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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코어 (2)
식스 로드 토이의 사장 염기섭이 뒤에 있는 천여운을 힐끔 쳐다보았다.
원래는 나설 생각이 전혀 없었다.
팽능겸이나 모용금보다 뒤늦게 도착했지만 그 역시도 천여운이 단 일참에 알파 뿔자칼을 베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의 손에 코어가 들어간 것을 보게 되자 깔끔하게 마음을 정리했다.
저런 괴물의 손에 들어갔는데 누가 빼앗을 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 조용히 숨어 있다가 회사로 돌아가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절호의 기회가 생겼다.
‘윤문평. 법인카드를 갖다 바치고 알랑방귀만 낀다고 다 될 것 같지.’
사람의 심리라는 것은 참 이상했다.
분명 서로가 억압된 상황이었는데, 이사 윤문평이 자신보다 앞서나가는 게 싫었다.
‘인생은 타이밍이야.’
유일하게 자신의 상대가 될 수 있는 모용금이 쓰러졌다.
연 컴퍼니에서 누가 자신의 적수가 될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사장님을 보호해라!”
-타타타탁!
이윽고 도착한 식스 로드 토이 소속의 무림인들이 염기섭의 좌우로 붙었다.
스무 명 정도에 불과했지만 어차피 염기섭 혼자서도 연 컴퍼니의 무림인들을 전부 처리할 수 있었다.
‘칫. 염기섭 저 자가 왜 끼어든 거지?’
정말로 한 판 해볼 기세에 모용이선이 난처함을 금치 못했다.
염기섭은 이곳 심양시에서 네 명뿐인 화경의 고수 중 한 사람이었다.
연 컴퍼니에서도 그를 상대할 수 있는 자는 모용금뿐이다.
‘이런 식으로 우릴 엿 먹이려는 건가.’
주변에는 게이트 키퍼들 이외에도 심양시 무림 협회 소속의 무림인들이 조금씩 몰려들고 있었다.
남은 뿔자칼들의 토벌이 끝난다면 더욱 이목이 집중될 것이다.
‘젠장.’
사실 해답은 간단했다.
쓰러진 아버지를 데리고 불만 없이 물러서기만 하면 된다.
잠깐만 굴욕을 참으면 손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하지만 입장이라는 것이 발목을 붙잡았다.
‘아버님이 저렇게 되었는데, 여기서 패배한 개새끼 마냥 그냥 물러난다면 차기 무림 협회의 지부장 자리를 노리는 나의 위치가 흔들린다.’
심양시 지부장의 자리는 대대로 모용 가문에서 맡아왔다.
어차피 회사야 자신들 일가가 70퍼센트 지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승계에 문제가 없다.
하지만 한 번 무너지는 이미지를 쇄신하기란 매우 힘든 일이었다.
-슥! 슥!
그의 눈동자가 주변을 계속 의식했다.
주위에 몰려든 무림인들은 흥미진진하게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심양시에서 가장 패권을 다투는 연 컴퍼니와 블레이드 식스 산하의 회사가 대립각을 이루고 있으니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했다.
‘빌어먹을!’
모용이선이 화가 나서 염기섭 사장의 뒤에 서있는 천여운을 노려보았다.
그만 아니었어도 이런 난처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염기섭 사장 이 자도 자사의 이익이 아니면 움직이도 않는 인물인데, 어째서 저놈의 편을 드는.....어?’
그때 모용이선의 눈살을 찌푸렸다.
모용금이 쓰러졌을 때는 분노에 시야가 흐려졌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뭔가 낯익은 얼굴이었다.
‘어디서 봤지? 분명 저 놈의 얼굴을 최근에 본 적이 있는데.....’
그는 나름 기억력이 좋았다.
한 번 보았던 얼굴은 잊지 않는 편이었다.
그런데 이상할 만큼 잘 기억이 나지 않았는데, 대체 누구....
‘아!’
모용이선의 두 눈이 커졌다.
누군지 기억이 났다.
스타일이 완전히 바뀌어서 몰랐는데, 그는 분명 식스 로드 토이에서 새롭게 영입한 그 아홉 번째 무림인이 틀림없었다.
