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마신 2부 (마신강림)-12화 (1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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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12시간 (5)

AM 04:05

CCTV실은 그야 말로 혼돈의 도가니였다.

공안 경찰이라는 직업이 때때로 위험부담이 크긴 하지만 이렇게 죽음에 대한 공포를 직접적으로 느껴본 적은 처음이었다.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가라할 때 갈걸.’

‘괜히 남겠다고 해서.’

당직 형사들을 제외하고 퇴근하라고 할 때 가지 않은 게 후회가 되었다.

패닉 상태에 빠진 그들을 일깨운 것은 청사 내에서 유일하게 무사한 제 5기동 타격 대원인 교충이었다.

“여기서 이럴게 아니라 건물 뒤쪽의 비상계단으로 탈출해야 합니다!”

“그, 그래야 겠네!”

그의 외침에 정신 차린 강력반 송위강 과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CCTV실 안에는 두 사람 이외에도 강력반 3팀의 형사 네 명과 금일 당직 형사 세 명이 있었는데, 그들은 긴장된 얼굴로 총집에서 권총을 빼들었다.

-철컥!

CCTV실 모니터 옆에 세워뒀던 기관총을 든 대원 교충이 앞장서며 말했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스르륵!

CCTV실 문 앞으로 다가간 교충이 천천히 문을 열어 허리춤에서 거울을 꺼내 복도의 양옆을 살폈다.

늦은 밤이었기 때문에 청사 5층 복도의 형광등은 전부 꺼져 있었고, 복도 발밑 쪽에 비상 통로를 가리키는 녹색 불빛만 보였다.

‘없다.’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대원 교충이 CCTV 밖으로 조심스럽게 나오며 손짓을 했다.

이에 송위강 과장을 비롯한 형사들이 천천히 뒤를 따랐다.

비상계단이 있는 위치는 엘리베이터의 좌측 복도의 첫 번째 방인 전산실에 있었다.

“쉿. 서두르겠습니다.”

-타타탁!

속삭이듯이 말한 대원 교충이 최대한 가벼운 발걸음으로 전산실 쪽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평소에는 큰 규모를 자랑하는 청사 건물이 오늘따라 원망스럽게 느껴질 만큼 복도가 참 길었다.

하지만 이윽고 전산실의 앞쪽에 도달했다.

조급한 마음이 들었는지 대원 교충이 서둘러 문을 열려고 다가갔다.

바로 그때였다.

-띵동!

엘리베이터가 멈추는 벨소리가 들렸다.

‘!!!’

전산실의 문 앞에 있던 모두가 움직이던 것을 멈추고 엘리베이터 쪽을 향해 다급히 권총을 겨냥했다.

-덜컹!

문이 열리며 어두운 복도로 엘리베이터의 형광등에 비춰진 한 그림자가 보였다.

모두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그런 그들의 귓가에 엘리베이터 쪽에서 스피커로 들었던 천여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망칠 줄 알았는데 마중이라도 나왔나?”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공포가 그들을 옥죄여왔다.

*  *  *

-달칵!

CCTV실의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걸어 들어왔다.

그는 바로 천여운이었다.

CCTV실의 한 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모니터들을 본 그의 눈빛에 이채를 띠었다.

나노에게 이 시대의 지식을 일부 뇌로 전이 받기는 했지만 직접 눈으로 견식하는 것은 또 다른 느낌을 가져다주었다.

“이런 게 있다면 꽤 편리하겠군.”

그가 있던 시대에서는 누군가를 감시하기 위해선 인력을 동원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CCTV나 캠 카메라 영상 등은 특별한 인력 없이도 누군가를 감시하고 상황을 살피기에 매우 유용해 보였다.

천여운이 이곳으로 온 목적은 지극히 간단했다.

‘나노. 여기로 전부 녹화가 된다고 했나?’

[그렇습니다.]

