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골목에서는 매캐한 냄새가 났다.
영원에서 나던 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냄새였다.
약간 비릿하고 어딘가 축축한 것이 음습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나고 자란 곳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딜 가든 영원부터 생각나는 것은 참 고약했다.
정서에게 영원은 결코 좋은 기억을 남기지 못했으니까.
그렇게 다 뜯어갔으면서, 기회만 보면 어떻게든 하나라도 더 가져갔으면서.
결국 희창의 삶은 바닥이었다.
희창이 바닥을 벗어나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지만, 지긋지긋할 정도로 싫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좋지 않았다.
어쩌면 정서에 대한 견의 평가는 정확했다.
무르지 말아야 할 곳에 무르고, 감상을 부리지 말아야 할 곳에도 감상적이었다.
그녀가 가방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여기 그런 사람 없는데?”
몇 개의 모텔에 들어가 희창의 이름을 댔으나 돌아오는 답은 한결같았다.
물론 설령 묶고 있다고 해도 순순히 말해주리라 생각지는 않았다.
그래도 우연히 마주칠지 몰라, 그저 성실하고 묵묵히 찾아다니는 수밖에 없었다.
낙원 모텔.
이름도 촌스러운 입구에 네온사인의 불빛이 두 개나 나가 있어 이름을 영 읽기가 힘든 모텔의 입구에 도착했을 때까지도 큰 기대가 없었다.
찬 바람이 정서의 뺨을 훑고 지나갔다.
데스크 안에서 무료한 얼굴로 낡은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주인은 젊은 여자의 등장에 표정이 변했다.
“방 얻게? 우리 지금 깨끗한 방 다 나갔는데.”
“투숙객 중 윤희창이라는 사람, 있습니까?”
윤희창?
작게 중얼거려보더니 장부 같은 것을 뒤적인다.
그러더니 책장을 턱 덮고 손을 내밀었다.
주름진 두꺼운 손의 의미가 빤했다.
여기구나.
정서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여기에 희창이 머무르고 있었다.
따지자면 정서가 사는 동네와 고작 지하철 두 역 거리로, 걸어서도 삼십 분이면 너끈히 갈 수 있는 거리에서.
희창은 숨어 살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을 팔아 얻은 돈으로 또 허튼짓이나 일삼으면서.
“…….”
오만 원짜리 지폐 두 장을 꺼내 손바닥 위에 내려두자, 주인이 입을 열었다.
“삼백오 호.”
친절하게 계단의 방향까지 손으로 짚어 주는 손길에 걸음을 옮기려는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돈 그렇게 쓸 거면 그냥 나 주지?”
정서는 그 순간 누군가 마치 제 가슴 속에 손을 넣고 헤집어 심장을 꺼낸 뒤 땅으로 처박는 느낌을 느꼈다.
그만큼 서늘하고 무겁고 두려웠다.
가래가 낀 걸걸하고 까끌한 목소리.
꿈에서도 들으면 뒤척이는 그 목소리였다.
흐르는 세월을 피하지 못한 듯 조금 더 맥이 없어진 것까지, 이때껏 상상하고 생각해온 것과 다르지 않았다.
돌아보아야 하는데.
먼저 찾아온 만큼 의욕 있게 치고 나가 따지고 들어야 하는데.
어쩐지 꿈쩍도 하지 못했다.
고작 목소리를 들었을 뿐인데도 온몸의 세포가 얼어붙고 저 밑바닥으로 꺼진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뭐가 그렇게 무서운지, 저 한심하고 비겁한 인간이 뭐가 그렇게 무서워서 옴짝달싹을 못 하는지.
정서는 스스로가 원망스럽고 저주스러웠다.
대신 저벅저벅, 느긋하게 걸음을 옮긴 것은 희창이었다.
희창은 저를 찾으러 온 것이 분명한데도 어쩐지 고개조차 돌리지 못하는 정서를 보고 피식 웃었다.
얼마나 가까워졌을까.
