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3/85)

03.

소각장으로 넘어가는 철창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견은 정서를 놀리려는 게 분명했다.

‘눈 삐었어?’

말이 사납게 나갔다. 

이미 구경거리 취급을 당했는데 말이 곱게 나갈 리가 없다. 

견은 그런 정서의 태도에도 아랑곳없이 저벅저벅 소각장 문으로 다가가더니 손을 뻗었다.

‘야!’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날카로운 철창 사이에 손을 넣어 틈을 벌리기 시작했다. 

손등이 긁히며 피가 맺히는 것이 보였다. 

귀한 손이, 그렇게 희고 깨끗한 손이 순식간에 상처 났다.

‘뭐 하는 거야.’

저도 모르게 걸음을 옮긴 그녀가 대뜸 견의 손을 움켜쥐었다. 

정서는 태생적으로 다치는 것들에 약했다. 

그럼에도 누군가를 선뜻 돕지 못한 것은 돕는다는 행위가 사치일 만큼 그녀의 삶이 팍팍했다.

지금은 명분이 있다. 

곤란한 상황에서 자신을 구해준 것이 견이므로. 이 정도는 괜찮다. 

정서는 앞서 나간 손에 대한 변명을 뒤늦게 생각했다.

견이 손을 움찔했다. 

정서가 아까까지 죽은 새를 만졌기 때문일 터였다. 

커다란 손은 그녀가 한 손으로 움켜쥐기엔 역부족이었다.

‘피 나잖아.’

‘그런 걸 신경 쓰는 애였어?’

‘죽은 새 한 마리도 못 만지는 비위 약한 도련님이 이런 짓을 벌일 이유가 없다는 거야, 내 말은.’

‘네가 하고 싶어 하잖아.’

‘뭘.’

‘그러게. 새의 장례식?’

견은 입으로 새 소리를 내어 보았다. 

지독한 성미. 

그래, 너 진짜 또라이구나. 

정서는 제 손에 옮겨 묻은 견의 핏방울을 보며 한숨을 내뱉었다. 

옷 안으로 손을 넣자 견이 저도 모르게 숨을 죽이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교복 블라우스 안에서 흰 가제 손수건을 꺼냈다. 

간혹 코피가 나는 일이 있어 일부러 챙겨둔 것이었다. 

정서가 손수건을 건네자 견이 의외라는 듯 눈을 크게 떴다.

‘갚았다.’

‘뭘.’

‘은혜.’

견이 입꼬리를 미묘하게 들어 올렸다. 

그리고 떨어지려는 정서의 손을 움켜쥐었다. 

그녀의 것에 비해 크고 남자다운 손은 힘이 좋았다. 

크게 힘을 준 느낌이 아닌데도 꼼짝없이 손이 갇혔다. 

뜨겁고 좁은 느낌이 어쩐지 묘했다.

‘뭐 하는 거야.’

‘할 거면 제대로 해야지.’

‘뭐?’

‘꽉 쥐라고 아프지 않게.’

견은 정서의 손가락 마디마디에 제 손을 꿰었다. 

빈틈을 차고 들어오는 감각이 낯설었다. 

정서는 할머니가 아닌 다른 사람과 한 번도 이렇게 손을 쥐어 본 적이 없었다. 

단단하고 보드라운 손이 그녀의 손가락 사이에 빽빽이 차올랐다.

‘놔.’

‘기회 주는 중인데.’

‘뭐?’

‘은혜 갚을 기회.’

‘이게 무슨…….’

‘너 남자랑 손잡아본 적 없지?’

‘놔.’

‘손바닥에 땀 고이는 거 봐. 너 나 좋아하냐?’

‘미친놈아, 놓으라고.’

정서가 손을 들어 견의 어깨를 내리쳤다. 

미동도 없는 태산과도 같은 어깨에 그녀의 손만 아팠지만, 견은 그제야 손을 놓아 주었다. 

두 손이 스쳤던 자리에 은은히 감도는 열감을 정서는 애써 무시했다.

