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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증오하는 당신을 위하여 (116)화 (116/144)

나를 증오하는 당신을 위하여

116화

카를이 물었다.

“왜 일주일이야?”

“일주일이면 수뇌부와 충분히 논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거짓말이었다. 그들과 논의할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우라는 그저 잠시 쉬고 싶을 뿐이었다. 1년 가까운 시간을 핀을 찾는 데에 온 힘을 다했으니.

‘일주일. 일주일이면 충분해.’

그녀도 그 정도 욕심은 부리고 싶었다.

“그래. 그럼 땅을 돌려주는 일은 그때 진행하지.”

아우라가 고개를 끄덕이곤 그의 어깨에 양팔을 걸쳤다.

“그 약속, 꼭 지켜야 해?”

“약속할게.”

“……고마워.”

아우라가 카를에게 서서히 다가가 입술을 포갰다. 따뜻했다. 그 온기가 아우라를 안심시키는 듯했다.

카를이 입을 벌려 그녀를 맞이했다. 아우라는 보듬듯이 그의 안을 혀로 쓸었다. 그의 혀가 그 움직임을 반기듯 얽혀 왔다.

두 사람은 나른한 눈길로 서로를 마주 보았다. 카를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어렸다.

그가 한 팔로 아우라를 안더니 다른 팔로 그녀의 무릎 뒤를 감쌌다. 그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아우라를 안아 들었다.

“이러려고 온 건 아니었는데.”

변명인지 통보인지 모를 말에 아우라가 피식 웃었다. 허락의 의미로 그의 목에 팔을 감았다. 그는 그대로 침대로 가서 아우라를 눕혔다.

카를이 옅은 한숨을 쉬었다.

“피곤해?”

아우라가 물었다.

“조금.”

그는 아우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얀 이마에 입을 맞추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럼 쉬는 게 좋지 않겠어?”

아우라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그런 그녀가 얄밉다는 듯 카를의 손이 다리를 타고 올라왔다.

“쉬게 해 주고 싶었으면 입을 맞추지 말았어야지.”

그의 시선이 네글리제 아래로 드러난 그녀의 다리를 한 번 훑었다. 그러고는 그녀의 무릎에 또 입을 맞췄다.

그는 조심스레 네글리제의 리본을 풀었다. 끈과 끈이 스치는 소리에 이어 옷이 헐렁해졌다. 그는 마음만 먹으면 그것을 단번에 벗길 수 있었으나 그러지 않았다.

카를이 아우라의 입술을 머금었다. 입술을 부드럽게 빨아들이는 느낌에 아우라가 눈을 감았다. 등을 쓰다듬는 손길이 따뜻하고 상냥했다.

그가 옷 위로 그녀의 가슴을 쥐었다. 망가지기 쉬운 것을 다루듯 신중한 손길이었다.

“……아.”

가는 신음이 새어 나왔다. 카를은 그녀를 달래듯 뺨과 관자놀이에 차근차근 입을 맞췄다.

아우라는 망설이다가 그의 셔츠 단추에 손을 댔다. 카를이 멈칫하더니 아우라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상당히 중요한 광경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듯이.

아우라가 그의 단추를 하나씩 풀어 주었다. 카를이 피식 웃었다.

“내가 죽을 때가 다 됐나 보네. 네가 내 옷 벗겨 주는 일도 있고.”

“……조용히 해.”

아우라는 안 그래도 부끄러워 죽을 지경이었다. 자신의 손으로 카를을 벗기는 것도, 좋은 구경을 한다는 듯한 저 장난기 어린 표정도.

마지막 단추가 그녀의 손을 떠났다. 언제 봐도 근사한 몸이 눈앞에 펼쳐졌다.

‘조금은…… 만져도 되겠지.’

그녀의 손끝이 그의 가슴에 툭 닿았다. 단단하고 뜨거웠다.

카를이 미간을 찌푸리며 욕망을 꾹 참아 냈다. 이 자극을 못 이기고 달려들기엔 지금 이 상황은 너무나 특별했다.

