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화 접선 (1)
백종서가 의아하게 천여운을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거지?’
현세의 천마신교의 재건을 천명한 천여운이다.
그런데 아까부터 명상에 들어간 사람처럼 가만히 앉아있었다.
시선은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는데, 멍한 것 같기도 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파르르르!
천여운의 시야로 증강현실이 가동되고 있었다.
증강현실에는 수많은 정보의 카테고리들이 거미줄처럼 조직적으로 맵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세 파벌로 나뉘어서 분쟁 중인 본교의 어리석은 놈들. 그리고 무림인을 통제하려는 국무원과 공안국. 본교를 사지로 몰아넣었던 현대 무림의 삼대 세력.’
천여운은 세 부분으로 큰 카테고리를 정리했다.
지금 그가 고민하고 있는 것은 이 세 카테고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였다.
단순히 쳐부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그렇게 된다면 그저 학살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이런 단순한 방법은 다른 카테고리들이 뭉치거나, 경각심만 높이게 되는 꼴이 될 것이다.
‘가장 먼저 처리해야 하는 것은....’
현재 가장 시급한 것은 여전히 뭉치지 않고서 제 살 갉아먹기만을 진행하고 있는 천마신교의 상황이었다.
이들의 힘을 통합시켜야 다른 두 카테고리로 넘어가기 좋다.
더 정확한 정보를 알면 좋겠지만 금오연이 알고 있는 것은 천마신교가 와해되기까지의 과정에 불과했다.
‘흠.’
그녀는 현재 세 파벌이 어떻게 분쟁을 벌이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고 부장은 세 파벌이 서로 정통성과 명분을 내세워 흩어진 회사의 힘을 규합하려고 분쟁을 벌이고 있다고 했습니다. 다만....]
살아남은 순각종의 마지막 두 사람이 참여하지 않는다고 하자, 그 이상의 정보를 주지 않겠다며 선을 그었다고 한다.
금오연은 섭섭함을 느꼈지만 고 부장의 입장을 이해했다.
만약 장자인 천유성 파벌에 합류하지 않은 상태에서 정보를 주었다가, 후에 만의 하나로 순각종이 다른 파벌에 들어가게 된다면 정보가 노출되고 만다.
그 날의 제안이 끝나고 십 년 동안이나 금오연은 그들과의 접촉이 없었다고 한다.
[접선할 여지를 남기지 않았을 리가 없을 텐데?]
[......맞습니다.]
천여운의 예상대로 천유성 파벌은 일말의 여지를 남겼다고 한다.
[24, 32, 94, 83, 13, 52, 63, 103, 26, 49.]
고 부장은 그녀에게 이 숫자들이 적힌 종이를 줬다.
접선을 할 수 있는 연락처 번호라고 하기에는 두서없이 이어지는 숫자 체계였다.
이것을 10분에 걸쳐서 외우게 한 후에 소각시켰다고 한다.
[암호인가?]
[저도 정확하게는 알 수 없습니다. 그냥 저희 집에 있는 에세이 책 하나를 보면서 불러준 숫자라....]
[에세이 책?]
금오연의 말에 의하면 즉흥적으로 불러진 암호인 것 같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에세이 책에 연락망이 적혀 있을 확률이 높았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집에 의심이 갈 만한 것을 전부 압수 당해서....]
그리고 보니 집안에 서적과 관련된 것은 거의 없었다.
아무리 시대가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 것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책이었다.
전자 텍스트보다 아날로그 방식이 여전히 사랑받기 때문이었다.
‘공안국에 있다라.....’
그 에세이 책을 회수하려면 공안국으로 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흠.’
천여운이 시선을 돌려서 점혈을 당해서 기절해 있는 모용이명과 능도명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천천히 폐공장의 내부에 여전히 널브러져 있는 공안국 기동 타격대의 시신들로 향했다.
마지막에 와서 시선이 멈춘 곳은 백종서와 금오연이었다.
영문을 모르는 두 사람은 눈을 멀뚱히 뜨고서 천여운의 눈치를 보았다.
