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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천마 (2)
천마기에 억눌려 무릎을 꿇은 용천 그룹의 중진들은 빠르게 이 사태를 파악해 나갔다.
그들은 비환귀종의 소종주인 환시아와 달리 와해되기 전부터 천마신교의 상위, 최상위 종파의 종주로서 회사를 이끌어가는 자들이었다.
당연히 스스로에게 벌어진 원인을 파악할 능력은 가지고 있었다.
‘마기가 떨리고 있다.’
‘체내에 있는 마기가 제어가 되지 않아.’
그들은 본능적으로 그 원인이 갑작스럽게 나타난 천여운임을 알아차렸다.
-고오오오!
‘대체 이 자의 마기는....’
천여운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는 그들이 지닌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비교를 한다면 바다와 시냇물의 차이나 다름없었다.
‘단순한 명령만으로 타인을 강제할 수 있는 마기가 존재했다니?’
마기에도 우위가 존재한다.
더 순도 높고 강한 마기를 지닌 자는 약한 자를 심적으로 위축시킬 수 있다.
하지만 직접적인 행동에 대한 간섭은 처음 겪는 일이었다.
그런 그들을 스윽 훑어본 천여운이 입을 열었다.
“마침 잘됐군. 여기에 있는 아홉 명이 이쪽 파벌을 이끄는 자들인가.”
‘이쪽 파벌?’
무릎을 꿇고 있는 중진들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파벌이라는 말이 나왔다는 것으로 두 가지 사실을 추측할 수 있었다.
이 자는 자신들의 진정한 정체를 알고 있다.
두 번째는 다른 파벌일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것이었다.
“네 녀석이 가장 상석에 앉아 있군.”
천여운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회장에게로 향했다.
긴 탁자 위에 올라 서 있던 천여운이 상석에 있는 그를 향해 다가가려 했다.
바로 그때였다.
“멈춰랏!”
-파팍!
“호오?”
천여운의 눈이 이채를 띠었다.
무릎을 꿇고 있던 중진들 중에 두 사람이 몸을 일으켜 세운 것이었다.
그들 중 한 사람은 비환귀종의 당대 종주인 환명오 이사였다.
[마기를 억누르시오.]
환명오 이사의 전음에 다른 중진들도 어떤 뜻인지 알아차렸다.
마기가 천마신교에 일반화 된지도 근 천 년이 흘렀다.
천 년이라는 시간은 그들이 마기를 자유롭게 다룰 수 있게 만드는 근간이 되었다.
‘마기가 구속구라면...’
그것을 극한까지 억누르면 된다.
환명오 이사의 말대로 마기를 억누르자, 천여운의 명령으로 강제로 꿇려져 있던 그들의 신체 제어권이 다시 자신들에게로 돌아왔다.
-파팍!
이윽고 회장을 포함한 세 사람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다섯 사람에 비해 나머지 네 명은 스스로의 기(氣)를 제어하는 능력이 비교적 떨어졌는지, 여전히 신체의 구속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제법이군.”
천여운이 일어난 다섯 명을 칭찬했다.
천마기를 극한으로 끌어올린 것은 아니었지만 그 상황에서 혼란스러워하지 않고 침착하게 벗어난 것이 제법이라 여겼다.
환명오가 자신의 보도인 귀명도(鬼命刀)를 손에 꾹 쥐고서, 경계심을 풀지 않은 상태로 두 손을 모아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비환귀종의 종주 환명오입니다. 혹 본교의 선배님이십니까?”
환명오는 천여운이 천마신교의 사람이라고는 확신했다.
모든 무림인을 중에서 마기를 다룰 수 있는 것은 오직 천마신교의 교인들뿐이었다.
다만 정체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저 검....’
환명오의 시선이 탁자의 한가운데에 꽂혀 있는 검에 향했다.
저 검을 몰라볼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진품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얼마 전 간자가 천우경 파벌 쪽에서 흘린 영상 속의 천마검과 매우 닮아 있었다.
그때 그런 그를 향해 천여운이 흥미롭다는 듯이 말했다.
“환 장로의 후손치고는 말투가 제법 사내답구나.”
“환 장로?”
“그 인피면구와 귀음공이 아니라면 비환귀종이 아니라 평범한 종파의 사람이라고 해도 믿겠구나.”