그녀의 손이 서서히 아래로 내려왔다. 굴곡진 근육을 하나씩 지나고 옆구리에 닿았다. 그곳은 예전에 그녀가 찌른 자리였다.

아우라는 그를 슬쩍 올려다보았다.

“흉터가 남았네.”

그녀는 엄지로 그 자리를 스윽 만졌다. 살짝 도드라진 살갗에 마음이 안 좋았다.

“많이 아팠어?”

바보 같을 정도로 너무 늦게 물었단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카를 역시 항상 늦지 않았나. 미안하다는 말도, 괜찮냐는 말도.

아우라는 이번엔 그의 손을 펴 보았다. 그녀가 죽으려 하는 걸 막았을 때 검날을 잡았던 자리였다. 역시 옅은 흉터가 남아 있었다.

“여기도 아팠어?”

그때였다. 카를이 그녀의 양손을 그러모아 잡더니 그대로 그녀를 뒤로 넘어뜨렸다.

“!”

그는 그녀의 머리 위로 손을 올려 꽉 눌렀다. 그는 이상하게도 화가 난 듯했다. 흥분과 분노가 뒤얽힌 숨결이 그녀의 뺨에 닿았다.

“이딴 상처는 아무렇지도 않아. 너야말로 갑자기 곧 죽을 사람처럼 굴지 마.”

카를은 멈칫했다. 그리고 한풀 꺾인 목소리로 말했다.

“무서우니까.”

무섭다.

아우라는 깜짝 놀라 순간 말을 잃었다. 카를이 그런 말을 할 줄도 알다니.

“아우라.”

“……응.”

“거의 다 왔어.”

뭐가? 아우라는 속으로만 물었다.

“그러니까 죽지 마.”

“…….”

“죽지 않겠다고 약속해. 내게 미안해서라도 못 그러겠다고, 약속해.”

아우라는 그에게 이토록 절박한 요구를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고지식한 그녀는 그럴 수 없다고 말해야 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일주일. 고작 일주일이었다. 카를도 남은 일주일만큼은 행복했으면 했다.

“……그래. 약속할게.”

“못 믿겠어.”

아우라는 난감했다. 저 조급하고 불안한 마음을 어쩌나 싶었다.

이윽고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믿어 줘, 카를.”

“…….”

“내겐 너밖에 없어.”

카를은 그 말을 기억하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아우라가 북쪽 탑에 갔던 날, 카를이 끝까지 믿어 주지 않던 말이었다.

“너 정말…… 비겁하다, 아우라.”

카를이 못 당하겠다는 힘없이 웃었다. 그는 아우라의 손을 놔주곤 그녀에게 입을 맞췄다. 몸을 쓸고 내려가는 커다란 손이 치맛단 안을 파고들었다. 그는 허벅지 안쪽을 쥐었다. 손끝이 그녀의 아래에 닿았다.

“아…….”

아우라가 무의식적으로 카를을 끌어안았다. 간지러운 자극이 아래에서부터 점차 퍼지고 있었다. 가끔 그녀가 고개를 저을 때마다 카를이 입을 맞춰 왔다. 그러면 그녀는 녹아내릴 듯한 기분에 결국 자신을 맡기게 됐다.

어느 순간 카를이 그녀의 다리를 벌렸다.

“읏…….”

아래를 가르고 들어오는 이물감에 아우라가 이를 물었다. 이윽고 통증과 쾌락이 간헐적으로 그녀의 안을 두드렸다.

“아……! 아읏!”

그가 점점 강하게 움직였다. 아우라는 온갖 감각들이 전신에 퍼져 가는 것을 느꼈다. 어떻게 시간이 가는지도 모른 채 그녀는 그에게 매달려 있었다.

“아우라.”

아우라는 눈물이 고인 채 가쁜 숨만 내쉬었다. 그는 잠시 움직임을 멈추고 그 눈물을 닦아 주었다.

“너, 그 약속 안 지키면 정말…….”

카를은 그 뒤의 말을 잇지 못했다. 화가 난다는 표정으로. 아니, 안타까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볼 뿐이었다.

“하아…… 하아…….”

아우라는 여전히 힘겹게 숨을 내뱉었다. 그녀의 입꼬리가 서서히 올라갔다.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안다는 듯 그녀가 웃었다.