두 사람의 거리가 지나치게 가까워졌다고 느껴진 순간.
정서는 가방을 열어 손에 잡히는 것을 쥐었고 희창은 그런 그녀를 지나쳤다.
“어이, 반띵해. 나 찾는 거잖아. 모텔 주인이, 여기 머무는 사람들 사정 뻔히 알면서 투숙객 정보를 홀랑 팔아 버리면 쓰나.”
“……딸인 것 같아서 알려줬구만, 뭐래. 드잡이할 거면 나가서 해. 시끄러운 거 딱 질색이니까.”
“내가 소오중하고 고오결한 따님이랑 드잡이를 왜 해? 쟤 그래도 명색이 명문대 법대 출신에 변호사야.”
“어련하시겠어.”
탁하고 카운터의 창이 닫혔다.
정말로 싸움에 끼고 싶지 않다는 듯, 자신을 빼달라는 듯 무책임하고 능청스러운 몸짓이었다.
“야, 가자. 여기 앞에 국밥집 국물이 죽여. 애도 아니고 이제 소주 먹지?”
떨어져 지낸 그 시간이 무색하게, 마지막으로 봤을 때 했던 두 번 다시 눈앞에 나타나지 않겠다는 약속은 없었던 사람인 양 태연하게.
그렇게 희창은 정서에게 말을 걸고 앞서 걸어갔다.
정서는 그런 희창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뒤늦게 알았다.
희창이 한 발을 절며 걷고 있다는 것을.
느릿하지만 확실했다.
무릎부터 발목으로 이어지는 정강이의 움직임이 굳은 것처럼 부자연스러웠다.
볼품없이 밑창이 닳은 운동화의 앞코가 끌리기까지 했다.
“안 와?”
희창이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퀴퀴한 골목길의 그늘에 선 희창의 얼굴은 예전의 그 얼굴이 아니었다.
늙어서 쪼그라들고 볼품없이 흘러내린 거죽이 불이 꺼진 눈빛에 간신히 붙들려 있었다.
정서가 아는 얼굴이었으나, 모르는 얼굴이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눈앞에 선 저 귀신 같은, 산 송장 같은 남자가 저를 그토록 괴롭혔던 사람이 맞는지 혼란스러울 지경이었다.
“…….”
결국 정서는 걸음을 옮겼다.
희창은 다시 앞을 보고 걸음을 옮겼다.
애써 멀쩡히 걸어 보려는 듯 잔뜩 힘준 다리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보였다.
정서는 그런 것에 약해지고 싶지 않았다.
저 입은 한평생 제게 속된 말을 뱉어온 입이다.
저 손으로 제 머리를 수도 없이 내리쳤고, 저 다리로 세간 살림을 수십 번 부수어 왔다.
이제 와서, 다 지나간 후에 불쌍한 척한다고 뭐가 달라져.
“왜 찾아갔어요?”
정서의 목소리가 거리에 굴러다니는 쓰레기 위로 내려앉았다.
아무렇지 않게 내던진 목소리의 끝은 날카로웠다.
희창이 휘적대며 걷던 손을 내렸다.
그리고 천천히 그녀를 돌아보았다.
“누굴?”
“하곤 회장. 왜 찾아갔냐고요.”
“내가?”
“…….”
“내가 그 사람을 왜 찾아가.”
“찾아갔잖아요. 나한테 뜯어간 걸로도 모자라서. 내가 그 돈 주면서 했던 말 기억 안 나요? 그 돈 주려고 어떤 사건까지 맡았는지 아냐고요……. 아니, 됐어요. 알 필요도 없는 일이죠. 그래서 다 말했어요? 가서 내가 얼마나 볼품없는 출신인지, 한평생 도움이라곤 되지 않은 형편 없는 사람을 가족이라고 뒀는지 다 밝혔나요? 대가로 얼마를 받았어요. 얼마던가요? 그 값이.”
와다다 뱉어내는 정서의 말에는 그간의 서러움과 분노, 원망이 가득 담겨 있었다.