천여운의 그 말에 환명오의 인상이 굳어졌다.
본교의 사람들 중에 비환귀종의 비전 심법인 귀음공을 알고 있는 자들은 교주 일가와 몇몇 최상위 종파의 가주들뿐이었다.
이것까지야 어떻게 알려져서 그럴 수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인피면구는 아니었다.
‘어떻게 안 거지?’
이 자리에 있는 회장조차도 자신이 인피면구를 벗은 맨 얼굴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당연했다.
비환귀종의 종주들은 오직 교주에게만 얼굴을 밝힌다.
지금의 회장은 자신을 교주로 지지한다면 원래의 얼굴로 떳떳히 활동하라고 명했다.
강요에 가까운 명에 어쩔 수 없이 인피면구를 벗는 척 했지만, 사실 그것은 이중 인피면구라는 희대의 기술로 속인 것이었다.
"환 이사?"
회장이 정말이냐는 듯이 쳐다보자, 환명오가 난처함을 감추지 못했다.
난감한 상황에 빠진 그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그때 누군가 탁자 위에 있는 천여운을 향해 검초를 펼쳤다.
“본교의 선배인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감히 회장님 앞에서 건방떨지 마랏!”
뛰어난 검술 실력을 지닌 검수였다.
검초가 뱀처럼 다양한 각도로 변화를 일으키며 7개의 요혈로 동시에 찔러 들어왔다.
-촤촤촤촤촥!
-팍!
“엇?”
그를 향해 검초를 펼친 중년인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검의 일식이 펼쳐지기도 전에 천여운이 두 손가락으로 그의 검날을 잡아버린 것이다.
“내사검종의 검사칠경. 명불허전이지만 변화가 적어.”
-뽀각!
천여운이 살짝 힘을 주자 그의 검날이 부러졌다.
“서등에 비하면 한참 모자라다. 일 장로의 후손이라는 말이 무색하군.”
'!?'
중년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서등은 내사검종의 6대 조상이자 종주였다.
“내게 검을 휘두른 대가는 치러야 겠지.”
“뭐?”
-팍!
천여운이 부러뜨린 검날을 손가락으로 튕기며, 그에게 날렸다.
부러진 검신의 검날이 기묘한 각도로 날아가며 중년인의 좌측 가슴을 파고들었다.
“크헉!”
-부우웅! 쾅!
검날에는 얼마나 심후한 공력이 담겨 있었는지, 중년인의 몸이 뒤로 날아가 회의실의 벽면에 박히고 말았다.
“서 본부장!”
회의장에 있던 중진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서 본부장은 중진들 중에서 세 손가락에 꼽히는 화경의 고수였다.
그런 그가 고작 일수에 나가 떨어졌다.
무림 협회 기준으로 진(辰)급 고수가 말이다.
“역시 다른 파벌이냐!”
회의장의 중진 중에 유일한 홍일점이었던 검은 스커트를 입고 있는 중년의 여인이 검신의 가운데가 파여서 강사선이 붙어 있는 특이한 검을 천여운에게 겨냥했다.
그리고는 악기를 연주하듯이 강사선을 손가락으로 튕기며 검을 앞으로 뻗었다.
“이런!”
그녀의 행동에 모든 중진들이 일제히 귀를 틀어막았다.
-우아아아앙!
그 순간 회의장 전체에 진동이 일어날 만큼 강렬한 음파와 함께 검강이 분무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처럼 사방으로 분사되어 천여운을 뒤덮었다.
‘파형분검!’
그것은 음마종의 무공인 비마음검(枇魔音劍)의 최종 절기였다.
오직 화경의 경지에 이르러야만 펼칠 수 있는 절기로 음파공에 검강을 싣는 비기로 굉장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 거리에선 절대 막지 못해!’
좁은 공간에서는 더욱 효과적이다.
그녀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하지만,
“역시 음마종이었나.”
천여운이 가볍게 허공을 향해 손바닥을 쳤다.
-파앙!
그러자 마치 공기를 때리듯이 커다란 소리와 함께 허공에 둥근 파문이 일어나며, 검강이 보이지 않는 벽에 막혀버리고 말았다.
“이럴 수가! 본 종의 비기를...”
