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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게이트 (2)
-위이이이잉! 위이이이잉! 위이이이이잉!
게이트 경보령이 울린 직후,
심양시는 방위 전쟁 준비에 돌입했다.
모든 건물의 문 입구와 창문들로 두께가 있는 철 보호망이 내려왔고, 시민들은 방위국 군인들의 안내에 따라 배정된 보호소로 신속히 이동했다.
"천천히 이동하십쇼. 아이와 노인부터 들어가세요."
게이트가 열린지 어언 28년이 지났다.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게이트 때문에 사람들은 재난에 익숙해져 있었다.
혼란은 없었다.
-철컹! 철컹!
모두가 침착하게 지하 보호소로 이동했고, 그것이 완료되자 심양시에 있는 벙커의 문들이 하나둘씩 닫혀갔다.
서쪽 방벽으로 심양시 내에 있는 7할 이상의 방위군이 출동했다.
나머지 3할의 방위군들은 다른 방위의 방벽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병력들이었다.
서쪽 방벽이 뚫리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난다.
이것은 인류를 위협하는 위험개체로부터 모두를 지키기 위한 전쟁이었다.
-드드드드드!
30여 대의 탱크가 이동해오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왔다.
30~35년식 4세대 전차들로 정식 명칭 ZRV-30, ZRV-35가 게이트가 열린 일직선인 서쪽 D-13방벽 앞으로 도착했다.
-위잉! 쿵!
20대의 ZRV-30의 전차 옆 부위에서 기계식 고정 장치가 내려와 땅에 박혔다.
일 열로 방벽에서 500M 앞에 고정된 전차의 포신의 각도가 위로 올라가며, 방벽 너머의 적에게 포탄을 날릴 준비를 마쳤다.
130mm의 구경에 포신의 길이가 7m인 ZRV-30은 포발사의 최대 사거리가 8km에 이르는 전차다.
-위이잉!
10대의 ZRV-35가 기계식 다리 형태로 변형했다.
ZRV-35는 기동 운영 전차로 방벽 내에서 장거리로 포를 사격하는 용도가 아니었다.
-철컹! 철컹!
기계식 다리가 로봇처럼 방벽의 벽을 타고 올라갔다.
그렇게 방벽의 위로 오른 ZRV-35가 단단하게 방벽에 고정되어서 포신을 겨냥했다.
-모든 전차의 격발 준비 완료.
-알겠다. 지휘부의 신호를 기다려라.
-라저!
-각 부대의 포병들은 배치된 곳에서 대기하라.
-라저.
각 방벽 위로는 수많은 군인들이 중거리포를 비롯해 다양한 병기들의 앞에 서서 어둠 속의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후우....후우...”
“씨발. 무지 떨리네.”
제일 긴장하고 있는 이들은 방벽의 외벽 앞에서 진을 치고 있는 보병들이었다.
전투 경험이 많은 병장들도 어쩔 수 없었다.
위험 개체들이 각 포의 사격 범위를 지나치고서 방벽 가까이로 오는 순간부터 난전의 시작이니 말이다.
‘저 녀석들은 떨리지도 않나.’
‘조용히 해. 인마.’
그런 보병들의 눈에는 여유로워 보이는 자들도 있었다.
보병들의 뒤편에 진을 치고서 검이나 도를 들고 있는 무림 협회 소속의 무림인들과 특수 능력자 및 무림인들로 구성된 게이트 키퍼들이었다.
위치가 가까워져 백병전으로 돌입하는 순간부터 그들의 진가가 시작된다.
일반 보병들로서는 위험 개체들을 상대로 근접전에는 비교적 취약해질 수밖에 없기에 그들은 큰 전력이었다.
[아버님. 도정락 그 자가 보이지 않는군요?]
모용이선의 전음에 옆에서 검신을 닦고 있던 모용금이 게이트 키퍼들을 바라보았다.
평소라면 가장 선두에 있어야 할 심양시 게이트 키퍼들의 대장인 도정락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잘됐구나.]
어차피 무림 협회와 게이트 키퍼들은 협력보다는 경쟁의 관계였다.
백병전으로 넘어가는 순간부터는 코어를 차지하기 위한 분투가 시작된다.
[이번에는 예감이 좋구나.]
모용금은 상당히 기분이 들떠있었다.
외지인인 팽능겸이 끼어들면서 코어 경쟁이 격화될 거라 여겼는데, 경쟁자들 중 한 사람인 윤문평 이사에 이어서 도정락이 보이지 않았다.