“하아…… 멈추지 마.”

그 말에 카를의 눈빛이 돌변했다. 그는 허리를 세워 그녀의 무릎을 잡았다.

“아!”

극심한 쾌락이 머리끝까지 올라왔다. 아우라가 몸을 비틀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카를은 그녀의 말대로 멈추지 않았다. 몇 번이나 몇 번이나 그렇게 아우라의 안에 길을 만들길 반복했다.

시트를 쥔 아우라의 손에 핏줄이 섰다.

***

아침 식사는 아우라의 방에서 이루어졌다.

두 사람은 창가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똑같은 가운을 걸치고 똑같은 음식을 먹는 풍경이 평화로웠다.

아우라는 빵을 뜯어 먹으며 물끄러미 카를을 보았다.

카를은 잉크조차 채 마르지 않았을 아침 신문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그 진지하고 정적인 모습이 싫지 않았다. 어젯밤의 그 모습과 대조되어 묘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거겠지.’

평화로운 아침, 바쁜 오후, 뜨거운 밤. 그렇게 일주일은 금방 지날 거였다.

조금은…… 아쉬울 것도 같았다.

‘좀 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은데.’

문득 좋은 생각이 들었다. 카를에게도 자신에게도 큰 의미로 남을 일.

아우라가 손끝으로 그가 보는 신문을 쓱 내렸다. 카를이 시선을 들어 그녀를 보았다.

“신문 그만 봐.”

“안 보면? 나랑 놀아 주기라도 하게?”

아침 신문을 보는 건 필수적인 일과였다. 어젯밤 일의 여파로 늦잠까지 잤으니 사실 노닥거릴 시간이 없었다.

“놀아 주기엔 너무 피곤하고. 부탁 좀 들어줘.”

“당당하게 요구하긴.”

카를이 피식 웃으며 무심코 그녀를 보았다. 가운 사이로 드러난 그녀의 목덜미가 울긋불긋했다. 가운 안쪽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고.

그는 큼, 헛기침을 하며 신문을 내려놓았다.

“그래, 말해 봐. 뭔데 그래?”

“제니아에 좀 다녀와야겠어.”

“……제니아에?”

“응. 제니아 왕가가 모시던 신전에.”

카를은 생각했다. 이건 또 무슨 심경의 변화실까.

가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수없이 많았다. 폐허가 된 그곳을 보면 속상해할 게 아닌가. 게다가 하필이면 이런 시기에.

“다음에 가. 라이언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는 조심해야 해.”

“그게 걱정되면 네가 같이 가면 되잖아.”

“뭐?”

그녀가 동행을 요구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게다가 다른 장소도 아니고 제니아 왕가의 신전에 함께 가자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네가 날 지켜 주면 되잖아.”

지켜 달라. 그 말만으로도 카를의 마음이 일렁였다.

알았다고, 어디든 같이 가자고 말하고 싶은 걸 꾹 참았다. 사안이 사안이었으므로.

또 그에겐 정말 중요하게 마음에 걸리는 게 한 가지가 더 있었다.

“……내가 거기에 가도 되겠어?”

어쨌거나 카를은 카사 황가의 사람이었다. 제니아 왕가의 입장에선 그만한 불청객이 없을 거였다.

아우라가 스푼으로 커피만 휘휘 저었다. 그녀는 그렇게 딴청을 피우면서 툭 말을 내뱉었다.

“너무해.”

“뭐가.”

“너, 결혼하고 한 번도 우리 왕가에 인사 온 적 없잖아.”

바스락.

카를이 쥐고 있던 신문이 살짝 구겨졌다.

“……내가 인사하러 갔으면 좋겠어?”

아우라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부모님이 살아 계셨다면 더 좋았을 테지만…… 아쉬운 대로 신전이라도 들렀으면 해서.”

카를의 눈이 점점 커졌다. 그 말의 의미가 자신이 생각하는 게 맞는지 머릿속에서 몇 번을 확인하는 듯했다.

탁.

그가 신문을 가볍게 내리쳤다.

“가자. 당장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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