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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주객전도 (1)
같은 화경의 고수라고 해도 어느 정도 내공의 차이는 있다.
초입에서 극에 이른 자가 완전히 무위에서 격이 큰 것처럼 말이다.
-부들부들!
이사 윤문평이 아무리 최대 공력을 발휘해봤지만 천여운의 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 이놈 정말로 극에 올랐단 말인가?’
그렇다면 내공으로 어찌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어느 정도 격차를 느꼈다면 굴복해야 하는 것이 이치에 맞았지만 입장의 차이라는 것이 있었다.
‘고작 이런 애송이 따위가 나보다도 고수라고?’
윤문평은 자존심이 강한 사내였다.
무림인으로서도 상위 1퍼센트에 속하면서, 사회적으로도 대기업 계열사의 이사진으로 있는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왔다.
그런데 눈앞의 이 사극에서나 볼법한 젊은 놈은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무명에다 시골 촌뜨기에 불과했다.
-으득!
분노로 이를 갈던 윤문평의 왼손에 푸른 빛이 일렁였다.
-우웅!
그것을 본 조유성의 두 눈이 커졌다.
‘강기!’
절정의 경지에 이른 무공의 고수는 기를 유형화할 수 있게 된다.
검기나 도기 같은 것이 그렇다.
그런 검기나 도기보다도 한 단계 위가 바로 강기(罡氣)였다.
강기는 기를 응축하여 그 위력을 배로 끌어올리는 기예로 화경의 고수인 윤문평은 무기가 아닌 맨손에도 이것을 일으킬 수 있었다.
‘윤 이사님께서 단단히 화가 나셨구나.’
절정의 고수인 그는 윤문평이 팔을 빼지 못한 상태로 계속 대치하고 있는 것이 내공에서 호각이라고 판단했다.
“이노오오옴!”
윤문평이 강기를 일으킨 왼손으로 천여운의 심장을 찔렀다.
자존심이 상한 그의 눈에는 인재고 뭐고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당장에라도 천여운을 쓰러뜨려야 직성이 풀렸다.
-슉!
바로 코앞인데다 강기를 일으킨 그의 좌수는 쾌속하기 그지없었다.
단숨에 그의 심장을 관통할 기세였다.
그러나,
-꽉!
‘!?’
윤문평이 두 눈이 커지다 못해서 터질 것만 같았다.
-치치치칙! 치치칙!
왼손에 서린 푸른빛 강기가 스파크가 튀기듯이 일렁거리며 형태가 변해있었다.
그 이유는 천여운의 그의 손을 잡아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가 경악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가, 강기를 맨손으로?”
조유성이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강기를 맨손으로 만지게 된다면 고열에 녹아내리듯이 살점이 소멸되고 만다.
그런데 천여운의 손은 멀쩡했다.
“어....어떻게?”
어찌나 놀랐는지 윤문평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그에게 천여운이 무표정한 얼굴로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네놈 수준으로 알 수 있는 게 아니다.”
-꾸욱!
그의 왼손과 오른손목을 잡고 있는 천여운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당황한 윤문평이 소리쳤지만,
“자, 잠깐!”
-우드드득!
“끄아아아아악!”
윤문평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의 오른 손목이 비틀린 것도 모자라 왼손가락이 전부 반대로 꺾여서 너덜거렸다.
어찌나 고통스러웠는지 빨개진 윤문평의 이마에 핏줄이 다 곤두섰다.
“끄으윽! 이 개색!”
그래도 명색이 무인은 무인이었다.
아픈 와중에도 윤문평이 욕을 내뱉으며 천여운에게 발차기를 날리려 했다.
그 순간이었다.
-부웅!
“흐헉!”
윤문평의 발차기가 빈 허공을 빗겨나가며 그의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몸을 움직이고 싶어도 밧줄로 꽁꽁 전신을 압박한 것처럼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진기가 그를 옥죄이고 있었다.
‘이, 이건 허공섭물이 아니야.’