[경쟁자는 적으면 적을수록 좋단다. 이선아.]
그 전음과 함께 모용금이 식스 로드 토이의 사장인 염기섭과 팽능겸을 쳐다보았다.
방해가 될 만한 자들은 고작 두 명에 불과했다.
잘하면 C등급 코어를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여겼다.
‘허허허.’
그런 모용금의 뜨거운 시선을 느꼈는지 팽능겸이 너털웃음을 흘렸다.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구먼.’
팽능겸의 진짜 목적은 코어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모용이선이 대학 병원에서 띄워준 것처럼 정말로 협의가 뛰어나서 이곳으로 온 것도 아니었다.
그저 무인으로서 실전을 더 맛보기 위해서였다.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
모용금 만큼은 아니었지만 굳이 코어를 양보할 생각도 없기 때문이었다.
모두가 각자의 생각을 가지고서 기다리던 차였다.
-드르르르!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어둠 속으로 향했다.
서쪽 방벽을 책임지는 사령탑인 부현동 소교(少校-소령)가 야간 투시 망원경으로 지평선 쪽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야간 투시 망원경 너머로 꾸물거리며 지평선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검은 무언가가 보였다.
‘왔어!’
여섯 개의 뿔이 달리고, 날카롭고 긴 송곳니.
그리고 사족 보행을 하는 위험 개체들이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방위국에서 보낸 정보대로 뿔자칼이 틀림없었다.
‘빠르다.’
놈들이 달리는 속도는 굉장히 빨랐다.
덩치는 하마만한 놈들이 먹이 사냥을 하는 퓨마처럼 달리는데, 그 숫자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지평선 전체를 가득 메우고도 파도처럼 밀려오는 모습이 두려울 정도였다.
‘더 멀리서 발포한다면 좋을련만.’
기술적으로는 수십 km까지도 로켓포를 발포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려면 일정 상공 이상으로 로켓이 올라가야 하는데, 비행기도 뜰 수 없는 지금의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별 수 없다.’
현재의 최대 사거리에서라도 숫자를 많이 줄여야만 했다.
부현동 소교가 손을 들고서 외쳤다.
“사정권이다. 전차들은 발포 준비!”
-라저!
무전으로 들리는 그의 명령에 방벽 위와 내에 있는 전차들의 포신이 움직였다.
부현동 소교가 손을 들어 올린 채 망원경에 집중했다.
-드드드드드!
땅을 울리는 진동소리가 점차 더 커졌다.
이윽고 엄청난 숫자의 뿔자칼 떼가 야광 조명 등이 켜져 있는 곳을 통과했다.
옆에 있던 부관이 말했다.
“1차 격발 지점에 도달했습니다!”
그 순간 부현동이 큰소리로 외쳤다.
“발포!”
-발포!
-펑! 펑! 펑! 펑! 펑!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모든 전차들의 활강포에서 폭음과 함께 포가 발사되었다.
어둠을 뚫고서 붉은 빛의 포탄이 지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 뿔자칼의 떼의 곳곳에 떨어졌다.
-쾅! 쾅! 쾅! 쾅! 쾅!
포가 떨어진 곳에 폭발이 일어났다.
화염과 연기가 치솟는 가운데 여전히 꿈틀거리는 것들이 보였다.
“계속 발포하라.”
-라저!
-쾅! 쾅! 쾅! 쾅! 쾅!
7, 8km 떨어진 서쪽 일대가 포탄으로 쑥대밭이 되어갔다.
그 기세만 보았을 때는 뿔자칼들이 포탄이 떨어진 지점을 통과하지 못할 만도 했지만,
-두두두두두두!
폭발하는 불꽃을 꿰뚫고 뿔자칼들이 튀어나왔다.
얼마나 빠른지 포탄을 피하거나 살아남은 놈들이 엄청난 속도로 방벽을 향해 돌진해오고 있었다.
“젠장! 너무 많아.”
포탄이 이어지는 틈에 사거리를 넘어오는 개체들이 넘쳐났다.
돌진하는 앞 열의 3할 이상은 처리했으나, 이제 중거리 3, 4km 지점에서 최대한 많이 줄여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방벽 앞에 있는 보병들이 개체수를 감당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각 포병들은 발사 준비!”
-라저!
이윽고 방벽에서 4km 떨어진 곳으로 중거리 포들이 발포되었다.
