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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조짐 (4)
고 팀장의 눈동자는 천여운을 뚫은 기세로 향하고 있었다.
삿대질까지 해가며 감정적으로 말하는 것을 보면 붙잡혀서 고문을 당했던 것에 대한 분노가 컸던 모양이었다.
그런 고 팀장을 무표정하게 쳐다보던 천여운이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딛으려 했다.
“멈춰.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꼼짝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팍
고 팀장이 다급히 왼손에 쥐고 있던 무언가를 앞으로 내밀었다.
그것은 작은 모니터가 달린 단말기였다.
“그게 어쨌다는 거지?”
용도를 알 수 없기에 의아해하는 천여운에게 고 팀장이 소리쳤다.
“들어보니 네놈이 잘나신 화경의 고수라 배짱이 넘친다지. 하지만 그 여유로움이 어디까지 갈까나.”
-달칵!
고 팀장이 단말기의 두 개뿐인 버튼 중 하나를 눌렀다.
그러자 단말기의 화면에서 주파수의 선이 그려지며 경고음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삐빅! 삐빅! 삐빅! 삐빅!
마치 탐지기라도 되는 것처럼 소리가 빠르게 흘러나왔다.
고 팀장의 입 꼬리가 올리며 말했다.
"이 소리 들리나? 네 죽음을 알리는 알람소리다."
그때 옆에 있던 과장 능도명이 손을 내밀어, 고 팀장에게 잠시 멈춰보라는 제스처와 함께 입을 열었다.
“금종서. 어째서 그런 선택을 한 것이냐?”
안타깝다는 듯이 말하는 능도명의 목소리에 백종서가 기가 차다는 듯이 말했다.
“내 어머니를 담보로 잡은 주제에 그런 말이 나오는 거냐?”
“참으로 어리석군.”
능도명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는 고 팀장이 들고 있는 단말기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게 뭐일 것 같나?”
단말기에서 나오는 거슬리는 소리에 불길함을 느낀 백종서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수작을 벌이려고 그런 말을 하는 거지?”
“수작이라. 네가 그렇게 요청했던 그 물건이다.”
“뭣?”
그 말에 백종서의 두 눈동자가 흔들렸다.
능도명의 말이 사실이라면 저 단말기는 자신의 몸속에 있는 나노 폭탄을 제어하는 기폭 장치라는 의미였다.
백종서의 흔들리는 모습에 능도명이 말을 이어갔다.
“전 MS사의 연구원을 확보했다. 어리석은 놈. 우리가 너를 쉽게 버릴 거라고 생각했나?”
‘이럴 수가.....폭탄의 해제 코드를 만들었다고?’
백종서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계속 노력하고 있다는 지령만 내려와서 자신을 쉽게 버리는 패라고만 여겼다.
하지만 저 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정말로 공안국에서는 나노 폭탄을 해제하기 위해 노력한 것이었다.
“네 어리석음을 이제야 깨달았나?”
능도명은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백종서를 흔들었다.
그는 이런 일에 능한 인물이었다.
‘미안하군. 네놈이 탈선하지만 않았다면 이런 수고로움도 없었을 거다.’
사실 이것에는 작은 함정이 있었다.
국장 상유근이 보내온 파일에는 폭탄을 해제하는 코드가 아니라 기폭 시킬 수 있는 코드만 있다.
혹시 해제할 수 있는 코드도 있냐는 질문에 국장 상유근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제 막 나노 폭탄의 주파수 코드만을 확보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백종서를 흔들기에는 충분했다.
“그 동안에 정이 있으니, 기회를 주도록 하마. 네 손으로 옆에 있는 자의 단전을 파훼하고 구속해라.”
‘!?’
능도명의 말에 백종서의 표정이 굳어졌다.
지금 그는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배신을 종용하는 것이었다.
“네놈! 지금 무슨 말을...”
“어차피 위에서 너를 폐기하려는 명령이 내려왔다. 어차피 식스 로드 토이에 네 정체를 들킨 이상 효용성이 없다. 게다가 넌 우리를 배신했지.”
“그, 그건.....”
“변명은 필요 없다. 그동안의 정을 봐서 상부의 뜻을 어기고 기회를 주는 것이다. 네 충성심이 증명된다면 폐기만은 보류해달라고 윗선에 청을 넣어보겠다.”
“기회를.....주겠다고?”
“살아서 네 모친을 뵈어야 하지 않겠나? 먼저 죽는 불효를 저지를 셈이냐?”
부드럽게 말하고 있었지만 협박이나 다름없었다.
-뿌득!
이가 갈렸다.
비열함에 백종서가 분을 이기지 못했다.
