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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증오하는 당신을 위하여 (54)화 (54/144)

나를 증오하는 당신을 위하여

54화

쾅.

문이 닫히자마자 카를이 아우라에게 입을 맞췄다. 놀란 아우라가 어떻게 할 새도 없이 입이 벌어졌다.

“읏!”

그는 정말이지 그녀를 잡아먹을 것 같았다. 그녀가 뒷걸음질을 치는 대로 따라붙어 입안을 헤집었다. 거칠게 입안을 쓸고 지나가는 그의 혀가 이윽고 아우라의 혀를 감으려 했다. 아무리 도망쳐도 기어코 따라와서는 정신없이 괴롭혔다.

아우라가 그만하라는 듯 그의 팔을 쳤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그녀의 얼굴을 더 꽉 부여잡았다. 더는 뜻대로 해 줄 수 없다는 듯이.

결국 그녀가 힘껏 그를 밀었다.

“카를!”

두 사람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어슴푸레한 새벽빛 속에서 카를의 눈이 형형했다. 저 밖에선 용케 숨겼던 증오와 욕망, 그런 것들이 여실히 느껴지는 바람에 아우라의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저 자식이랑 뭘 했어?”

“…….”

“입이라도 맞췄어?”

아우라는 그 질문이 우스웠다. 고작 그런 게 궁금했나 싶으면서도…… 왠지 모를 오기가 생겼다.

“그래……!”

대답하자마자 카를이 아우라의 목덜미를 잡고 또 입을 맞췄다. 아우라는 얼른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카를은 그녀의 아랫입술을 집요하게 씹었다. 그 자극에 아우라가 유난히 약하다는 것을 안다는 듯이.

“읏…….”

결국 벌어지는 입술 사이로 그의 혀가 들어왔다. 그는 그 어느 때보다도 깊숙이 그녀의 입안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아우라가 진이 빠질 무렵에야 그녀를 놔주었다.

아우라는 어지러워 콘솔의 귀퉁이를 붙잡으면서도 카를이 다가오려 하자 손으로 막았다. 당장에라도 그가 또 숨 막히도록 입을 맞출 것만 같았다.

“카를! 이제 충분히 했어. 그만해.”

그가 숨을 깊게 내쉬었다. 그리고 혀로 입술을 한 번 축이곤 이렇게 말했다.

“거슬려.”

“내가 애인을 둔 게 그렇게나-”

“아니. 그 자식이 거슬려.”

“……뭐?”

“그 자식의 부드러운 눈빛이나, 곱상한 얼굴이나, 상냥한 시선, 차분한 말투. 모조리 다 거슬려.”

“어째서?”

“네가 그런 걸 좋아하잖아.”

아우라를 놀리려는 기색 같은 건 없었다. 그는 진심이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네가 나 같은 놈을 싫어하니까.”

“하하…….”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자신이 카를을 너무나 좋아했던 시간이 떠올랐다. 지금도 그를 온전히 미워하진 못한다는 점도.

카를이 말했다.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 파티장에 들어서자마자 너부터 보이던데. 난 너 그렇게 웃는 거 처음 봤어.”

그녀는 카를을 뿌리치고 창가로 왔다. 테이블의 와인을 잔에 따라서 벌컥벌컥 마셨다. 카를의 혀 감촉이 와인과 함께 쓸려 내려갔다.

카를이 다가와 그녀의 앞에 섰다.

“정리해. 사람 속 그만 태우고.”

아우라는 울컥했다. 그 역시 거짓말로 아우라의 속을 태우지 않았던가.

“네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너야말로 엘리제를 후궁으로 맞느니 마니-”

“아, 그래. 엘리제.”

카를이 답답하다는 듯 머리를 쓸어 넘겼다.

“내가 참 많이 생각을 해 봤어.”

“……뭐?”

“네가 잃은 걸 엘리제가 갖고 있다고? 엘리제가 웃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고?”

아우라는 가슴이 철렁했다. 얼마 전 그녀가 내비친 자신의 열등감. 카를은 지금 그것을 되짚고 있었다.

“난 전혀 모르겠어, 아우라.”

“……!”

“설사 네가 내게 웃어 주지 않아도…… 그건 정말 비교할 거리도 안 돼.”