‘그놈이야!’
자신이 보낸 추적자들을 전부 제거한 그 자였다.
검을 들고 있는 모용이선의 손이 떨려왔다.
‘염기섭의 사람이었다 이거지?’
천여운과 그가 한 패라고 확신하게 되자 모용이선은 더욱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마치 저들의 태도가 작당하고 연 컴퍼니와 그 후계자인 자신을 망신주기 위한 철저한 함정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 새끼.’
천여운의 저 여유로운 표정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러설 생각이 없는 것이냐!”
-쾅!
염기섭이 망설이고 있는 그들에게 기선제압을 하기 위해 진각을 밟았다.
그의 진각에 바닥에 균열이 일어났다.
내공과 외공을 두루 갖춘 그의 파괴력은 심양시 무림인들 모두가 인정하는 바였다.
“큭.”
이러다간 정말 양사간의 전쟁이 되어버린다.
모용이선의 시선이 본능적으로 한쪽에서 지켜보고 있는 팽능겸으로 향했다.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염기섭 이상의 고수는 그뿐이었다.
‘아버님은 싫어하시겠지만....’
방법이 없었다.
아버지인 모용금이 쓰러져 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모용이선이 팽능겸을 향해 전음을 보냈다.
[어르신. 이런 부탁드리기 정말 실례인 것은 알지만 옛정을, 아니 같은 오대 세가의 후예로서 한 번만 도와주십시오.]
잠자코 구경하던 팽능겸의 눈동자가 이채를 머금었다.
말없이 그를 쳐다보자, 계속 해서 전음을 보내왔다.
[어르신만 도와주신다면 염기섭 사장과 제 아버님을 저렇게 만든 저 자를 제압할 수 있습니다.]
[허허허.]
[아버님과의 관계가 좋지 않은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버님과 다릅니다. 소싯적부터 어르신을 존경해왔습니다.]
실제로 모용이선은 항상 팽능겸에게 예를 갖췄었다.
팽능겸 역시도 그렇기에 모용이선에게 만큼은 부드럽게 대우를 해주었다.
[그냥 도와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도와주신다면 저 자가 가진 C등급 코어를 어르신께 양보하겠습니다.]
모용이선은 사업가였다.
거래나 협의에 있어서 가장 기본은 그에 상응하는 대가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팽능겸을 움직일 만한 것은 오직 코어뿐이었다.
‘코어가 아깝긴 하지만 이 상황을 뒤집을 수 있다면....’
모용이선이 간절한 눈빛으로 팽능겸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의 입에서 나온 전음은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미안하네. 모용 전무.]
[넷?]
모용이선이 당혹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코어라는 큼지막한 보상을 제시했는데, 설마 거절이 튀어나올 줄은 몰랐다.
[어, 어째서입니까?]
[같은 협회인으로서 중재를 해달라면 모를까. 이번 건은 같은 심양시 지부 협회인들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기에 노부가 나서기는 그렇네.]
최대한 돌려서 거절하는 태도에 모용이선이 다급히 전음을 보냈다.
[아닙니다. 저 뒤에 있는 자는 협회 무림인이 아닙니다. 게다가 미등록 무림인입니다. 저런 자가 제멋대로 방자하게 행동하면 독립을 목표로 하는 본 협회의 입지가 난처해질 지도 모릅니다.]
한 그룹의 전무이사답게 모용이선은 달변가였다.
어떻게든 팽능겸을 설득하려 들었다.
그러나 팽능겸의 의지에는 변함이 없었다.
한숨을 내쉰 그가 안타깝다는 목소리로 전음을 보냈다.
[후우....솔직히 말해주겠네. 이번 건은 모용 전무 자네가 부친을 데리고 물러나는 편이 낫다고 보네.]
‘이 영감탱이가!’
모용이선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내심 도움을 기대했는데 이렇게 매몰차게 거절하니 화가 났다.
오대 세가도 옛말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버님이 저 노인네를 싫어하는 것도 이제야 이해가 가는 구나.’
화가 나있는 모용이선에게 팽능겸이 조언을 해주려했다.
