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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신원불명의 남자 (2)
불과 5분 전.
[일단은 공안국에 투항해주셨으면 합니다.]
‘?’
순간 이성에 금이 갈 뻔했다.
마도관 시절부터 교주가 되고, 마신이라는 절대적인 칭호를 가지게 될 때까지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말이 ‘투항’이었다.
설사 마음에도 없는 소리여도 말이다.
‘투항을 하라고?’
마음만 먹는다면 천여운은 저격수를 포함한 공안 기동 타격대 전부를 눈 깜빡할 사이에 없앨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단지 아직은 이 시대를 전혀 파악하지 못했기에 그 언론이라는 곳에 노출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한발자국 물러서는 것뿐이었다.
[.....그걸 도움이라고 말하나?]
[오해하지 말아주십시오. 단어 표현이 적절치 못했습니다. 정말로 투항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무슨 말이지?]
[공안은 중화 정부를 대변합니다. 정부의 입장에서는 등록하지 않고서 활동하는 무림인들을 예의 주시하죠.]
그러고 보니 자신의 손에 목이 잡혀 있는 이 자가 미등록 무림인이라는 말을 했었다.
그 말은 이 시대는 무림이 관에 속박당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아....'
문득 천여운은 미래의 후손인 천무성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천무성 역시도 미래에는 관과 무림의 불가침 조약이 없어진다고 했었다.
후손이 왔던 미래는 지금보다도 훨씬 몇 백 년 후였고, 자신이 이런 미래에 떨어질 줄은 몰랐기에 크게 의식하지 않았던 천여운이었다.
‘관에 억눌리다니. 역시 무림은 퇴보한 것인가.’
지금으로서는 그렇게 밖에 짐작이 가지 않았다.
아직까지 이 시대의 무림의 흔적은 딱 두 가지 밖에 발견하지 못했다.
물론 그것만으로 섣불리 판단하기는 금물이었다.
[위에서 지켜보니 귀하께서는 신분 등록이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맞습니까?]
이 시대의 사람이 아니니, 당연히 신분이 등록되어 있을 리가 만무했다.
천여운이 긍정을 표했다.
'역시구나!'
조유성의 손에는 간이 망원경이 들려 있었다.
그것으로 공안 기동 타격대의 부분대장인 소평이 태블릿으로 신분 조회를 하는 것을 몰래 보게 된 그였다.
‘더욱 최적의 인재다.’
신분이 조회되지 않는다면 당연히 미등록 무림인일 것이다.
저 정도 고절한 실력자라면 얼굴이나 이름이 알려졌을 터인데, 그조차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은거 계보일 지도 모른다.'
현대라고는 하나, 무림인들 중에는 간혹 은거하고서 신분을 숨긴 자들이 더러 있었다.
조유성은 천여운이 그런 존재라고 확신했다.
[투항이라기보다는 잠시 공안국에 협조하면서 기다린다고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마찰을 피하라는 건가?]
[그렇습니다. 이렇게 이목이 노출된 상황에서 계속 대립하시면 사태가 더 커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잠시만 공안국에 협조하는 척 해달라는 겁니다. 저희 쪽에서 귀하에 대한 준비를 마칠 시간이 필요합니다.]
[흠.]
그 준비라는 것은 아마도 신분 문제일 것이다.
얼마큼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당장에 천여운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무력과 은신 외에는 없었다.
[얼마나 기다리라는 거지?]
미덥지 못하다는 듯 한 눈빛을 보이는 천여운에게 조유성이 말했다.
[24시간 안에 해결하겠습니다.]
‘24시간?’
의아해하는 천여운의 머릿속으로 나노가 시간 단위를 알려주었다.
[한 시진에 두 시간입니다. 24시간은 열두 시진입니다.]
그 말에 대략적인 현 시대의 시간 단위를 알게 되었다.
천여운이 불만스럽다는 목소리로 전음을 보냈다.
[늦어.]
[넷?]
조유성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제 곧 저녁이었기 때문에 신분을 처리하는 것부터 꽤 시간이 걸릴 지도 몰랐다.
게다가 자신의 윗선에 보고를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빠듯한데.’