능도명은 공안국의 사람이었지만 뱀의 혀를 가진 자였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도 세 치 혀로 자신을 헤어 나올 수 없는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다.
‘네게는 선택권이 없다. 금종서. 답은 정해졌어.’
능도명의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천마님.’
백종서가 고개를 돌려 천여운을 바라보았다.
그는 천마신교의 교인에게 있어서 신(神)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블랙 스카이 컴퍼니가 와해된 이 현실 속에서 유일한 희망이 바로 그라고 생각했다.
‘이 분을 희생해서 이 한 목숨을 구제한다면 어머니를 뵐 낯이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었다.
대 천마신교의 상위 종파 순각종의 당대 종주로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부들부들!
분노로 몸을 떨던 백종서가 이내 천여운에게 전음을 보냈다.
그 목소리에는 결의가 담겨 있었다.
[천마님. 저는 아무래도 힘들 것 같습니다. 천마님의 무위라면 충분히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부디 불쌍한 저의 어머니를 구제해주십시오!]
천여운의 몸에는 나노 폭탄이 없다.
저들이 그 점을 오인하고 있기에 충분히 탈출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잠시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전음이 끝나자 백종서가 능도명에게 소리쳤다.
“약속은 지켜라.”
그 말에 능도명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약속한다. 내 명예를 걸고 네 목숨을 보장하마. 자 놈의 단전을 파훼해라.”
능도명이 그 말과 함께 고 팀장에게 눈짓을 보내자, 그가 기폭 단말기의 버튼에 손을 올리며 소리쳤다.
“조금만 움직이면 터뜨린다. 죽고 싶지 않으면 털끝 하나 움직이지 마라.”
백종서가 천여운을 향해 몸을 돌려 천천히 다가갔다.
마치 능도명의 뜻에 굴복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의 손에 공력이 집중되었다.
'지금이다!'
-스륵!
백종서의 팔 소매 안쪽에서 작은 단검이 튀어나왔다.
그 순간 백종서가 재빨리 몸을 돌리며 능도명을 향해 단검을 던졌다.
‘네놈만은 반드시 죽인다!’
공력이 실린 단검이 엄청난 속도로 능도명의 목을 향해 뻗어갔다.
바로 그때였다.
-챙!
능도명의 목을 꿰뚫기도 전에 누군가 단검을 쳐냈다.
기습 같은 일격이었는데, 그것을 발도술로 손쉽게 막아낸 자는 능도명의 옆에 서있던 곱슬머리의 사내였다.
“이놈이 감히!”
불의의 일격에 움찔했던 고 팀장이 단말기의 기폭 버튼을 누르려했다.
‘아아아.....’
마지막 한풀이에 실패한 백종서가 두 눈을 감았다.
나노 폭탄이 터졌을 때 어떻게 죽는지 보았기 때문에 전신이 두려움으로 사로잡혔다.
-팟!
그때 누군가 그의 단말기를 빼앗았다.
그는 곱슬머리의 사내였다.
고 팀장이 어이가 없어서 항의하려고 하는데, 기폭 버튼을 빼앗은 곱슬머리의 사내가 그것을 능도명에게 넘기며 말했다.
“어차피 급할 것도 없는데, 과장님. 저 자는 내게 주시죠.”
-척!
그가 도집으로 가리킨 사람은 바로 천여운이었다.
단검이 날아온 것 때문에 꽤 놀랐는지 잠시 말문이 막혀 있던 능도명이 곱슬머리의 사내를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촌구석 같은 심양시로 지원 요청을 온 후로 고수와의 실전을 맛본지 꽤 오래되었습니다. 어차피 기폭 단말기도 있고 급할 것도 없는데, 여기까지 온 인센티브 정도로 생각하시죠.”
천여운을 쳐다보는 곱슬머리의 사내의 눈빛은 호승심으로 가득했다.
처음 보았을 때부터 도를 뽑고 싶어 안달이 나있던 사내였다.
'.....어차피 이 자는 내 선에서 통제가 안 되는 자니까.'
그를 쳐다보던 능도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훗.”
-스릉!
허락이 떨어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곱슬머리의 사내가 회색 도집에서 도를 뽑았다.
단순한 철이 아닌 합금으로 만들어진 도였는데, 예기가 보통이 아니었다.
-우우웅!
곱슬머리의 사내가 공력을 일으키자, 도에서 푸른빛 도강(刀罡)이 일어났다.
선명하고 길쭉하게 치솟은 도강만 보아도 그가 화경의 고수임을 알 수 있었다.
-고오오오!
“오오오!”
“저런 도강이라니!”
공장 안을 포위하고 있는 기동 타격대원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들 역시도 무공을 익힌데다가, 심양시 같은 외곽 도시에서는 보기 드문 고수의 기세에 놀라워했다.