-피식!
천여운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그 웃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던 백종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찌 그러시는지?”
-탁!
그 질문에 천여운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저놈이 열쇠였군.”
“네?”
모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천여운이 쳐다보고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모용이명이 대(大)자로 뻗어서 눈을 감고 있었다.
* * *
심양시 공안국의 교통과 상황 통제실.
그곳에 있는 이백여 대의 40인치 모니터에는 심양시 전체의 도로와 골목의 CCTV 카메라가 24개로 분할되어서 영상으로 송출되고 있었다.
모니터에는 공안국 경찰들이 도로와 골목 등 이곳저곳을 통제하고 있는 모습이 나왔다.
게이트 경보령이 내려지면 방위군이 방벽 방어전에 나서고, 공안국 경찰들이 방벽 내의 시민들이 혼란을 겪지 않게 통제하게 되어 있었다.
“화평구 24번 도로의 학원가에 있던 11명의 학생들을 근방 대피소로 이송이 완료되었습니다.”
“태서구 10번 가에서 CCTV 카메라의 사각 지대에 있던 노숙자 세 명을 방금 파출소 경사들이 발견해서 태서구 8번 가의 대피소로 옮기고 있다고 합니다.”
모니터링 중인 교통과 요원들이 보고를 했다.
지금 공안국에 남아있는 것은 교통과의 모니터링 요원들과 국장인 상유근뿐이었다.
게이트 경보령이 떨어지면 인력이 모자라기에 최소한의 이 인원을 제외하고 모든 공안국 경찰들이 심양시 곳곳에 배치된다.
“알겠다.”
모니터링 요원들의 보고를 받고 있는 국장 상유근의 표정이 어두웠다.
상황 통제실에서 모든 심양시 경찰들을 통솔하면서도 그의 모든 신경은 다른 곳으로 향해 있었다.
‘어째서 연락이 없는 거지?’
통제실 전등판의 시계를 보고 있는 눈동자가 초조함으로 가득했다.
작전이 진행된 지 꽤 시간이 흘렀는데도 깜깜무소식이었다.
한참 전에 정리가 되었어야 했는데, 아무 소식이 없으니 그로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돌발 상황이라도 발생한 건가?’
그렇게 된다면 입장이 난처하게 된다.
원래라면 특수 전담과의 요원들 역시도 심양시 방벽 내부를 통제하는데 투입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들의 연락이 끊기면서 공안국 인력을 더 쪼개서 배치하고 말았다.
‘일단은 특수 임무 중이라고 했지만.....’
다른 요원들의 의구심이 커졌다.
꼬리가 길어지면 밟힌다고 상유근으로서는 답답한 상황이었다.
‘하필 이럴 때 게이트 경보령이 터져서....’
방위국에서 알린 시간보다도 사흘은 빨리 터진 게이트 경보령 덕분에 많은 것이 꼬여버렸다.
부디 일이 틀어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렇게 초조해하고 있던 차에 그의 플랙시블 스마트폰에 진동이 왔다.
-드르르르!
왼쪽 팔을 들어 올려 스마트폰의 화면을 바라본 국장 상유근의 인상을 찡그렸다.
[능도명 특수 전담부 제 2 과장.]
그렇게 기다리던 능도명의 연락이었다.
‘핸드폰으로 연락하다니. 아....’
생각해보니 무전기는 국장실에 있으니, 당연히 핸드폰으로 연락할 수밖에 없었다.
마음이 조급해진 그가 주변의 눈치를 보다가 모니터링 요원들에게 말했다.
“잠시 확인할 게 있어서 국장실에 다녀올 테니, 문제가 생기면 전화해라. 바로 오겠다.”
“넵!”
한참 바쁘기에 모니터링 요원들이 고개를 돌리지 않고서 답했다.
상황 통제실에서 나온 국장 상유근이 비상계단을 내려가면서 전화를 받았다.
“나다.”
-국장님. 쿨럭...쿨럭.
“어떻게 된 거야? 왜 이렇게 늦어진 거지?”
