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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증오하는 당신을 위하여 (29)화 (29/144)

나를 증오하는 당신을 위하여

29화

“앗…….”

아우라가 눈이 동그래져선 카를을 보았다. 그는 어느새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자는 줄 알았는데.’

“그게 왜 궁금해?”

놀란 것도 잠시, 그녀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시선을 피했다.

“네 입으로 그랬잖아. 내가 거짓말도 조롱도 실컷 한다고.”

“내가 언제…….”

카를이 서서히 내려왔다. 입술이 금방이라도 맞닿을 듯했다.

“네가 착해서 좋다고 한 적 있어?”

생각지도 못한 답이었다. 또한 맞는 말이기도 했다. 그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대부분 착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나.’

이해할 수가 없었다. 카를이 한 짓과 별개로 자신은 그를 몇 번이나 속였다. 또한 앞으로도 그럴 일이 많을 거라는 걸 그도 모르진 않을 텐데.

“그럼 대체 이유가 뭔데?”

“그럴 수밖에 없잖아.”

카를이 아우라에게 살짝 입을 맞췄다가 떨어졌다.

“내가 원하는 거, 네가 다 가지고 있으면서.”

그 낮게 속삭이는 말. 그 말의 의미를 채 다 이해하기도 전에 다시 입맞춤이 시작되었다.

그는 아우라의 입술을 뭉근하게 내리누르더니 혀끝으로 핥았다. 간지러운 자극에 아우라가 움찔하자 어깨를 살살 어루만져 주었다.

미끄러지듯 들어온 혀가 아우라의 혀를 꾹 내리눌렀다. 숨이 막히는 느낌에 혀를 피하자 따라오며 입안을 부드럽게 간지럽혔다. 어느새 혀가 얽히자 서로의 입을 오가며 유영했다.

‘달콤해…….’

그런 생각이 든 순간, 아우라가 눈을 떴다.

“!”

그녀는 황급히 그를 밀어냈다. 언제부터였는지 심장이 쿵쿵대며 뛰고 있었다.

‘내가 왜…… 내가 왜 카를과 이러고 있지?’

황후로서 합궁일의 의무를 지키는 것도 아니었다. 당장 그에게 뭔가를 얻고자 이러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그와 이토록 자연스럽게 입을 맞추고, 심지어 달콤하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다니. 뭔가 단단히 잘못됐다.

카를은 조금 당황하는 듯했지만 이내 그녀의 입가를 지분대며 물었다.

“싫어?”

싫어. 그렇게 말하려 아우라가 입을 벌렸다.

“…….”

‘뭘 망설이고 있는 거지, 나는.’

아우라는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굳어 버렸다. 카를은 그런 그녀의 머리카락에 입을 맞추곤 말했다.

“난 싫지 않은데.”

장난기와 욕망이 뒤섞인 검은 눈. 아우라는 그 눈을 보며 숨을 길게 뱉어 냈다.

‘멀어졌을 때 곤란한 건 어디까지나 내 쪽이니까.’

그녀는 카를의 뺨을 감쌌다.

‘그러니까…… 받아 주는 거야.’

그녀는 카를을 바짝 끌어 내렸다. 그와 이래야 할 이유가 빈약하다는 걸 그녀도 알았다. 그렇기에 그녀는 얼른 머릿속을 비웠다.

“내일은 오지 마. 오늘만이야.”

카를은 대답 대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가 다시금 입을 맞춰 왔다.

아우라가 그의 목을 감싸 안자 그의 손이 그녀의 허리를 더듬었다. 골반으로 내려갔던 손이 배를 감쌌을 때, 그 따뜻한 느낌에 아우라가 숨을 깊게 내쉬었다.

“하아…….”

카를이 입술을 물리며 그녀의 몽롱한 표정을 내려다보았다.

사악-

네글리제의 리본을 푸는 건조한 소리. 벌어진 틈 사이로 그의 손이 들어와 등을 감쌌다. 그리고 그녀의 상체를 살짝 들어 올렸다.

“!”

“왜 숨겼어?”

“……뭘?”

