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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또 다른 (3)
‘가짜 천마검? 이 여자가 정말!’
환시아의 말에 황당한 것은 백종서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조차 한 눈에 알아본 천마검을 몰라본 것도 모자라, 천여운을 모욕한다고 여긴 백종서가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어 소리쳤다.
“가짜 천마검이라니! 천마께 무슨 무례한 언동이오!”
그런 그의 다그침에도 환시아는 오히려 지지 않고서 백종서를 나무랐다.
“백종서, 아니 백 종주. 지금 당신은 속고 있는 거에요. 저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천마검은 가짜라고요!”
“지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하는 거요? 이분이 누구신 줄 알고...”
“됐다.”
그때 천여운이 그의 말을 도중에 잘랐다.
백종서가 분을 삭일 수 없는지 그럴 수 없다고 말하려고 했다가, 천여운과 눈이 마주치면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불쾌하다 못해서 싸늘해진 눈빛을 보니 사달이 날 것 같았다.
천여운이 뒷짐을 지고서 그녀의 앞으로 다가갔다.
“가, 가까이 오지 마요.”
환시아는 경계심이 가득한 얼굴로 뒷걸음을 쳤다.
이미 천여운의 무위를 두 눈으로 보았기 때문에 자신이 어쩔 수 없는 절대고수임은 인지하고 있었다.
“스스로 한 말에 대해선 책임질 줄 알아야지.”
천여운이 한 손으로 뭔가를 들어 올리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뒷걸음을 치던 환시아의 몸이 허공으로 부웅하고 떠올랐다.
“어어어엇!”
공력을 끌어올려 발버둥을 쳐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어느새 천여운이 그녀의 바로 두 보 앞까지 다가왔다.
“으읍!”
바짝 공포심을 느낀 그녀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 그녀의 귓가로 천여운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 검을 가짜라고 한 이유가 뭐지?”
“네?”
해코지를 할 거라 생각했던 그녀가 실눈을 슬그머니 뜨고서 반문했다.
“내 검을 가짜라고 한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천여운은 불쾌감을 느꼈지만 그것을 억눌렀다.
그녀가 천마신교의 교인인 것도 있었지만 천마검을 몰라볼 수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감안했기 때문이었다.
겉모습만 본다면 환시아는 이십대 후반의 여자였다.
천마신교가 해체된 기간을 생각해보면 천마검을 몰라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의 것이었다.
“다, 당연한 게 아닌가요? 본교의 천마검은 지금 천우경 전무가 손에 넣었는데, 어떻게 그런 수작을 부릴 수 있죠? 당신 천유성 이사님 쪽 파벌이죠?”
“뭐?”
천여운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천우경 전무가 천마검을 들고 있다고?’
방금 전까지만 해도 환시아를 뚫어지라 노려보고 있던 백종서도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처음에는 그녀가 천마검을 몰라봐서 불경을 저질렀다고 여겼다.
그런데 천마검이 있다는 말에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그쪽은 우리 쪽보다 정보력이 낮으니 모르겠지만 우리는 이미....우읍.”
환시아가 입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데 턱을 붙잡은 것 마냥 꼼짝도 하지 않았다.
“비환귀종의 소종주여. 이제부터 묻는 말에만 답한다. 알겠나?”
‘무, 무슨 위압감이...’
환시아의 두 눈동자가 떨렸다.
천여운에게서 느껴지는 절대자의 위엄이 그녀를 본능적으로 짓눌렀다.
마치 범의 아가리 속에 있는 기분이었다.
“파벌을 운운하는 걸 보니, 어떤 녀석을 지지하고 있는 거지?”
천여운의 무겁게 깔린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몸을 부르르 떨던 환시아가 입술을 뗐다.
“턱을 움직이게 해줘야...어랏. 말할 수 있네.”
“쓸데없는 말을 하면 네가 비환귀종이건 뭐건 간에 혀를 뽑아버린다.”
“히익! 어, 어떻게 여자한테 그런 말을...아아악!”
-꾸우우욱!
그녀의 혀가 심후한 진기에 의해 강제로 쭈욱 당겨졌다.