상유근이 조용한 목소리로 그를 다그쳤다.
그 덕분에 몇 시간 째 초조하다 못해 불안해하고 있던 그였다.
-죄송합니다. 미션은 완수했습니다.
능도명의 보고에 국장 상유근의 얼굴이 환해졌다.
문제가 생겼을까봐 조마조마했던 그였다.
-쿨럭...쿨럭.
계속 기침 소리가 들리자, 그것을 의식한 상유근이 물었다.
“부상이라도 입었나?”
-....죄, 죄송합니다. 문제가 있었습니다.
“문제?”
-그.....무성이란 자의 무공 실력이 너무 뛰어...났습니다. 하아...게다가 그 자는 몸 속에 나노 폭탄이 없었습니다.
나노 폭탄이 없었다는 말에 상유근의 눈빛이 심각해졌다.
그렇다면 자신이 파견한 기동 타격 대원에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의미였다.
상유근이 속삭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준여명 특경도 있지 않았나?”
준여명 특경.
모든 공안 특수 전담부를 통틀어 일곱 손가락에 드는 고수였다.
원래는 다른 임무를 위해서 파견 요청되어 왔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도 보냈었다.
-....준여명 특경도 당했습니다.
“뭣?”
국장 상유근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준여명 특경도’라는 말은 다른 요원들도 당했다는 뜻이 아닌가.
일에 꼬여도 제대로 꼬여버렸다.
‘큭!’
난감해하는 그의 귓가로 능도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행히 준여명 특경이 당하기 전에....쿨럭쿨럭...그 무성이란 자를 부상 입혔습니다. 저까지 당할 위기에 처했었는데, 때마침 지원 왔던 이명 팀장 덕분에 목숨을 구제 했습니다.
“뭐? 이명 팀장?”
-...네. 이명 팀장이 운 좋게 그 자의 단전에 소총을 맞혀서.
국장 상유근이 표정이 굳어졌다.
능도명의 입에서 그가 거론될 줄은 몰랐다.
‘그 꼴통 녀석이 어떻게?’
계속 귀찮게 파고들어서 일부러 정직까지 시켜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이명이 그곳을 찾아낼 줄은 몰랐다.
이 일은 특수 전담부의 요원들 이외에는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될 기밀 임무였다.
잠시 입을 닫고 있던 상유근이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이명 팀장이 옆자리에 있나?”
-쿨럭쿨럭. 네. 마땅한 인력이 없어서 이명 팀장과 살아남은 기동 타격 대원 두 명과 함께 무성이란 자를 일단 공안국으로 이송하고 있습니다.
‘이쪽으로 오고 있다고?’
국장 상유근이 골머리가 아팠는지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그의 말대로라면 그 많은 인력 중에서 단 세 명만이 살아남은 셈이었다.
그리고 이명 팀장까지 꼬였다.
-......어떻게 할까요?
전화기에서 들리는 능도명의 목소리에 국장 상유근이 고민했다.
그가 전화를 통해서 이명 팀장이 도와줬다는 이야기를 애써 꺼낸 의미는 아마도 기밀이 새어나갔음을 알리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렇게 손을 떼라고 했건만.’
한참을 고민하던 국장 상유근의 눈에 살기가 비쳤다.
이윽고 상유근이 말했다.
“특수 전담부 건물의 뒷문을 열어놓을 테니, 지하 5층으로 그 자를 이송해오고.....이명 팀장도 공로를 치하하고 싶으니, 같이 데려오게.”
-알겠습니다. 10분 내로 도착할 것 같습니다.
“알겠네.”
전화를 끊은 국장 상유근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교통과 건물을 나와 빠르게 청사 건물로 향했다.
청사 건물로 들어간 상유근은 곧장 엘리베이터를 타고서 5층으로 올라가 CCTV실에 있는 모든 카메라의 전원을 꺼버렸다.
‘후우.....’
되도록 이런 짓은 하고 싶지 않았지만 별 수 없었다.
상유근은 국장실에 들려서 자신의 금고 안에 있는 권총 하나와 소음기를 꺼내들었다.