“날 재워 준 일.”

아우라가 멈칫하더니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괜한…… 짓이었으니까.”

“그럼 날 왜 재워 줬어?”

네글리제가 어깨를 타고 내려가며 그녀의 몸이 드러났다. 아우라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사실 그녀 역시 답을 몰랐다. 그에게 왜 몸을 보이고 있는지도 모르듯이.

쪽. 카를이 그녀의 어깨에 입을 살짝 맞췄다.

“아무리 생각해도 네가 실수한 것 같아, 아우라.”

카를이 그녀의 귓불을 살짝 물었다. 그리고 귓가에서 울리는 카를의 목소리.

“네가 그런 식으로 시침을 뗄 때마다 나는 더 미칠 것 같던데.”

전신에 소름이 쫙 돋았다. 그때, 카를의 혀가 그녀의 귓속으로 들어왔다.

“아!”

깜짝 놀란 아우라가 그를 밀었다. 카를이 그대로 그녀를 침대에 다시 눕히곤 그녀의 귀를 괴롭혔다. 생경하고도 선연한 자극에 아우라가 고개를 틀어 피했다. 그리고 따지듯이 그에게 묻고 말았다.

“그럼 너는?”

“나?”

“…….”

“나 왜?”

아우라가 침을 꿀꺽 삼켰다. 하마터면 그녀는 이렇게 물을 뻔했다.

‘왜 후궁 건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아?’

하지만 만약 카를이 이렇게 되묻는다면?

‘그게 너와 무슨 상관이야. 넌 날 좋아하지도 않잖아.’

자신이 카를의 감정을 운운할 자격이 있긴 한 걸까. 명색이 황후라 그럴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해서 자신이 얻는 건 무엇일까.

아우라는 입을 다물었다. 여기서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들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아우라.”

카를이 짐짓 진지하게 말했다.

“나한테 묻고 싶은 거라도 있어?”

아우라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실언이었어.”

그때 카를의 눈빛이 조금 짙어졌다.

“실언이라……. 알았어.”

그는 몸을 일으키더니 셔츠의 단추를 하나씩 풀었다. 탄탄하게 자리 잡은 근육이 드러나자 아우라가 시선을 돌렸다.

셔츠를 벗어 아무렇게나 던져두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덮는 그림자.

카를은 아우라의 가슴을 입에 머금었다.

“읏…….”

이와 혀가 가슴 끝을 스칠 때마다 아우라가 몸을 비틀었다. 그 느낌이 평소보다 조심스러워서 자극적이라기보다는 간지러웠다. 허리를 더듬는 손길이 부드럽게 허벅지 안쪽을 파고들었다.

“간……지러워.”

아우라가 중얼거리자 카를이 픽 웃었다. 그는 다시 올라와 그녀와 눈을 맞췄다.

“그래. 간지러우라고.”

그저 장난기 섞인 대답이었을 뿐인데 아우라는 이상하게 아랫배가 당겨 오는 느낌을 받았다.

카를이 그녀의 손에 깍지를 꼈다. 그리고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았을 때, 아우라는 낯선 기분을 느꼈다.

천천히 그녀를 만지는 손길, 다정한 말투, 맞잡은 손, 부드러운 눈빛 같은 것. 그런 것들이 모두 모여 말하는 듯했다.

내가 널 좋아하고 있다고.

머릿속으로 알고만 있었던 사실이 오감을 통해 느껴졌다. 그 느낌이 너무나 강렬해서 앞으로 이어질 일의 긴장감마저 잠시 잊었다.

이윽고 그가 그녀의 안을 파고들었다. 아우라가 눈을 꽉 감고 그를 받아들였다. 그 순간 그가 맞잡은 아우라의 손등에 입을 맞췄다. 그 입맞춤 때문인지, 아니면 이제는 그의 몸이 익숙해졌기 때문인지 금방 기분 좋은 쾌락이 이어졌다.

“아……! 아……!”

