 후예로 충분히 존중받아 마땅했다.
제갈보현의 뒤에 있던 한 중년인이 앞으로 나와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탁!
“제갈방현이라고 하오.”
제갈 문화 재단의 부장직을 맡고 있는 제갈방현이었다.
세가의 가주이자 이사장인 제갈보현이 모욕을 당했다는 생각에 직접 나선 그였다.
“이분은 제갈 문화 재단의 이사장이시오. 적대적인 관계도 아닌데, 무림인이라면 무림의 명숙에 대한 예는 지켜주기 바라오.”
“예라.....”
천여운의 눈매가 날카로운 검처럼 가늘어졌다.
천마신교만큼은 아니었어도 무림이란 강자존의 논리가 적용되는 세상이었다.
그런데 압도적인 무위를 눈앞에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들의 반응은 마치 사회적인 직위와 신분을 내세워 존중을 바라고 있었다.
‘이게 현 무림의 수준인가?’
무림에 정부의 산하에 속해지면서 이렇게 된 것인지. 아니면 시대의 흐름에 따른 변화인지는 몰라도 천여운이 생각하는 무림인의 본질에서 한참은 벗어났다고 여겨졌다.
‘흠. 분위기가 적당하구나.’
이를 관망하고 있던 백예가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정체불명의 절대고수인 천여운이 위험 개체 토벌에 끼어들어 영웅처럼 받들어질까봐 우려했던 그였다.
한데 천여운의 오만한 대응 덕분에 무림인들이 오히려 경계하는 빛이 강했다.
‘적당히 여론을 몰아간다면 저런 괴물이 제남시에서 활동하는 것을 막을 수 있겠구나.’
이 기회를 살리기 위해 백예가 끼어들었다.
“실례하오. 본인은 이곳 제남시 무림협회의 지부장인 백예라고 하오. 말이 나온 김에 본인도 한 가지 묻고 싶은 있소이다. 귀하 정도의 고수라면 처음부터 나서서 무림 동도들이 더 피해를 보기 전에 해결할 수 있었을 터인데 말이오.”
-웅성웅성!
지부장 백예의 말에 무림인들이 반응을 보였다.
관심이 천여운과 A등급 코어에만 돌아가서 미처 몰랐던 그들이었다.
백예의 말대로 천여운이 조금 더 빨리 손을 썼더라면 사상자가 나오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백 지부장님의 말이 옳아.”
“진즉에 나서줬으면 저들 누구도 죽지 않았을 텐데.”
“어째서 뒤늦게 나선 거지?”
천여운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의 개입 덕분에 시민들의 목숨과 자신들의 피해가 줄어들었다는 생각보다는 오히려 그를 탓하는 분위기가 되어갔다.
백예가 내심 자신의 계획이 통한 것에 흡족해하면서 더욱 쇄기를 박으려 했다.
“그리고...”
그때 황보윤이 끼어들었다.
“잠깐 기다려보시오. 백 지부장. 어찌 되었든 이분의 도움 덕분에 많은 인명 피해를 피할 수 있었는데, 너무 부정적으로 몰아붙이는 게 아니오?”
모두가 한결 같이 생각이 같은 것은 아니었다.
황보윤은 은원 관계를 맺고 끊음이 정확한 자로 A등급 코어를 놓치기는 했지만, 이번 위험 개체 토벌에 있어 천여운에게 은혜를 맺었다고 여겼다.
‘황보 사장. 이 자가 낄 때 안 낄 때를 모르는군. 미등록 무림인을 띄워주면 우리 입장이 어찌 될 지도 모르고.’
황보윤을 한심하게 쳐다보던 백예가 말했다.
“물론 이 젊은 대협의 공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소. 하지만 힘을 가진 자는 그에 따른 책임이 있는 법이오. 대협이 우리와 함께 처음부터 알파 시바라를 상대해줬다면 분명 피해를 줄일 수도 있었소. 하지만 황보 사장부터 시작해 제갈 이사장이 부상을 당할 동안 관망만 하다가 나섰소이다.”
“하고 싶은 말이 뭐요?”
-척!
백예가 천여운의 손에 잡혀 있는 코어를 가리키며 말했다.
“혹시 코어를 얻기 위해서 우리 제남시 무림 협회와 게이트 키퍼들을 전력 분석을 위한 용도로 이용한 게 아니냔 말이오?”
-웅성웅성!
제대로 쇄기를 박는 그의 말에 주위 무림인들과 심지어 게이트 키퍼들의 눈빛에 불만이 피어올랐다.
‘됐군.’
백예의 얼굴이 득의양양해졌다.
마치 자신의 말이 틀리지 않냐는 듯이 천여운을 쳐다보았다.
이 정도로 밀어붙였으니, 영웅은커녕 그의 입지가 확연하게 줄어들 거라 확신했다.
그때 천여운이 입을 뗐다.
“뭔가 오해를 하는 것 같군.”
‘흥. 해명을 해봐야 늦었어.’
천여운이 해명을 하려 한다고 생각한 백예가 더욱 그를 밀어붙였다.
“명확한 해명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들은 귀하가 하는 말을 전혀 믿을 수가...”
“네놈 혓바닥이 길구나.”
“뭐?”
-꽈악!
“우으으읍”
그 순간 그의 혓바닥이 강제로 입 밖으로 날름 튀어나왔다.
백예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데, 천여운이 검결지를 쥔 손가락을 휘저었다.
그러자,
-촥!
“꾸으으으읍!”
튀어나온 백예의 혓바닥이 날카로운 예기에 잘려나갔다.
혓바닥이 잘린 백예는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피가 흘러내리는 입을 틀어막고서 비명을 질러댔다.
“지, 지부장!!!”
“이게 무슨 짓이오!”
-챙! 챙! 챙!
갑작스러운 천여운의 행동에 무림인들이 놀란 나머지 다급히 병장기를 빼들었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천여운이 말했다.
“내가 고작 네놈들을 구하기 위해서 나선 것 같나?”
“그게 무슨 소리요?”
제갈보현이 긴장된 얼굴로 물었다.
이에 천여운이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답했다.
“네놈들도 정리대상인데 말이야.”
< 18화 A등급 위험개체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