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12시간 (2)
PM 11:45
“하아....하아....”
조용해진 제 4취조실에서 거친 호흡을 내뱉고 있는 자가 있다.
얼굴이 식은땀으로 젖어 있는 심양시 공안국의 부국장 호일경이었다.
의자에 앉아 있는 그의 자세가 굉장히 불편해보였다.
양팔이 축 늘어져 있는 모습이었는데, 어깨가 밑으로 내려간 것을 보면 탈골된 듯 했다.
‘끄으윽. 빌어먹을 놈. 뼈를 이따위로 탈골시키다니.’
호일경이 속으로 욕을 해댔다.
어깨뼈만 탈골된 것처럼 보였지만 팔꿈치의 뼈도 탈골되어 있었다.
살짝만 움직여도 통증이 장난이 아니었다.
‘부국장인 내가 어쩌다 이 꼴이 된 거지?’
그의 맞은 편에는 두 눈을 감은 채 의자에 앉아있는 천여운이 보였다.
명상이라도 하는지 평안한 얼굴이었다.
‘빌어먹을 새끼. 나를 인질로 잡아서 걱정이 없다는 거냐?’
그랬다.
그는 천여운의 인질이 되었다.
공안국의 부국장인 그가 공안국의 취조실에 인질로 붙잡혀서 안절부절 하지 못하는 신세가 되고만 것이다.
‘망할!’
처음부터 자신의 직위를 밝힌 것이 패착이었다.
그는 최적의 인질이었다.
천여운은 그 하나만을 인질로 두고서 더 이상 귀찮게 하지 말라는 경고와 함께 송위강 과장과 두 형사들을 관찰방에서 쫓아냈다.
특수 유리가 깨진 덕분에 취조실과 관찰방은 거의 한 공간이나 다름없었다.
‘대체 뭣들 하는 거야?’
호일경이 천장에 있는 CCTV 카메라들을 쳐다보았다.
관찰방이 제 역할을 할 수 없기에 유일하게 취조실을 볼 수 있는 곳은 CCTV실 뿐이었다.
‘뭐라도 조치를 취해야 할 거 아냐. 곧 도착한다는 새끼들이 왜 아무 깜깜무소식인 거야?’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강력반 송위강 과장의 말대로라면 분명 특수반과 제 5기동 타격대가 미션을 완수하고 복귀 중이라고 하였다.
북쪽 시 외곽 방벽 쪽이라고 해도 40분이면 도착해야 했다.
그런데 여전히 아무 소식도 없었다.
탈골된 뼈들 덕분에 너무 고통스러웠고 천여운의 눈치를 보고 있는 이 상황이 너무나도 괴로웠다.
‘으득. 풀려나기만 해봐라. 송 과장 이놈은 게이트에 가까운 변두리 파출서장으로 전출 보내 줄 테다.’
퇴근했던 자신을 불렀던 송 과장이 원망스러웠다.
계속 구출만을 기다리다가 피가 말릴 것 같은 심정에 호일경이 조심스럽게 천여운을 쳐다보았다.
밤이 늦었으니, 혹시나 저 상태로 자고 있나 싶어서였다.
천여운은 전혀 미동조차 없었다.
눈치를 슬그머니 보던 부국장 호일경이 조심스럽게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세우려 했다.
-스윽!
“한 발자국만 떼면 못 걷게 다리뼈를 부숴버린다.”
‘헉!’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아주 살짝만 일어났는데 눈도 뜨지 않고 말했다.
-스륵!
부국장 호일경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의자로 요조숙녀처럼 엉덩이를 붙였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그 정도 움직임은 기척만으로 알 수 있었다.
“처음부터 다리를 부러뜨릴 걸 그랬나.”
‘!!!’
귀찮다는 듯이 중얼거리는 천여운의 목소리에 호일경은 더 이상 몰래 탈출할 생각을 꿈도 꾸지 못하게 되었다.
부국장 호일경이 속으로 투덜거렸다.
‘저 새끼는 대체 잠도 안자고 눈만 감고 뭘 하는 거야?’
미칠 지경이었다.
천여운이 이렇게 명상을 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머릿속에 들어온 일부 정보들을 정리하고 받아들이는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신기하면서 놀라운 세상이로군.’
전력, 전기에 의존한 미래 세상은 천여운에게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문화적인 부분, 사회의 구조까지 모든 것이 그가 알고 있던 세상과는 완전히 달랐다.
‘황실이 없는 세상이라....’
천여운이 가장 충격 받은 부분이었다.
그가 있던 시대에서 황제라는 존재는 너무도 당연스러운 현실이었다.
그러나 미래인 이곳은 황제라는 존재가 없다.
몇몇 황권이 남은 외국도 존재한다고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그저 상징적인 존재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이러한 여러 변화들은 냉철한 천여운이라고 해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시대의 흐름이란 건가. 하긴.’