이 권총은 공안국에서 사용하지 않는 기종이었다.
-달칵달칵!
권총의 총구에 소음기를 끼워 넣은 상유근이 품속의 총집에 권총을 끼워 넣었다.
상유근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청사를 나와 특수 전담부 건물로 들어갔다.
유일하게 일반 형사들의 출입이 금지된 곳이다.
-띵동!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엘리베이터는 지하 4층까지 표시되어 있었고, 그 밑에 지문 인식을 할 수 있는 버튼 하나가 있었다.
지하 5층은 지문 인식이 등록된 자들만 내려갈 수 있다.
특수 전담부에서 두 과장과 기동 타격 대장, 부분대장 등 여섯 명과 국장인 자신의 지문만 등록되어 있다.
-띵동!
지하 5층은 육각으로 된 공간이다.
여섯 개의 특수 감옥이 있고 그 가운데 로비만 책상과 의자 두 개만 덩그러니 있을 뿐이었다.
이곳은 유일하게 CCTV 카메라도 없는 곳이었다.
기밀 공간이기도 했지만 이곳에만 카메라가 없는 이유는 간단했다.
비어있는 특수 감옥 안을 보면 지워지지 않은 핏자국들이 선명하게 있었다.
그곳은 공안국 내에 있는 다른 감옥들과 달리 양 팔목을 고정하는 쇠고랑 장치부터 시작해, 여러 고문 도구들이 가득했다.
-탁!
국장 상유근이 책상에 걸터앉았다.
하나만 켜놓은 LED 전등 덕분에 반쯤 그림자가 드리워진 그의 얼굴은 한없이 어두웠다.
품속에 있는 소음기를 달은 권총을 살피고 있는데, 뒤쪽에 있는 특수 감옥의 한 방에서 뭔가 소리가 들렸다.
-챙그랑! 챙그랑!
상유근이 고개를 돌리자 어두운 감옥 안에 인영 하나가 보였다.
입에 보호구가 씌워져 있고, 양쪽 팔목과 발목에 특수 수갑 같은 것으로 고정되어 있는 자였는데, 발가벗고 있는 온몸은 고문의 상처들로 가득했다.
-챙그랑! 챙그랑!
고문으로 가득한 자가 양 손목을 움직이며 발버둥을 쳤다.
보호구 사이로 보이는 그 자는 분노가 가득한 눈빛으로 국장 상유근을 노려보고 있었다.
“쯧쯧. 아직까지 기운이 넘치는군.”
상유근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관심이 없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지금 그의 관심사는 오직 하나뿐이었다.
-챙그랑! 챙그랑!
“시끄럽군.”
계속해서 발버둥 치면서 나는 쇠고랑 소리에 상유근이 책상에 있던 버튼 중 하나를 눌렀다.
-달칵! 우우우웅!
버튼을 누르자 특수 감옥의 위에서 셔터 같은 것이 내려왔다.
셔터가 밑까지 내려와 막혀지자 한결 소음이 없어졌다.
“후우.”
상유근이 숨을 고르며 총집에 다시 권총을 꽂았다.
그때 지하 5층에 있던 엘리베이터가 위로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드디어 온 듯 했다.
-띵동!
1층까지 올라갔던 엘리베이터가 이윽고 다시 지하 5층으로 내려와 입구의 문이 열렸다.
입구가 열리자 그 안에서 상태가 나빠 보이는 능도명 과장을 비롯한 모용이명, 그리고 두 명의 기동 타격 대원이 두건 같은 것을 씌운 자를 부축해서 나왔다.
“쿨럭쿨럭.....국장님.”
“고생이 많았군.”
상유근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을 맞이했다.
‘이 녀석.’
모용이명과 눈이 마주친 국장 상유근이 인상을 썼다.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모용이명의 눈빛은 경멸을 담고 있었다.
“뭔가 할 말이 많은가 보군.”
그런 상유근의 말에 모용이명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아니라 국장님께서 하실 말씀이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해명을 바라는 말투에 상유근이 그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책상 의자 하나를 가리켰다.
