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1화 (41/85)

41.

“뭐 하는 거야…….”

정서는 저를 끌어안은 은호의 어깨에 고개를 기댄 채 물었다.

은호는 오토바이를 바깥에 세우고 뛰어온 듯 어깨를 들썩이며 숨을 골랐다.

왜 이렇게 다급하게 온 것인지, 어째서 대뜸 저를 끌어안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쩐지 밀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정말 괜찮은 거예요?”

“응.”

“갑자기 사라져서 놀랐잖아요.”

“정확히는 사라진 게 아니라 조사받으러 간 건데.”

“나오는 거 기다렸는데 사라져서 보니 이미 조사 끝났다던데요. 그 후로 곧장 집에 온 거예요?”

“아…….”

하 회장이 데려갔다는 얘기를 전해야 할지 고민하며 정서는 은호에게서 떨어졌다.

은호의 시선이 찬찬히 그녀를 살폈다.

“얼굴에 난 상처 뭐예요?”

“아…… 거의 나았는데. 용케도 그걸 봤네.”

“장소영이 무슨 짓 했어요?”

“아니야, 그런 거. 그보다 내가 널 찾은 건 부탁할게 있어서야. 일단 들어와.”

정서는 은호를 안으로 안내했다.

제 집도 아닌데 꼭 주인인 것처럼 행동을 하는 것이 어색하고 낯설었다.

“뭐 마실래?”

“아뇨. 괜찮아요. 나중에 당신 집 가면, 그때요.”

견의 것은 먹기 싫다는 거구나.

얘도 은근히 고집 있다.

정서는 그렇게 생각하며 거실 소파를 눈짓해 가리켰다.

은호가 자리에 앉자 조금 떨어진 자리에 그녀도 앉고선 눈을 맞췄다.

“내가 부탁하려는 건…….”

“전지훈이에요, 장소영이에요?”

“응?”

“둘 중 하나일 거 아니에요. 지금 이 상황, 분명 누가 수 쓴 거잖아요. 그게 하 회장이든, 제 삼의 인물이든. 알아내야 해서 나 부른 거죠.”

정서는 눈을 가늘게 뜨고 은호를 바라봤다.

의뭉스러운 그 표정은 낯설면서도 사랑스러웠다.

은호는 새삼 이 여자가 이런 표정을 지을 줄 아는구나 싶어져 신기했다.

걱정스러워서 한달음에 달려온 보람이 있다, 싶었다.

“왜 그렇게 봐요?”

“수상해서.”

“뭐가요.”

“나한테 왜 이렇게 협조적으로 변했어?”

“아…….”

“지금 네 입장으론 계산부터 해야지. 내가 너한테 뭘 해줄 수 있을지. 정말 그걸 줄 수는 있는지. 이 사람을 믿어도 될지. 그런 의심부터.”

“왜요?”

“왜긴 왜야. 가뜩이나 가진 것 없던 사람인데 더 없어졌잖아.”

“있어요.”

“응?”

“내가 말했잖아요. 아직도 그거 가지고 있으니 됐어요.”

그러고 보니 그때도 은호는 정서에게 자신이 가지고 싶은 것이 있다고 말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듣지 못했다.

“확실해, 내가 가진 게?”

“네. 확실해요.”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내가 그걸 줄 수 있을진 어떻게 믿어?”

은호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리고 정서를 가만히 바라보는가 싶더니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에 붙은 실밥을 떼내었다.

견과는 다르게 느릿하고 조심스러운 몸짓이었다.

“순진한 건지, 순수한 건지.”

“응?”

“주지 않더라도 빼앗으면 된다는 걸 왜 몰라요.”

“…….”

진심일까. 

어쩐지 정서는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은호가 두렵지도 않았다.

경계해야 마땅한 사람인 걸 알면서도, 아까 저를 걱정하는 태도는 진심처럼 보였기 때문에.

저 선한 눈빛을 보면 그가 나쁜 사람일 거란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무슨 사정이 있겠거니 싶었고 그 사정을 언젠가 듣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그래. 난 지금 네 도움이 필요한 입장이니 네가 그렇게 넘어가 주면 고맙지, 오히려.”

“그전에 묻고 싶은 게 있어요. 전지훈을 어떻게 만난 거예요?”

“전지훈이 준 메모에 그 호텔 주소와 시간이 적혀 있었어. 갔더니 전지훈은 쓰러져 있고 장소영이 거기 있었고.”

“그럼 전지훈과 장소영은 그 전에 만난 거네요. 어느 시점에서 장소영이 끼어든 건지는 모르고.”

“맞아. 둘이 무슨 대화를 나눈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장소영은 전지훈이 찍은 사진이 곧 풀릴 거란 걸 알아차리고 전지훈에게 보복하기 위해 찾아갔을지도 몰라.”

“그럼 그 여자가 장소영인가……. 아닌데.”

“여자라니?”

은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핸드폰을 꺼내 무언가를 보여 주었다.

CCTV 화면을 직접 찍어온 사진 속에는 모자를 눌러쓴 남자와 마찬가지로 모자를 쓰고 얼굴을 마스크로 가린 여자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장면이 찍혀 있었다.

“그날, 전지훈이 백영 엔터테인먼트에 왔었어요. 메모가 있었댔죠. 그럼 아마 그걸 주러 온 걸 거예요. 전지훈이라면 어떻게든 하견과 접촉하려 했을 테니, 혹시 싶어 뒤졌다 찾아냈어요.”

“정확히는 사진이었어.”

“무슨 사진이요?”

“본부장님과 내가…….”

끌어안고 있는 사진이라 무심코 답하려던 정서는 가까스로 말을 멈췄다.