곱슬머리의 사내가 천여운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면서 입을 열었다.
“듣자하니 화경의 고수라지. 후후후. 이런 심양시 촌구석에서 미등록 무림인 중에서 너 같은 실력을 가진 범죄자를 만나다니. 참 행운이야. 안 그래?”
그의 목소리는 고양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천여운의 몸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초절정의 수준에 불과했다.
그 내면의 힘이 보이지 않을 정도면 적어도 자신과 동급이거나 한 수 위라고 여겼다.
“기폭 장치나 기관총들은 겁내지 마라. 나와 승부를 보는 동안에는 누구도 방해하지 않을 거다.”
-척!
어느 정도 거리가 잡히자 곱슬머리의 사내가 기수식을 취했다.
상대를 얕잡아 보는 마음은 없었다.
이 순간을 즐기고 싶을 뿐이었다.
“긴장한 것 같으니, 내가 먼저 선공을 취하도록 하지.”
-팟!
곱슬머리 사내의 신형이 흐릿해지더니, 순식간에 천여운의 앞으로 파고들었다.
푸른빛 도강이 화려한 궤적을 그리며 천여운을 난잡하게 베려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놀이는 네놈이나 해라.”
-꽉!
“우읍!”
도강이 궤적을 그리는 사이로 천여운의 손이 곱슬머리 사내의 안면을 움켜쥐었다.
'무, 무슨 힘이!'
당황한 곱슬머리의 사내가 도강의 궤적을 바꿔서 그의 손을 베려는 순간,
-콰직!
그의 머리통이 수박처럼 부서져버리고 말았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머리가 산산조각이 나버린 사내의 몸이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휘청거리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털썩!
‘!!!’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폐공장 안이 정적으로 물들었다.
비장의 무기라 할 수 있는 화경의 고수가 눈 깜빡할 사이에 비참한 최후를 맞고 말았다.
그것은 경악 그 자체였다.
"입만 나불대는 놈이군."
-투툭!
천여운이 바닥으로 손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히익!”
그 모습에 경기를 일으킨 고 팀장이 옆에 있는 능도명 과장에게 소리쳤다.
“과, 과장님! 누르십쇼! 빨리!”
넋이 나가있던 능도명이 그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화경의 고수를 이리 쉽게 제거할 수 있는 괴물이라면 아무리 기관총을 가진 전력이더라도 엄청난 희생을 낼 수도 있었다.
금종서고 뭐고 생각할 상황이 아니었다.
-꽉!
입술을 질끈 깨문 그가 백종서를 향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버튼에 손가락을 얹었다.
'아아!'
그것을 보고 있는 백종서의 두 눈동자가 절망으로 물들었다.
어떤 수를 쓰던 간에 자신은 살아남을 수 없었다.
“이런 씨발! 노, 놈이 움직이기 전에 빨리 누르라고!”
고 팀장이 절규하듯이 능도명을 재촉했다.
결국 능도명이 굳은 눈빛으로 기폭 장치의 버튼을 눌렀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팡! 팡! 팡! 팡! 팡!
여기저기서 작은 폭발음이 들려왔다.
그것은 능도명의 옆에 서있던 고 팀장에게서 들려왔다.
능도명의 두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 이게 대체 무슨?’
당연히 나노 폭탄으로 전신이 터져 죽어야 할 백종서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멀뚱히 서있었다.
영문을 알 수가 없어서 고개를 돌렸는데,
-주르륵!
고 팀장의 눈과 코, 입, 귀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눈동자에서는 희미한 연기마저 피어올랐다.
“고, 고 팀장!”
-털썩!
능도명의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부들부들 떨리던 고 팀장의 몸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런데 그것은 고 팀장만이 아니었다.
-털썩! 털썩! 털썩!
1층과 2층에 있던 기동 타격 대원들이 마구잡이로 쓰러졌다.
총 열두 명에 이르는 자들이 쓰러졌는데, 그들은 고 팀장의 팀원들로 마찬가지로 칠공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현!”
“육충!”
옆에 있던 기동 타격대원들이 놀라서 그들을 붙들었다.
그들의 코에 손을 갖다 대며 상태를 살피던 기동 타격 대원들이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헉!"
“주, 죽었어.....”
그들 모두가 숨이 끊어진 것이다.
백종서가 놀란 눈으로 고개를 돌려 천여운을 쳐다보았다.
당연히 나노 폭탄이 터져서 죽을 거라 생각했던 백종서였다.
“이, 이게 무슨...”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능도명이 충혈된 눈으로 천여운과 백종서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네놈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그런 그에게 천여운이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좋은 건 나눠 가져야지. 안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