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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뜻밖의 소식 (2)
천여운의 심기가 한없이 불편했다.
덕분에 사무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극도로 눈치를 보는 상황이었다.
사장 염기섭은 좌불안석이 되어 있었다.
호정이 나노 폭탄을 기폭 시킬 수 있는 단말기를 훔쳤을 때, 그 역시도 동조해서 잘했다고 소리치며 나중에는 같이 도망치려 했던 그였다.
‘젠장. 젠장. 젠장. 젠장....’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호정을 죽였다.
그로 인해 머릿속에는 죽음에 대한 공포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식은땀으로 젖은 얼굴로 넋을 놓고 있는 모습이 안타까울 정도였다.
‘제대로 겁먹었군.’
사장 염기섭의 모습에 금종서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이제 완전히 심지가 꺾인 상태였다.
그것은 한 귀퉁이에서 무릎을 꿇고서 하얗게 질린 얼굴로 떨고 있는 부장 조유성도 매한가지였다.
‘저 자.....일부러 보여준 거다.’
금종서는 확신할 수 있었다.
애초부터 아무리 무공이 뛰어난 자라고 해도 자신들의 몸에 점혈을 하지 않은 것을 의아해했던 그였다.
나노 폭탄이 있다고 해도 세상일은 모른다.
변수라는 것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나노 폭탄의 기폭장치를 호정이 손에 넣은 것도 기회를 잘 포착한 것도 아니고 그냥 준 거야.’
저 정도 괴물 같은 자가 쉽게 빼앗길 리가 없었다.
생각해보면 품속에 넣어도 되었을 물건을 쇼파에 보이게 놔둔 게 이상했다.
덕분에 모두가 알게 되었다.
단말기 따위가 없어도 나노 폭탄을 터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대체 무슨 수로 그런 거지?’
무슨 마술을 부렸는지 모르겠지만 저자는 단말기가 없이도 나노 폭탄을 터뜨릴 수 있다.
그 현실은 지금까지보다도 최악이 되어버렸다.
회사의 CCTV부터 시작해 보안요원, 화경의 고수인 윤문평 이사, 삼중으로 보안 장치가 되어 저걸 무슨 수로 빼돌리나 몇 날 며칠을 스트레스 받았던 그였다.
‘그 모든 걸 압도적인 힘만으로 압살시킨 괴물.’
그 괴물이 나노 폭탄의 제어권을 얻었다.
공안국조차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자의 손에 자신의 목숨이 걸린 것이다.
금종서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지금으로서 방법은 두 개인가.’
공안국의 기술 지원팀에서 나노 폭탄을 해제할 방법을 찾든가.
혹은 저 괴물 같은 자가 나노 폭탄을 해제시켜주든가 둘 중 하나였다.
전자가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지만,
‘그놈들이 정말 해제시켜 줄까?’
공안국의 입장에서는 기업에 첩자를 심었다는 여론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한다.
정식 공안국 요원도 아닌 자신을 심은 것도 그런 이유다.
여차하면 자신을 버려도 이상하지 않았다.
‘......다소 위험부담이 커도 저자와 딜을 해볼까?’
금종서가 조심스럽게 윤문평 이사의 업무 데스크에 앉아서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천여운을 쳐다보았다.
잔뜩 인상을 쓰고 있는 것이 무서웠다.
‘후아....호정 그놈처럼 험악한 면상도 아닌데 겁나 떨리네.’
천여운을 보고 있으면 뭔가 모르게 사람을 압도하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괜히 수작 부렸다가 정말 목숨이 위태로울 지도 몰랐다.
‘그냥 포기하고 공안국 놈들을 믿어야 하나.....아냐. 그놈들을 믿느니 내 목숨은 내가 구제해야 해.’
순간 약해졌던 금종서가 마음을 바로 잡았다.
어차피 상황은 진퇴양난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차라리 모험을 하는 편이 나았다.
‘그리고 저 자의 반응을 보면.....충분히 그 정보로 딜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금종서가 눈빛이 반짝이며 천여운을 쳐다보았다.
한편 천여운은 여전히 인상을 쓴 채로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모니터에는 상당히 많은 정보가 창으로 띄워져 있었다.
[심양일보. 2043.07.14
중화의 3대 기업 중 하나인 블랙 스카이 컴퍼니 무너지다.