조유성조차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쇼파에서 뒷걸음을 쳤다.
설마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그였다.
화경의 고수인 윤문평 이사를 아이 다루듯이 할 수 있는 자는 처음 보았다.
-부들부들!
윤문평의 몸이 떨렸다.
난생 처음으로 압도적인 무위에 공포심을 느꼈다.
‘이게 화경이라고? 절대 화경이 아니야!’
믿기지 않는 현실이었지만 그는 확신할 수 있었다.
어느 누가 화경의 고수를 진기만으로 압박할 수 있단 말인가.
떨리는 눈으로 천여운을 바라보았다.
‘어쩐지 이상했어.’
그는 자신이 속았다고 생각했다.
이십 대에 화경의 고수라고 했을 때부터 맞지 않다고 여겼다.
‘화, 환골탈태를 한 고수야.’
환골탈태(換骨奪胎).
일정 경지에 오른 고수는 환골탈태하여 육체를 무위에 걸맞게 재구성하게 된다.
환골탈태를 하게 되면 원래의 나이보다도 적게는 이십 년에서 많게는 삼십 여년 가까이 젊은 외모를 찾는다.
금성룡 회장조차도 겉보기에는 삼십대 중반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실제 나이는 여든을 훌쩍 넘겼지만 말이다.
‘빌어먹을! 어쩐지 이런 고수가 신분 조사에 자료가 없다고 했을 때, 이런 경우도 짐작했어야 했는데.’
환골탈태를 하게 되면 육체가 재구성한다.
재미있는 것은 육체가 재구성될 때, 지문부터 홍채까지 변하게 된다.
실제로도 예전에 이것 때문에 벌어졌던 해프닝도 있었다.
‘그런데 현경의 고수라고 해도 화경의 고수인 나를 이렇게 진기로 압박하는 게 가능한가?’
한 번도 당해본 적이 없으니 의문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이 위태로운 상황을 어떻게 반등시키는가가 문제였다.
윤문평이 그를 쳐다보며 침착하게 말했다.
“가, 강호의 선배께서 이렇게 후배를 감쪽같이 속일 수 있습니까? 존함을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여운이라는 이름이 가명이라고 확신하는 그였다.
솔직히 짐작 가는 몇 명이 있었다.
블레이드 식스와 대립하는 단체는 많지 않기 때문이었다.
“후배를 계속 이렇게 묶어두실 생각이십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윤문평은 힐끔거리며 사무실의 문 쪽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비명을 지른 것도 있고, 이 정도 상상을 초월하는 진기의 유동이라면 윗층에 있는 식스 로드 토이의 사장이나, 보안 요원들이 눈치 챘어야 정상이었다.
‘이 새끼들은 뭐한다고 아무도 안 들어오는 거야?’
그런데 전혀 들어올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짜증이 날 지경이었다.
그런 그에게 천여운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누군가 도와줄 거라는 생각은 버려라.”
“네?”
“사무실 바깥에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을 테니.”
“서, 설마....”
윤문평이 눈알을 굴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내공이 금제된 것은 아니었기에 희미하게 사무실 전체를 감싸고 있는 진기가 보였다.
‘빌어먹을!’
애초에 사무실에 들어왔을 때부터 진기로 방음처리를 한 천여운이었다.
바깥에 있는 자들은 누구도 이 방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듣거나 감지할 수 없었다.
천여운이 사무실을 둘러보며 말했다.
“CCTV 카메라도 없고 참 좋은 환경이로군.”
그 말에 윤문평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자신의 직위도 있었고 사생활을 침해당하기 싫어서 사무실에는 CCTV 카메라를 설치하지 않은 것이 비수가 돼서 날아올 줄은 몰랐다.
“그럼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해줘야 겠다.”
천여운이 천천히 그를 향해 걸어왔다.
허공에 박제된 것처럼 떠있는 윤문평으로서는 피할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한 가지 비장의 수가 있었다.