너무 쉽게 막아버렸다.
설사 현경의 고수라고 해도 고작 다섯 보도 안 되는 거리에서 이것을 맞게 되면 전신이 분사된 검강이 휩쓸릴 텐데, 어처구니가 없었다.
“검과 음파의 결합이라.....제법 쓸 만해졌군. 음마종.”
천여운은 의외로 전보다 발전한 음마종에 흥미로웠다.
그가 교주로 집권한 후로 음마종은 과거의 죄로 인해 힘이 약화된 상태였다.
그런데 오랜 세대 교체가 진행되면서 무공이 예전에 알고 있던 음마종주보다 훨씬 발전해 있었다.
“음마종이라 더 잘됐군.”
“그게 무슨?”
-휙!
천여운이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갑자기 그녀가 자신의 가슴을 움켜잡고는 신음성을 흘렸다.
“하악!”
이것은 진기로 압박을 가하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심장을 갉아 먹는 듯한 처음 겪어보는 강렬한 고통에 그녀가 온몸을 뒤틀었다.
“아아아악!”
대체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녀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가만히 있었는데 심장이 아팠다.
뭔가 체내에 문제가 생겼다고 판단한 그녀가 내공을 끌어올리려고 했는데,
-욱씬욱씬!
“꺄악!”
단전에서도 심장에서 느껴졌던 고통이 유발하면서 내공을 끌어올릴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내공을 움직이면 통증이 유발했다.
이것은 마치 체내를 갉아먹는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내상을 입었을 때보다도 고통스러웠다.
“끄으으으윽!”
“항 부장!”
다른 중진들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그런데 고통스러워하는 그녀의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심장과 단전?’
처음에는 자신이 왜 고통스러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그녀였다.
그런데 문득 한 가지가 떠올랐다.
‘고독?’
고독(蠱毒).
그것은 독충의 일종으로 체내에 잠복해 있다가 숙주를 위협하는 위험한 독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체내에 고독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이것은 그녀의 종파 대대로 물려받은 족쇄였다.
‘이럴 수가....’
심장을 움켜잡은 채로 그녀가 천여운을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몸속에 있는 고독은 자신의 선조였던 항소유가 24대 교주인 천여운에게 벌로서 받은 금제라고 들었다.
이 고독은 초대인 천마 조사가 만든 특수한 고독으로 오직 천마기에 감응한다.
오직 천마기를 가진 자만이 통제할 수 있는 독충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음마종은 체내에 있는 이 고독을 제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의학 기술이 발전해도 실벌레처럼 심장과 단전에 기생하는 이 독충을 제거할 도리가 없었다.
찝찝하긴 했지만 더 이상 천마신교에는 천마기를 가진 후예가 없었기 때문에 포기하며 살았는데, 그것이 발동한 것이었다.
“다, 당신은 대체 누구입니까? 어떻게 천마기를?”
“천마기!”
-웅성웅성!
항 부장의 말에 중진들이 혼란스러워했다.
자신들과 마기가 격이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천마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왜냐하면 천마기는 2대 천마를 마지막으로 끊겼기 때문이었다.
“정녕 내가 누군지 모르겠느냐?”
-고오오오오!
천여운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폭사되어 나왔다.
처음 그들을 압박했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숨이 턱 막힐 것 같은 마기에 중진들이 경악하고 말았다.
‘어, 어찌 이런 일이....’
그들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억지로 마기를 억누르고 있었지만, 상위 기운에 떨고 있는 마기가 부정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들의 눈빛이 탁자에 꽂혀 있는 천마검으로 향했다.
‘천마검.....천마기!’
그것이 상징하는 것은 오직 단 하나였다.
그때 중진 중 한 사람이 무릎을 꿇었다.
-쿵!
그는 환명오 이사였다.
무릎을 꿇은 환명오가 바닥에 머리를 세 번 박으며 외쳤다.
-쿵! 쿵! 쿵!
“대 천마신교의 미천한 교인 환명오가 천마를 배알하나이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회의실에 있던 대부분의 중진들이 일제히 바닥에 머리를 조아리며 외쳤다.
“천마를 배알하나이다!!!”
천마신교의 절대적인 율법.
천마의 칭호를 가진 자의 앞에 누구도 불복할 수 없다.
