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윤정서.
영원에서 그녀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었다.
서울에서 버스로 구불거리는 길을 두 시간은 족히 달려야 올 수 있는 곳으로 하루에 두 번만 시외버스를 운행한다.
물론 타는 사람도 내리는 사람도 다섯을 넘지 않아 그마저도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곳.
그 작은 마을 영원의 명물, 윤정서.
보통 ‘명물’이란 특별하고 소중한 것에 붙기 마련이지만 그녀의 사정은 조금 달랐다.
정서는 특별했다.
열아홉에 명물이라면 으레 그러하듯 전교 일 등 자리를 한 번도 뺏긴 적이 없음은 물론이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반듯하게 컸다.
하지만 그녀가 명물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공기 좋다.”
차에서 내린 견이 그렇게 말했다.
정서는 애써 사념에서 벗어나려 고개를 휘 저었다.
이곳에 다시 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것도 옆에 견을 데리고서.
두 사람이 속한 백영미디어는 백영 그룹이 보유한 여러 자회사 중에서도 눈에 띄는 상승세를 보이는 기업이었다.
주목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으며, 투자처도 늘고 있는 추세였다.
하필이면 이번에 새로 들어갈 드라마 제작 지원을 맡은 문화체육관광부가 드라마를 영원군에서 촬영할 것을 부탁했다.
견이 가진 본부장이라는 직함은 명분이다.
그는 이사보다도 더 막강한 권력을 보여 줬다.
“왜 굳이 영원이래? 나야, 옛 추억도 있고 나쁠 건 없지만.”
“……최근 강력 범죄가 일어나 이미지 쇄신에 일조하랍니다.”
공공기관과 구태여 척을 져봐야 좋을 것이 없었다.
오히려 이것을 빌미로 세트를 짓고, 리조트까지 건설하는 것이 백영 그룹의 목표였다.
그러니까 굳이 이 업무에 견이 정서를 부른 것은 그의 짓궂음 때문만은 아니다.
공적으로도 중요한 일이었다.
흔들리지 말자, 그녀는 마음을 다잡았다.
“새삼 추억이 떠오르지 않아?”
“…….”
“우리 여기서 마주쳤었잖아.”
견이 웃었다.
정서는 웃지 않았다.
하늘에서 눈 부신 햇살이 쏟아져 내려왔다.
기분 좋은 가을바람이 불었다.
영원의 가을에서는 늘 조금은 고소한 냄새가 났다.
참기름 방앗간에서 나는 냄새와도 같았다.
그런 냄새가 날 적에 정서는, 어땠던가.
풍요의 냄새가 마을을 활개 할 적에 코를 찌르는 소주 냄새와 곰팡이 냄새를 맡으면서, 쏟아져 내리는 코피를 닦으면서.
이 빌어먹을 영원에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시체처럼 누워 곯아떨어진 저 남자를 제 손으로 죽여버리겠다고.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던가.
“나 봐야지.”
나지막한 목소리에 정서가 고개를 돌렸다.
견의 뒤편으로 펼쳐진 풍경은 십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했다.
견만이 달라졌다.
소년과 청년 사이에 삐뚜름하게 서 있었던 그 남자가, 이제 어엿하게 어른이 되어 그녀를 보고 있었다.
견을 처음 만났던 날.
정서는 숙제를 대신 해준 값 칠만 원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진혁의 가방에 죽은 새의 사체를 넣어 두었다.
물론 그 새는 진혁과 친구들이 재미 삼아 돌을 던져 죽였던 새였다.
인과응보, 사필귀정.
세상의 룰을 좀 배울 필요가 있었던 아이에게 가르쳐 줬던 것뿐인데.
‘너 진짜 미친 X이냐?’
아주 근원적이고 본질적이며, 핵심적인 물음이 정서에게로 돌아왔다.
* *
드르륵.
의자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뒤로 밀리는가 싶더니 정서의 머리채가 쥐어 당겨졌다.
익숙한 통증이 주는 서늘함이 전신을 울렸다.
순식간에 반의 분위기가 서늘해졌다.
‘가방에 시체 썩은 내 나잖아. 이거 저번 달에 산 조던 가방인데. 아, 씨발.’
