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7/85)

07.

얼마나 지났을까. 

숨이 모자란다고 느낀 순간, 그제야 비로소 입술이 떨어졌다. 

견이 색색 숨을 내뱉는 정서의 뺨을 움켜쥐었다.

“도망간 줄 알았어.”

“일이 있어 서울에 다녀왔습니다. 이 비서님이 충분히 설명해 주셨으리라…….”

“이상하지.”

“네?”

“난 너만 있으면 온순한 개새끼가 되는데, 그저 배를 뒤집어 까는데. 왜 네가 아닌 다른 싸구려로 대체하려고 하는 거지?”

“본부장님.”

“다시 야, 라고 해봐.”

견이 눈꼬리를 늘어뜨렸다. 

아까까지 짐승을 물어뜯던 사냥개가 마치 칭찬을 바라며 주인에게 기대는 모습이었다. 

뭘 잘했다고. 잘한 것도 없으면서. 

하여간 이상한 취향이었다. 

정서는 대체 무슨 일이 어떻게 흘러가는 것인지 알 수 없어 답답하기만 했다.

“어디를 다치셨는지,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건지 말씀해주세요. 이 비서님한테 전화하겠습니다.”

“격려차 방문하라는 그 촬영지, 유원지였어. 왜, 옛날에 애들이 본드하고 그러던. 근데 거기 하필이면 찾아온 거야.”

“누가요.”

“글쎄, 누구라고 해야 하나.”

견은 뜸을 들였다. 

정서는 더 이상 참아줄 여유가 없었다.

그녀가 견의 멱살을 움켜쥐듯 잡고 바짝 얼굴을 가져다 댔다. 

정서의 눈동자에 빛이 새어들었다. 

분노의 빛이든, 염려의 빛이든. 

그게 무엇이든 견은 그게 반가워 아래가 동할 지경이었다.

“똑바로 말해, 하견. 사람 속 뒤집어 놓지 말고.”

“장소영. 장소영이 와서 만나달라기에 가장 오래돼 보이는 놀이기구 하나 타면 생각해 보겠다고 했지.”

“미쳤어?”

장소영이라면 유명 배우 중 하나였다. 

심지어 곧 백영미디어에서 만들 드라마의 여자 주인공 역으로 물망에 오른 배우이기도 했다. 

물론 견과 잠시 어울려 놀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시골 마을까지 찾아올 정도로 그에게 빠져있는 것은 몰랐다.

“이제야 너답네.”

“아니지?”

“타더라. 운행도 안 하는 기구를 꾸역꾸역. 말리느라 실랑이 좀 벌였어.”

그때였다.

멀리서 말소리가 들렸다. 

신경질적인 여자의 목소리가 욕을 한바탕 쏟아냈다. 

자연스레 돌아간 정서의 시야에 다리에 깁스를 한 소영의 모습이 보였다.

“설마.”

“때렸냐고?”

“본부장님.”

“떨어지기에 받아 준 거뿐이야. 매달리기에 밀쳐낸 것뿐이고. 문제는.”

견이 손을 뻗어 흐트러진 정서의 머리칼을 넘겨주었다. 

정서는 말을 빨리 이으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미간을 좁혔다. 

그의 입꼬리가 비죽 흔들렸다. 

이 와중에도 정서의 모습을 보고 웃음이 나는 듯했다.

“붙었어.”

“뭐가요?”

견이 손을 들어 카메라로 찍는 시늉을 해 보였다. 

기자가 붙었단 얘기지. 

정서의 입에서 긴 한숨이 샜다. 

이럴 시간이 없었다.

우선 하나씩 처리해야 한다. 

그나마 견이 크게 안 다쳤으니 다행이다.

“여기 딱 가만히 앉아 계세요.”

“어디 가게. 이 정도 문제로는 부족해? 옆자리 지키라니까.”

“그 정도 문제를 벌이셔서 제가 자리를 비워야 하는 걸 모르시는 건 아닐 테고.”

정서는 제 말을 들으라는 듯 눈을 치뜨고 견을 바라보았다. 

견은 하는 수 없다는 듯 두 손을 들어 보이며 벤치에 기대앉았다. 