나노만 보더라도 엄청난 기술이 집약되었다.
천여운이 그나마 침착을 유지하는 것도 현대의 기술보다도 훨씬 우위에 있는 나노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나노 내게 전이한 정보가 기본적인 부분에 불과하다고?’
[공안국 청사 건물에 들어오면서 무선 인터넷이 차단되어서 현재로서 정리된 정보는 그것이 다입니다.]
그것은 나노가 무선 인터넷을 통해 수집 정리한 정보들이었다.
방대한 현 시대의 정보를 전부 정리하기에는 시간이 짧았기에 일부만 전할 수밖에 없었다.
기밀이 철저한 공안국은 무선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곳으로 이동하는 내내 기동 타격대 버스에서 발산하는 통신 장비 방해 전파로 정보수집 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버스에서 청사 건물로 들어가는 잠깐뿐이었으니 말이다.
천여운은 아쉬운 대로 수집된 정보들을 뇌 속으로 전이해달라고 부탁했다.
‘나노. 그런데 아까부터 한 가지 물어보고 싶었는데, 네가 만들어진 시기는 분명 지금보다 몇 백 년 뒤라고 알고 있다. 그렇다면 굳이 이곳의 정보를 수집할 필요 없이 기존에 알고 있는 정보로 넘기면 되지 않나?’
이것이 의문점이었다.
굳이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불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원래의 천여운이라면 이런 질문을 하지 않겠지만, 현 시대의 정보를 받아들이면서 컴퓨터라던가 인터넷의 정보를 알게 되면서 이런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저장된 자료와 상당 부분이 차이가 있습니다.]
‘뭐?’
[역시, 사회, 문화, 기술 모든 부분이 저장된 정보와 일부 차이가 있어서 그것을 구분하는 작업을 가졌습니다.]
나노의 그 말에 천여운이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말은 이 시대는 나노가 알고 있던 것과 다르다는 의미였다.
천여운이 눈을 감은 채로 인상을 찡그렸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그 의문에 나노는 가장 정답에 가까운 사실을 도출해냈다.
[다른 시간의 축일 확률이 높습니다.]
‘다른 시간의 축? 아....!’
그 말에 천여운은 미래의 후손이 했던 말이 떠올렸다.
후손인 천무성은 과거가 바뀌었는데도 자신의 존재가 사라지지 않은 것에 대해서 시간의 축과 연결 지어 설명했었다.
행동 결정이나 사건이 다르게 발생하면서 우주의 차원이 나뉘고 시간의 축이 달라진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이곳은 전혀 다른 세상이란 말이잖아.’
나노에게 저장되어 있는 이 시기의 정보는 실질적으로 의미가 없었다.
숫자로 치면 0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말이었다.
‘그럼 어떻게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지?’
그에게는 돌아가야 할 이유가 있었다.
자신이 이끌고 있는 마교부터 시작해 문규와 태어나지 않은 아이까지 모든 것이 과거의 시대에 있었다.
언제까지 이 시대에 미아처럼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고민에 빠지던 천여운이 나노에게 물었다.
‘나노. 혹시 그 시간 이동을 할 수 있는 기계는 언제쯤에.....음?’
나노에게 질문을 하던 천여운이 그것을 멈추고서 감고 있던 두 눈을 떴다.
그리고 천장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응? 왜 저러는 거지?’
알 수 없는 그의 태도에 눈치를 보고 있던 부국장 호일경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 * *
심양시 공안국 청사 건물의 2층.
2층에 있는 강력반 사무실은 분위기는 최악 그 자체였다.
비번인 강력반 형사들을 비롯해 제 3팀은 전부 소환되었지만 답이 도출되지 않았다.
공안국의 부국장이 인질로 붙잡혔다.
그런데 그를 구출할 마땅할 방법이 없었다.
얼굴이 타박상으로 가득한 단발의 여자 형사가 사무실로 들어오자, 강력반의 과장이 인상을 쓴 채로 물어보았다.
“CCTV실에서는 문제가 없다나?”
“전혀 미동도 없다고 합니다. 부국장님도 아직은 무사하십니다.”
CCTV실에서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고 온 여자 형사였다.
-쾅!
과장 송위강이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무사해? 그 꼴이 무사한 건가.”
그들의 눈앞에서 부국장이 능욕당하는 것을 보았다.
두 팔의 어깨와 팔꿈치 뼈가 탈골되어서 비명을 지르는 것을 말이다.
심지어 오줌마저 지렸다.
“.....그래도 더 이상의 위해를 가할 의사는 없어보였습니다.”
여자 형사가 불만이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그 태도에 과장 송위강이 차마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관찰방에 있던 사람들 중에서 유일하게 아무 대응도 하지 못한 것이 그였기 때문이었다.