진혁은 머리채를 쥐고도 분이 풀리지 않는다는 듯 정서를 책상 위로 내동댕이쳤다.
동시에 그녀의 팔꿈치가 책상에 찍혔다.
가까스로 머리를 박는 것을 피해 고개를 들자 이어 주먹이 날아왔다.
정서는 본능적으로 제 얼굴을 감쌌다.
손등 위로 주먹이 내리꽂히자 몸이 뒤로 넘어갔다.
뒤에 있던 책상이 우르르 밀리고 책상의 주인이 몸을 일으키는 기척이 났다.
물론 그런 것까지 신경 쓸 여유가 정서에게 있을 리 만무했다.
받은 만큼 돌려줘야 했다.
진혁이 제 가방을 들어 그녀의 머리 위로 쏟으려는 순간이었다.
턱.
누군가 진혁의 손을 움켜쥐었다.
‘아, 씨발. 누구야.’
키라면 어디서 꿇리지 않을 진혁이었음에도 고개를 들어야 눈높이가 맞는 그는 진혁의 손목을 억세게도 잡았다.
신음이 새어나가려는 것을 진혁은 자존심으로 사력을 다해 참았다.
‘……하견?’
진혁의 목소리에 정서 역시 제 얼굴을 가리고 있는 손을 떼고 고개를 들었다.
시야에 들어온 것은 칠흑같이 검은 눈동자였다.
살짝 찌푸려진 미간 아래로 빚은 듯 아름답고 견고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정서는 순간 숨이 멎는 기분이 들었다.
태어나서 처음 느끼는 감정이었다.
누군들 그를 보면 그랬을 테지만, 그녀에게는 이질적이기만 했다.
집어삼킬 것 같다.
그래, 그 표현이 가장 정확했다.
누군들 빨려들 것 같은 눈빛을 하고, 그런 얼굴을 하고.
정작 본인은 초연하고 무심하게.
놀랍도록 차갑게 그녀의 앞에 서 있었다.
진혁에 대한 경멸을 담은 얼굴은 덤이었다.
‘너 시체 썩은 내 맡아 본 적 있어?’
‘뭐?’
‘맡아 본 적 있냐고.’
갑자기 끼어든 견의 물음에 진혁은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전학 온 지 이제 겨우 일주일이 되어 가는 견은 화제의 중심이었으나 정작 당사자는 단 한 마디도 내뱉지 않았다.
오죽하면 자기소개를 시킨 선생님이 무안해할 정도였다.
그랬던 그가 대뜸 정서의 일에 끼어들다니.
정서 역시 의아하긴 마찬가지였다.
물론 이유는 조금 달랐다.
‘…….’
정서가 죽은 새를 맨손으로 움켜쥐는 것을 견은 이미 보았다.
이미 그런 적이 수차례다.
이상하게도 견과 마주치는 순간에 그녀는 늘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일 법한 행동을 하고 있었다.
문제를 알려 준답시고 은근슬쩍 여학생의 가슴팍을 흘긋거린 수학 선생의 차의 표면을 납작한 돌멩이로 긁고 있을 때.
숙제를 대신 해달라며 돈을 건네오는 학생에게 이 정도로는 단 오백 자밖에 써주질 못한다며 핀잔을 줄 때.
견은 그곳에 있었다.
담배라도 물 것 같은 불량한 자세로 입에 딸기우유 맛 사탕을 물고서.
경계하듯 정서가 그를 바라보면 견은 눈을 피하지도 않고 마주 봐왔다.
쟤도 또라이네. 정서는 그렇게 생각하고 넘겼다.
남의 사정을 신경 쓸 만큼의 여유를 그녀의 삶은 갖추지 못했다.
그랬던 견이, 생전 정서의 삶과 기행에 관심이 없어 보이던 그가 갑자기 그녀의 일에 끼어든 것이다.
정서로서는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방법이 이상하긴 해도 어쨌든 표면적으로 견은 정서를 돕고 있었다.
‘갑자기 그걸 왜 물어봐?’
‘궁금하잖아. 어떤 냄새 나는지.’
견의 시선이 가방 속 새로 향했다.
이제는 차갑게 굳어 버린 그 새가 어쩐지 처량해 보였다.