어느 정도 여유는 필요했다.
하지만 천여운의 목소리나 반응을 보면 탐탁해 하지 않는 것이 느껴졌다.
‘실력만큼이나 까다롭다.’
그렇다 해도 자신들의 조직이 어느 정도 능력이 된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다.
조유성이 다급히 전음을 보냈다.
[알겠습니다. 12시간 안에 해결하겠습니다. 제 명예를 걸고 약속드리겠습니다.]
24시간에서 단숨에 절반의 시간으로 줄어들었다.
이것이 최대 마지노선이었다.
이 시간도 지킬 수 있을 지는 그가 얼마나 빨리 해결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좋다.]
천여운의 입에서 허락이 떨어졌다.
혹시나 자존심을 끝까지 지키려하나 걱정했던 조유성이 내심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런 그의 귓가로 천여운의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 명예가 아니라 팔을 걸어라.]
[네?]
[조금이라도 늦는다면 네놈의 팔을 대가로 받겠다.]
살이 떨리는 경고였다.
순간 놀랐지만 그만큼 서두르라는 의미로 알아들은 조유성이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천여운을 겨우 설득한 조유성은 그에게 몇 가지 당부를 끝으로 서둘러 빌딩을 빠져나갔다.
공안에서 가동시킨 방해 전파 지역을 벗어나야 하기 때문이었다.
* * *
공안국 제 3기동 타격대 분대장 위양의 표정이 굳어졌다.
절대로 물러서지 않을 것 같던 천여운이 멈추고서 공안국의 조사에 응하겠다고 한 덕분에 한숨은 돌릴 수 있었다.
허탈한 것도 있었지만 죽다 살아난 기분이었다.
까딱하면 같이 총을 맞을 뻔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난감하군.’
처음에는 천여운이 자신과의 밀고 당기기에서 굴복했다고 판단했었다.
아무리 강하게 나와도 목숨이 걸려있으니 자신처럼 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여겼다.
그런데 이건 투항한 사람의 태도가 아니었다.
“부, 분대장?”
기동 타격 대원이 분대장인 그를 쳐다보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눈치를 보았다.
결국 그가 나섰다.
“무기를 내놓지 않겠다니 무슨 소리지?”
“들은 그대로다.”
천여운은 무기 회수에 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도에 손끝이라도 건드리면 베겠다고 엄포를 놓았던 것이다.
“.......이보게. 공안으로 가서 조사에 응하겠다고 해놓고서 무기를 내놓지 않겠다는 건 무슨 말인가?”
“무인에게 병기는 생명이다. 그 정도는 상식일 텐데?”
“상식?”
그 말에 분대장 위양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할 말을 잃었다.
도나 검을 소지할 수 있는 무림인들도 공안의 조사를 받거나, 죄를 지어서 수감된다면 무기를 회수한다.
‘미치겠군.’
복장만 옛 중원의 것만 아니라 하는 말을 들어보면 딱 무협 사극에서 볼 법 했다.
‘하아. 타임머신을 타고 혼자 현대로 떨어진 과거인도 아니고....’
놀랍게도 거의 정확했다.
하지만 이 시대에는 타임머신이 존재하지 않는다.
분대장 위양이 주위를 힐끔 쳐다보았다.
“와아아아아아!!!”
사건이 해결되었다고 생각한 시민들이 안심하고 나와서 환호성을 질러댔다.
심지어 공안을 외쳐대는 사람들도 있었다.
‘젠장.’
그런 와중에 무기도 회수하지 않고 수갑도 채워서 호송하지 않는다면, 자신들이 우스꽝스러워지는 꼴이었다.
한 마디로 체면이 서지 않는다.
그렇다고 여기서 이놈과 더 드잡이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빌어먹을. 무림인만 아니었어도....’
진즉에 삼단 곤봉으로 곤죽을 만들어서 끌고 갔을 것이다.
그때 그의 이어폰 무전기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분대장!
그는 부분대장인 소평이었다.
두 방이나 총알을 맞아서 출혈이 심한 강력반 제 3팀장 이명을 병원차에 옮긴 그였다.
그런데 멀리 떨어져 있는 그의 손에 무언가가 들려있었다.
