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마신 2부 (마신강림)-24화 (24/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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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조짐 (1)

금종서의 머릿속으로 과거의 기억이 필름처럼 스쳐지나갔다.

어두운 한 밤중에 흰머리가 듬성듬성한 한 사내가 급하게 무언가 짐을 챙기고 있다.

가방에 짐을 담고 있던 그가 문을 열고 나온 자신을 발견했는지, 천천히 다가와 어린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상황이 급변했다. 나는, 아니 우리 모두는 최선을 다해 모든 것을 제 자리로 돌릴 것이다. 후우......이제 네가 가장이다. 어머니를 잘 돌봐줘라.]

말없이 울먹이는 눈으로 고개를 들어 올려 그를 바라보았다.

기억 속에서 흐릿하기 마저 한 얼굴이 그림자처럼 어둡게 나오며 그의 눈높이로 몸을 숙여 말했다.

[.....만약에 내가 돌아오지 못한다면 머릿속에 가지고 있던 모든 기억을 지우거라. 그리고 평범한 사람처럼 살아야한다.]

그 말을 듣는데 참고 있던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런 그의 머리카락을 다시 한 번 쓰다듬던 흰머리가 듬성듬성한 사내가 안타깝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네게 모든 걸 전수했어야....아니다. 차라리 잘됐구나. 종서야. 정말 위기의 상황이 아니라면 네가 배운 것을 절대로 누구에게도 드러내선 안 된다. 우리가 돌아오지 못한다면 너는 더 이상 ........가 아니야. 기억해라. 아들아.]

-팡!

쓰다듬던 손에서 작은 기의 파동이 일어났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기억이 끊어졌다.

룸미러로 비춰지고 있는 천여운을 쳐다보고 있는 금종서의 눈빛이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대체 이 자의 정체가 뭐지?’

벌써 27년이나 지난 일이었다.

우려와 달리 누구도 자신의 이 비장의 무공을 알아보는 이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모두의 머릿속에서 지워진 것처럼 말이다.

‘젠장!’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난감했다.

북경에 있을 때조차도 없었던 일이 중원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국경지대에 인접한 요녕성 심양시에서 터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도망쳐야 하나?’

라는 선택지가 있으면 좋겠지만 불가능했다.

몸속에 나노 폭탄도 있었고 저 괴물이라면 굳이 그게 아니어도 손쉽게 자신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으득!

금종서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정면으로 부딪치는 것 이외에는 특별한 방도가 없었다.

-끼이익!

금종서가 도로의 옆으로 차를 세웠다.

도로에 차들이 지나다니기는 했지만 이곳 역시도 인적이 많지 않았다.

금종서가 고개를 돌리지 않은 상태로 입을 열었다.

“......대체 누구십니까?”

어차피 자신의 무공을 알아보았다는 것은 둘 중 하나였다.

적 혹은 아군.

금종서는 상황 판단 능력이 빨랐다.

여기서 시치미를 떼 봐야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나마 유일하게 희망을 가지는 것은 아까 전에 천여운이 했던 말들 때문이었다.

‘아무리 세월이 흘렀어도 무림인들 중에서 천마신교라는 표현을 쓰는 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블랙 스카이 컴퍼니, 혹은 마교.

그렇게 불렸다.

천마신교라는 정식 명칭을 쓰는 것은 오직 당사자들인 교인들뿐이었다.

긴장한 채로 룸미러를 바라보는데 천여운이 갑자기 차문을 열더니 그에게 말했다.

“나와라.”

의아했지만 금종서는 나갈 수밖에 없었다.

회색 RV 차량을 세워놓은 우측 도로변에 서있는 천여운의 앞에 선 금종서는 위축되었는지 제대로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그런 그에게 천여운이 말했다.

“네가 배운 각법. 전부 펼쳐 봐라.”

“네?”

“두 번 말하지 않는다. 펼쳐 봐라.”

느닷없이 무공을 펼쳐 보라는 말에 금종서가 인상을 찡그렸다.

인적이 드물다고는 하지만 차들이 한두 대씩 지나다녔는데, 무공을 펼치라고 하니 난감했다.

‘대체 무슨 생각이지?’

도저히 속내를 알 수 없었다.

한참을 망설이던 그가 결국 무공을 펼쳤다.

각법(脚法)의 기수식을 취한 그의 화려한 발차기가 허공을 가르며, 초식이 발현했다.

-파파파파팍!

화려하면서 쾌속한 발차기가 연거푸 이어졌다.

