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마신 2부 (마신강림)-44화 (44/234)

────────────────────────────────────

13화 천마 (3)

행방불명 된 24대 교주 마신 천여운.

그가 사라진지 천 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다.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회장의 커진 두 눈동자가 미친 듯이 떨려왔다.

현재에 와서 평균 인간의 수명은 의학의 발달로 90세에서 120세에 이른다.

내공을 연마한 절세고수들 중에서도 170세를 훌쩍 넘긴 자들이 무림 협회에도 여덟 명 정도가 등록되어 있다.

그 만큼 장수가 가능한 시대였지만 천 년이라 함은 상식을 뛰어넘는다.

‘이 모습은 아무리 봐도....’

갓 스무 살이 된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불노불사의 삶을 살아오지 않고는 불가능한 모습이었다.

그때 그의 머릿속으로 한 가지가 떠올랐다.

‘24대 선조이신 마신께서는 무림에 있어서 마지막으로 자연경의 경지에 도달한 고수라고 하였다.’

무인이 도달할 수 있는 마지막 경지라 불리는 자연경.

무림인들은 이 꿈의 경지라 불리는 자연경에 도달한 자는 불로불사하게 되어 영생을 살아가거나 신선이 되리라 믿고 있었다.

회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저, 정말 24대 선조님이 맞으십니까?”

“내 말을 허투루 듣는군.”

긍정을 표하는 천여운의 말에 회장의 온몸에서 소름이 일어났다.

전율이 일어났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만약 정말로 그가 알고 있는 마신이라면 실질적인 조상이나 다름없었다.

한때 외척에 의해 휘둘린 천마신교를 정리하고서 다시 천(天)가를 바로 잡으면서 현 교주 일가는 천여운의 직계인 것이다.

‘정말 24대 선조님이시라면 이렇게 해선 안 된다.’

“큭!”

회장이 억지로 상체를 일으키며 천여운에게 머리를 굽혔다.

그리고 큰 목소리로 외쳤다.

“소손 천유장이 24대 선...”

-슥!

“엇?”

미처 예를 표하는 것이 끝나기도 전에 회장 천유장의 몸이 저절로 일으켜 세워졌다.

그와 마주하고 있는 천여운이 여전히 싸늘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모두 고개를 들어라.”

‘모두?’

뜻밖의 명령에 엎드려서 머리를 조아리고 있던 중진들이 영문을 몰라 했다.

하지만 천마의 명은 절대적이었다.

그들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천여운을 바라보았다.

“네놈들에게는 실망이 크다.”

직접적인 꾸짖음에 중진들이 동시에 머리를 숙이며 외쳤다.

“송구스럽습니다!!!”

변명할 여지는 없었다.

사고를 친 아이와 같은 기분으로 그들은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했다.

그런 중진들에게 천여운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송구? 그딴 말로 유야무야 넘어갈 것 같으냐. 오늘 너희들은 본교를 망친 대가로 그에 대한 벌을 받게 될 것이다.”

‘벌?’

벌이라는 말에 중진들의 표정이 제각각 달라졌다.

어떤 이는 불안해했으며, 어떤 이는 회장이나 옥 중의 교주가 호통을 치며 다그치던 것을 떠올렸다.

그들이 의아해하는 사이에 천여운의 손이 천유장의 왼쪽 팔목으로 향했다.

“네가 첫 번째다.”

“서, 선조님....”

천유장이 긴장되었는지 침을 꿀꺽 삼켰다.

환명오 이사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이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직계 후손이신데 회장님께 크게 손을 쓰시진...’

-콰득!

“끄아아아아악!”

천유장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

중진들의 눈동자에 경악의 감정이 서렸다.

고통스러워하는 천유장의 왼쪽 팔목이 회의장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회, 회장님!”

“어찌 이렇게까지!”

중진들도 설마 팔을 자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는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 그들의 반응을 뒤로 한 채 천여운이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천유장에게 말했다.

“첫 번째! 본교를 엉망으로 만들고 교인들이 뿔뿔이 흩어져 도망자 신세가 되게 만든 것에 대한 벌이다.”

“끄으으으윽.”