‘아!’
분대장 위양은 단번에 그것을 알아보았다.
그런 그에게 소평이 입 꼬리가 올리며 무전을 보냈다.
-분대장. 이걸 쓰시죠.
며칠 전에 특수 능력자 전담반인 제 5기동 타격대에 빌리고 아직 반납하지 못한 물건이었다.
분대원들에게 아직도 반납 못했냐고 아까 전 기동 타격대 버스에서 호통을 쳤었는데, 이렇게 요긴하게 쓰일 줄은 몰랐다.
‘좋다. 일단은...’
분대장 위양이 천여운에게 부드럽게 타이르듯이 말했다.
“이보게. 우리도 체면이라는 것이 있네. 공안 경찰에게 위해를 가한 자네를 그냥 순순히 데려가는 건 그저 호송이나 호위가 아닌가.”
“조사에 응한다고 했지. 네놈들에게 투항한 기억은 없는데.”
위양의 얼굴이 일그러지다시피 했다.
아 다르고 어 다르지만 분명 항복이라는 말을 한 적은 없었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물리적으로 제압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에 위양은 겨우 속을 가라앉히고서 말했다.
“시민들이 눈이 있네. 우리는 중화 정부의 법을 수행하는 파수꾼이야. 제발 체면을 살려주게.”
“분명 거절했을 텐데.”
천여운은 조금의 물러섬도 없었다.
“후우, 좋네. 좋아. 그렇다면 무기 회수는 포기하겠네. 대신 호송 버스까지만 수갑을 차고 들어가 주게. 버스에 도착하면 당장 풀어주겠네. 우리 공안의 체면을 봐서 연기라도 해달라는 부탁일세.”
분대장 위양이 자존심을 버리고 달래듯이 말했다.
“제발 부탁하네.”
그런 그의 간절한 눈을 바라보던 천여운이 두 손을 내밀고 말했다.
“허튼 수작 부리지 마라.”
“다, 당연하지 않나!”
‘됐다!’
위양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고맙다는 말과 함께 부분대장 소평을 불렀다.
소평이 기다렸다는 듯이 천여운의 양손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철컥!
그런데 이 수갑은 공안 파출소의 경원들이 가지고 있던 것과는 달랐다.
좀 더 두껍고 수갑 사이에 작은 박스 형태의 기계가 있었는데, 손목에 채우자마자 소평이 기계에 있던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꽈아아악!
수갑이 천여운의 손목을 옥죄였다.
게다가 수갑의 가운데 있는 기계에서 특수한 파장이 일어났다.
[기계 장치에서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파장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머릿속을 울리는 나노의 목소리에 천여운이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수갑의 기계 부근에서 나오는 파장은 마치 무림의 산공독(散功毒)처럼 공력을 분산시키는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역시로군.’
천여운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뭔가 수작을 부린다고 예측했지만 그것을 벗어나질 못했다.
‘이상하다.’
한 가지 의아한 점이 있다면 더욱 미래의 기술을 지닌 나노가 이 수갑의 정체를 처음부터 몰랐다는 것이었다.
분대장 위양이 표정을 싹 바꾸고서 히죽거리는 얼굴로 말했다.
“수갑을 차줘서 참 고맙네. 호송 버스에 가서 즐거운 시간을 가져 보세나. 후후후.”
-철컥!
“어이. 저쪽에 있는 버스까지 걸어가라.”
부분대장 소평이 등 뒤에서 기관총의 총구를 겨냥하고 말했다.
말투가 여느 범죄자들에게 하는 태도와 다를 바 없게 돌변해 있었다.
-저벅!
천여운은 말없이 그들이 가리킨 철창이 달려 있는 기동 타격대 버스가 있는 곳을 향해 걸음을 내딛었다.
순순히 따르는 모습에 분대장 위양은 흡족해 했다.
‘역시 효과가 있구나. 후후, 앞으로 이런 상황에 대비해서 상부에 요청해 제 5기동 타격대에서 쓰는 것들을 지원받아야 겠다.’
천여운에게 채운 수갑은 무림인들을 포박하는데 쓰이는 전용이었다.
공력을 분산시켜서 무력화시키는 용도였다.
