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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또 다른 (2)
‘대, 대단해!’
복면인의 어깨에 걸쳐 있는 환시아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들의 실력은 자신이 직접 겨뤄봤기 때문에 잘 알았다.
대장도 아닌 팀원조차도 압도적인 무위로 자신을 제압할 정도의 고수였는데, 순식간에 한 팔을 앗아갔다.
‘혹시 아버님이 보내신 자인가?’
그런 것치고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굉장한 위압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얼굴만 보면 고작 20대 초반에 불과했다.
하지만 종주가 보냈다면 인피면구일 확률도 높았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제발!’
자신을 구해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웁웁!”
천여운에게 입이 틀어 막혀서 들어 올려진 복면인 대장이 발버둥을 쳤다.
단순히 붙잡힌 것처럼 보였지만, 손에 잡혀 버린 순간부터 상상을 초월하는 진기에 의해 공력을 끌어올릴 수가 없었다.
‘어, 어디서 이런 괴물이?’
-꽈악!
“우으읍!”
손에 더욱 힘을 주었는지, 복면인 대장이 고통의 신음성을 흘렸다.
천여운이 환시아를 들쳐 매고 있는 복면인을 비롯한 다른 자들에게 경고를 하듯이 말했다.
“그 계집 내려놓고 스스로들 팔을 자르면 목숨...”
바로 그 순간이었다.
복면인들 중 한 명이 허리춤에서 소음기가 달린 총을 겨냥했다.
그가 노린 것은 바로,
“미안하오.”
-퓽!
천여운이 아닌 그의 손에 잡혀 있는 복면인 대장이었다.
-휙!
천여운이 붙잡고 있는 복면인 대장을 옆으로 옮겼다.
조금만 늦었어도 총알이 이마를 관통했을 것이다.
‘이놈들. 동료에게?’
천여운이 인상을 찡그렸다.
그 역시도 적에게는 가차가 없기는 했지만 자신들의 동료, 아니 대장이라 할 수 있는 존재에게 서슴없이 총을 쏠 줄은 몰랐다.
‘누굴 잡아도 인질로서 가치가 없다는 소리군.’
원래 시대에 있을 때도 이렇게 극단적인 훈련을 받은 자들이 있었다.
위기나 돌발 상황이 발생할 경우 동료도 가차 없이 버리거나 밟고 지나갈 수 있도록 말이다.
“별 수 없군.”
전부 제압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천여운이 움직이려 했다.
그 순간 환시아를 데리고 있는 복면인이 소리쳤다.
“이 계집을 죽이고 싶지 않다면 멈춰라.”
-푹!
‘아흑!’
복면인이 나이프를 꺼내 환시아의 목에 칼 끝을 찔렀다.
여차하면 그녀를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것이었다.
‘아아악! 안 돼! 아직 시집도 안 갔는데, 노처녀로 죽을 수 없다고!’
환시아는 삶에 미련이 많은 여자였다.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혈도가 점해져서 몸을 부들부들 떠는 것 이외에는 어떠한 것도 할 수 없었다.
“반항하면 이 년을 죽인다.”
협박하고 있는 복면인이 그 말과 함께 한 복면인에게 고개 짓을 했다.
-우웅! 팟!
그러자 그 복면인이 검에 검기(劍氣)를 일으켜 천여운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복면인은 언제든지 환시아를 죽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녀의 목에 더욱 깊숙이 나이프를 찔렀다.
그 사이 복면인의 신형이 단숨에 천여운의 두 보 앞까지 거리를 좁혀왔다.
“죽어라.”
-슉!
복면인의 날카로운 검끝이 천여운의 목을 단번에 관통할 기세로 찔러들어 왔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꽉!
“아닛?”
복면인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거, 검기를 맨손으로 잡다니?’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천여운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은 채로 그의 검기를 맨손으로 붙잡았다.
흰 빛의 검기가 스파크처럼 튀기고 있었는데, 손이 베이거나 피부를 파고드는 현상 따윈 없었다.
그때 환시아의 목에 나이프를 찌르고 있는 복면인이 소리쳤다.
“이년이 죽어도 상관없다는 것이냐?”
그런 그의 말에 천여운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죽일 생각이었다면 애초에 납치를 시도하지 않았겠지. 그리고....”
-우우웅!
‘이, 이게 대체...’
나이프를 쥐고 있는 복면인의 손가락이 강제로 벌려지기 시작했다.
공력을 끌어올려서 버티려고 해도 엄청난 진기에 의해서 완전히 손가락이 펴지고 말았다.
-툭!
놓치고 만 나이프가 바닥으로 떨어지려 했다.
그 순간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떨어지던 나이프가 갑자기 위로 솟구치더니, 복면인의 이마를 관통하고 말았다.
-푹!
“컥!”
-깡!