‘크으윽, 좋아.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면 직접 해결할 수밖에.’
윤문평이 가까이 다가오는 천여운에게 입술을 질끈 깨물고서 말했다.
“선배. 나는 그리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오.”
“제법 강단 있군. 이런 상황에서도 기가 죽지 않는 걸 보면 말이야.”
천여운이 내심 인정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도 제 할 말을 지껄이는 자는 오랜만에 본다.
무시하는 듯한 태도에 윤문평이 다급히 소리쳤다.
“원 타임즈!”
“1시간이 뭐 어쨌다는 거냐?”
무슨 소리냐는 식으로 반문하는 천여운의 말에 윤문평이 황당해했다.
설마 원 타임즈가 뭔지도 모를 줄은 몰랐다.
그때 쇼파의 뒤쪽에서 눈치를 보고 있던 부장 조유성이 말했다.
“제, 제약 회사 D.A.N.G에서 만든 독입니다.”
“독?”
그랬다.
정식 명칭 원 타임즈(One Time's).
제약 회사 D.A.N.G는 사천 당가가 현대에 와서 살아남은 형태였다.
원래부터도 독에 능했던 그들은 현대 제약 기술을 도입해서 다양한 형태의 독을 만들어냈고, 그 중 최고의 성과 중 하나가 바로 이 독이었다.
어지간한 내가 고수들조차 쉽게 알아차릴 수 없는 이 독은 체내에서 잠복했다가 한 시간이 되었을 때 발동한다.
‘크큭, 화경의 고수라고 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용정차에 손을 써뒀길 다행이군.’
조유성의 보고를 크게 믿지는 않았지만 조심성이 많은 그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했다.
미리 비서에게 일러둬서 용정차에 원 타임즈를 뿌려놓은 것이다.
사실 이 독은 무림 협회 내에서 제약 회사 D.A.N.G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서 전부 폐기토록 만든 것이었다.
“정말 몰라서 그러시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 독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아시죠?”
윤문평이 이렇게 득의양양해 하는 이유가 있었다.
원 타임즈의 무서움은 독에 중독되어서 한 시간 내로 사망하는 것도 있지만 다른 부분의 무서움도 있었다.
“독은 해독하실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선배님 같이 절륜한 고수분께서 내공이 소실되는 것은 원하시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것은 내공의 소실에 있었다.
보통 초절정 이상의 고수만 되어도 독이 체내로 들어오더라도 이를 감지할 수 있다.
그래서 운기조식을 통해서 스스로 해독할 수 있는데, 문제는 이 독은 해독을 하더라도 체내에 남아 내공을 3할 이상 소진시키고 만다.
‘현경의 고수라면 더욱 내공을 소중히 여기겠지.’
원타임즈는 이런 위험 때문에 한때 현대 무림에 풍파를 일으켰었다.
이 독의 치명적인 위험함을 인지한 무림 협회에서는 정식으로 소송을 걸어 제약 회사D.A.N.G이 이것을 폐기하게 하고, 다시 이 독을 제조하거나 사용한 흔적이 발견될 경우에 무림인으로서 당가를 멸문시킬 거라고 엄포를 놓았다.
하지만 불법으로 금했다고 하더라도 폐기되려던 물량의 일부는 당연히 암암리에 뒷거래로 돌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거금을 들여서 사놓은 보람이 있구나.’
언젠가는 도움이 될 거라고 여겼는데, 그 순간이 바로 지금이었다.
윤문평이 입 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해약은 이 회사에 없습니다. 제가 전화를 걸면 십오 분 내로 가지고 올 수 있도록 해놨죠.”
“......”
“아아. 혹시 해서 드리는 말씀인데, 제 스마트폰에는 번호가 없습니다. 당연히 제 머릿속에 있지요.”
철두철미하게 손을 써놓은 그였다.
이 흉흉한 현대 사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에 자구책 정도는 준비하는 게 무림인으로서의 덕목이라 여겼다.