-위이잉!
“올라가라.”
버스의 문이 열리자, 부분대장 소평이 총구를 유지한 채로 들어가라고 했다.
천여운이 순순히 버스의 계단을 올라서 들어갔다.
“자. 철수한다.”
“라저.”
그 뒤를 따라서 기동 타격 대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순차적으로 버스에 탑승했다.
마지막으로 분대장인 위양이 탑승하자 버스의 문이 닫혔다.
위양이 버스의 운전석 앞에 있는 센터페시아의 버튼 하나를 눌렀다.
-달칵!
그러자 투명하던 버스 창문이 어두워지면서 안과 바깥이 서로 볼 수 없도록 차단되었다.
완전히 단절되자 위양을 비롯한 기동 타격 대원들이 기관총을 좌석 밑에 있는 개인용 버스 총기고에 고정시켰다.
그리고는 허리춤에 있는 검은 막대를 꺼내들었다.
-차르륵!
막대를 힘껏 휘두르자, 그것이 길어지며 봉의 형태가 되었다.
공안 경찰들이 타격용으로 쓰는 삼단봉이었다.
부분대장 소평이 버스에서 뭔가 코드 같은 것을 몇 개 뽑고는 말했다.
“블랙박스 전원 꺼졌습니다.”
“후우. 잘했다.”
-탁탁!
분대장 위양이 자신의 손바닥에 삼단봉을 탁탁 내려치면서, 버스의 한 가운데에 있는 천여운을 향해 천천히 위협적인 눈빛으로 걸어왔다.
위양이 입 꼬리를 올리며 천여운에게 말했다.
“어이. 아까 전처럼 기고만장하던 태도를 취해보시지. 무림인? 핫! 어린노무 새끼가 알량한 무술을 배웠다고 건방져서는. 네놈 같은 녀석들에게는 이 삼단봉이 약...”
-콰직!
‘엇!?’
위양은 하던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의 두 눈에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달칵! 쿵!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어야 할 수갑이 산산조각이 나서 버스 바닥으로 떨어졌다.
천여운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이딴 장난감을 믿고 까분 것이냐?”
차갑게 식은 천여운의 목소리에 분대장 위양은 어찌나 떨렸는지 제대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기기가 고장이 난 것인가?'
안타깝게도 수갑은 정상적으로 가동했다.
단지 천여운의 공력이 수갑이 분산시킬 수 있는 에너지를 훨씬 넘어설 뿐이었다.
물론 그게 아니어도 순수 근력만으로도 인간의 한계를 벗어났기에 어떤 식으로든 수갑을 부술 수 있었다.
'빌어먹을....'
부서진 이유야 어찌되었든 최악의 상황이었다.
수갑의 효능을 믿고서 천여운에게 몽둥이 찜질로 앙갚음을 하려들었던 위양이었다.
“그....그게.....”
“허튼 수작 부리지 말라고 분명 경고했지?”
천여운이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다섯 걸음 정도 떨어져 있던 위양의 몸이 강제로 끌려왔다.
“아, 안 돼에에에에!”
위양이 양옆에 버스 좌석을 잡고 버텨보려고 안간 힘을 썼지만 소용없었다.
무기력하게 코앞까지 끌려오자,
-탁!
천여운이 그의 두 팔목을 붙잡았다.
위양이 다급히 외쳤다.
"자, 잠깐! 공안 경찰 한테 해를 입힐 수록 위중...”
“네놈이 자초한 거다.”
-콰드드득!
섬뜩한 소리와 함께 위양의 두 팔이 기괴하게 꺾이며, 부서진 뼈들이 팔을 꿰뚫고서 여기저기 튀어나와 버렸다.
“끄아아아아아악!”
어찌나 고통스러웠는지 위양은 미친 듯이 비명을 질러댔다.
“분대장!”
“이, 이...잔인한!”
당연히 막아야 했지만 잔뜩 겁을 먹은 기동 타격 대원들을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손에 쥐고 있는 삼단봉은 있으나마나였다.
그런 그들을 아랑곳 하지 않고서 천여운이 고통스러워하는 위양에게 냉소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네놈이 원하던 즐거운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