몸을 일으킨 정서가 주차된 검은 밴으로 다가갔다. 

절뚝이며 밴에 올라탄 소영이 자리에 앉을 때였다.

“하견 본부장님 변호사입니다. 치료비 등 청구해 주시면 빠르게 처리하겠습니다.”

소영의 매서운 시선이 정서를 향했다. 

기분이 상할 것임은 알고 있었다. 

단발머리에 얼굴의 절반은 될 것 같은 큰 눈을 가진 소영이 정서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마치 ‘너구나.’ 하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치료비?”

소영이 되물었다. 

정서는 명함을 내민 손을 거둘 생각도 없이 소영의 눈을 마주했다.

“예. 물론 소정의 위로금 또한 지급해드릴 예정입니다.”

“내가 고작 그따위 거 좀 받자고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아니시라면 더욱 받아 두시죠, 명함.”

“뭐?”

“스토킹이 중대한 범죄인 것은 당해보셨을 테니, 아시리라 믿습니다. 게다가 기자까지 달고 오셨다더군요.”

“기자가 날 따라온 게 내 잘못이야? 지금 망한 게 누군데 그쪽이…….”

“수습은 저희가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번뿐일 겁니다, 봐드리는 건. 드라마는 하차하시는 걸로 하는 편이 깔끔하겠네요.”

“야. 너 대체 뭐야?”

짚고 있던 목발을 들어 소영이 정서의 가슴팍을 짚었다. 

불쾌한 중압감이 정서를 덮쳤다. 

콕, 콕. 한 번씩 밀어낼 때마다 그녀의 몸이 흔들렸다.

“네가, 뭐길래,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탁.

뒤에서 나온 손에 의해 순식간에 목발이 들렸다. 

본능적으로 정서가 손을 뻗어 견의 손목을 쥐었다. 

여기서 더 나갈 수는 없었다. 

언제부터 지켜본 것인지는 몰라도, 가만히 기다리라는 간단한 요구조차 들어주지 못할 만큼 통제 불가능한 강아지라는 사실만은 확실했다.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본부장님.”

“말이 통해야 사람이지.”

모욕적인 언사에 소영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곧장 손을 들어 견의 뺨을 내리치려 들었다. 

물론 이번엔 정서가 끼어들었다. 

짝 하는 소리와 함께 정서의 고개가 돌아갔다.

“!”

당황한 소영의 앞에서 정서는 씨익 웃어 보였다. 

소영이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정서는 다년간의 노하우로 어떻게 하면 가장 ‘눈에 띄게’ 맞을 수 있는지 알고 있었다. 

입술이 터지며 핏방울이 맺히자마자 정서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찰칵.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몇 번 자신의 얼굴을 향해 플래시를 터뜨리고는 핸드폰을 내렸다. 

마침 풀리는 일도 없었는데, 성질 나는 일만 가득했는데. 

차라리 이렇게 성격을 드러낼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제가 사진 찍은 이유, 설명 안 해도 아시겠죠.”

“저기요. 저는 그쪽 때리려고 한 게 아니라…….”

“본부장님께서 뜻을 명확히 전하신 걸로 압니다. 앞으로 마주칠 일은 없었으면 하네요. 그리고 매니저님.”

“네, 네?”

아까부터 한 발 빠진 채로 어쩔 줄 몰라 하던 소영의 매니저를 불러 정서는 내내 들고 있던 명함을 비로소 건넸다.

“무슨 일 있으면 이쪽으로 연락 바랍니다. 쫓아온 기자 소속 확인하셨나요?”

“얼굴이 낯익은 걸로 봐서……, 전영데일리 쪽인 것 같았어요.”

“정보 감사합니다. 그럼 연락드리죠.”

정서는 견을 돌아보았다. 

견은 흥미로운 기색을 숨기지도 않고 정서를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그런 견의 반응에 소영의 속이 들끓었음은 당연했다.

“오빠!”

“드라마는 다른 드라마로 꽂아 줄게. 우리 인연은 정말, 여기서, 끝인 걸로.”

견이 손을 팔랑팔랑 흔들어 보였다. 

이만하길 다행이었다. 