그것은 녹화된 CCTV와 캠 카메라의 영상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CCTV 모니터 앞에 설치된 메인 PC의 앞으로 다가간 천여운이 그것을 향해 손을 갖다 대었다.

-츠츠츠츠!

그러자 그의 손에 나노머신의 입자가 피부로 나오며 슈트 형태의 장갑이 장착되었다.

장갑 부분의 손바닥에서 게이트리윰 금속으로 된 선이 튀어나오며 PC에 있던 USB-X 포트로 연결이 되었다.

-착!

천여운의 동공이 떨리며 그의 시야로 개인된 증강현실에 CCTV 화면들이 송출되었다.

CCTV 영상은 이곳 청사 건물뿐만이 아니라 옆에 있는 교통과 건물과 특수 전담과 건물, 공안국 부지 전체를 보여주고 있었다.

천여운의 시선이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는 CCTV 영상으로 향했다.

“이래서였나?”

청사 건물의 지하 2층에 있는 감옥과 특수 전담과 건물의 지하 일층 감옥에는 합쳐서 사십여 명 정도 되는 범죄자들이 갇혀 있었다.

그들은 총소리에 놀라서 잠이 깼는지 우왕좌왕 거리고 있었다.

‘갇혀 있어서 가만히 있던 거였군. 하긴 이곳 공안국이라는 곳이 범죄자들을 잡는 곳이라고 했었지.’

천여운의 기감은 이곳 공안국 부지 내에 있는 모든 인기척을 감지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 정도로 시끄러운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데도 유독 한 곳에서 움직이지 않는 자들 때문에 의아해했는데, 이런 이유가 있었다.

‘흠.’

원래는 CCTV 영상을 전부 지우고 나갈 생각이었다.

감옥에 갇혀 있는 범죄자들을 바라보던 천여운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AM 04:15

특수 전담과의 지하 감옥.

연달아 들리는 기관총소리에 깨어난 파이어 헤드의 조직원들은 어리둥절해하며 바깥 쪽으로 귀를 기울였다.

그들이 이렇게 귀를 기울이는 이유가 있었다.

“형님. 아무래도 실패한 모양입니다.”

“젠장!”

한 조직원의 말에 감옥 벽에 기대고 앉아 있는 얼굴이 피멍투성이인 대머리의 사내가 짜증을 내뱉었다.

그는 파이어 헤드의 중간 보스인 손맹달이었다.

“.....보스께서 실패하신 건가. 이 빌어먹을 곳에서 나가는가 싶었더니”

공교롭게도 그들은 상당한 오해를 하고 있었다.

총소리가 났던 것이 자신들을 구출하러 온 파이어 헤드 조직원들일지도 모른다고 착각한 것이다.

손맹달은 조직에서 마약 유통 및 자금 관리를 맡고 있다.

조직 운영 자금의 절반 이상은 그의 손에 달려있기 때문에 파이어 헤드로서는 절대로 빼앗길 수 없는 요인이었다.

그 때문에 실제로 파이어 헤드는 그를 구출하기 위해서 무리해서라도 공안국 기동 타격대의 호송 버스를 습격하기도 했다.

“조금만 기다려보십시오. 형님. 보스께서는 한다면 하시는 분이지 않습니까?”

“두 번이나 실패했는데 뭘 어떻게 해! 새끼야.”

평소의 그였다면 홧김에 조직원을 두드려 팼겠지만 양팔과 다리에 특수 수갑이 채워져 있어서 욕을 내뱉는 걸로 그쳤다.

"제,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의기소침해진 조직원이 무안해하며 입을 다물었다.

바로 그때였다.

-삐삑! 덜컹!

“엇?”

닫혀 있던 감옥의 문들이 일제히 열렸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포기에 가까운 얼굴을 하고 있던 파이어 헤드의 조직원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와아아아아아!!!"

한참을 좋아하던 그들은 서둘러 감옥에서 빠져나왔다.

일층에 있는 특수 전담과 사무실을 뒤져서 수갑의 잠금 해제 코드를 찾아서, 자유의 몸이 된 그들이 건물 밖으로 뛰어나왔다.