폭음 소리와 화약 냄새가 방벽을 요동쳤다.
-쾅! 쾅! 쾅!
방벽의 바로 앞에서 진을 치고 있는 보병들의 기관총을 잡고서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몇 번이나 게이트 방어전을 치른 상병, 병장들은 알고 있었다.
방벽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포탄이 떨어진다면 이윽고 무언가 들이닥친다.
-꽉!
총신을 잡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폭발로 뿌연 연기가 뒤덮인 전방을 뚫어지게 좌시하고 있을 때였다.
-드드드드드드!
“헉!”
“마, 많아!”
연기 속에서 뿔자칼들이 연이어 튀어나왔다.
아까처럼 지면을 가득 메울 정도는 아니었지만 얼핏 보아도 개체수가 천 마리는 훌쩍 넘기는 것 같았다.
“온다! 보병들 사격 개시!”
“사격을 개시하라!”
방벽 앞에서 보병들을 지휘하는 중, 하사들이 큰 소리로 외쳤다.
긴장하면서 기다렸던 보병들이 일제히 자세를 취하고서 전방을 향해 사격을 개시했다.
-두두두두두두두!
기관총이 연사되는 소리들로 방벽 앞이 시끄러워졌다.
흥분한 보병들이 소리를 지르며 쉬지 않고 전방으로 연사했다.
“죽어! 죽어어어!”
“이 괴물 새끼들!”
몇 발만 맞고도 죽으면 좋겠지만 돌진해오는 저 위험 개체들은 이 세상의 존재들이 아니었다.
수십 발의 총알 중에서 운이 좋아, 심장부인 핵(核)에 맞지 않고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슬슬 우리들 차롄가.”
-챙!
-척!
보병들의 뒤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무림인들과 게이트 키퍼들이 곧 있을 전투를 위해 일제히 무기를 꺼내들고 임전태세를 갖췄다.
-두두두두두두!
“으으으으.”
“제, 제기랄!”
보병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수백 수천의 총알을 버텨낸 뿔자칼들이 그들의 앞까지 도달했다.
그 숫자가 많이 줄었지만 하마만한 크기에 기이한 형태의 이 괴물은 보병들로 하여금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크와아아아앙!”
“히익!”
"도망쳐!"
포효성을 내지르는 뿔자칼들이 보병들을 덮치려 했다.
그때 기다렸다는 듯이 무림인들이 나섰다.
-척!
“물러나라! 이제 우리가 맡겠다!”
검을 사용하는 한 무림인이 보병들을 덮치려는 뿔자칼의 앞을 가로막고서 검초를 펼쳤다.
-촤촤촤촥!
그의 검초가 뿔자칼의 머리 부분을 갈랐다.
당연히 놈의 뿔들이 검초에 의해 잘려나갈 거라고 예상했지만,
“크워어어!”
뿔이 잘리기는커녕 조금의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잠깐 발을 멈추게 한 것이 다였다.
‘뭐, 뭐야? 이 괴물 놈. 몸이 단단해.’
그때 화가 난 뿔자칼이 콧김을 내뿜더니, 이내 앞발을 들어 그의 몸을 후렸다.
다급히 검으로 막았으나, 뿔자칼의 힘은 엄청났다.
-댕강! 콰드드득!
“끄아아아악!”
뿔자칼의 앞 발톱에 검이 부서지고 무림인의 몸이 종잇장처럼 찢겨져 나갔다.
나름 일류 고수였는데 너무 허망하게 당해버렸다.
이에 놀란 다른 무림인들이 외쳤다.
“정면으로 상대하지 마라! 뒤를 노려!”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나의 위험 개체만 상대한다면 그럴 틈이 있겠지만,
“크와아아앙!”
“크워어어어!”
그들의 앞으로 뿔자칼들이 연이어 나타났다.
방위군의 방어 체계를 버티고서 방벽 앞까지 돌진해 온 뿔자칼들의 수가 갈수록 늘어났다.
“칫!”
D-13방벽을 맡은 게이트 키퍼들의 소대장 기윤이 뿔자칼들을 향해 두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의 손에서 보랏빛의 스파크를 내뿜는 커다란 원반이 생겨났다.
“죽어랏!”
-슈욱!
보랏빛 원반이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 뿔자칼의 두 앞발을 잘라냈다.
-촤악!
“크워어어어!”
“아직이야!”
기윤이 원반을 움직여 놈의 뒷발을 노렸다.