남들에게 보일 수 없는 비장의 무공이었지만 수련을 게을리 한 적은 없었다.

익힌 모든 초식을 극성까지 완벽하게 익혔다고 자부했다.

그렇게 초식을 전부 마쳤을 때 천여운의 입에서 나온 말은,

“엉망이군.”

천여운은 정말로 실망한 눈빛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의 태도에 불쾌했는지 금종서가 말했다.

“대체 뭐가 엉망이라는 겁니까?”

자신의 초식을 알아볼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익히지는 못했을 텐데, 저런 말을 하는 것이 어이가 없었다.

그런 그에게 천여운이 말했다.

“초식을 어떻게 배웠는지 모르겠지만 식(式)마다 왜 이렇게 자세의 변화가 많이 달라졌지? 그리고 나머지 두 초식은 어디다 팔아먹은 거냐?”

‘엇?’

금종서의 표정이 바뀌었다.

사실 그는 워낙 어릴 적인 네다섯 살 때 이 각법을 익혀서 초식이 완전히 정확한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여기까지는 그럴 수도 있다고 여겼다.

그런데 마지막에 두 초식을 익히지 못했다는 말은 흘려들을 수가 없었다.

“그, 그걸 어떻게?”

바로 그때였다.

-스륵!

“헛!”

어느새 그의 앞으로 다가온 천여운이 그의 손목을 낚아챘다.

당황해 하기도 전에 그의 손목의 맥을 타고서 심후한 진기가 파고들었다.

-우우우우웅!

“윽!”

이 상태에서 반항하면 내상을 입게 된다.

상대보다 더 강한 내공을 지니지 않고는 가만히 있어야만 했다.

심후한 진기로 그의 체내를 훑은 천여운이 이윽고 손을 떼고서 말했다.

“어째서 순현심법을 익히지 않은 거냐? 아니 배우다 말았다고 하는 게 맞겠군.”

‘!?’

금종서는 정말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설마 심법마저 알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순현심법(順玄心法)은 자신이 익힌 각법인 순현각(順玄脚)과 쌍을 이루는 심법이었다.

“초식을 죽이는 꼴이다.”

초식의 운기 경로를 정확히 안다면 다른 심법의 내공으로도 초식을 펼칠 수 있었지만 원래의 위력은 낼 수 없었다.

애초에 초식에 맞게 내공심법을 만들기 때문이다.

금종서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대, 대체 당신 정체가 뭡니까? 어떻게 이 무공을...”

뒷말은 차마 이어지지 않았다.

종파의 정통 후계자인 자신보다도 더 정확히 알고 있는 게 당혹스러웠다.

그가 이렇게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천여운은 나노 덕분에 현존하는 마교의 무공비급을 7할 이상을 머릿속에 담고 있었다.

상위 종파의 절정의 무공들은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움직이는 무공 비급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이것도 있었지만 천여운이 그를 유달리 정확하게 파악하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있었다.

‘백기.’

그것은 자신을 보좌하는 호위전 육검단의 여섯 단주 중 한 명인 백기의 무공이기 때문이었다.

육검(六劍)의 일인인 백기는 교주 천여운의 최측근 중 한 사람이었다.

그의 진전을 잇는 자를 만났으니 몰라볼 수가 없었다.

‘백기 녀석이 이걸 보았다면 화를 냈겠군.’

냉철하고 무공에 있어서 완벽주의자인 백기의 후예가 펼치는 무공치고는 엉망이었다.

아마도 제대로 진전을 잇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배우다 말았다는 것 정도는 초식이나 내공의 살펴 본 것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대, 대체 당신은 누구입니까? 혹시 제 아버님을 알고 계신 겁니까?”

금종서의 질문에 천여운이 반대로 물었다.

“본교의 상위 종파인 순각종의 후예가 맞느냐?”

그 질문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본교라고 말한 것은 천여운 스스로가 천마신교의 사람임을 밝힌 것이었다.

그것을 알아들은 금종서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정말 본교의 선배님이 맞으십니까?”

그 목소리에는 진심으로 반가운 감정이 섞여 있었다.

처음 천마신교라는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반신반의해서 적당히 거짓말을 섞어서 정보를 교란시킨 후 원하는 것만 얻으려던 마음이 완전히 사라졌다.

“내 말에 대답이나 해라.”

천여운이 부정하지 않자, 그가 두 손을 모아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팍!

“순각종의 금종서가 본교의 선배님께 인사드립니다!”

그런데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천여운이 돌발행동을 했다.

-콱!

“컥!”

그의 목을 움켜잡은 것이다.