새벽 네 시 반이었지만 아직도 바깥은 깜깜하기만 했다.

공안국 부지 전체가 조용했다.

“왜 이렇게 조용하지?”

조직원들이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뭔가 총소리 같은 게 들렸다면 전쟁을 치른 흔적이 있어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부지는 고요하기만 했다.

“이상한데.”

내공을 금제하는 수갑에 풀려난 손맹달은 기감을 집중해보았지만 인기척 하나 느낄 수가 없었다.

그런 그에게 조직원 중의 한 사람이 말했다.

“아무래도 보스께서 전문 인력을 부른 것 같습니다. 크....뒤처리가 깔끔하군요.”

그 말에 일리가 있었는지 손맹달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 일처리라면 자신들이 탈출한 것도 잘 처리할 지도 몰랐다.

그때 손맹달의 귓가로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탁!

‘인기척!’

그곳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청사 입구 쪽이었다.

아무래도 누군가가 있는 듯 했다.

아군인지 적인지 구별할 수가 없지만 만약 공안국 경찰이라면 지원 병력을 부르기 전에 처리해야 했다.

“따라와라. 살아있는 놈이 있는 것 같다.”

-팟!

손맹달이 앞장서서 청사 입구 쪽으로 경공을 펼치자, 조직원들이 그 뒤를 따랐다.

무공을 익힌 자들답게 기척을 죽이는데 능숙했다.

-슥!

청사의 중앙 유리문을 밀고 들어간 손맹달은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들어가자마자 코끝을 찌르는 비린 혈향.

“이거 피 냄새 아냐?”

“뒤처리를 한 게 아니었나?”

흔적을 지운 것치고는 피 냄새가 청사 로비 전체를 뒤덮었다.

뭔가 이상했다.

불길한 느낌에 사로잡힐 때였다.

-탁!

또 다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저쪽이다.]

[넵.]

손맹달의 전음에 조직원 여섯 명이 그가 가리킨 곳으로 기척을 죽이고 다가갔다.

형광등이 전부 꺼져 있어서 어두웠지만 복도의 밑에 켜져 있는 비상구로 향하는 녹색 불빛 덕분에 길을 헤메진 않았다.

로비를 지나서 엘리베이터 쪽에 도달했을 쯤이었다.

-질척!

뭔가 발바닥에 이질감이 느껴졌다.

이상하다고 생각한 조직원 중 한 사람이 신발창에 묻은 것을 손으로 만져서 냄새를 맡아보았는데,

“피?”

그것은 핏물이었다.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바닥을 쳐다 보았는데.

“흡!”

순간 놀라서 소리칠 뻔했다.

엘리베이터 앞에는 기동 타격 대원들로 보이는 열 구의 시신들이 보였다.

총알 세례라도 받았는지 멀쩡한 게 없었다.

조직에서 뒤처리를 했다고 짐작했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뭐, 뭔가 이상해. 아무래도 건물에서 나가는 편이...]

바로 그 순간이었다.

-파파파파팡!

“커커커컥!”

갑자기 날아온 무언가가 조직원들 여섯 명의 몸을 꿰뚫었다.

숨이 끊길 것 같은 고통 속에서 조직원 중의 한 사람이 필사적으로 소리 질렀다.

“하, 함정이다! 도망.....”

‘!?’

로비 쪽에서 긴장하고서 기다리고 있던 손맹달과 조직원들은 그 외침 소리에 놀라서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몸을 돌렸다.

-팟! 타타타탁!

‘빌어먹을! 그러면 그렇지.’

일이 쉽게만 풀릴 리가 없었다.

붙잡히면 안 된다는 생각에 서둘러 청사 밖으로 빠져나온 손맹달과 조직원들은 죽을힘을 다해 경공을 펼쳤다.

청사의 입구 유리문에서 그들이 공안국 부지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쳐다보고 있는 긴 머리카락의 검은 그림자가 보였다.

