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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스카웃 제의 (3)
‘그걸 눈치 챘단 말인가?’
조유성이 내심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물론 그는 손목이 잘린 덕분에 온 신경이 그곳으로 집중되어 있었다.
그런데 앞만 보고 있었던 천여운이 추적을 눈치 챘다는 것은 정말 기감이 넓고 예민하다는 의미였다.
‘화경의 고수가 이렇게 대단했던가?’
무공을 익힌 무림인 중에서 화경의 경지에 오르는 자는 소수에 불과하다.
삼류, 이류, 일류, 절정, 초절정의 경지를 넘어서야 한다.
조유성은 어렸을 때부터 부단하게 무공을 익혔지만 이십대 중반에 절정의 경지에 오를 수 있었다.
이것도 주위 사람들은 훌륭하다고 부추겨주지만, 옆에 앉아 있는 이 사극 복장을 입은 젊은 남자를 보면 자괴감이 들 정도였다.
‘이제 갓 스무 살 밖에 안 되어 보이는데....’
얼핏 보아도 천여운은 이십대 초반 그 이상으로 보기 힘들었다.
세상은 확실히 불공평한 듯 했다.
어차피 자신의 나이는 삼십대 중반이었고, 회사의 일을 하면서 더 높은 경지에 오르기는 글렀다.
‘각자의 역할이란 게 있으니까.’
그는 더 자괴감에 빠지기 전에 생각을 정리했다.
여기서 만약 그가 천여운의 진정한 경지를 알게 된다면 까무러칠 지도 몰랐다.
‘그러나저러나 공안국에서 따라 붙었다고?’
국장이 직접 내려와서 공문 요청에 사인까지 했는데 의외의 일이었다.
아무래도 공안국 내에서 큰 사고가 터진 게 원인인 듯 했다.
‘흐음.’
조유성이 옆에서 눈을 감고 있는 천여운을 힐끔 쳐다보았다.
탈출한 파이어 헤드라는 일개 사파 조직과 그가 연관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래봐야 그들은 마약이나 유통하고 나이트와 같은 업소를 운영하면서 생계를 꾸려나가는 존재들이기 때문이었다.
‘위에서 압력을 넣었는데 무시하겠다는 건가.’
아무래도 자신이 공안국의 국장을 너무 가볍게 여긴 모양이었다.
공안국은 국무원 소속의 공기관이었다.
그곳에서 이런 식으로 계속 파고 들어오는 것은 피곤한 일이었다.
‘어찌 되었든 더 날파리가 꼬이기 전에 끊어놔야 겠군.’
조유성이 여러 가지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천여운은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겉보기에는 그저 명상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의 눈꺼풀은 희미하게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정리된 자료에 대한 뇌 전이가 100% 완료되었습니다.]
나노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공안국 바깥으로 나오면서 무선 인터넷을 원활하게 연결할 수 있었다.
천여운은 공안국 바깥으로 나온 순간부터 나노에게 현 시대에 대한 지식을 정리하게 했다.
일부를 받기는 했지만 기본적인 지식에 불과했었다.
그렇게 나노는 기본적으로 내장되어 있던 미래의 지식과 현 시대의 지식을 구분하는 작업을 마쳐서 천여운의 뇌로 전이시켰다.
‘두통이 나네.’
[한꺼번에 많은 양의 지식이 전이 되어서 그렇습니다.]
인터넷이 발달한 후로 정보화 시대라고 불리는 만큼 현 시대의 지식은 엄청났다.
그것은 무림에 있던 시절에 무공 비급을 머릿속으로 전이시키는 양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너무도 방대했다.
가벼운 후유증으로 두통이 나는 것도 당연했다.
‘머릿속이 복잡하군.’
전이를 무사히 마쳤지만 한 번에 수많은 지식이 떠오르자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자연경의 경지에 올라 사고의 폭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그조차 이럴 정도였는데, 다른 자들이었다면 쓰러졌을 지도 몰랐다.
‘흠, 뭔가 굉장히 복잡한 사회 구조로군.’
뇌 속으로 지식을 전이 받은 천여운의 평은 그랬다.
이 시대는 상당히 자신이 있던 곳보다도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었다.
뭔가 제약이 더욱 많았다.
‘이 사회는 살인이나 상해에 대한 거부감이 크군.’