어찌나 강했던지 나이프는 뒤에 있던 벽마저 관통했다.
그녀를 들쳐 매고 있던 복면인은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덕분에 점혈을 당했던 환시아 역시도 바닥을 뒹굴었다.
-데굴데굴!
순식간에 정적이 찾아왔다.
남은 네 명의 복면인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방금 자신들이 잘못 본 게 아니라면 그것은,
“이, 이기어검!”
이기어검(以氣馭劍).
말 그대로 기로서 말을 부리듯이 검을 다루는 경지이다.
허공섭물이나 격공섭물보다도 훨씬 높은 기공술과 검술이 결합된 기예로 현경의 경지에 오른 절세고수만이 가능했다.
“현.....경!”
“이런 심양시 촌구석에 인(寅)급 괴물이....”
물론 천여운은 그보다 훨씬 윗줄의 고수다.
하지만 상대가 압도적인 역량을 지녔다는 것을 파악한 복면인들로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제압할 능력이 없을 때의 매뉴얼은 단 하나였다.
“모두 산개...”
-팍!
“컥!”
검날을 붙잡혀 꼼짝 못하고 있던 복면인의 목 울대를 천여운이 손날로 때렸다.
이를 맞은 복면인이 자신의 목을 붙잡고서 쓰러졌다.
“큭!”
-팟!
동료가 쓰러진 것을 보면서도 남은 세 명의 복면인들은 경공을 펼쳐 이곳을 벗어나려 했다.
“산개? 한 놈도 못 간다고 했을 텐데.”
천여운이 무심한 얼굴로 손바닥을 밑으로 내렸다.
그러자 골목 전체를 뒤엎는 엄청난 진기가 복면인들을 억눌렀다.
-고고고고고!
“크헉!”
“무, 무슨 진기가!”
진기에 억눌린 복면인들은 몇 발자국도 떼지 못해 강제로 무릎을 꿇고 말았다.
몸을 일으켜 세우고 싶어도 소용없었다.
천여운이 자신의 앞에 목을 붙잡고 바닥에 엎어져 있는 복면인에게 물었다.
“어디서 보낸 놈들이지?”
그런 천여운의 물음에 복면인이 신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끄으으으. 죽여라.”
이에 천여운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조가 있군. 뭐 상관없다. 입을 열지 않는다면 다른 방법도 있으니.”
천여운이 복면인의 복면을 벗겨내기 위해 손을 뻗었다.
이곳 세상이 한결 편한 것은 이런 음침한 놈들일수록 배후와 연락을 취하기 위해 이어폰 무전기 같은 것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이 복면인도 그럴 거라 짐작했다.
천여운이 놈의 복면의 머리 부분을 움켜잡았을 때였다.
-파파파파팡!
복면인의 몸에서 붉은 광채가 일어나더니, 이내 놈의 몸에서 뜨거운 열기가 일어났다.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천여운으로서도 어떻게 손을 쓸 틈이 없었다.
-파스스슥!
체내에서 강한 폭발음이 들려온 복면인의 전신이 검게 그을리더니, 이내 잿가루가 되어 으스러져버렸다.
이런 광경을 천여운은 식스 로드 토이의 빌딩에서 본 적이 있었다.
‘나노 폭탄?’
터진 것은 이 복면인만이 아니었다.
모든 복면인들이 있던 자리에는 타고 남은 잿가루만 떨어져 있었다.
천여운의 눈썹이 위로 치켜 올라갔다.
“하.....”
누구의 짓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뭔가를 알아내보려는 시도조차도 못하게 복면인들의 몸 안에 나노 폭탄을 터뜨려 죽여 버렸다.
‘죽이라는 말이 내게 한 말이 아니었군.’
아마도 연락을 취하고 있는 이에게 한 말일 것이다.
생각보다 나노 폭탄이라는 것이 성가셨다.
독단이었다면 일시적으로 몸 안에 퍼지는 것을 막아낼 수 있는데, 체내에서 필요할 때 곧바로 터뜨려버리니 막을 방도가 없었다.
‘흠.’
그렇다고 완전히 막을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번 일을 통해 대책 방안을 떠올렸다.
‘그나저나 이놈들은 대체 어떤 조직이지?’
식스 로드 토이의 이사인 윤문평의 말대로라면 이 나노 폭탄은 물량이 적어 꽤 구하기 힘든 물건으로 알고 있었다.
복면인들 모두의 체내에 이것을 넣었다면 재력을 갖춘 조직이라는 의미였다.
게다가 이들은 와해된 천마신교의 종파 중 하나인 비환귀종의 소종주를 납치하려 했다.
적어도 천마신교를 노리는 자들 중 하나일 확률이 높았다.
내부 전쟁은 절대로 아니었다.
‘운기 방식이 본교의 것이 아니야.’