[노부의 말을 듣게나. 모용 전무. 자네와의 연을 생각해서 냉정하게 말해주겠네. 여기서 끝내지 않는다면 오히려...]
[됐습니다. 더 이상 어르신께 도움을 요청하지 않겠습니다.]
‘허?’
팽능겸이 인상을 찡그렸다.
중요한 이야기를 해주려 했는데, 중간에 말까지 자른 것을 보면 굉장히 실망한 모양이었다.
[저희 아버님과 관계가 좋지 않았을 때도 저는 어르신을 여전히 존경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아버님의 말씀이 맞군요.]
[이보게. 일단 내 말을...]
[아닙니다. 저희 아버님이 저 지경이 되었는데도 무심한 어르신께 무슨 말을 듣겠습니까? 더는 어르신, 아니 팽 무도관과의 관계는 없다고 생각하겠습니다.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허어.....]
관계를 정리하겠다는 모용이선의 전음에 팽능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모용이선은 현실을 냉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뒤늦게 도착해서 알파 뿔자칼을 단칼에 베여지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고 해도, 자신의 아버지가 당할 정도의 고수라면 당연히 이성적으로 판단할 거라 여겼다.
그런데 분노와 주위의 평판에 눈이 가려져 아집을 부리고 있었다.
‘쯧쯧, 제 애비와 별 다를 바가 없구나.’
팽능겸은 더 이상 전음을 보내지 않았다.
어차피 저 정도 아집이라면 자신이 더 말을 해도 소용없다고 판단했다.
곤란한 요청에 거절했다는 이유만으로 연을 쉽게 생각하는 모용 일가가 이참에 제대로 콧대가 부러지는 편이 낫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흥! 좋아. 이렇게 된 이상...’
팽능겸의 도움을 받을 수 없게 되자 모용이선을 방법을 바꾸었다.
이렇게 된 이상 목표점을 좁히기로 했다.
어차피 블레이드 식스 산하의 계열사인 식스 로드 토이와 대립각을 해봐야 후에 좋을 것이 없었다.
[염 사장님.]
모용이선이 염기섭에게 전음을 보냈다.
갑작스러운 그의 전음에 염기섭이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뒤에 서있는 그 자. 이번에 식스 로드 토이에서 아홉 번째로 영입한 미등록 무림인이죠?]
그런 모용이선의 전음에 염기섭이 인상을 찡그렸다.
회사의 기밀이었지만 저쪽도 은밀히 움직이는 자들이 있으니, 어느 정도 눈치 챌 줄은 짐작했지만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인정해서 될 부분은 아니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흠흠.]
[시치미를 떼도 소용없습니다. 저희 쪽에도 정보란 게 있으니까요. 아니면 증빙 자료라도 보내드리면 되겠습니까?]
증빙 자료가 될 만한 사진은 넘치고 넘쳤다.
다만 저쪽에서 아직까지는 직접적으로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에 훗날의 패로써 지녔을 뿐이었다.
염기섭이 그를 노려보며 전음을 보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이렇게 하시죠. 어차피 뒤에 있는 그 자는 저희 회장님뿐만이 아니라 제 사람들을 꽤 많이 건드렸습니다. 그냥 넘어가기 힘든 부분이죠.]
[그래서?]
[염기섭 사장님 쪽의 사람이 맞다면 분명 제재 수단을 가지고 있겠죠? 저 자를 처리해서 넘겨주시죠.]
[뭐?]
염기섭이 어이가 없어했다.
그런 그에게 모용이선이 입술을 질끈 깨물며 전음을 보냈다.
[이번 심양시 남쪽 외곽에 건설되는 군수공장의 수주 입찰건. 저희 연 컴퍼니에서 포기하겠습니다.]
[뭣?]
그 말에 염기섭의 두 눈이 커졌다.
지금 모용이선은 엄청난 제안을 해온 것이다.
블레이드 식스에서 지령으로 내려온 연 컴퍼니의 전무 이사인 모용이선에 대한 암살 건이 논의되는 큰 이유가 바로 이 군수공장 수주건 때문이었다.
‘입찰을 포기하겠다고?’
평소였다면 단번에 흔들릴 수밖에 없는 제안이었다.