목에 이어진 부분이 뽑혀져 나갈 것 같은 고통에 그녀는 천여운이 단순한 위협이 아닌 진심으로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자가 어쨌다는 거지?”
마주하고 있는 두 눈빛에는 일말의 흔들림조차 없었다.
보통의 남자들은 미인계까진 아니더라도 자신의 외모에 흔들리곤 했는데, 천여운의 눈빛은 싸늘하다 못해 냉혹하기만 했다.
‘정말 혀를 뽑을 거야.’
-주르륵!
얼마나 겁에 질렸는지 그녀의 바지가 축축하게 지려왔다.
쪽 팔리는 것보다 너무 무서웠다.
“말해라.”
어느 순간 혓바닥을 당기던 진기가 사라졌다.
눈물까지 글썽이며 떨던 환시아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저희 비환귀종은 천유장 본부장님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흑.”
비환귀종이 어느 파벌에 속해졌는지 밝혀졌다.
차남인 천유장의 소속이었다.
“천우경이라는 녀석이 천마검을 가지고 있다고 했는데, 다른 파벌이면서 그건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파벌보다 궁금한 것이 바로 천마검 문제였다.
이곳은 자신이 사라진 후의 미래다.
그렇다면 절대로 천마검이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갈 수 없는데, 대체 어떤 놈이 천마검을 소유했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리는지 알고 싶었다.
“저, 저희 쪽에 심은 첩자가 보내온 영상이....”
“영상?”
“제 스마트폰에 있어요.”
천여운이 손을 내밀자 그녀의 손목에 감겨 있던 플랙시블 스마트폰이 벗겨지며, 그의 손으로 빨려 들어왔다.
환시아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암호를 모르면 풀 수 없어요.”
스마트폰의 내용물은 특수 코드로 락이 잠겨 있었다.
홍채 인식과 특수 코드의 숫자를 입력해야만 풀 수 있는데, 그녀는 중요한 정보 누설을 막기 위해 일부 정보만 공개하는 코드를 알려주려 했다.
“제가 말한 코드 번호를...엇?”
-치칙! 차르르르르!
그런데 천여운의 손에 들려있는 스마트폰의 화면이 검은 화면으로 자동으로 바뀌면서, 저절로 코드가 적히면서 락이 해제되어 갔다.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전문 해커도 컴퓨터나 다른 장비가 없으면 해킹을 할 수 없다.
그런데 스마트폰을 들고만 있는데, 저절로 락 코드가 풀리고 있으니 어이가 없었다.
홍채 인식만 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포맷되는 기능이 상실이라도 된 것처럼 완전히 락이 해제된 스마트폰에서 저절로 영상이 떴다.
‘이럴 수가!’
-치익!
스마트폰의 화면은 수많은 인원을 수용하는 세미나실의 무대를 비추고 있었다.
영상이 많이 흔들리는 것은 몰래 촬영해서인 듯 했다.
-가져와라.
영상 속에 무대 위에 서있는 60대 중반에 회색 양복을 입고 있는 사내가 뭔가를 손짓하며 명하자, 네 명의 남자들이 바퀴가 달린 테이블을 끌고 왔다.
테이블 위에는 검은 천이 덮여 있었다.
-본 전무를 믿고 따라와 준 교인들이여. 오늘 그대들은 마신의 계시를 보게 될 것이오.
-와아아아아아! 천 전무! 천 전무!
영상의 앞에 있는 사람들이 손을 들며 환호를 해댔다.
“저놈이 천우경이냐?”
“네넵.”
천여운의 질문에 얼른 답한 환시아가 속으로 의아해했다.
가짜 천마검을 가진 자라면 분명 천마신교에 관련된 사람이 분명할 텐데, 천우경의 얼굴을 몰라보는 게 이상했다.
-쉿!
천우경 전무가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보이고서야 세미나실에 정숙이 찾아왔다.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자 천우경 전무가 테이블 위의 검은 천을 벗겼다.
세미나실의 벽면에 빔 프로젝트 영상은 테이블 위를 비추고 있었는데, 검은 천이 벗겨진 그 안에는 놀랍게도 천마검과 백룡도가 있었다.