정서는 얌전히 묻어줄걸, 그 순간 처음으로 후회했고.
퍼억.
그런 그녀의 후회는 무색했다.
순식간에 새의 사체가 담긴 가방 속으로 진혁의 얼굴이 사라졌다.
순간 제가 무슨 일을 당한 것인지 채 이해하지 못해 방황하던 진혁의 몸이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아아, X발! 아, 이거 놔!’
‘맡아봐, 실컷. 그리고 나한테 들려줘, 어떤지. 난 죽은 건 딱 질색이라서.’
‘으웩.’
진혁이 헛구역질을 시작할 때 견은 무표정한 얼굴로 제 손을 털었다.
마치 더러운 것을 쥐었다는 듯, 그 불결함을 참을 수 없다는 듯.
‘숨 더 들이켜야지. 그 정도로 느껴지겠어?’
‘너, 너……. 뭐 하는 짓이야.’
눈가가 벌게진 채로 고개를 든 진혁의 물음에 견은 이미 돌아선 후였다.
교실 문으로 향하는 그의 뒷모습은 단호했다.
정서는 교실 바닥에 떨어진 새를 주워들었다.
아이들은 모두 경악에 물든 얼굴이 되어 그녀를 보았다.
‘새삼스럽긴.’
정서는 그렇게 생각하곤 견의 뒤를 따라 교실을 빠져나갔다.
남자 화장실을 지나칠 때 물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아 견은 손을 씻는 모양이었다.
새의 사체 가까이도 가지 못한 손을 얼마나 빠득빠득 씻는지, 결벽증이 있는 사람과도 같았다.
귀하게 자란 사람은 손만 봐도 안다.
정서를 키워 주었던 정서의 할머니는 그렇게 말했다.
견은 딱 보아도 귀하게 자란 사람의 고운 손을 하고 있었다.
무심코 보게 된 손이 그랬다.
그가 항상 입고 다니는 셔츠는 빳빳이 다려져 있었으며 곁을 지나면 좋은 향이 났다.
게다가 이렇게 수업 중간에 빠져나오는 불량스러운 수업 태도를 보이는데도 아무도 뭐라고 하질 않으니 자연히 그렇게 생각되는 것이다.
어디서 부잣집 도련님이 좌천돼 여기 왔다고.
‘딱딱하네…….’
대충 손가락을 세워 뒤뜰의 흙을 파헤쳤지만 마른 땅이 굳어 단단해진 모양인지 어림없었다.
손톱 사이를 파고드는 날카로운 모래의 감촉에 손끝이 찼다.
하는 수 없이 근처 돌이라도 들어 올리려는데 불쑥 시야로 운동화가 들어왔다.
흰 운동화는 얼룩이나 티끌 하나가 없었다.
‘묻게?’
정서는 고개를 들었다.
아직 젖은 손에서 마치 핏방울처럼 물기가 톡톡 떨어졌다.
그린 듯이 잘생긴 얼굴이 햇살을 받아 눈부시도록 빛났다.
할머니는 또 말했다.
고생할 줄도 모르고 잘생긴 남자는 무조건 피하고 봐야 한다고.
왜 이 타이밍에 하필 또 할머니의 말이 생각날까.
할머니의 말을 들으면서 자기는 남자라면 질색이라고, 평생 어떤 남자도 만날 생각이 없다고.
그 어린 나이에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
‘의외네, 너. 미친 앤 줄 알았더니.’
‘보통은 이런 걸 묻어주는 사람한테 미친 사람이라고 해.’
정서는 차게 말했다.
딱히 상대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의도가 어떻든 교실에서 그가 도와준 것은 사실이었기에.
견은 퉁명스러운 정서의 목소리에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피식하고 바람 새는 소리가 났다.
‘재밌네.’
‘…….’
‘여기 와서 본 것 중 제일이다.’
아무리 영원이 보잘것없는 마을이라지만, 그리고 그 마을의 명물이 정서라지만.
잘 알지도 못하는 애의 구경거리가 되는 취미는 없었다.
그녀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비켜.’
‘태워.’
‘뭐?’
‘태우라고. 저기서.’
견의 손가락 끝에는 소각장이 걸려 있었다.
장난스러운 표정은 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