달콤한 신음이 제멋대로 흘러나왔다. 습관처럼 입술을 물려 하자 카를이 입을 맞추었다. 차마 그의 입술을 물 수는 없었다. 결국 소리가 나면 나는 대로, 그가 입안을 헤집으면 헤집는 대로 두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시트에 땀이 밸 무렵, 아우라는 거의 녹아내릴 듯했다.

“으읏! 아……!”

“예뻐, 아우라.”

그가 그녀를 홀린 듯 보며 말했다. 아우라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그게 귀엽다는 듯 카를이 더 깊이 그녀 안을 파고들었다. 좀 더 깊은 쾌락이 간헐적으로 터져 나갔다. 아우라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녀의 쾌락이 절정으로 치달았을 때, 카를이 길게 심호흡을 했다.

“하아…….”

그의 목울대가 크게 오르내리더니 움직임을 멈췄다.

그는 아우라 곁에 누워 그녀를 끌어안았다. 맞닿은 가슴에서 심장 박동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쿵, 쿵, 쿵, 쿵…….

그의 심장이 달려가듯 빨리 뛰고 있었다. 믿을 수가 없을 정도이기에 아우라가 그에게 말했다.

“네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

“내가 말했잖아. 너 예쁘다고.”

달뜬 그 목소리에 아우라가 다시 한번 얼굴을 붉혔다. 그런 말은 어릴 적부터 많이 들어 익숙했지만 카를에게 듣는 건 기분이 이상했다.

가슴속이 간질거리는 느낌이 싫어서 아우라는 그의 손을 빠져나왔다.

“씻을래.”

그녀는 가운을 걸치고 도망치듯 욕실로 갔다. 카를은 그 뒷모습에 피식 웃고는 팔로 눈을 가렸다. 당장 붙잡고 싶었으나 잠이 속수무책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

다음 날 아침.

카를은 일찍 잠에서 깼다. 아우라는 곁에서 곤히 자고 있었다.

어제 새벽 겨우 몸을 씻고 기절하듯 잠들었던 것 같다. 욕실에서 돌아오니 아우라도 잠에 빠져 있었고.

카를은 아우라를 감상하듯 바라봤다.

소복하게 난 상앗빛 속눈썹, 선이 가는 콧대, 촉촉하고 작은 입술까지. 천사 같은 얼굴이었다.

‘눈을 뜨면 곧잘 악마 같은 소리를 하지만.’

그리고 흘러내린 머리카락들. 카를은 그것을 한 움큼 집어 입을 맞췄다. 은은한 비누 향이 머릿속을 파고드는 듯했다.

자신의 침대에서 백금발 한 올을 발견하고부터였다. 카를은 이 머리카락 생각만 하면 미칠 것 같았다. 그녀에게 머리카락을 돌려준 게 후회될 정도로.

그래서 어제도 잠을 핑계로 그녀를 찾았다. 처음에는 끌어안고만 잘 생각이었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그녀의 옷을 벗기고 있었다.

아우라의 머리카락에 연신 입을 맞추던 카를이 멈칫했다.

‘그럼 너는?’

어젯밤 그녀가 무심코 던진 물음. 혹시 후궁 건이 궁금해서 꺼낸 말인가 싶었다. 그래서 굳이 되묻기까지 했지만 실언이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족가에 퍼지는 소문을 분명 아우라도 들었을 텐데.

‘관심을 보이질 않으니 말을 꺼낼 수가 있나.’

그런 상대에게 대뜸 변명부터 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우스운 사람이 될 각오로 말을 꺼낸다 해도…….

“……넌 아무 상관 없다고 할 거잖아.”

카를이 아우라의 뺨을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그 대답이 듣기 싫어서 굳이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 무관심을 직면하기가 싫어서.

카를은 짧은 한숨을 내쉬며 아우라의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리고 그녀의 베개 밑에서 뭔가가 삐죽 튀어나온 걸 발견했다.

그것은 편지였다.

카를은 조심히 편지를 빼냈다.

‘H…….’

그는 그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혹시 연애편지라면 H가 누구건 가만두지 않을 작정이었다.

편지를 읽는 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러니까 이건…… 연애편지보다 상황이 안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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