만약 소영이 한발 더 나아갔다면, 그래서 그의 기분을 정말로 상하게 했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빨리 오세요.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모시겠습니다. 이 비서님은 수납 중이신 건가요? 그럼 이쪽……!”

주차장을 벗어나 병원으로 들어가던 정서의 어깨에 견이 팔을 둘렀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 그녀의 턱을 끌어 제 쪽을 보게 했다.

“훌륭해.”

“뭐 하시는 겁니까.”

둘의 모습은 언뜻 보면 오래된 연인처럼 다정해 보였다. 

그래서는 안 되기에 정서가 자꾸 견을 밀어냈지만.

“완벽하게 예전의 윤정서 같았어. 요새 좀 지루했는데.”

“본부장님, 이거 놓으세요.”

“근데 얼굴은 웬만하면 좀 피해. 이런 감정이 들 줄은 몰랐는데, 마음이 아프네. 나 너 사랑하나 봐.”

사랑?

장난스레 내려놓은 그 단어에 정서의 낯빛이 굳었다. 

견은 그 변화를 눈치챘다. 

알면서도, 알면서도 모르는 척 태연하게 정서의 입술을 엄지로 쓸었다. 

그러곤 묻어난 핏방울을 제 입가로 가져가 혀로 쓸어올리며 음미하듯 입꼬리를 올렸다.

“다치지 말자.”

“미친놈.”

끝내, 견디지 못한 그녀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견이 두른 팔을 어깨로 떨쳐 내는 것과 동시에 목소리가 들렸다.

“본부장님?”

수연이었다. 

수연은 방금 막 수납을 마치고 온 듯 영수증과 약을 손에 들고 있었다. 

정서는 습관처럼 수연의 표정을 살폈다. 

들었을까? 사랑 타령을 해댄 견의 말을? 

농담이었지만, 맥락을 모르는 이라면 오해할지도 몰랐다.

“…….”

견은 부름에 답하지 않았다. 

그저 수연의 존재가 귀찮다는 듯 마지 못해 정서에게 두르고 있던 손을 내릴 뿐이었다. 

정서가 대신 수연에게 답하며 다가갔다.

“자리를 비우셨네요, 이 비서님.”

“수납해야 하는 바람에. 그리고 혹시 몰라 기자 쪽도 연락을 해보려고…….”

“연락 닿았나요?”

“아뇨. 아직이지만, 제 연락처를 남겨 두었으니…….”

“생김새 기억하세요?”

“네.”

“그럼 홈페이지 들어가서 연예부 기사 서치해 이름부터 찾아내 주세요. 곧장 저에게 넘기시고요. 일단 영원에서의 일정은 캔슬하고 서울로 올라가는 것으로 하죠. 혹시 모르니 본부장님 진료부터 받죠.”

“알겠습니다. 그럼 일영 병원으로 모시겠습니다.”

“안 됩니다, 일영 병원은.”

정서가 단호하게 말했다. 

안 그래도 조금 굳어 있던 수연의 얼굴이 더욱 굳었다. 

견은 이 상황이 흥미롭다는 듯 팔짱을 끼고 서서 정서를 지켜보았다.

“백영 그룹의 소유이자, 주치의가 계신 곳이라 들었는데요.”

“맞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특수한 경우에서는 선웅 병원을 이용해 주세요. 만약 일영 병원으로 가면…….”

“허락된 사항인가요?”

“네?”

정서는 제 귀를 의심했다. 

이제껏 견을 지나쳐 간 비서 중 한 명이라도 자신의 말에 토를 단 이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견을 잠재우는 것은 늘 정서의 몫이었다. 

정서는 해결책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헤쳐나갈 방법을 찾았다. 

그러니 의심할 수 없었다.

수연은 단순히 처음이라 되묻는 걸까. 

정서는 다시 입을 열었다.

“허락이 필요할 일인가요?”

“변호사님께서 본부장님을 담당하고 계시는 것은 압니다만, 이건 본부장님 개인 사생활에 관련된 일이니 비서실을 통해 확인하는 게 옳을 듯해서요. 박 실장님께 확인을 해보겠습니다.”

휘이우.

한 방 먹었네, 윤정서. 

견이 그렇게 생각하며 정서를 보았다. 

정서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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