천유장이 두려움에 찬 눈으로 천여운을 바라보았다.

그 역시도 벌이라는 말에 어느 정도 각오는 했지만 설마 팔을 자르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었기에 당황스럽기는 매한가지였다.

“천마이시여!”

그때 환명오가 앞으로 나서며 무릎을 꿇고 말했다.

“너무 과하시옵니다. 아무리 그래도 회장께서는 본교의 한 파벌을 이끄시는 수장이시자, 직계 후손입니다!”

“흥.”

천여운이 콧방귀를 뀌며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회의실 바닥에 있던 잘려나간 천유장의 팔이 환명오의 앞에 떨어졌다.

-팍!

그것을 본 환명오의 눈동자가 떨렸다.

천유장의 잘린 팔은 냉동고에라도 넣은 것처럼 한기를 풍기고 있었다.

‘차가워. 설마?’

절단된 신체 부위를 다시 접합하기 위한 조치 중에 잘려나간 부위를 거즈나 손수건에 싼 뒤에 얼음주머니 속에 넣곤 한다.

그것은 잘린 단면의 조직 손상이 적도록 하기 위함이다.

게다가,

‘잘린 단면이 깨끗하다.’

무작정 과하게 팔을 자른 것 같았지만 그게 아니었다.

하지만 천여운 같이 검으로 극의 경지에 이른 자는 생검(生劍)이라 하여, 손상을 최소화시킬 수 있다.

‘무작정 자르신 게 아니구나.’

말 그대로 벌의 의미가 강했다.

천여운이 애초에 정말 팔을 잘랐을 거면 다시는 접합할 수 없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 의도가 아님을 알게 된 환명오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서, 선조님....”

이를 모르는 천유장은 미칠 노릇이었다.

이제 겨우 첫 번째 잘못이라며 팔을 잘랐는데, 두 번째, 세 번째가 되면 목이라도 잘릴까봐 두렵기마저 했다.

“부, 부디 용서해주십시오.”

천유장이 애원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천여운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할 말을 이어갔다.

“두 번째, 본교가 위기에 처해있는데도 교주직에 대한 사리사욕으로 본교를 와해시킨 것에 대한 벌이다.”

-팍!

“헉!”

천유장의 두 눈이 커졌다.

천여운의 손바닥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자신의 단전이었다.

팔이 잘렸을 때보다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서, 선조님! 이...이건 아닙니다. 제발!”

“뭐가 아니야.”

-꽈아아악!

천여운이 그의 단전이 있는 복부를 움켜쥐었다.

그러자 천유장의 단전 부위로 심후한 진기가 파고들었다.

“끄어어어억!”

천유장의 얼굴이 종이 조각마냥 구겨졌다.

본능적으로 단전의 내공을 끌어올려 방어하려 했지만, 진기의 격차가 너무 심했다.

파고든 천여운의 진기가 단전을 휘저으며 엄청난 고통이 밀려왔다.

“끄아아아아아악!”

목부터 시작해 이마까지 핏줄이 곤두서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 엎드려 있는 중진들 모두가 두려움을 금치 못했다.

‘설마 단전을 폐하시려는 건가?’

정말로 그런 것이라면 팔을 자른 건 시작에 불과했다.

“선조니이이이임! 제발! 제발 용서해주십시오! 끄아아아악.”

“본교를 망친 너희 세 놈을 한 자리에 모을 때까지 네 녀석의 단전을 봉한다.”

그 말과 함께 천여운이 단전에서 손을 뗐다.

불로 데인 것처럼 고통스럽던 통증이 일순간에 사라졌다.

“헉......헉....”

‘내, 내공이?’

천유장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단전을 봉했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평소라면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던 내공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끄으으윽.”

팔이 잘린 것도 모자라 내공마저 봉해지자, 얼마나 비참했는지 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중진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이렇게 된 것이 더욱 견딜 수가 없었다.

‘끄으으....직계 혈손에게 어찌 이러실 수 있단 말인가.’

더 이상 잃을 것도 없었다.

자신의 손으로 교주라는 목표를 쟁취하기 위해 친형과 갈라서는 것마저 감수했다.