천현성 회장이 지난 해 구속된 이후 주가 폭락이 바닥까지 치닫으며 블랙 스카이 컴퍼니의 임원진들은 주주총회를 통해 오늘 7월 14일 정오 12시를 기점으로 기업 해체를 발표했습니다.
63개의 계열사들 역시도 이미 순차적으로 해체 및 합병 수순을 밟고 있으며 중화 정부는 이번 사태가 심각한 경제적 파동을 일으킬 것으로.....]
모니터에 보이는 것은 이십육 년 전의 인터넷 신문 기사였다.
이 외에도 여러 기사들이 핫 토픽으로 보도되었다.
대부분의 기사들은 회장이 구속된 이후로 회사의 이미지 실추 및 주가가 급하락한 것으로 보도했다.
‘말이 되지 않는다.’
회장이 무기징역에 처해져 수감된 지 1년 만에 그룹이 해체되었다.
너무 빨랐다.
이 시대의 정보를 단순히 전이 받은 천여운이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았다.
‘뭔가 있어.’
이것은 단지 표면에 드러난 정보였다.
분명 이면이라 할 수 있는 무림의 세상과 관련된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확실한 예가 옆에 창에 띄어져 있는 기사였다.
[2043.07.25
국무원 무림 부서 창설.
이번 신규로 무림 부서의 창설을 발표한 당지산 총리는......
......부서가 창설된 올해의 목표로 60% 이상의 무림인이 부서에 등록을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포부를 밝혔습니다.]
블랙 스카이 컴퍼니가 해체된 지 열흘 정도 만에 본격적으로 무림인 등록이 얼마 있지 않아 실시되었다.
관과 무림의 경계선이 완전히 붕괴된 시점인 것이다.
천여운은 이것이 단순한 우연으로 벌어진 일이 아닐거라 판단했다.
‘이것만으로 부족해.’
더 많은 정보가 필요했지만 26년 전 자료라 누락된 것이 많았다.
나노의 분석에 의하면 삭제된 자료도 상당하다고 했다.
“후우.....”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윤문평 이사가 무언가 알기를 바랐지만 그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저 예전에 블레이드 식스와 경쟁하던 경쟁 그룹 정도밖에 알지 못했다.
그의 직위로 알 수 있는 정보에 한계가 있었다.
‘쓸모없는 놈.’
천여운이 그를 한심하다는 듯이 노려보았다.
그것을 느끼기라도 했는지 윤문평이 흠칫해하더니 몸을 부르르 떨었다.
천여운은 업무 데스크에 턱을 괴고서 고민에 빠졌다.
‘아무리 시간의 축이 다르다고 해도 본교가 쉽게 무너지다니. 절대 납득할 수 없다.’
2대 천마이자 교주로서 절대 인정할 수 없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천마신교라면 어떤 위협과 위기에도 굴복하지 않는다.
절대로 이렇게 쉽게 와해되었을 리가 없다고 여겼다.
‘......답은 하나군.’
천마신교가 위험에 봉착하여 자취를 감췄다면 그가 해야 할 일은 하나였다.
‘그들을 찾는다. 반드시!’
두 시간 가까이 자료를 살펴가면서 현재의 상황을 파악한 천여운이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했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치를 보고 있던 사무실 내의 사람들이 시선이 집중되었다.
천여운이 그들 중 누군가를 불렀다.
“윤문평.”
“네, 넵! 선배님.”
이사 윤문평이 얼른 답했다.
두 시간 내내 이제 어떻게 되려나 노심초사 했던 그였다.
그런 그에게 천여운이 뜻밖의 말을 했다.
“네놈이 윗선과 연결하는 직책을 가졌다고 했지?”
“그, 그렇습니다.”
“좋아. 그럼 본사 쪽에는 아무 문제없이 새로운 사람을 영입했다고 알려라.”
“네?”
“무슨 소린지 못 알아들었나?”
천여운의 한 쪽 눈썹이 치켜 올라가자, 윤문평이 고개를 황급히 흔들며 답했다.
“아, 아닙니다! 이곳에 있었던 일이 밖에 새어나가지 않도록 묻어두겠습니다!”
그의 답변에 천여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머리를 잘 굴리는 만큼 말 귀를 잘 알아들었다.