약육강식의 무림을 살아온 천여운으로서는 쉽게 납득가지 않았다.
이 시대는 법부터 시작해 사회적 통념, 도덕심까지 너무 따지고 들고 제약되는 것이 많은 세상이었다.
‘이런 구조 속에 관과 무림의 불가침 조약이 깨진 건가.’
전이된 지식을 보면 무림인들도 사회 구조 속에서 법과 관념에 따라 이것을 어느 정도 지키며 살아가는 듯 했다.
그 배경에는 무림인들이 정부의 산하로 들어간 게 컸다.
‘무림인 등록이라.....’
꽤나 귀찮은 시스템 구조였다.
정부의 국무원 내에 무림 부서에 모든 무림인들이 등록을 해야만 했다.
그래야만 무기를 소지할 수 있을 만큼 여러 가지 제약이 많이 걸려 있었다.
‘......가관도 아니군.’
이런 국무원 무림 부서는 무림인들의 등급마저 매겨놓았다.
예전에는 무림인들끼리 자체적으로 최고의 고수를 가리고 오대 고수라부터 시작해 구패(九霸)라는 칭호를 얻었다.
그런데 이제는 정부에서 무림인들을 등급제로 통제했다.
재미있는 것은 어느 순간부터 무림인들 역시도 이 등급제에 집착하는 양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지나치게 간섭받고 있군. 그것 때문인가.’
아무래도 이 근본적인 원인에는 퍼스트 디멘션 게이트(First Dimension Gate)라는 것이 있었다.
28년 전에 갑작스럽게 일어난 원인 모를 천재지변이었다.
갑작스럽게 열린 게이트로 정체 모를 위험 개체들이 튀어나오면서 인류가 위협에 처해졌다.
그때 무림인들이 양지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 시기 전만 하더라도 여전히 현 사회의 이면 속에 있던 무림은 이를 계기로 모습을 드러내고 현재는 만인이 알게 된 것이다.
‘언론, 카메라가 달린 폰, 인터넷.....이런 게 문제로군.’
사람들의 앞에 노출된 순간부터 더 이상 무림이란 존재는 더 이상 전설로 남을 수 없게 되었다.
게다가 퍼스트 디멘션 게이트를 시작으로 우후죽순 생겨난 게이트들로 현 시국에서 무림인들이 자취를 감추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참을 머릿속을 정리하던 천여운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나노. 네가 보낸 국무원이나 무림부서, 그리고 이 무림 협회의 자료는 이게 고작이야?’
[그렇습니다. 말씀하신 무림 협회를 비롯해 공기관, 특정 단체들의 경우 독자적인 시스템 체계로 데이터를 운영하고 있어서 공개된 자료 이외에는 무선 인터넷으로 모을 수 있는 자료에 한계가 있습니다.]
천여운이 인상을 찡그렸다.
정작 알고 싶은 자료들의 상당수는 누락된 상황이었다.
무림 협회도 무림인 등록을 해서 등급제로 정보가 공개되도록 해놓아서 실질적으로 일반인들이 알 수 있는 정보는 무림인들의 협회다 정도에 불과했다.
‘디멘션 게이트라는 것도 마찬가지군.’
이 역시도 국무원에서 민간인들이 정보를 열람할 수 없게 통제되고 있었다.
어떤 면에서는 무림 협회보다도 더욱 철저하게 통제했는데, 인터넷에 조금이라도 연관 자료가 올라오면 즉각 삭제 조치가 될 정도였다.
‘귀찮게 만드는군.’
결국 직접 움직여서 알아내는 수밖에 없다는 의미였다.
제일 간단한 것은 알아내려고 하는 곳에 직접 잠입하는 방법이었다.
아무리 독자적인 시스템 체계로 운영한다고 해도 그쪽의 메인컴퓨터로 나노가 직접 접속하게 된다면 자료는 얼마든지 빼낼 수 있었다.
‘하지만 막연하다. 좀 더 직접적인 단서가 필요해.’
그래야 어떻게 접근할 지를 정할 수 있다.
나노가 알고 있던 시간의 축과 다르다고 해도 어느 정도 공통점도 있었다.
그렇다는 것은 많은 부분이 변했을 리는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아까 전에 병원에서 느꼈던 그 기운.’
천여운은 조유성이 진료를 받는 동안 어떠한 기운들을 감지했다.