짧게나마 놈들과 손을 겨뤄본 것도 어떤 내공법을 사용하는지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정파도 아니었고 천마신교의 것도 아니었다.
잠시 고민에 빠져 있는 사이에 혈도가 점해져서 쓰러져 있는 환시아의 신음성이 들려왔다.
“읍읍읍!”
점혈을 풀어달라고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천여운이 귀찮다는 표정으로 그녀에게 다가가 점혈을 풀어주었다.
-타타타타탁!
점혈을 풀어준 순간 환시아가 천여운을 향해 포옹을 하려 했다.
“고마워요! 시집도 못가고 죽는 줄 알았어요. 엉엉.”
-팍!
그런 그녀를 천여운이 밀쳐냈다.
“치대지마라.”
“억!”
발이 꼬여버린 환시아가 엉덩방아를 찍었다.
훤칠한 외모도 모자라 압도적인 무위를 보여준 천여운에게 은근히 호감을 가졌던 그녀였다.
도움을 받았다는 것을 빌미로 자연스럽게 포옹하려다 실패하고 말았다.
‘아오. 쪽팔려.’
밀쳐진 것보다도 민망스러웠는지 얼굴이 빨개졌다.
중원에 있을 때는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는 여성의 적극적인 호감 표현은 천여운에게 반감만 줄 뿐이었다.
잠시 민망해하던 그녀가 헛기침을 하면서 말했다.
“흠흠, 감사합니다. 덕분에 목숨을 구했어요. 혹시 아버님께서 보내신 분인지?”
너무도 정확한 타이밍에 나타난 천여운이었다.
자신의 위기 상황을 아는 자는 현 비환귀종의 종주인 부친뿐이었기에 그가 보냈을 거라 짐작하는 환시아였다.
하지만 천여운에게 나온 대답은,
“아버님이라는 자는 당대 비환귀종의 종주 녀석을 말하는 것이냐?”
“지, 지금 제 부친을 녀석이라고 하신 건가요?”
부친을 애송이 취급하는 듯한 말투에 순간 호감이고 뭐고 울컥한 환시아가 얼굴이 상기되어서 천여운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끼익!
그때 골목의 바깥쪽에서 차량이 멈추는 소리가 들려왔다.
혹시나 또 다른 적이 나타났을까봐 지레 겁먹은 환시아가 말했다.
“저, 저기 일단은 이 자리를 벗어나요. 어서요.”
“어딜 간다는 거냐.”
“계속 이자들이 나타날 때마다 싸우실 생각인 건가요?”
그녀가 답답해졌는지 천여운을 올려다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그때 차량이 멈춘 곳 쪽의 골목에서 누군가 급히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어두운 골목 안으로 그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천마이시여!”
그는 백종서였다.
시 전체가 통제되니 공안국의 RV 차량을 타고서 가자고 했는데, 천여운이 먼저 경공을 펼치면서 간 통에 이제야 겨우 따라잡은 그였다.
‘180을 밟고 온 차보다도 훨씬 빨리 도착하다니....’
혀를 내두를 정도로 빨랐다.
물론 지금 주위 상황을 살펴보니 결과적으로 현명한 판단인 듯 했다.
환시아가 이해가 안 간다는 목소리로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천마?”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니면 백종서의 입에서 천마라는 말이 나왔다.
그런 그녀에게 백종서가 노기가 섞인 목소리로 다그쳤다.
“당장 천마께 무릎을 꿇지 못할까!”
“네?”
환시아는 대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자신이 여태껏 종주의 명을 받고서 살펴왔기에 백종서의 정체는 알고 있었다.
순각종의 비운의 종주가 아닌가.
그런데 그의 입에서 어째서 천마라는 말이 나오는지 알 수 없었다.
-차차차차차착!
그때 천여운의 손목에 있던 흑철이 분해되며 하나의 검의 형태로 변환되었다.
영롱한 흑빛을 내뿜는 천마검의 모습에 그녀의 넋이 나갔다.
환시아의 눈동자가 흑검에 새겨진 글자에 머물렀다.
“천마검?”
놀라하는 그녀의 모습에 백종서가 다시 한 번 다그쳤다.
“검을 보고도 계속 예를 표하지 않을 거요?”
당연히 자신과 모친이 처음 느꼈던 그 벅찬 감정을 그녀 역시도 겪을 거라 예측했다.
그런데 환시아의 반응은 전혀 예상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타타탁!
그녀가 갑자기 보법을 펼쳐서 거리를 벌리더니, 천여운에게 반감을 가진 눈빛으로 삿대질을 하면서 말했다.
“당신 정체가 뭐에요? 어째서 가짜 천마검으로 순각종의 종주를 현혹하는 거죠?”
환시아의 그 말에 천여운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가짜 천마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