천여운은 이 사실을 은폐하여 본사인 블레이드 식스에서 모르게 할 작정이었다.
“네놈도 알아들었겠지?”
“네넵!”
방심할 틈도 없이 들어오는 통에 사장 염기섭이 화들짝 놀라서 답했다.
물론 그로서도 이 일을 조용히 묻는 편이 나았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다른 부분에서 불쾌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사장은 난데 어째서 저놈이 대표같이 구는 거지?’
윤문평만 보면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그의 기분이 어찌 되었든 천여운은 자신이 세운 계획을 진행할 생각이었다.
어차피 이왕 블레이드 식스와 접촉하게 되었으니, 그들을 이용해서 천마신교의 흔적도 찾고 그들의 심장까지 파고들 작정이었다.
‘어차피 놈들은 나의 존재를 모른다. 그렇다면 이번 참에 뿌리를 뽑아주지.’
아직은 모든 것이 불분명하다.
하지만 이들이 이 시대의 천마신교가 와해되어 자취를 감추게 만든데, 일조를 하거나 관련된 것만은 확실했다.
심증이 아니라 확신이었다.
‘저놈을 적당히 잘 키워서 써먹는다면 쓸 만하겠지.’
천여운이 윤문평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는 여러모로 이용하기에 적당한 위치에 있었다.
아주 몸에서 국물이 나오지 않을 만큼 제대로 쥐어짤 작정이었다.
천여운의 눈빛에서 뭔가를 본능적으로 읽기라도 했는지, 윤문평은 내심 불안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부스럭!
천여운이 품속에 있던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그것은 블레이드 식스의 본사에서 내려온 지령 종이었다.
[ 1) 요청에 따른 조사결과 첩보요원 가능성 80%. 팀 넘버 07 금종서 제거할 것.
2) 강력반 제 3팀장 모용이명 확보할 것.
3) 2월 23일~24일 26번 게이트 경보령 예정. 사내 기밀 자료 필히 파기할 것.
4) 상부에 올린 연 컴퍼니 총무 이사 암살 작전 보고서 검토 중. 26번 게이트 경보령 전에 결제 예정.]
블레이드 식스에서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게 하려면 이 지령이 그대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천여운이 그중에 2번에 눈길이 갔다.
아까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 모용세가의 사람이 끼어있는 것 같았다.
‘잘됐군.’
그렇지 않아도 이곳 이외에 정보가 필요하던 참이었다.
명문 정파인 모용세가의 후예라면 이들과는 다른 정보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었다.
어차피 지령에는 모용이명을 확보하라고 적혀 있었다.
‘겸사겸사 하면 되겠군.’
천여운이 가장 만만하게 여기는 위험한 남자의 이름을 불렀다.
“윤문평.”
“넵! 선배님.”
“이 시대의 복장과 인피면구가 필요하다.”
“네?”
뭔가 이상한 주문에 윤문평이 인상을 찡그렸다.
이 시대라는 말도 뭔가 이상했지만 그것은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인피면구가 대체 뭔지 알 수 없었다.
“저.....선배님 인피면구가 뭔지?”
인피면구(人皮面具).
그것은 다른 사람으로 변장하기 위해 사람가죽이나 특정 동물의 가죽으로 가공하여 만든 정교한 얼굴가면을 말한다.
무림에 있던 시절에 천여운이 유용하게 써먹은 것이었다.
공안국에 자신의 얼굴이 알려졌기 때문에 어느 정도 외형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천여운이었다.
“인피면구가 뭔지 모르나?”
그때 누군가가 끼어들었다.
“혹시 얼굴에 쓰는 인면 가죽 같은 것을 말하는 게 아닙니까?”
그는 금종서였다.
그제야 알아들었는지 윤문평이 아 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천여운이 대충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들었다.
“한번 수배해...”
“저! 이사님. 제가 알고 있는 인면 가죽 전문가가 있는데, 안내해도 되겠습니까?”
금종서가 그의 말을 끊고서 끼어들었다.
그는 이것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잘됐다. 따로 딜을 할 만한 기회를 만들려고 했는데.’
그런 금종서를 쳐다보는 윤문평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그는 금고 내에 있던 지령의 종이를 보았기 때문에 금종서가 공안국 쪽의 간자임을 알고 있었다.