“하!”
천여운이 기가 차 했다.
어떻게 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겉보기만 본다면 정말 자신의 것과 차이가 없었다.
영상 속의 천우경 전무가 뒤에 있는 빔 프로젝트 화면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러자 화면이 전환되며 한 발굴 현장이 나왔다.
발굴 현장 속에는 오래되어 화석처럼 된 뼛조각들이 나왔는데, 그곳에 천마검과 백룡도, 그리고 낡은 옥패가 보였다.
빔 프로젝트 영상이 옥패가 있는 부분을 확대시켰다.
[天魔神敎 二十四代 敎主 天黎雲]
천마신교 이십사대 교주 천여운
옥패는 천여운이 가지고 있는 신분패처럼 동일한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게다가 천마령의 직인마저 찍혀 있었다.
오히려 영상 속의 옥패는 오래된 것처럼 디테일하게 만들어져서, 천여운의 옥패보다도 더욱 진품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이젠 내 신분패를 조작해?'
천여운의 눈빛이 갈수록 날카로워져갔다.
영상 속의 천우경 전무가 벽면의 빔 프로젝트 화면을 종료시키며 말했다.
-보셨소. 본 전무는 본교의 잃어버린 역사를 찾았소!
-천 전무! 천 전무!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시오?
그 말과 함께 천우경이 테이블 위에 있는 천마검과 백룡도를 양손 높이 치켜 올리며 소리쳤다.
-마신께서 본 전무를 당대 천마로 택했단 뜻이오!
-와아아아아!!! 당대 천마가 탄생하셨다! 천마! 천마! 천마!
세미나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미친 듯이 열광하며 그를 천마로 치켜세웠다.
영상이 마지막에 와서 많이 흔들렸는데, 이것을 찍은 자조차 많이 놀란 듯 했다.
-젠장!
영상을 촬영하는 자의 거친 소리와 함께 스마트폰의 영상이 종료되었다.
-쩌저적!
영상이 끝나기가 무섭게 스마트폰 화면에 금이 갔다.
‘내, 내 폰!’
환시아가 금이 간 폰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다행히 핸드폰은 완전히 부서지지 않았다.
잠시 동안 말이 없던 천여운이 노기가 담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가관도 아니군.”
이게 현재 천여운의 심경이었다.
파벌을 이뤄서 싸우는 것도 한심했는데, 이제는 천마검과 백룡도의 모조품을 만들어 거짓 명분을 만드는 녀석까지 등장했다.
“이 영상은 세 파벌 모두가 알고 있나?”
“아, 아마도 윗선들은 알고 있을 거에요.”
“윗선?”
“이 정보가 풀리면 일반 교인들이 흔들릴 수도 있어요.”
“흥!”
환시아의 말에 천여운이 콧방귀를 뀌었다.
천마가 가지는 이름이 차지하는 영향력은 천마신교의 교인들에게 있어서 절대적이다.
정통성을 두고 본다면 당연히 장남인 천유성이 크겠지만, 그것을 완전히 뒤집어 엎어버릴 수 있는 것이 천마라는 칭호였다.
각 파벌의 상위 종파 지지자들이 이 사실을 공표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일부러 노출시켰군.”
“네?”
“네놈들이 보라고 영상을 일부러 노출시켰단 말이다.”
천여운은 이 영상을 천우경 측에서 고의적으로 노출시켰다고 파악했다.
아무리 첩자의 능력이 뛰어나도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밀집된 곳에서 저 영상을 끝까지 촬영했다는 것은 일부러 봐줬을 확률이 높았다.
‘아버님도 똑같은 말을 했는데....'
환시아가 속으로 놀라했다.
그녀의 부친인 당대 비환귀종의 종주 역시 그 말을 했었다.
사실 그녀에게는 이 정보를 알 수 있는 권한이 없었지만, 파벌을 이끄는 천유장 본부장이 최상위 종파의 일가에는 알리도록 조치했다.
이것은 설사 천우경 전무가 천마가 되었다고 해도 흔들리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천마이시여.”
백종서가 걱정스러운 듯이 천여운을 불렀다.