아우라는 문득 며칠 전 순간을 떠올렸다. 정원에서 잠든 그녀의 눈앞에 갑자기 나타난 카를. 그는 답이 없는 문제에 봉착한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

‘웃어 봐, 아우라.’

‘……어?’

‘한 번만 웃어 봐.’

카를이 말했다.

“나에게 너는 정말,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어. 무슨 말인지 알겠어?”

아우라는 카를의 시선을 피했다. 그의 말이 무겁게 그녀의 마음 안으로 가라앉았다. 이를테면 그의 진심 같은 것이.

“그러니까 날 괴롭히는 게 목적이라면…… 내가 졌어. 그러니 이제 그만해.”

“…….”

“대답해, 아우라. 아니면 그 자식이 정말 특별하기라도 해?”

카를이 그르렁거리듯 말했다.

아우라는 겨우 그와 시선을 맞췄다. 그는 할 수 있다면 당장 루안을 찾아 죽일 듯했다.

그러나 아우라는 여기서 물러날 수 없었다. 카를이 상처를 입는다고 해도, 그리고 그것이 자신에게 상처로 되돌아온다고 해도.

이미 시작된 일이었다.

아우라가 와인 잔을 내려놓았다.

탕.

소름 끼치도록 맑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래. 네 말대로 널 괴롭히고 싶었어. 네가 에밀을 내 기사로 주지 않았잖아.”

‘내가 벌인 일이라고 생각하게 해야 해. 그래야 루안이 추궁받지 않을 거야.’

“그래서 내가 에밀에게 먼저 말을 걸었고…… 친해졌어. 좋은 사람이야, 에밀은.”

카를이 눈썹을 찌푸렸다. 아우라는 자꾸만 떨리는 목소리를 겨우 가다듬고 말했다.

“따뜻하고 다정해. 곁에 두고 싶어.”

카를의 눈이 무섭도록 짙어졌다.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 아우라는 주먹을 꽉 쥐고 그 시간을 견뎠다.

“……나랑 자, 아우라.”

“뭐?”

“합궁일 당겼다는 거 거짓말 아니야. 나랑 자.”

카를이 제 연미복 셔츠 단추를 빠르게 풀었다. 그리고 이내 셔츠를 벗어 바닥에 버렸다.

“대체…… 왜?”

“내가 지금 너와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으니까.”

그의 손이 아우라의 허리를 감쌌다. 등을 타고 천천히 올라오는 뜨거운 손에 아우라가 굳어 버렸다. 툭. 그의 손톱이 드레스 단추에 닿았다.

싫다고 해야 했다. 이런 짓은 그만두라고.

하지만 아우라는 그저 그를 바라만 보았다. 마음에 가라앉은 진심. 자신이 졌음을 인정하는 낮은 태도. 몸이라도 붙잡아 보려는 절박함. 그런 것들이 결국 그녀를 약하게 만들었다.

‘거절하지 못하겠어.’

알 수 없는 연민이 그녀의 마음에서 피어올랐다. 아우라는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감쌌다. 그리고 그의 입술을 머금었다. 위로하듯 부드럽게 입술을 핥자 카를이 다시 손을 움직였다.

드레스 단추가 아래서부터 하나씩 풀려 갔다.

툭.

이윽고 마지막 단추가 풀리자 헐거운 드레스가 아래로 떨어지려 했다. 아우라가 얼른 입술을 거두고 드레스를 붙잡아 몸을 가렸다.

훤히 드러난 목덜미와 어깨, 가슴께에 카를의 시선이 스쳤다. 그는 아우라를 안아 들더니 그대로 침대에 눕혔다.

아우라는 문득 궁금해졌다.

“……어떻게 알아봤어? 무도회에서.”

카를이 비릿하게 그녀를 비웃었다.

“겨우 이딴 것 때문에 내가 널 못 알아볼까 봐?”

그는 헐렁한 드레스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허물을 벗기듯 단번에 벗겨 냈다.

“흣!”

아우라가 수치심에 얼굴을 가렸다. 카를은 그런 그녀의 손을 치워 내고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

그는 정말 그녀를 바라만 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그의 시선이 천천히 아우라의 맨몸을 훑었다. 그리고 그녀의 양쪽 쇄골에 손을 얹더니 꾹 누르듯 지분거렸다.

“지금 뭐 하는…….”