이번 수주를 따게 된다면 방위 산업에 뛰어들어 굉장한 이익을 낼 수 있었다.
심양시 모든 기업들이 탐내는 입찰 건이었다.
만약 이 입찰을 따낸다면 합병계를 떠나서 본사인 블레이드 식스에서도 대단한 실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본사의 덩치를 더 키울 수 있는 기회이지만.’
모용이선은 직감적으로 천여운을 처단하는 게 더 낫다고 판단했다.
이 제안만큼은 염기섭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여겼다.
미등록 무림인이라면 그들에게 있어서 언제든지 버릴 수 있는 패이겠지만, 기업으로서 이번 입찰 건은 굉장히 컸다.
‘후후후.’
모용이선이 천여운을 바라보며 입 꼬리를 올렸다.
방패막이처럼 버티고 있는 염기섭 사장이 자신과 어떤 합의를 보고 있는지도 모를 거라는 비웃음이었다.
‘흥. 네놈이 그런 여유를 부리는 것도 이제 곧 끝이다.’
건방지게 뒤에 서서 손가락을 딱딱거리며 튕기고 있었는데, 곧 저 손가락을 부러뜨려 작정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염기섭이 갑자기 소리를 쳤다.
“연 컴퍼니의 전무 이사란 자가 전음으로 몰래 우리 쪽 귀인을 처리해달라고 딜을 걸다니 제대로 썩었구나!”
“뭣?”
순간 모용이선의 표정이 굳어지고 말았다.
‘지, 지금 이 자가 무슨 짓을...”
당혹스러워하는데, 염기섭은 계속 이어서 소리쳤다.
“어디서 시치미를 떼는 것이냐? 모용 전무 자네의 무위로는 힘들다고 군수공장 수주 입찰 건을 포기할 테니, 우리 쪽 귀인을 처리해달라고 사정사정을 하지 않았나? 아무리 무위가 달린다고 해도 무림 협회의 도의에 어긋나는 더러운 청탁을 하다니!”
‘이....이 새끼가!’
모용이선은 얼마나 어이가 없었는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은밀한 제안을 밝힌 것도 그랬지만 자신이 하지도 않았던 말까지 덧붙여서 하는 바람에 억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모용이선의 두 눈동자가 여기저기로 돌아갔다.
-웅성웅성!
주변에 있던 무림인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정말 딜을 한 거야?’
‘연 컴퍼니의 전무 이사가?’
정말로 그런 것인가 의구심을 품고 있는 말들을 하고 있었지만, 모용이선에게는 마치 모두가 그를 경멸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주위 평판을 의식하는 그에게는 당혹스러운 상황이었다.
“지, 지금 무슨 허언을 하는...”
“여러 협회의 동도들 앞에서 확실하게 밝히는 것이오. 만약 내 말에 한 치라도 거짓이 있다면 나 식스 로드 토이의 사장인 염기섭은 누군가의 노예로 개처럼 살아갈 것이오!”
염기섭이 오히려 더욱 강하게 나왔다.
심양시를 움직이는 한 기업의 수장이 스스로를 비하하는 발언마저 서슴지 않자, 여론은 당연히 더욱 술렁이는 게 당연했다.
모용이선만 미칠 지경이었다.
“이....이이익...”
뭐라도 반박을 해야 하는데, 한 번 크게 흔들리자 머릿속이 새까매졌다.
이미 상황은 수습하기 힘들었다.
한 그룹의 전무 이사인 그만큼이나 염기섭의 발언에도 무게가 실려 있기 때문이었다.
‘휴....’
주위 사람들은 그의 그런 폭탄발언에 모용이선에게로 시선이 가있었지만, 방호 헬멧 속 염기섭의 얼굴은 식은땀으로 흠뻑 적셔있었다.
아까 전에 모용이선이 전음으로 솔깃한 전음을 하고 있을 때, 뒤에 있던 천여운이 갑자기 손가락을 튕기기 시작했다.
화들짝 놀란 그는 나노 폭탄이 들어있는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괜히 지레 겁먹은 건가. 전음 도청 장치 같은 것도 없는데 살 떨리게 만드네.’
딱딱 거리는 소리만 들려도 이제는 경기가 일어났다.