그들이 점이 되어 사라지자, 검은 그림자가 사라졌다.

-띵동!

엘리베이터의 층수를 표시하는 LED가 한 층씩 올라가더니, 5층에서 멈춰 섰다.

*  *  *

AM 06:10

차량이 적은 새벽 시간.

빠르게 도로를 달리는 검은 세단이 있다.

차의 뒷좌석에 앉아서 플랙시블 스마트폰으로 전화통화를 하고 있는 깔끔한 정장을 입은 삼십대 중반의 사내가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조유성이었다.

“네. 네. 이사님. 밤늦게 무리한 부탁에도 처리해주셔 감사합니다. 그럼. 오전 10시까지 사무실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삐!

통화가 끊기자 조유성이 흡족한 표정으로 손목에 스마트폰을 감았다.

밤새 일을 처리하느라, 잠을 자지 못해서 피곤했지만 만족스러운 성과를 얻었다.

‘이제 빼내는 일만 남았구나.’

모든 준비는 마쳤다.

서류부터 신분 준비까지 완벽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12시간 안에 일을 처리했다는 것이 대단할 정도였다.

‘몇 시지?’

조유성이 차의 앞좌석 헤드에 있는 모니터를 켰다.

모니터에서 TV 화면이 송출 되면서 우측 상단에 지금 시간이 보였다.

AM 06:12

‘그럭저럭 시간을 맞췄구나.’

그가 천여운에게 제안했을 때 시간은 여섯시 경이었다.

공안국 부지로 도착하면 대략 여섯 시 반에서 사십 분 정도가 될 것 같다.

그 정도는 이해해줄 거라 여겼다.

-속보입니다.

그때 TV 화면에서 남자 앵커가 나오며 긴급 속보라는 자막이 떴다.

채널이 마침 심양시 뉴스로 맞춰져 있었다.

이 시간에는 뉴스를 할 시간이 아니었는데, 긴급 속보가 뜬 것을 보면 큰일이라도 난 모양이었다.

남자 앵커가 굳은 얼굴로 속보를 전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소식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금일 새벽 경에 마약범으로 현장 체포되었던 파이어 헤드 조직의 간부 손 모씨와 기타 조직원들이 공안국의 유치장에서 탈옥했다는 당국의 발표가 전해졌습니다.

“응?”

별 생각 없이 쳐다보던 조유성이 눈살을 찌푸렸다.

하필 이 시기에 갑자기 이런 소식이 터지는 것이 공교로웠다.

그런데,

-파이어 헤드 조직의 간부 손 모씨와 조직원들은 탈출하는 과정에 공안국의 기동 타격 대원 30여 명과 공안국 강력반 형사들을 살해하고.....

앵커의 말과 함께 TV 화면으로 공안국 CCTV 영상이 자료화면으로 송출되었다.

청사 건물 바깥에서 파이어 헤드 조직원들이 들어가는 장면이었다.

그것과 함께 청사 건물의 유리창으로 총기가 난사되는 불빛으로 보이는 것이 이어져서 나왔다.

"허어...."

CCTV 화면은 그것이 다였다.

화면이 전환되면서 긴급 기자 회견 현장이 보였다.

단상 앞에 공안국의 국장으로 보이는 흰머리가 듬성듬성 난 중년인이 상기된 얼굴로 발표를 하고 있었다.

-손 모씨와 그 일당들은 탈옥 도중에 이러한 범행을 저지른 후, 공안국 CCTV실에 있는 저장된 데이터를 전부 파기시킨 후 탈출했습니다. 순직한 강력반 송위강 과장이 그들의 범행 현장 데이터를 복사해서 도주하던 도중 살해당했습니다. 이에 본 공안국은 이번 일을 절대로 좌시하지 않을 것이며....

“이, 이게 대체....”

뉴스를 보고 있던 조유성은 어안이 벙벙해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고작 12시간 사이에 공안국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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