당혹스러워하는 그에게 천여운이 말했다.

“끝까지 나를 속일 셈이냐? 지금 네 말이 사실이라면 넌 절대로 본교의 사람이 아니다.”

-꽈악!

천여운의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가자 금종서가 두 눈이 커졌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천여운이 정말로 천마신교의 사람인지 시험했던 그였는데, 정말 맞는 듯 했다.

금종서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서, 선배님이 정말로 본교의....본교의 분이 맞는지....확인...하려고한 것입니다. 지, 진심으로 사죄...켁켁....사죄드리겠습니다.”

-팍!

그의 말이 끝나자 천여운이 목을 잡고 있던 손을 놨다.

그리 오래 잡히지 않았지만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한참을 기침을 하던 금종서가 다시 한 번 포권을 취하며 정중히 고개 숙여 인사했다.

“대 천마신교의 순각종의 백종서가 선배님께 정식으로 인사드립니다!”

그랬다.

그의 실제 성은 금(金)이 아닌 백(白)이었다.

금종서, 아니 백종서는 정말로 천여운이 천마신교의 인물이라면 자신의 성을 정확하게 알 거라고 여겼다.

만약 끝까지 알지 못한다면 적일 거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로 눈앞의 이 남자가 천마신교의 사람임을 알게 되자, 울컥하는 감정을 막을 수가 없었다.

“본교의....본교의 선배님을 뵙게 되어 진심으로 기쁩니다.”

눈시울이 붉어진 그를 보면서 천여운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천마신교의 흔적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는데, 예상지 못하게 최측근인 백기의 후예를 만나게 된 것이다.

‘백기 녀석의 후예라......재미있군.’

알 수 없는 시간의 축에 떨어진 이후로 처음으로 기분이 동했다.

물론 기분이 좋은 것만도 아니었다.

“대 천마신교의 상위 종파인 순각종의 후예가 어째서 공안국의 끄나풀이 된 거지?”

천여운은 백종서가 이 시대의 관이라 할 수 있는 공안국의 첩자의 신분이 탐탁지 않았다.

‘아아.....역시 알고 있었구나.’

그 말에 백종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최근 들어서 철통같은 감시를 받았기 때문에 의심을 당하고 있다고는 여겼지만 역시나 윤문평 이사가 눈치 챈 모양이었다.

그러지 않고는 천여운이 알 리가 없다고 여겼다.

“사정이.....사정이 있었습니다.”

“사정?”

그의 떨리는 목소리에는 분노가 섞여 있었다.

아무래도 그 사정이라는 것이 주위 신상에 문제가 있는 듯 했다.

천여운이 그것을 물어보려 하는데, 백종서가 말했다.

“선배님. 그 전에 후배가 무례를 무릅쓰고 한 가지만 여쭤 봐도 괜찮겠습니까?”

백종서는 진심으로 궁금한 것이 있었다.

자신의 종파와 무공에 대해서 이 정도로 잘 알고 있는 자라면 분명 아버지와 관련된 인물이거나 천마신교에서도 높은 직위에 있는 자라고 짐작했다.

“허(許)한다.”

천여운의 허락에 백종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감사합니다. 실은 그저 선배님이라고만 부르기도 죄송스러워서, 선배님이 누구신지 성함이나 본교, 아니 블랙 스카이 컴퍼니가 건재하던 시절의 직함을 여쭤보고 싶습니다.”

그의 정체가 궁금했다.

어렸지만 부친과 교분이 있는 몇 명의 이름을 기억했다.

부친의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기 때문에 혹시 직함이나 이름을 들으면 자신과 안면이 있는지 기억할 수 있을까 싶어서 물어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천여운의 대답은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슥!

천여운이 오른팔을 앞으로 들어올렸다.

그리고 오른 팔목에 감겨 있는 흑철로 된 보호구에 진기를 불어넣자,

-차차차차차착!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흑철이 분해가 되면서 하나의 검의 형태를 갖췄다.

영롱한 흑빛을 내뿜고 있는 절세보검의 등장에 백종서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이건.....”

천천히 검을 바라보던 백종서의 두 눈동자가 흑검의 검신의 한가운데에 적혀 있는 문구에 꽂혔다.

[天魔劍]

천마검

‘!!!’

그것을 본 순간 백종서는 엄청난 충격과 전율을 느꼈다.

그는 번개와 같은 속도로 아스팔트 바닥에 납작 엎드리며 큰 목소리로 외쳤다.

“대, 대 천마신교의 미천한 교인 백종서가 당대 천마님을 배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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