카를은 말없이 손을 점점 밑으로 내렸다. 그의 손길은 봉긋한 가슴의 굴곡을 전부 훑으며 지나갔다. 그리고 살짝 드러난 갈비뼈를 양손으로 감싸듯 쥐었다.

툭, 툭.

그의 손가락이 갈비뼈 하나씩을 꾹 누르며 내려갔다.

“아…….”

뭉근한 압박감과 집요한 손길에 아우라가 고개를 저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견디기 어려운 건 온도였다.

그의 손이 지나간 곳마다 열기가 남았다. 마치 그녀의 쇄골이, 가슴이, 갈비뼈가 거기 있다는 걸 알려 주듯이.

온몸에서 그의 손길이 느껴졌다. 이건 지나쳤다. 지나치게 많은 것들이 그녀의 전신에 남고 있었다.

“그만, 그만해……!”

아우라가 결국 그의 손을 떼어 내려 했다. 그러나 그의 손은 꿋꿋하게 그녀의 골반에 와 닿았다. 허벅지 사이로 들어간 손이 아래에 닿았다.

카를이 한 손으로 그녀의 목을 받치곤 입을 맞췄다.

“으읏……!”

아우라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몸을 하나하나 짚은 것처럼 이제는 아래의 부분 부분을 짚어 내는 것 같았다. 아우라는 몸에 불길이 확 이는 것을 느꼈다. 지금껏 카를이 만졌던 그 모든 부분에서.

내내 입을 다물고 있던 그가 속삭였다.

“유치한 질문 하나 해도 돼?”

“으응…….”

아우라가 반사적으로 소리를 냈다. 허락인지 신음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정말 그 자식과 입 맞췄어?”

“아…… 아, 니.”

아우라는 도리질을 쳤다. 전신이 화끈거리는 듯한 느낌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몸이 어떻게 돼 버리는 것 같아서 무서울 지경이었다.

카를이 조금은 화가 가신 얼굴로 그녀의 몸에서 손을 거뒀다. 그리고 시트를 부여잡은 그녀의 손을 제 목에 둘렀다.

“쉬…….”

괜찮다는 듯 카를이 아우라의 눈가를 만졌다. 그는 몸을 세우더니 그녀의 다리를 잡아 벌렸다. 아우라는 몽롱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카를이 그녀의 안을 파고들었다.

“하아…….”

아우라가 깊은숨을 내쉬었다. 익숙하다 못해 친숙한 느낌이 그녀의 전신을 휘감았다. 카를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머리가 하얗게 번져 가는 와중에 아우라는 카를과 눈을 맞췄다.

마주 보는 시선, 숨결이 섞이는 거리, 몸 안에 퍼지는 쾌락. 그 모든 것들이 뒤섞여 부정하기 어려운 달콤함을 만들어 냈다. 마음의 불편함과 몸의 황홀함이 어째서 공존할 수 있는 건지. 차라리 고통스러웠다면 기분이 더 나았을 것이다.

카를이 좀 더 강하게 그녀를 몰아붙였다.

“아아!”

아우라가 그의 팔을 꽉 잡고 몸을 비틀었다. 쉴 틈 없이 몰아붙이는 그 움직임에 생각 따윈 싹 달아났다. 카를도 어쩌면 그것을 바랐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는 그녀의 머릿속에 에밀이 있다고 여길 테니.

긴 정사 내내 그는 유난히 그녀에게 입을 맞추고, 몸을 만졌다. 입술이며 목이며 가슴이며 아래며. 그렇게라도 하나가 될 작정처럼.

몸 이곳저곳에서 터지는 자극에 아우라는 자기도 모르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카, 카를……! 카를…… 아!”

모든 일이 끝난 후 카를은 그녀를 뒤에서 꽉 껴안았다. 그는 여전히 갈증이 난다는 듯 그녀의 목덜미에 입을 맞췄다.

“하아…… 하아…….”

아우라는 몸을 가늘게 떨며 간헐적으로 숨을 뱉어 냈다. 깊은 쾌락의 여운이 몸 안에 감돌았다.

카를이 그녀의 손을 하나로 모아 그러쥐었다. 등에서 느껴지는 그의 심장 박동과 손을 감싼 체온. 그런 것들이 아우라의 떨림을 점차 가라앉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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