괜히 다른 형사들이 알까봐 그녀를 나무라지 못했다.
“젠장! 제 5기동 타격대는 어떻게 됐어?”
과장 송위강이 신경질적으로 다른 형사에게 물었다.
무전을 담당하고 있던 형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한 시간 전쯤에 마지막 무전을 끝으로 답이 없습니다.”
“하아....”
송위강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원래라면 한참 전에 공안국에 도착했어야 할 제 5기동 타격대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들에게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복귀 중이던 호송 버스를 구속한 자들과 관계가 있어 보이는 무림인들로부터 습격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그들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굴리고 있었다.
과장 송위강은 초조하기마저 했다.
‘인사고과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설마 이런 시련이 닥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자신이 있는 앞에서 부국장이 인질로 납치되었으니, 이 사태를 빨리 수습하지 못한다면 좌천될 확률이 높았다.
“젠장. 신분조차 알 수 없는 범죄자 때문에 이게 무슨 꼴이지. 우리 심양 공안국의 수치다.”
“저.....”
화를 내고 있는 과장 송위강에 한 형사가 말을 걸었다.
송위강이 신경질적으로 답했다.
“뭐야?”
“아니면 무림 협회 심양 지부에 연락해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형사의 말에 송위강이 인상을 찡그렸다.
그 이유는 모두가 잘 알고 있었다.
국무원 무림부서라면 모를까 무림 협회는 사기관이었다.
공기관인 자신들이 일을 해결하지 못해서 그곳에 연락하는 것 자체가 체면을 구기는 짓이었다.
-으득!
송위강이 이를 갈면서 그를 다그쳤다.
“말 같은 소리를 해라. 공안에서 그곳에 도움을 요청하면...”
“아니면 과장님. 적어도 저 자의 신상 정도는 알아볼 수 있지 않을까요.”
“신상?”
“요즘 무림 협회가 가장 밀어 붙이는 게 국무원에 간섭받지 않는 자치권이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지.”
의견을 묵살하려 했던 과장 송위강이 갑자기 관심을 보였다.
마땅한 해결책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들은 무림인에게 관련된 일은 자신들 선에서 항상 해결하려 드는데, 미등록 무림인이라면 관심을 보이지 않을까요?”
“한 마디로 미끼를 투척해보란 말이냐?”
“그겁니다. 잘하면 그 자가 등록된 무림인지 아닌지도 알 수 있고, 또 그들이 관심을 보인다면...”
“우리가 협조 요청을 하지 않아도 놈들이 나설 수도 있단 말이군. 웬 일로 그런 좋은 의견을 이제야 말한 거야. 진즉에 말할 것이지.”
그런 송위강의 말에 형사가 인상을 구겼다.
칭찬이 칭찬처럼 들리지 않았다.
어찌 되었든 형사의 말이 옳다고 생각한 과장 송위강이 모니터로 심양 무림 협회 지부의 전화번호를 검색한 후에 전화기의 버튼을 눌렀다.
-띠! 띠! 띠! 띠! 띠! 띠!
번호를 누르자 연결음으로 익숙한 음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자랑스러운 무림의 후예. 무를 갈고 닦고 협행을 행하던 선조들의 영광을 이어~
소오강호의 레트로스러운 음에다가 가사를 바꾼 노래였다.
송위강이 인상을 팍 쓰며 투덜거렸다.
“쪽팔리지도 않나. 무슨 30, 40년 전도 아니고 공기관에서도 하지 않는 컬러링을 이딴 노래로.”
그의 투덜거림이 끝나기도 전에 연결음이 끊기고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무림협회 심양 지부입니다.”
“여보세요. 여기 심양 공안...”
-지금은 업무 시간이 종료되었기 때문에 고객님을 응대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본 사의 전화 상담 업무 시간은 아침 9시부터...”
“이런 씨발!”
-쾅!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송위강이 수화기를 책상에 집어던졌다.
시간은 PM 11시 55분.
당연히 정상적으로 업무를 하는 시간이 아니었다.
공안국이나 응급 공기관도 아닌 일반 사기관에서 이 시간까지 업무자가 남아있을 리도 만무했다.
하지만 지푸라기라도 잡을 생각으로 연락했던 그는 어찌나 실망이 컸던지 소리를 빽 질렀다.
“빌어먹을! 하여간 축구고 무림이고 협회라고 하는 것들 중에서 정상적으로 일처리를 하는 놈들이 없단 말이야.”
계속 투덜거리고 있는 차였다.
-끼이익!
열어둔 창문에서 타이어가 멈추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력반 3팀의 형사 중 한 사람이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확인하고는 환해진 얼굴로 다급히 말했다.
“과장님! 제 5기동 타격대가 도착했습니다!”
과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매불망하던 제 5기동 타격대, 즉 특수 능력자 전담팀이 도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