하지만 유일하게 머리를 조아리지 않은 단 한 사람이 존재했다.
그는 바로 용천 그룹의 회장이었다.
“그럴 리가 없다! 천마기는 24대 선조님 이후로 사라졌거늘! 중진들은 지금 무슨 짓들을 하는 게야! 그대들이 무릎을 꿇어야 하는 자는 본 회장이다!”
회장은 크게 노했는지 이마에 핏줄까지 서서 상기되어 있었다.
그런 그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모든 중진들은 바닥에 머리를 조아리고서 움직이지 않았다.
‘이럴 수 없어.’
이들은 자신을 지지하며 따라온 자들이었다.
그런데 천마라는 상징적인 힘을 지닌 자가 등장했다는 이유로 쉽게 굴복해버렸다.
그는 절대로 믿을 수가 없었다.
“천마검은 속일 수 있어도 사라지신 24대 선조 때 끊긴 천마기를 대체 무슨 수로 물려받는 단 말이느냐!”
-팟!
노기가 극에 달한 회장이 천여운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본교를 능멸하지 마랏!”
검을 뽑은 그가 검초를 펼쳤다.
24개의 검식이 조화를 이루더니 화려한 궤적을 그리며 절세검초를 이루었는데, 이것은 천마검공 제 2초식이었다.
천마신교를 넘어서 무림 전체에서 가장 완벽한 검법이라 불리는 천마검공의 검초가 그의 손에서 발한 것이다.
-촤촤촤촤촤촥!
‘오오오!’
'역시!'
빈틈조차 없는 천마검공의 검초에 엎드려 있는 중진들이 탄성을 흘렸다.
옥에 갇혀 있는 교주의 두 아들 중에서 재능만으로는 발군이라 불리는 회장의 검초는 과연 최고라 불릴 만 했다.
저 검초를 제대로 막을 수 있는 자는 같은 검법을 익힌 자만이 가능할 것이다.
‘네놈이 가짜라는 것을 이 자리에서 밝혀주마.’
회장이 자신만만해 했다.
교주가 아니고는 누구도 검법으로는 자신의 상대가 되지 못할 거라 자부하는 그였다.
그때 천여운이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언제부터 교주가 되지도 않은 녀석이 천마검공을 익힌 거지?”
-탁!
바로 그 순간이었다.
천여운이 검초가 펼쳐지는 궤적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었다.
검을 든 것도 아니었는데, 스스로가 검초 안으로 들어오자 회장이 내심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데 정말 놀랄 만한 일은 다른데 있었다.
“8식과 9식의 연결점은 그게 아니다. 그리고 13식은 중단세가 아니라 중하단세다.”
“뭣?”
“여기.”
-팍!
천여운이 회장의 오른 팔꿈치를 손으로 가볍게 밀쳐냈다.
그러자 검초를 펼치던 그의 신형이 흔들렸다.
‘이, 이런!’
당황해 하는데 천여운이 시선으로 밑을 가리키며 말했다.
“중하단세라고 했지.”
-퍽! 우드득!
“끄헉!”
천여운이 그의 왼쪽 발목을 발로 걷어차 버렸다.
가볍게 찬 것이 아니라 발목이 그대로 꺾여버리면서 회장이 그대로 검을 놓치고 말았다.
-슉! 푸욱!
그가 놓친 검이 천장으로 날아가 박혀버렸다.
-쿠당!
발목이 꺾인 회장은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탁자 위에 넘어지고 말았다.
가장 완벽한 검법이라 불리는 천마검공의 검초를 제대로 펼치기도 전에 와해되어 버린 셈이었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회장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천여운을 올려다보았다.
현재 천마검공의 최고 고수인 옥에 갇혀 있는 교주조차도 이렇게 위험한 방식으로 초식이 잘못된 것을 짚어주지 않는다.
회장이 떨리는 눈으로 입을 열었다.
“대....대체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런 그를 향해 천여운이 몸을 숙여 눈을 마주치고서 말했다.
“누구냐고? 네놈이 사라졌다고 지껄인 24대 조다.”
‘!!!’
전혀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회장의 두 눈이 터질 듯이 커졌다.
그런 그에게 천여운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본교를 이 꼴로 만들어놓고 이 정도에서 끝날 거라고 생각하진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