은호가 갑자기 침묵하는 그녀의 태도에 의아한 얼굴이 되자, 정서가 헛기침을 했다.

“큼. 공격받았었거든.”

“공격이요?”

“응. 장소영 소속사 대표 신경호한테.”

“생각보다 복잡하네……. 아무튼 그럼 그 사진으로 한번 더 협박하려 했나 보네요. 두 사람의 사이를 알리기 전에 조용히 협상하러 와라. 뭐 그런 뜻이겠죠. 그럼 이 사진 속 여자를 왜 만났을까요? 이건 백영엔터테인먼트 주차장 쪽에서 찍힌 거예요. 거기서 은밀히 만난 듯한데…….”

“잠깐만.”

정서는 핸드폰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여자는 사각지대에 조금 걸쳐 있어서 전지훈만큼 잘 보이지 않았다.

흐릿한 형체에 옷도 검은색 부피 큰 옷으로 입고 있어 몸매라든지 이런 것들이 잘 가늠되지 않았다.

놀랍도록 치밀했다.

“장소영은 아니네. 장소영 키 크잖아.”

“맞아요. 전지훈이랑 비교해 보면 165cm정도 되는 것 같은데. 어쨌든 이 여자랑 접촉하고 나서 사진을 전달했겠죠. 어디에 넣어뒀대요? 우편함?”

그러고 보니 사진이 담긴 봉투를 전달한 것은 수연이었다.

수연이 위험한 것일지도 모르니 제가 열어보겠다고 했지.

“확인해 볼게.”

정서는 곧장 수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꽤 오래 갔다.

아마 회사로 빗발치는 전화를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는 것일지도 몰랐다.

핸드폰을 든 채 무슨 생각에 잠긴 듯 고요해진 눈빛을 들여다보던 은호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벽에 걸린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홀린 듯 한 걸음, 두 걸음 그 그림에 가까워지던 은호는 알게 됐다.

이 그림이 누굴 그린 그림인 건지를.

둘이 원래 잠깐 알고 지냈다는 것은 들었지만, 이렇게 그림을 그려 줄 정도로 가까웠던 건가?

심지어 사진 밑에 적힌 날짜를 보면 십 년도 더 된 그림이었다.

고등학생 때, 잠깐 지냈다던 영원에서 만났던 둘은 대체 무슨 기억을 공유하고 있기에 이렇게 가까운 걸까?

그가 그런 생각에 잠기는 동안 정서가 쥔 핸드폰에서 신호음이 꾸준히 흘렀다. 

이러다 자동 응답으로 넘어가겠다 싶을 즈음 신호음이 끊겼다.

“이 비서님, 접니다. 윤정서.”

― 네, 윤 변호사님. 전달 사항 확인했습니다. 법적 조치 관련해서 기사가 방금 나간 것으로 알고 있어요.

“확인했습니다. 여러모로 정신없으실 텐데 이런 연락드려 죄송합니다.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 말씀하세요. 듣고 있습니다.

“혹시 스캔들 나던 날 당일 봉투를 어디서 발견해서 전달해 주셨나요?”

― 봉투요? 아, 그 본부장님 거요?

“네. 그 봉투 어디서 발견하신 거예요?”

― ……어디더라. 우편함에서 발견했던 것 같아요.

“그 봉투 말고 별도로 발견된 거나 이후로 온 수상한 연락 같은 건 없었나요?”

― 네, 없었습니다. 그보다, 저. 혹시 본부장님께서는 괜찮으신가요?

“예. 괜찮습니다. 확인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에 뵙죠.”

― 잠시만요.

정서는 귀에서 떼어냈던 핸드폰을 다시 귓가로 가져갔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나 주저하는 듯 잠시 침묵이 흘렀다.

“듣고 있습니다.”

어쨌든 그날 호텔에서 정서의 부탁대로 견을 데리고 나간 것은 수연이었다.

수연은 드물게 단호한 태도로 끈질기게 견을 끌었고 그 덕에 견은 그 현장에서 직접 체포되는 것만큼은 피할 수 있었다.

진 빚이 있으니, 이 정도는 들어 주는 것이 도리였다.

― 주제넘은 소리일지는 모르겠지만, 또 윤 변호사님께서 지금껏 본부장님을 위해 애써 주신 것도 알고 있지만. 이번 일로 인해 회사의 명예도 다수 실추된 만큼 본부장님과 거리를 조금 두심이 어떠할지 조심스럽게 말씀드리고 싶어서요.

“아…….”

낮게 탄식하는 정서를 은호가 돌아보았다.

통화가 마무리되는가 싶더니 상대가 무슨 말을 건넨 모양이었다.

표정이 어쩐지 처량하고 쓸쓸해 보여 은호는 자연히 그녀 쪽으로 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 걱정할 일 없게 제가 잘 보필하겠습니다. 그럼 제 뜻은 전달했으니 이만 끊겠습니다.

뚝.

전화는 매정히 끊겼다.

정서는 전화가 끊긴 줄 알면서도 한동안 핸드폰을 든 손을 내리지 못했다.

“뭐라는데요?”

“……응?”

“무슨 말을 들었길래 그렇게 비 맞은 강아지 얼굴이 돼요, 애처롭게.”

“별말 아니야. 우편함에 넣어 뒀대. 근데 그건 왜?”

“우편함 쪽 CCTV도 혹시나 싶어서 확인해 두려고요. 그리고 아까 하려다 못한 말이 있는데 장소영 있잖아요.”

“응. 장소영이 왜?”

“장소영이 그날 하견이 거기 있는 줄 어떻게 알았나 싶어서 고민해 봤거든요. 아무래도 백영 내부에 정보를 흘리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아요. 그것도 하견과 긴밀한 사이 중 한 명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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