“일단 능 과장이 불편해 보이니 저곳에 앉혀놓고 말하지.”
그의 말대로 능도명은 서있는 것조차 불편해보였다.
게다가 이상하리만큼 능도명의 표정이 불안함으로 가득했다.
‘사상자가 많아서 그렇겠지.’
상유근 역시도 그 점이 난감했다.
자그마치 육십여 명이나 되는 특수 전담부의 요원들이 죽었다.
이것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그도 고민해야 할 판국이었다.
물론 그 전에 할 일이 먼저 있었다.
-탁!
모용이명이 비틀거리는 능도명을 부축해서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 몸을 돌리려고 하는데,
-철컥!
‘!?’
국장 상유근이 소음기가 달려 있는 권총으로 그의 머리를 정확히 겨냥하고 있었다.
자신을 겨냥하고 있는 모습에 모용이명이 날카로워진 눈빛으로 국장 상유근을 노려보며 말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국장님.”
“제법 담담하군. 이명 팀장.”
상유근은 오히려 놀라지 않고서 자신을 여전히 노려보는 태도에 의아한 모양이었다.
“저를 왜 죽이려는 겁니까?”
“모두 자네가 자초한 걸세. 분명 내가 이 일에서 손을 떼라고 했을 텐데.”
“......손을 뗄 수 없는 일이라고 했지 않습니까? 그리고 지금 국장님이 하시는 일들은 공안국 경찰이 할 만한 행동이 아닙니다.”
그런 모용이명의 말에 국장 상유근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참으로 순진하군. 정의를 지킨다는 게 혼자 고결해서 될 문제인 것 같나? 진흙탕으로 들어가는 자가 진흙을 묻힐 생각을 안 하는 꼴이로군.”
“......능 과장님과 똑같은 말씀을 하는군요.”
“그게 진리이니까.”
국장 상유근의 두 눈에는 어떠한 흔들림도 없었다.
자신을 겨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살기마저 띠고 있는 눈빛에 모용이명은 실소를 금치 못했다.
‘이런 자가 공안국의 국장이라고?’
자신이 알고 있던 그 청렴강직한 국장의 모습이 아니었다.
방해가 된다면 얼마든지 눈앞에 있는 자를 배제하는 모습은 전형적인 범죄자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실망스럽다 못해서 몇 번이나 이런 비슷한 일이 발생했을 때조차 한 번도 국장을 의심해본 적 없는 자신이 한심해졌다.
상유근이 방아쇠로 넣은 손가락에 힘을 주며 말했다.
“정직을 시켜놨는데도 이곳저곳을 헤집어 놓는 자네인데 무슨 말을 한다고 알아듣진 못하겠지?”
“......후환이 두렵지 않으십니까?”
“후환? 혹시 연 컴퍼니를 말하는 건가?”
모용이명은 그 질문에 부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상유근이 방아쇠를 당기려다 멈추고는 웃어댔다.
“하하하하핫! 참으로 웃기는 재주도 남다르군.”
“뭐요?”
“꼴통인 줄만 알았는데, 자신이 처한 현실도 모르고 날뛰는 꼴이 망아지나 다름없어.”
“지금 저를 놀리는 겁니까?”
불쾌함을 보이는 모용이명에게 상유근이 이죽거리며 말했다.
“연 컴퍼니에서 자네가 죽었다고 눈 하나 깜빡일 것 같나?”
그 말에 모용이명이 얇게 뜬 눈으로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죠?”
“자네를 절대로 공안국에 받지 말라고 전무이사가 직접 시청과 내게 청탁까지 했는데, 아무렴 그럴까?”
그런 상유근의 말에 모용이명이 노기가 서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 정도는 저도 알고 있습니다. 당연히 그 놈이 방해할 거란 것을요.”
옛날부터 그래왔다.
자신이 뭔가를 얻으려 한다면 늘 방해했다.