유일한 삶의 목적이 이렇게 산산조각 나고나니 의욕을 상실하고 말았다.

넋이 나간 그에게 천여운이 말했다.

“세 번째.”

‘세 번째?’

천유장이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팔도 잘리고 단전도 봉해진 마당에 대체 무엇을 꾸짖으려 한단 말인가.

그러던 차였다.

-삐리리리리! 삐리리리리!

사무실의 내선 전화가 울려 퍼졌다.

그것은 내선 전화만이 아니라 중진들 중에 환명오 이사를 비롯한 몇 명의 스마트폰의 진동 역시도 울렸다.

‘흠.’

천여운이 의아해했다.

심후한 진기로 회의실의 모든 소리를 차단 시켰는데, 이 밤중에 내선이 걸려왔다.

‘밖에 있는 녀석들은 아니다.’

회의실 밖에 보안 요원으로 판단되는 기척들 이십여 명이 모여 있었다.

아마도 천장이 뚫리면서 난 굉음 때문에 몰려든 것이리라.

하지만 이들은 중진 회의가 진행되는 회의장이라 그런 것인지 함부로 출입하지 못하고 밖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렇다면....’

천여운이 암막처럼 가려져 있는 회의장의 커튼 쪽을 바라보았다.

모두가 어떻게 해야 할지 눈치를 보고 있을 때였다.

“받아라.”

“알겠습니다!”

천여운의 그 말에 환명오가 냉큼 내선 전화를 받아서 말했다.

“지금 회의 중이다.”

얼른 끊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환명오의 표정에 난처함이 묻어났다.

그가 내선 전화기의 스피커 소리를 차단시키고는 다급히 회의실의 창문을 가리고 있던 커튼을 펼쳤다.

커튼을 펼친 순간 창문 밖으로 용천 그룹의 부지 입구 쪽에 몰려 있는 수많은 방위군의 차량들이 보였다.

“방위군.”

“어째서 저들이?”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모두가 의아해하는데, 환명오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천여운과 회장인 천유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방위군의 백진창 소교(소령)입니다.”

“백진창 소교? 그 자가 어째서?”

“저희 본사의 부지로 미확인 비행 물체가 떨어진 것 같다고, 게이트 관련 문제일 수 있으니 수색 협조 요청을 해왔습니다.”

미확인 비행 물체라는 말에 중진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천여운에게로 향했다.

천장을 뚫고서 날아온 당사자가 그였으니 말이다.

천여운도 미처 그 점은 예측하지 못했는지 미묘한 표정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스텔스 기능으로 비행하지 않았나? 나노.’

[레이더가 아니라, 자기장 입자가 내뿜는 열선이나 비행장면을 적외선 카메라로 포착했을 수도 있습니다.]

레이더는 나노 슈트의 스텔스 기능으로 막을 수 있다.

하지만 게이트 방위군은 방벽 내로 위험 개체의 접근을 막기 위한 대책을 세워놨기 때문에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고는 움직임이 감지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귀찮게 되었군.’

창문을 쳐다보며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였다.

천유장이 그에게 조심스레 운을 뗐다.

“저 선조님.”

“뭐지?”

“방위군의 백진창 소교라면 제가 어떻게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볼 수 있다고?”

“그 자는 저희 용천 그룹에 꽤 많은 후원금을 받은 자이니, 잘 타일러서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다른 중진들도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거렸다.

용천 그룹이 이곳 제남시에서 상장할 수 있게 된 배경에는 그만큼 내부 고위직들과의 관계를 돈독히 맺어왔기 때문이었다.

지그시 그를 바라보던 천여운이 허공에 몸을 고정해놓던 진기를 풀어주었다.

“미,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조님. 금방 해결하겠습니다!”

뜻밖의 방위군의 등장으로 세 번째 벌을 유야무야 넘기게 된 회장 천유장이 서둘러 환명오 이사를 비롯한 중진 두 명을 데리고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천유장의 입 꼬리가 실룩거렸다.

'나이스 타이밍!'

방위군의 등장이 진심으로 고맙게 느껴지는 그였다.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