윤문평이 조심스럽게 전음을 보내 경고하려했다.
[저 선배님. 저 자는....]
[알고 있다.]
[아....]
당연히 천여운도 지령 종이를 보았는데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천여운은 그것을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공안국의 끄나풀이라면 그 역시도 어느 정도 이용할 계획이었다.
[상관없다. 내가 알아서 처리하겠다. 네놈은 신경 꺼라.]
[아, 알겠습니다.]
그의 의견을 거부할 권한이 없기에 윤문평이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였다.
천여운이 금종서에게 말했다.
“안내해라.”
“넵! 당장 안내하겠습니다!”
그 말에 내심 신이 난 금종서가 얼른 밖으로 그를 안내하려 했다.
그렇지 않아도 의심받아서 팀장인 호정의 감시를 받고 있었는데, 또 누군가를 붙이기 전에 서둘러 나가야 했다.
바로 그때였다.
“잠깐!”
윤문평이 그들을 멈춰 세웠다.
‘젠장!’
사무실 바깥으로 나가려하던 금종서가 인상을 찡그린 채 멈춰 섰다.
역시 쉽게 되는 일은 없는 모양이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뭐지?”
금종서를 뒤따라 나가려던 천여운이 멈춰 서자, 윤문평이 자신의 명함 지갑에서 무언가를 꺼내서 공손히 넘겼다.
"받으십쇼."
“음?”
“제 법인 카드입니다. 옷도 맞추시고 머리도 다듬으실 텐데, 필요하실 것 같아서. 헤헤. 선배님께서 원하시는 만큼 쓰시면 됩니다.”
그 와중에 어떻게든 비위를 맞추려 하는 윤문평이었다.
‘하아......’
잔뜩 긴장했던 금종서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나 했는데 다행이었다.
부장인 조유성을 비롯해 누군가라도 감시로 붙일까 걱정했던 금종서는 최대한 빠른 발걸음으로 천여운을 빌딩 바깥으로 안내했다.
바깥으로 나가서 몇 블록 정도 떨어진 곳에 죽은 호정의 RV 차량이 주차되어 있었다.
‘내가 운전하길 잘했다.’
그렇지 않았으면 호정의 차키도 나노 폭탄에 의해 부서졌을 것이다.
비서처럼 최대한 공손하게 차문을 열어 천여운을 태운 그는 빠르게 이곳을 벗어났다.
천여운과 따로 대화를 나눌 장소가 필요했다.
-부릉!
금종서는 북부 외곽 쪽으로 빠졌다.
공안국의 감시와 식스 로드 토이의 방해를 받지 않을 만한 곳을 알고 있었다.
30분 정도 운전해서 빌딩도 없고 인적이 드문 공장 지대로 빠졌을 쯤에 뒷좌석에 앉아 있던 천여운이 입을 열었다.
“어디까지 가서 이야기를 할 참이지?”
‘!?’
룸밀러에 비친 금종서의 두 눈이 흔들렸다.
설마 천여운이 자신의 속셈을 알아차릴 줄은 몰랐던 그였다.
'.....눈치채고 있었구나.'
금종서가 주위를 살폈다.
도로 주변에는 전봇대들만 있었고 충분히 인적이 드물었다.
‘이쯤이면 되겠지.’
-끼이익!
금종서가 차를 도로의 쉼터 공간 쪽에 정차시켰다.
괜히 속내를 숨겨봐야 천여운의 심기를 건들 수도 있다고 생각한 금종서가 고개를 돌려 사실을 이야기하려 했다.
"죄송합니다. 미리 말씀드렸..."
바로 그 순간이었다.
-우우우웅!
“이런!”
차의 뒷유리 쪽으로 한 검은색 RV차량이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아무리 봐도 정차한 자신들의 차량을 그대로 박을 기세였다.
시동을 다시 걸고 액셀을 밟기에는 이미 늦었다.
금종서가 다급히 소리쳤다.
"다, 당장 내려야 합..."
“귀찮군.”
그때 천여운이 손을 뒤쪽으로 향해서 옆으로 밀어대듯이 휘저었다.
-쾅! 부우웅!
그 순간 뒷 범퍼를 박으려고 하던 검은 RV 차량이 큰 굉음소리와 함께 그대로 옆으로 뒤집혀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