-촥!
앞발에 이어 뒷발까지 잘려나간 뿔자칼이 바닥에 쓰러졌다.
-쿵!
형상화한 에너지 블라스터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그는 B급 키퍼답게 한 마리의 뿔자칼을 손쉽게 무력화시킬 수 있었다.
‘알파는?’
뿔자칼 한 마리를 제압하고 난 기윤이 주위를 살폈다.
놈들의 우두머리라 할 수 있는 알파 개체가 곧바로 나타날 리는 없었지만 먼저 찾아야만 우선적으로 공격해볼 수 있었다.
“크와아아아!”
“큭!”
그때 다른 뿔자칼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기윤이 서둘러 에너지 블라스터 원반을 만들어내 놈에게 날렸다.
한편 알파를 찾는 것은 기윤뿐만이 아니었다.
-촤아아악! 쿵!
“흥!”
뿔자칼 한 마리가 목이 잘려나갔다.
놈의 목을 한 번에 벤 것은 바로 연 컴퍼니의 회장이자 무림 협회의 지부장인 모용금이었다.
그는 심양시에서 단 네 명뿐인 화경의 고수답게 검강으로 뿔자칼들을 누구보다 빠르게 제거해나갔다.
‘건곤파섬검(乾坤破晱劍)!’
건곤의 묘리가 담긴 검초에 뿔자칼 두 마리가 동시에 썰려나갔다.
-촤촤촤촥!
“크와아아악!”
-쿵! 쿵!
“우와아아아!”
주변에 있던 보병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대단하다!”
“역시 무림인!”
벌써 그의 검에 여덟 마리나 되는 뿔자칼이 죽었다.
고전하는 다른 무림인들에 비하면 확실히 현격한 강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물론 그가 이렇게 빠르게 뿔자칼을 죽여 나가는 것은 게이트 키퍼들의 소대장인 기윤처럼 알파 개체를 찾기 위해서였다.
“역시 명불허전이로군.”
식스 로드 토이의 사장인 염기섭이 혀를 내둘렀다.
확실히 명문 정파의 검의 명인다웠다.
같은 화경의 고수였지만 모용금이 한 수 위라는 것은 극명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도 만만치는 않았다.
-쾅! 부웅!
염기섭의 해왕권(海王拳)의 강력한 권강에 뿔자칼의 가슴에 구멍이 나서는 5미터 거리를 날아가 버렸다.
일격 자체가 대단하다고 할 수 있었다.
“역시!”
방벽의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소교 부현동이 탄성을 흘렸다.
매번 게이트가 열릴 때마다 우려했지만 무림인들이나 게이터 키퍼들이 대단하기는 했다.
총기류가 없이도 근접전으로 저 괴물들을 상대하는 것이 말이다.
아직까지는 방벽이 뚫리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 많아. 이게 C등급인 건가.’
지난번 게이트 때는 이 정도로 숫자가 많지 않았다.
포격으로 그렇게 숫자를 줄여나갔는데도 방벽 앞에는 뿔자칼들로 득실거렸다.
계속 이어지는 포격에도 불구하고 게이트에서 얼마나 많은 개체들이 튀어나온 건지, 쉴 새 없이 몰려오고 있었다.
‘C등급이 이 정도면 그 위는 대체 얼마나 위험하단 말이야.’
한 번도 그 이상을 겪어본 적이 없는 그가 혀를 내둘렀다.
그러던 차에 옆에 있던 부관이 말을 걸었다.
“부 소교님! 저, 저길 보십쇼.”
“뭐?”
의아해진 부현동이 야간 투시 망원경으로 부관이 가리킨 곳을 보았다.
약 1.5km 떨어진 지점에 꽤 많은 수의 뿔자칼들이 뭉쳐서 킁킁거리며 뭔가를 찾고 있었다.
왜 그러는가 싶었던 그가 머릿속에 무언가 떠올랐다.
“부관......저기 혹시 지하 벙커로 만들어진 안가가 있는 곳 아니야?”
방위군인 그는 주변에 있는 안가의 위치 정도는 전부 파악하고 있었다.
부관 역시도 그것을 알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습니다.”
평소에는 안가로써 쓰이기는 했지만 게이트가 열리게 되면 그곳을 비워야만 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번 게이트가 원래 예보된 것보다도 훨씬 빨리 열렸다.
부현동이 떨리는 눈으로 중얼거렸다.
“설마 벙커 안에 지금 누가 있는 거야?”