그런 그의 뒤에서 천여운의 목소리가 들렸다.
“개 주제에 그럭저럭 쓸 만하군.”
-스륵!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뒤에서 기척이 사라졌다.
염기섭이 고개를 돌려보니, 금오연을 안고 있던 천여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바로 뒤에 있던 자가 갑자기 사라졌는데, 이것을 곧바로 알아차린 사람은 그와 팽능겸 정도가 다였다.
두리번거리던 그가 중얼거렸다.
“쓸 만하다고?”
-히죽!
한참 긴장하고 있던 염기섭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러다 문득 인상을 찡그렸다.
‘......아니. 그 말에 내가 왜 좋아한 거지?’
순간 자신이 점점 미쳐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한편 심양시 외곽 남서쪽 폐공장.
그 안에서 초조한지 한 곳에 가만히 서있지 못하고 있는 이가 있었다.
그는 바로 백종서였다.
모친을 구하러 간 천여운을 기다리는 이 시간이 너무도 괴로웠다.
마음 같아서는 같이 가고 싶었지만 방해된다는 말에 남아서 능도명을 감시하고 있어야 했다.
“후우. 후우.”
백종서의 한숨을 내쉬는 소리에 능도명은 속이 답답해졌다.
시한부 삶을 살아가는 기분이었다.
백종서의 태도만 보면 만약 천여운이 모친을 구하지 못한다면 자신을 이 자리에서 당장 죽여 버릴 기세였다.
‘빌어먹을....’
속마음은 거의 자포자기 신세였다.
게이트가 열린 마당에 무슨 수로 방벽 바깥에서 구출을 한단 말인가.
좌표는 알려줬지만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놈이 돌아오면 나는 죽겠지.’
자신이 어쩌다 이런 신세가 되었는지 괴로웠다.
어두운 얼굴로 왔다갔다 거리며 초조해하는 백종서를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끼이이익!
그때 폐공장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안으로 울렸다.
‘아!’
입구 쪽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백종서가 떨리는 마음으로 그곳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입구 쪽에는,
“세상에....”
천여운이 아닌 처음 보는 사내가 기관소총을 들고 서있었다.
그 자는 폐공장 안에 죽어 있는 공안 기동 타격대의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엇?’
능도명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지금 나타난 저 자는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자였다.
“이명!”
그는 정직된 공안국 강력반의 제 3팀장인 이명이었다.
천여운이 나타날까봐 두려워하고 있던 차에 그의 등장은 희망이나 다름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소리쳤다.
“이명 팀장! 지원 병력을 데려온 건가?”
안타깝게도 정직된 이명이 지원 병력을 데려올 리가 만무했다.
폐공장 안의 상황과 피투성이가 돼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능도명의 모습에 이명이 다급히 백종서에게 기관소총을 겨냥하며 외쳤다.
“꼼짝 마! 움직이면 쏜다!”
“칫!”
백종서가 소매에서 나이프를 빼들었다.
권총도 아니고 기관소총을 겨냥했기 때문에 조심해야 했다.
‘제발....’
능도명은 운이 좋아서 이명의 총알이 백종서의 몸을 꿰뚫기를 바랐다.
이명이 소총을 견착 한 상태로 다시 한 번 소리쳤다.
“마지막 경고다. 항복하지 않으면 무조건 사살한다.”
한 번 된통 당했던 이명은 절대로 방심하지 않았다.
기관소총을 들고 온 이유도 무림인을 상대하려면 무조건 죽일 각오를 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머리. 심장만 노린다.’
이명의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기려 하던 찰나였다.
백종서가 갑자기 환해진 얼굴로 소리쳤다.
“어머니!”
‘어머니?’
뜬금없는 소리에 이명이 방아쇠를 당길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그 순간 그의 뒤에서 누군가 뒷목을 움켜쥐었다.
-콱!
“으어억!”
놀라서 어쩔 줄 몰라 하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총알을 맞은 걸로는 부족했나 보지?”
‘이, 이 목소리는?’
짧은 기간 내에 잊혀 질 리가 만무했다.
그의 몸을 저격총의 방패처럼 돌려대던 천여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