윤문평이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 알아들으셨다면 저를 곱게 내려두시는 게 좋을 겁니다. 다섯을 세는 동안 진기를 거두시면 다시 협상을 할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하겠습니다.”
자신의 승리라고 생각했지만 여지를 남겨놓았다.
상대는 현경의 고수였다.
괜히 심하게 자극했다가 자포자기 식으로 나오면 곤란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게는 못할 것이다.
자그마치 3할 이상의 내공이었다.
수십 년을 연마한 내공을 잃기를 원할 무림인이 누가 있겠는가.
“자. 그럼 세겠습니다.”
과연 그는 몇 초를 버틸 수 있을까?
자신보다 고수인 그가 굴복하는 모습을 생각하니 즐거워졌다.
“하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천여운이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향해 검결지를 그었다.
-촤악!
“엇?”
뭔가 날카로운 예기가 그의 오른팔을 스치고 지나갔다.
-툭!
사무실의 바닥으로 무언가 떨어졌다.
‘!!!’
조유성이 저도 모르게 창백해진 얼굴로 자신의 왼팔 기브스를 오른손으로 움켜잡았다.
-푸슉!
그의 잘린 어깨 단면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윤문평의 얼굴이 터질 것처럼 상기되더니, 이내 그의 입에서 아까 보다도 큰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끄아아아아아악!”
손가락이나 손목이 꺾이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숫자를 하나 밖에 세지 않았는데 이런 사태가 벌어질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그였다.
미친 듯이 비명을 질러대던 그가 소리를 질었다.
“끄아아악! 이...이 미친 새끼가 내공을 잃어도 좋단 말이더냐?”
“착각이 심하군.”
“뭣?”
그때 천여운의 그의 앞으로 손바닥을 위로 내밀었다.
그러자 손바닥에서 검은 수분 같은 것이 떠오르더니, 이내 둥근 물방울의 형태를 갖추었다.
“고작 이딴 걸 믿고 까불었나?”
‘서, 설마?’
윤문평의 두 눈이 떨려왔다.
아닐 거라고 생각하고 싶어도 단 한 가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천여운이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나?”
-오싹!
온몸에 있는 털이 바짝 설 만큼 오싹해졌다.
‘말도 안 돼!’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쉽게 해독시킬 수 있는 독이었다면 애초에 거금을 주고 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그럴 리가 없어! 해독제를 복용하지 않으면 절대로 완벽하게 독을 배출시킬 수 없는데.”
“믿고 싶지 않으시겠지.”
그 말과 함께 천여운이 그를 향해 손바닥을 뻗었다.
그러자 손바닥에 떠있던 검은 물방울이 둥실둥실 움직이며 그에게로 날아왔다.
“아, 안 돼! 안 돼! 안 돼에에에!”
믿지 못하겠다며 소리를 질러대던 윤문평이 고개를 비틀며 그것을 피하려 했다.
그러나 심후한 진기가 그의 목을 고정시키더니 입까지 강제로 벌리게 만들었다.
-부들부들!
“끄아아아아!”
-쏘옥! 꿀꺽!
물방울이 그의 입으로 들어가 목구멍으로 들어갔다.
식도를 타고서 내려가는 게 너무도 선명하게 느껴졌다.
“끄으으으읍!”
이게 정말 원 타임즈라면 당장 배출시켜야 했다.
온몸을 비틀면서 속을 강제로 역류시키려 했는데, 천여운이 그의 혈도를 짚었다.
-타타타타탁!
신체의 구속권이 완전히 빼앗기고 말았다.
그 와중에 지혈 점을 눌렀는지 어깨의 단면으로 흐르던 피가 멎었다.
‘이, 이 노오오옴!’
병 주고 약을 주는 셈이었다.
윤문평이 두 눈이 충혈 돼서 증오스럽다는 듯이 노려보는데, 천여운이 여유롭게 쇼파에 걸터앉더니, 입 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59분 남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