그러지 않고는 뿔자칼들이 저런 기이한 행동을 하는 것을 설명할 수 없었다.
그런 부현동의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쾅! 쾅! 쾅!
서쪽 방벽에서 남서쪽으로 1.5km 정도 떨어진 벙커 안.
그곳은 최악의 사태로 인해 모두가 공포로 숨을 죽이고 있었다.
“비, 빌어먹을....”
“이러다 입구가 부서지겠어.”
벙커 안에 있는 사람의 숫자는 총 네 명.
남색 제복을 입고 있는 세 명의 남자들은 공안국의 요원들이었다.
그들은 벙커 앞에서 조금씩 찌그러져 가는 합금으로 된 문을 보면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쾅! 쩌저저저적!
“젠장!”
합금으로 된 문에서 굉음 소리가 날 때마다 조금씩 일그러지고 있었다.
옆에 이음새 부분의 콘크리트 벽이 심하게 갈라진 것만 보아도 벙커의 입구가 얼마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지, 진즉에 방호복을 놔두자고 했는데.”
요원 한 명이 찌그러져 가는 입구를 보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그들 역시도 게이트 경보령을 들었다.
그러나 안가에는 붙잡아두고 있는 수용자가 탈출할 수 없도록 방호복을 따로 배치해놓지 않았다.
오직 외부에서 이송하러 와야만 나갈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 조치가 지금은 독이 되어버렸다.
-쾅! 쿠르르르!
또 다시 울리는 굉음 소리에 이번엔 벙커 전체가 흔들렸다.
세 명의 요원들은 사시나무 떨 듯이 두려워하면서 벙커 안쪽에 앉아서 좌선을 하듯이 앉아 있는 50대 중반의 여인을 원망스럽다는 듯이 노려보았다.
“빌어먹을 년! 누구 때문에 이러고 있는데, 사이비 종교의 염불을 외우는 것도 아니고 뭘 하고 있는 거야!”
여인은 좌선을 하고서 뭔가를 웅얼거리고 있었다.
그것은 그들의 불만처럼 정말로 경 같은 것을 외우는 듯 했다.
“이 한 몸 성화 불에 불사르니 생과 사에 미련 없네. 가고자 하는 길에 있어 광명을 밝히니, 기쁨과 슬픔은 모두 한낱 먼지로 남으리. 근심 많은 중생 가련하도다.”
그녀가 읊는 것은 바로 천마신교의 경문이었다.
이 여인의 이름은 금오연.
백종서의 모친이자 천마신교의 교인이었다.
게이트 경보령이 울리고 벙커가 부서지는 것에서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 그녀는 천마신교의 경문을 암송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 한 몸 성화 불에 불사르니 생과 사에 미련 없네. 가고자 하는 길에 있어 광명을 밝히니, 기쁨과 슬픔은 모두 한낱 먼지로...”
요원들 중 한 사람이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빌어먹을 년! 안 그래도 불안해 죽겠는데, 재수 없게 그만 염불 외...”
바로 그때였다.
-콰앙! 쿵!
벙커의 합금으로 된 문이 또 한 번의 충격으로 열려버리고 말았다.
열려버린 벙커의 바깥쪽에서 사나운 짐승들의 울음소리가 같은 것이 들려왔다.
“크르르르르.”
어둠 속에서 붉은 안광들이 여기저기서 번뜩였다.
뿔자칼들이었다.
“히익!”
놀란 그들이 벙커의 안쪽으로 기어들어가려 했지만,
-콰드득!
“으악!”
-우거적! 우거적!
벙커의 안으로 들어온 뿔자칼 한 마리가 그대로 요원 한 명의 몸의 상반신을 통째로 씹어 먹어버렸다.
비명을 지르며 꿈틀대던 요원의 몸이 이내 움직이지 않았다.
“으아아아아!”
“죽어어어어엇!”
-탕! 탕! 탕! 탕!
동료가 비참한 최후를 당하자 겁에 질려버린 두 요원이 권총을 뽑아 미친 듯이 쏘아댔다.
하지만 기관총으로 수십 발을 맞아도 쉽게 죽지 않는 뿔자칼이 총알 몇 방에 쓰러질 리가 만무했다.
-파악! 콰드득!
"크헉!"
“끄아아악!
뿔자칼이 휘두르는 앞발톱에 동시에 두 명의 요원이 찢겨져나갔다.