그것은 매우 익숙한 운기법에 의한 내공의 기운들이었다.
‘누구에게서 느꼈었더라.'
자연경에 경지에 오르면서 모든 기운의 특색을 구분할 수 있는 천여운이었다.
잠시 머릿속으로 흡사한 기운들을 떠올리던 천여운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번뜩 스치고 지나갔다.
‘.....하북팽가, 모용세가!’
자신이 착각한 것이 아니라면 분명 그것은 하북 팽가와 모용세가의 운기법에 의해서 생겨나는 기운들이었다.
순간 천여운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즉에 차에 내려서 병원 안에 있는 그들과 접촉하는 편이 나았다.
지금은 너무 멀어져서 기운을 감지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단서가 잡혔다. 오대 세가인 그들의 후예가 현 시대에 있다는 것은 본교 역시도 존재할 게 틀림없다.’
천여운이 가장 알아내고 싶어 하는 정보는 바로 천마신교의 흔적이었다.
낯선 곳에 떨어진 데가 원래의 시대로 돌아가기 위해서 혼자서 고군분투하는 것보다 친정이라 할 수 있는 천마신교의 힘이 필요했다.
‘스카이 코퍼레이션이라고 했던가?’
나노가 만들어지고, 후손 천무성이 왔던 미래에는 스카이 코퍼레이션이라는 대기업의 형태로 천마신교가 존재한다고 했다.
‘아! 그래. 나노. 무선 인터넷에 접속해서 스카이 코퍼레이션을 찾아봐.’
[알겠습니다.]
천여운의 명령에 나노가 즉각 검색에 들어갔다.
검색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총 7개의 그룹이 검색되었습니다.]
‘7개?’
하나도 아니고 일곱 개나 검색되었다.
의아해하는데 나노가 말했다.
[중화 정부 영토 내에 존재하는 스카이 코퍼레이션은 총 0곳입니다.]
‘뭐?’
의아해하는 천여운의 시야로 증간현실이 개안되면서 지구본 형태의 세계 지도가 펼쳐졌다.
‘아.....’
절로 탄성이 흘러나왔다.
지식을 전이 받기는 했지만 중원 영토 이외에도 이렇게 넓은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은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그때 붉은 색 점으로 지도 상에 스카이 코퍼레이션의 위치가 표기되었다.
그런데 중화 정부 영토에는 한 곳도 존재하지 않았다.
‘.....말도 안 돼.’
천여운의 눈동자가 떨려왔다.
당연히 스카이 코퍼레이션이라는 이름으로 천마신교가 존재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중화 정부 영토권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이상했다.
‘혹시 원래 중화 영토에 있던 게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거나 한 게 있어?’
[없습니다. 전부 외국계 회사들로 기업의 오너들이나 총수들도 외국인들입니다.]
지도에 붉은 점으로 표기된 곳에 총수들이 사진이 떴다.
정말로 중원인들이 아닌 외국인들이었다.
천여운은 순간 답답해져왔다.
‘어째서지?’
이 시대에서 오대세가인 하북팽가와 모용세가의 흔적을 발견했다.
그런데 정작 천마신교를 발견할 수 없다는 게 말이 되지 않았다.
자신이 집권했던 천마신교는 오대세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중원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힘을 지녔었다.
‘설마 이 시간의 축에는 본교가 망하기라도 했단 말인가.’
현재로서는 그럴 가능성도 전무하진 않았다.
만약에 그런 것이라면 천마신교의 교주인 천여운에게 있어서 충격적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잠시 할 말을 잃고 있던 천여운이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기업의 이름이 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
시간의 축이 다르다.
실제로 후손이 말했던 것보다도 현 시대 무림인들의 수준이 낮지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이 시대에서 천마신교의 기업명이 스카이 코퍼레이션일 거라는 보장도 없었다.
일단 자신의 가설이 맞다면 이 방법으로 검색하는 것이 통할지도 몰랐다.
‘나노. 모용이라는 성을 가진 자가 기업의 총수나 오너로 있는 곳을 검색해봐.’
[알겠습니다.]
곧바로 검색 결과가 나왔다.
[모용이라는 성을 가진 자가 총수인 기업이 총 1곳이 검색되었습니다.
계열사가 총 13개인 연(燕) 컴퍼니(Company)입니다.]
‘아!’
예상대로였다.