그리고 그녀는 견이 무어라 말할 틈도 없이 철창 사이에 발을 끼워 넣었다. 

따갑게 튀어나온 철사가 종아리를 긁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팔에 힘을 주자 간신히 넘을 정도는 되었다. 

털썩하고 넘어간 정서를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인 채 바라보던 견이 피식 웃었다.

‘촌스럽게 은혜를 갚는 취미도 있네.’

‘뭐?’

‘미친놈과 미친 X, 잘 어울리지?’

견은 고개를 들어 정서의 눈을 마주 보았다. 

곧 그가 그녀의 손에 들린 죽은 새를 향해 눈짓했다.

‘그럼 수고해.’

견이 그렇게 말하고는 돌아섰다. 

여전히 손에 정서가 매어 준 흰 손수건이 들린 채였다.

&

“윤정서.”

“…….”

“정서야.”

정서는 뒤늦게 상념에서 깨어났다. 

괜히 영원에 오니 생각이 많아졌다. 

견은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빙글 웃으며 그녀의 코를 툭 쳤다.

“뭔 생각을 그리 해?”

“……아무것도 아닙니다.”

“옛 추억에라도 잠겼어?”

“그런 적 없습니다.”

“그래?”

“가시죠.”

정서는 먼저 차에 올라탔다. 

오늘은 부지만 둘러보고 인근 시에 위치한 호텔에 체크인하는 것으로 일정이 마무리될 터였다. 

내일은 이 지역의 유지와 지역 출신의 국회의원이 그를 접대할 예정이었다.

“방을 하나로 잡았는데.”

“…….”

“스위트룸이 하나밖에 없더라고, 그 호텔에.”

“일반 객실에서 묵어도 상관없습니다.”

“그렇게는 안 되지.”

정서는 견의 말을 듣지 못한 척했다. 

굳이 기사와 수행원을 두고 직접 차를 몰아 그녀를 영원까지 데리고 온 견의 고집도 알만했다.

수족을 부리는 법을 어려서부터 익히지 못해 천대를 받는 것이라고, 그 핏줄이 어디 가냐고. 

불호령을 뱉는 하 회장의 목소리가 귓가에 선한 것만 같았다.

“벨트.”

견이 말을 툭 내뱉었다. 

정서가 벨트를 당겨 꽂으려는데 불쑥 시야에 손이 들어왔다. 

벨트 버클 부분을 막아선 그 때문에 그녀의 손이 허공을 배회했다. 

짧은 순간 견이 고개를 숙여 정서의 눈꺼풀 위에 입술을 맞댔다.

뜨거운 입술의 감촉. 풍겨 오는 짙은 우디향. 

언젠가 좋다고 생각했던 그 나무에서 나던 냄새와 무척이나 닮아있었다. 

정서는 순간 온몸의 세포가 저릿하게 저려오는 기분이 들었다. 

입술이 짓누른 적당한 무게감이 마치 견이 그녀에게 내리찍는 낙인과도 같았다.

“갑자기 뭐 하는…….”

“왜?”

“왜냐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적반하장이었다. 

견은 입술을 떼어 내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순진무구하게 웃었다. 

물론 아주 근사한 얼굴이었다. 

그의 입꼬리에 난 작은 흉터까지 마치 신이 공들여 빚은 조각과도 같았다. 

그런 얼굴을 보며 정서는 숨을 삼켰다.

“보여준 거야.”

“무엇을요.”

“나는 네게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언제든.”

“…….”

“그러니까. 내가 간신히 참아 주는 거라는 거, 늘 너를 참고 있다는 거. 잊지 말라고.”

견은 여유로운 손짓으로 정서의 안전벨트 버클을 채워 주었다. 

차는 부드럽게 출발했다. 

그녀는 살짝 달아오른 얼굴을 식히기 위해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창문을 내렸다. 

차창 사이로 바람이 밀려 들어왔다.

가을이었다.

앞으로 한 달, 정서는 견을 추락시켜야 했다.

&

“예, 방금 막 들어왔습니다.”

―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금방 회장님 나오십니다.