벙커의 입구 쪽이 피로 난자되었다.
-부들부들!
이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있던 금오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아무리 경문을 외우고 있었지만 죽음을 앞두고서 침착함을 유지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아아....종서야.’
두려운 한편으로 그녀의 머릿속에 아들이 떠올랐다.
자신이 죽는 것을 안다면 어딘가에 기댈 곳도 없는 아들이 얼마나 불행해질지를 생각하니, 공포심보다도 슬픔이 몰려왔다.
‘내 아들.....불쌍한 내 아들.....’
“크르르르르!”
눈물을 흘리는 그녀에게로 뿔자칼이 피가 묻은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다가왔다.
이미 상대가 모든 것을 포기했음을 알기라도 하듯 천천히 발톱을 세우며 걸어오려는 순간이었다.
-콰아아아앙!
-쿠르르르르르르!
그 순간 벙커 전체가 엄청난 진동으로 울려 퍼졌다.
흡사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벙커가 흔들리자, 화들짝 놀란 뿔자칼이 밖으로 빠져나가려 하는데,
-촤악!
뭔가를 베는 소리와 함께 뿔자칼이 입구에서 쓰러졌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영문을 알 수 없는 금오연이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어둠 속에서 누군가 벙커 입구로 걸어 들어왔다.
-저벅저벅!
검은 코트에 검은 슈트를 입은 청년은 바로 천여운이었다.
“늦지 않았군.”
그의 말에 금오연이 놀란 눈으로 물었다.
“누, 누구신지?”
“그대가 백종서의 모친인가?”
백종서라는 말에 금오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블랙 스카이 컴퍼니가 와해된 후로 백종서는 자신의 성인 금(金)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실명을 밝혔다는 것은,
“호, 혹시 본교의 분이신지?”
설명이 번거로웠던 천여운이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그의 오른쪽 손목에 있던 흑철 보호구가 분해되면서 검의 형태로 바뀌었다.
-차차차차착!
영롱한 빛을 내고 있는 흑검의 모습에 금오연의 입이 벌어졌다.
그녀의 시선이 흑검에 새겨진 문구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그 검은?”
그때 천여운이 입구 쪽으로 다시 몸을 돌리면서 중얼거렸다.
“......귀찮게 만드는군.”
어느새 벙커 주변에는 뿔자칼들이 몰려와 있었다.
그 수는 수백 마리에 이르렀다.
"학!"
천여운의 뒤쪽까지 따라나온 금오연의 눈빛이 두려움으로 물들었다.
벙커 밖에 괴물들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
“크르르르르르!”
“크르르르르!”
벙커 안에서 흘러나오는 인육과 그 피 냄새를 맡았는지 길쭉한 이빨들이 달려있는 입에서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동시에 덮칠 기세였다.
"더러운 이형의 것들이 내게 이빨을 보이다니. 쯧."
천여운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이내 밤하늘을 향해 손바닥을 뻗었다.
그 순간 허공에서 차가운 한기가 일어나더니,
-쩌저저적!
허공에서 수백 개의 얼음검들이 만들어졌다.
오령(五靈)인 다섯 영물의 진원을 흡수하여 자연경의 경지에 이른 천여운은 오행의 기운을 전부 다룰 수 있다.
‘이럴 수가!’
금오연이 그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전부 죽어라.”
천여운이 하늘로 뻗었던 손바닥을 주먹 쥐었다.
바로 그 순간 수백 개의 얼음검들에 푸른빛의 검강이 뒤덮이더니, 일제히 지상을 향해 탄검강(彈劍罡)을 일으켰다.
-촥! 촥! 촥! 촥!
어두운 밤하늘을 가르는 푸른 빛줄기들이 벼락처럼 땅을 내리쳤다.
-콰콰콰콰콰콰쾅!
벙커를 둘러싸고 있던 수백 마리의 뿔자칼들이 레이저 광선처럼 사방을 폭격하는 탄검강에 속수무책으로 관통당하며 쓰러져갔다.
“크워어어어!”
“크헝!”
"깨께게겡!"
주변에서 뿔자칼들의 비명소리가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어, 어찌 이런 일이....”
금오연은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탄검강의 빛줄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녀를 경악하게 만든 이 상상을 초월하는 초식의 이름은 천공섬광(天空閃光).
천여운을 마신(魔神)이라 불리게 만든 절대 초식이었다.
“아아아아.....천마이시여.”
금오연이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천여운을 향해 납작 엎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