하지만 공안국 경찰직 만큼은 무림 협회나 기업보다 상위 조직인 국무원에 속해있으니, 방해하지 못할 거라 생각하고 지원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예상대로 당당하게 공안국 경찰에 특채로 합격했다.
국장 상유근의 추천이 있다고 해서 그가 외압에 굴하지 않는 강직한 인물로 존경했던 모용이명이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국장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별개의 문제입니다. 당신은 공안 경찰로서 선을...”
“하하하하핫. 이렇게 순진하다 못해 멍청할 데가.”
“?”
“내가 자네가 능력이 탁월해서 특채로 뽑은 것 같나?”
“네?”
상유근이 정말로 멍청하다는 듯이 모용이명을 바라보며 말했다.
“애초에 우리 공안국의 임무 중 하나가 무림 협회와 무림인들을 살피는 것이네. 아무리 자네가 무공을 잃고서 연 컴퍼니에서 반쯤 버림받은 존재라고 해도 우리는 자네의 집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보호할 거라 여겼지.”
“....지금까지 저를 이용하려 했단 말입니까?”
“곁에 데리고 있으면 어떤 식으로든 써먹을 수 있을 줄 알았지. 하지만 우리의 착각에 불과하더군. 정말 무림인들은 냉혹하기 짝이 없어. 무공을 잃었다고 해도 자식과 동생에 대한 미련을 싹 끊어버릴 수 있다는 게 말이야.”
-으득!
비아냥거리는 국장 상유근의 말에 모용이명이 표정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그의 말대로라면 국장 상유근은 자신을 이용해 연 컴퍼니를 감시하거나 여차할 때는 볼모로서 사용하려 했단 의미였다.
‘하.....’
그 말을 듣게되자 화나는 것도 그랬지만 의문이 전부 풀렸다.
처음 공안국에 임관 했을 때와 달리 국장이나 다른 임원진들의 태도가 점점 달라진 것이 자신의 올곧은 성격 때문이 아니었다.
“제가.....활용도가 떨어져서 그런 겁니까?”
“참 안타깝군. 이렇게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지 않았다면 여생을 평범한 강력반 형사로 마무리하고 연금을 타먹으면서 노후 생활을 보냈을 텐데 말이야.”
국장 상유근은 속이 시원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모용이명이 고개를 떨궜다.
그가 알고 있던 그 강직했던 상관은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약육강식 속에 탈을 쓰고 있던 자를 자신은 순진하게 믿고서 따랐던 것 뿐이었다.
‘자포자기 했나 보군.’
그런 그의 모습에 내심 안타까운 부분도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런 일에 일일이 동정심을 보인다면 과단성을 보여야 하는 이 일을 하기 힘들었다.
“그럼 잘 가게.”
국장 상유근이 방아쇠를 잡아당겼다.
-푸슝!
소음기가 달린 총구에서 불빛이 반짝이며 총알이 발사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피르르르르!
당연히 모용이명의 머리를 관통했어야 할 총알이 허공에 뜬 상태로 회전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이게 대체 무슨?”
당황한 상유근이 어쩔 줄 몰라 하는데, 고개를 숙이고 있던 모용이명이 입을 뗐다.
“......아직도 그 제안 유효한 겁니까?”
“무, 무슨 말을 하는?”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듯한 태도에 의아해진 국장 상유근이 고개를 돌렸는데, 그곳에는 언제 두건을 벗었는지 감옥 벽에 등을 기대고서 총알이 있는 방향으로 손을 내밀고 있는 천여운의 모습이 보였다.
마치 총알을 붙잡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네, 네놈은?”
상유근이 놀라서 어쩔 줄 몰라하는데, 모용이명이 고개를 들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안광(眼光)을 내뿜으며 말했다.
“정말로 당신을 따르면 연 컴퍼니를 제 손에 쥐게 해주는 겁니까?”
“뭣?”
그의 그런 말에 천여운이 입 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어려운 일 같나?”
-딱! 콰드드득!
그 말과 함께 천여운이 손가락을 튕기자, 허공에서 회전하고 있던 총알이 으스러지듯 일그러지더니, 이내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