정서의 입에서 옅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체크인을 했으면 함께 저녁을 먹자며 자신을 부를 견이 눈에 선했다. 

분리 불안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정작 사고는 뒤에서 가장 많이 치고 다니면서.

막상 옆에 있으면 그는 마치 그녀를 골리는 것이 유일한 목적인 사람인 것처럼 군다.

수화기 너머가 조용하더니 곧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정서의 몸에 힘이 들어갔다. 

옥상 위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처럼 잔뜩 흐렸다. 

비라면 질색인데. 

그날도 비가 왔었다. 

자살 사건의 목격자로 조사를 받고 나오던 길, 정서의 앞을 누군가 막아섰다. 

검은 차 안은 빗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고요했다.

‘너구나, 그 천박한 변호사가.’

무거운 장막을 깬 첫마디부터가 그랬으니, 이후 이어질 말이 얼마나 모욕적일지는 뻔했다. 

정서는 지쳤다. 이제 그만하고 싶었다. 

그게 무엇이든 다 관두고 싶었다. 

그랬던 그녀에게 내밀어진 것은 돈 봉투보다 더욱 확실한 구원이었다.

― 윤 변호사.

“……예, 듣고 있습니다.”

정서는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을 주었다. 

핸드폰을 쥔 손이 희게 질렸다.

― 나는 수익이 안 나는 종목엔 투자하지 않아.

“…….”

― 내가 거기 심어둔 게 그 애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오해라도 하는 건가?

“아닙니다.”

― 사람 죽인 변호사, 피도 눈물도 심지어는 자격조차 없는 변호사를 누가 거둬 줬어?

“…….”

― 잘 생각해. 딱 한 달이야. 그동안 하견 내 눈앞에서 치워 주지 않으면…….

지이잉.

핸드폰이 울렸다. 

귀가 따가웠는데 마침 잘 됐다. 

정서가 확인하자 견의 문자가 온 것이 보였다. 

어디냐는 물음이었다. 

단출한 문자에 핸드폰을 다시 귀에 가져다 댔다.

“걱정하는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또 연락드리죠.”

탐탁지 않아 하는 숨소리와 함께 인사도 없이 전화가 끊겼다. 

정서는 어쩐지 이런 통화만 하면 자신에게서 꼭 낡고 비릿한 냄새가 나는 것만 같았다. 

어쩌면 그런 취급을 당해서일지도 몰랐다. 

작은 공병에 담아 둔 향수를 가방에서 찾아 몸에 뿌렸다. 

진한 향을 좋아하지 않는 그녀와 꼭 닮은 백합향이 나는 향수였다.

“여깄었네.”

내려가려 몸을 트는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견은 평상복 차림을 하고 있었다. 

양복을 벗은 그의 모습은 그냥 평범한 20대 청년의 모습이었다. 

검은 슬랙스 바지에 짙은 네이비색의 맨투맨. 

누가 그를 한 회사의 본부장으로 볼까.

“담배 피웠어?”

“아닙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좋은 냄새가 나.”

“모순적인 말인 거 아시죠.”

“이럴 땐 거짓말이라도 좀 해, 재밌게.”

“거짓은 충분히 만들고 있습니다. 본부장님께서 기분 나쁘셔 휘두른 주먹이 정당방위가 되는 것처럼요.”

“정당방위 맞잖아. 널 모욕했어.”

“모욕하기 전에 이미 휘두르셨죠. 선후 관계가 다릅니다.”

견이 문을 연 채 정서가 빠져나오기를 기다렸다. 

정서는 걸음을 옮겼다.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선 비상계단의 문을 열고 나가야 했다. 

비상구 계단의 육중한 문고리를 움켜쥐는 순간이었다. 

견이 그녀의 팔꿈치를 가볍게 쥐어 당겼다. 

정서의 몸이 돌아서자, 견이 고개를 숙여 얼굴을 마주했다.

“회장이 뭐라고 했어?”

“……네?”

“회장이랑 통화하고 있었잖아.”

어떻게 알았지? 

어디부터 들은 거지?

정서의 눈빛이 흔들렸다. 

견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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