그는 천여운의 절대적인 능력을 두 눈으로 보았기 때문에 이런 조작에 넘어가지 않았다.
다만 그의 분노와 실망이 커지는 것이 불안해졌다.
‘이 영상을 보고도 이 자를 천마라고 부른다고?’
환시아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부친의 명을 받고서, 천유장의 파벌로 끌어들이기 위해 오랫동안 지켜본 백종서는 타인을 잘 믿지 못하는 자였다.
그런 그가 저렇게 절대적인 충성을 보인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계속 이 자에게 붙잡혀 있으면 내가 알고 있는 정보도 털리겠어.’
하지만 눈앞에 있는 이 자는 괴물이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진기로 자신을 붙잡고 있는데 무슨 수로 도망을...
‘아!’
그때 환시아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스쳐지나갔다.
그것은 자신이 부친인 환명오가 했던 말이었다.
[압도적으로 강한 절대고수와 부딪칠 일은 없겠지만 만약 그럴 경우, 본교의 상위 종파 이상의 교인들이라면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이 한 가지 있다.]
지금까지는 그럴 일이 없어서 미처 잊고 있었다.
그녀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자신의 단전에 숨겨진 힘을 끌어올렸다.
-고오오오!
숨겨진 힘을 드러내자 그녀의 몸에서 검은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흉흉하면서도 어두운 기운이었다.
그 순간 심후한 진기에 의해 붙들려 있던 환시아의 몸이 밑으로 떨어졌다.
-팍!
‘성공이다!’
정말로 이게 통할 줄은 몰랐다.
본교의 상위 종파 이상만 대대로 물려받은 마기(魔氣)가 통했다.
이 마성의 기운은 일반적인 진기와는 상반된 기운으로 파괴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어서, 여타의 힘을 배척한다.
이런 마기를 지닌 자를 천마신교에서는 마인(魔人)이라 하였다.
‘벗어나야 해!’
-팟!
그녀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경공을 펼쳐서 도망을 시도하려 했다.
불과 세 보 가량 뛰었을 때였다.
“꿇어라.”
-쿵!
“꺄악!”
뒤에 들리는 목소리에 환시아의 무릎이 강제로 바닥에 꿇려졌다.
어찌나 세게 무릎을 꿇었는지 피가 흘렀다.
‘대체 이게 무슨?’
그녀는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목소리를 듣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그 명에 따랐다.
자의적으로 벌인 일이라 할 수 있었다.
‘몸을 일으켜 세워야 해! 일어나! 일어나!’
더욱 마기를 끌어올려 무릎을 펴기 위해 안간 힘을 썼지만 일어나지지 않았다.
오히려 마기가 이상하게 들끓어 오르며 속이 불편해졌다.
그때 천여운이 그녀에게로 다가와 말했다.
“어리석구나. 비환귀종의 소종주여.”
“어, 어째서....”
“마기라......내가 사라지고도 명을 잘 이수했군.”
“그게 무슨?”
“네가 가진 그 마기를 누가 전수한 거라 생각하느냐?”
-고오오오오오!
그 순간 천여운의 몸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마기가 치솟았다.
그것은 마치 사방을 어둠으로 잠식할 만큼 심연에 가까운 마기였다.
“허억!”
숨이 막힐 것 같은 거대한 마기의 향연에 환시아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어떠한 마기도 나의 천마기 앞에서는 굴복할 수밖에 없다.”
“처, 천마기?”
환시아의 두 동공이 흔들렸다.
천마기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었다.
초대인 천마 조사와 2대 천마를 마지막으로 끊긴 절대적인 힘이라고 말이다.
'그럴 리가 없어! 천마기는 역대 교주님들 중에 누구도 익히지 못했다고 들었는데....'
머릿속으로는 부정했지만 몸은 그러하지 않았다.
그녀의 체내에 있는 마기가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다, 당신은 대체?”
-슥!
그런 그녀의 턱을 들어 올린 천여운이 눈을 마주하고서 말했다.
“나는 너의 선대 조상들이 교주라 불렀던 자이며, 두 번째 천마의 칭호를 가졌고 네가 경배해야 할 마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