서늘한 음성의 끄트머리에 희창의 헛웃음이 묻었다.
희창이 잠깐 제 머리 위로 깜빡이는 가로등을 올려다보는가 싶더니 시선을 내려 그녀를 보았다.
“내가 안 찾아갔다니까.”
“말이 되는 소릴 좀, 그럼 하 회장이 왜……!”
정서는 말을 하다 멈췄다.
뒤늦게 희창의 말이 가진 의미를 깨달은 탓이었다.
하 회장, 이 지긋지긋하고 징글징글한 사람.
애초에 저를 생각하고 나서 곧장 찾았구나.
먼저 찾아가서 제 약점부터 캐냈구나.
하긴. 덫 하나 두지 않고 저를 들일 사람은 아니었다.
그걸 알면서도 바보처럼 속을 수밖에 없었던 건 역시 그녀에게 희창이 너무 큰 존재였던 탓이다.
학습된 폭력과 두려움은 벽을 만든다.
벽을 무너뜨리기 전까지는 그 벽을 넘어갈 수 없는 것이라 여긴다.
벽을 마주할 때마다 돌아서서 다른 길을 찾는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다.
희창은 정서의 약점뿐만이 아니라, 견의 약점이 되기까지 했다.
“얼마 주지도 않았어. 푼돈이야. 돌아서면 사라지는 돈. 그러니까 내가 널 찾아갔지.”
“나를?”
“그래, 너를. 그때 말이다. 너희 집까지 찾아가서 문을 두드렸잖아.”
쿵쿵쿵.
새벽에 울리던 그 노크 소리의 주인은 희창이었구나.
정서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었다.
그런데 정작 그때 문 앞에 서 있던 건…….
“남자 하난 잘 만났지, 계집애. 생전 잘하는 거 없더니.”
잘하는 게 왜 없겠는가.
정서는 이때껏 자신을 돌보고 키웠다.
거기 필요한 어느 것 하나 쉽게 얻은 적 없었다.
허투루 낭비한 시간이 없었고 매 순간 치열하게 싸워 살아남았다.
그런 제 노력을 쉽게 폄훼하는 건 희창의 오랜 버릇이었다.
“하견한테 무슨 짓 했어.”
“하견? 아, 그 애 이름이 그거던가. 걔, 맞지? 예전에 마주친 적 있잖아. 동네에서. 너희 집 가는 골목길에 서서 뚫어지게 봤었지, 나를. 그 기분 나쁘던 개눈깔. 그건 시간이 지나도 여전하더라. 역시 사람이 나이 먹는다고 변하진 않아.”
“무슨 짓 했냐고.”
정서가 희창에게 바짝 붙어 섰다.
내내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대화하던 이전의 모습과는 달랐다.
금방이라도 멱살을 쥘 기세가 된 정서를 보던 희창이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으며 눈을 맞췄다.
“무슨 짓은 걔가 나한테 했지.”
“뭐?”
“남자에 눈이 멀어 지 아비 X신 되는 줄도 모르고.”
“그게 무슨 말이야.”
“너한테 아무 말도 안 했나 보지? 그래, 그 새끼라면 그러고도 남지. 그러니까 네가 이렇게 눈에 불을 켜고 날 찾아왔겠지. 너나 그 새끼나 미친 건 같구나.”
“말 돌리지 말고 똑바로 말해요. 무슨 말이냐고.”
“그날 개눈깔 뜨고 쳐다보며 내쫓더니 어떻게 알았는지 여기까지 찾아와선 두 번 다시 네 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나타나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하던데.”
“협박?”
“정확히는 몸소 보여 줬지. 네게서 타간 돈, 그 돈을 어떻게 벌 수 있는 건지 보여 주겠다면서 어디 오지 산간에 있는 공장으로 끌고 갔어. 무슨 일을 하든 상관없다고 살아만 있게 해두면 반X신을 만들어도 상관없다고 하더라. 그래서 진짜 됐잖아. X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