이 방식으로 한다면 천마신교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 지도 몰랐다.
‘나노. 천(天)이라는 성을 가진 사람이 총수인 곳을 찾아봐줘.’
[알겠습니다.]
검색 결과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천(天)이라는 성을 가진 사람이 총수인 기업은 총 108개가 검색되었습니다.]
‘뭣?’
순간 천여운의 말문이 막혔다.
모용 성으로 검색했을 때 단번에 한 곳이 나왔는데, 정작 자신의 성인 천을 검색하니 이렇게 많은 기업이 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이건 대체.....하....’
많아도 너무 많았다.
잠시 놀라기는 했지만 천여운은 금방 평정심을 되찾았다.
예상보다 기업수가 많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가능성을 확립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한 곳이라는 말인데.....어떻게 줄여 나가지?’
분명 이 기업들도 모든 정보를 공개하진 않았을 것이다.
방금 전에 검색했던 연 컴퍼니도 천여운에게 전이된 지식을 떠올리면 무림의 세가가 아닌 자동차 생산업을 기반으로 성장한 곳이었다.
고민하고 있던 차에 운전 중이던 세단이 멈춰 섰다.
“다 왔습니다.”
조유성의 목소리에 천여운이 감았던 눈을 떴다.
검은 세단 차량이 정차한 곳은 대략 40층 정도 높이의 빌딩의 앞에서였다.
차에서 내리자 조유성이 빌딩의 입구로 안내했다.
“이곳이 저희 본사입니다.”
빌딩 안으로 들어가자 남색 빛깔에 은은한 대리석이 깔려 있는 넓은 로비가 모습을 드러냈다.
로비 안에는 5미터 정도 크기에 우람한 로봇 장난감이 멋진 포즈로 한 복판에 떡 하니 서있었다.
그 뒤쪽에 안내 데스크가 있었는데 크게 회사명이 적혀 있었다.
식스 로드 토이(Six Road toy).
로비 안을 둘러보고 있는 천여운에게 조유성이 말했다.
“식스 로드 토이. 저희 회사명입니다. 작년 9월쯤에 런칭해서 잘 모르실 수 있겠지만 보다시피 장난감 제조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장난감?”
그래서 로비의 한 가운데에 저런 로봇을 세워둔 모양이었다.
조유성이 빙그레 웃으며 로비 우측에 있는 엘리베이터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희 이사님께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쪽으로 가시죠. 아!”
엘리베이터로 안내하려던 조유성이 깜빡했다는 듯이 손바닥을 치면서 품속에서 뭔가를 뒤졌다.
“그러고 보니 제가 귀하의 성명조차 제대로 여쭙지 못했습니다. 이사님께 소개도 해드려야 하는데 말이죠.”
그 말과 함께 조유성이 품속에서 꺼낸 명함을 정중히 건넸다.
“먼저 제 소개부터 하겠습니다. 식스 로드 토이에서 부장을 맡고 있는 조유성이라고 합니다.”
붉은색과 노랑색이 섞여 있는 종이 명함.
그것의 앞면에는 식스 로드 토이라는 사명과 조유성의 직함, 그리고 내선 전화 번호, 스마트폰 번호가 적혀 있었다.
“아날로그 틱 하죠? 전자 명함은 전화번호를 알려주시면 제가 보내드리겠습니다.”
시대가 흘러도 바뀌지 않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명함이었다.
지식을 전이 받았기 때문에 이것이 무슨 용도인지 아는 천여운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명함을 뒤집었는데,
‘!?’
그의 표정이 일순간 굳어졌다.
이를 본 조유성이 활짝 웃으며 자신감 있게 말했다.
“서프라이즈. 신규 회사처럼 보여서 놀라셨죠? 저희 식스 로드 토이는 이번에 신규 런칭 된 계열사이지만 본사의 지원이 빵빵해서 실적이 높습니다. 귀하께서 믿고 의탁하셔도 좋을 곳입니다.”
“.......이게 본사명이냐?”
천여운이 날카로워진 눈매로 그에게 명함을 들이 내밀었다.
명함의 뒷면에는 식스 로드 토이의 본사명이 로고와 함께 적혀 있었다.
[블레이드 식스(Blade Six)]
영어로된 기업명이었지만 잊었을 리가 없었다.
천여운이 이끄는 천마신교와 중원 무림의 패권을 다투던 극도육무문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