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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6/6)

프롤로그

죽고 싶었다.

정말로, 죽고 싶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하필 키니라스에게 들키다니!’

난 한참 동안 머리를 쥐어짰다.

‘어떻게 해야 하지?’

아무리 애써도 해결책은 떠오르지 않았다.

기실, 당연했다.

‘그런 그림을 그리는 걸 들켰는데!’

난 파르르 몸서리를 치면서 바닥에 어지러이 널려 있는 서류철 중 하나를 손에 들었다.

『제국 제3 기사단의 4분의 1분기 예산 심사에 대한 심층 예측 보고서』

겉만 보기엔 중요한 서류 중 하나로 보이리라.

하지만 서류철을 열면 안에는 그림이 있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남자의 완벽한 알몸 그림이.

‘아니, 완전히 알몸인 건 아니지.’

한 곳을 제대로 그리지 못했으니까.

난 아직 떨리는 손끝으로 그 부분을 톡 건드렸다.

남자의 다리 사이에 존재하는 것.

그러니까, 성기.

그걸 제대로 못 그렸다.

‘정확히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니까!’

난 회계 담당이지만 기사단 소속이라 여러 기사들의 벗은 몸을 본의 아니게 목격한 적이 몇 번, 아니, 사실 꽤 있었다.

하지만 하체까지 홀딱 벗은 건 본 적이 없으므로 성기가 정확히 어떤 모습인지 몰랐다.

그러니 그림이 이렇지만, 분명 키니라스는 내가 남자의 알몸을 그렸다는 걸 눈치챘으리라.

‘하필 키니라스에게 들키다니!’

내 오랜 소꿉친구.

하지만 지금은 가깝지 않았다.

싸우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나이가 들면서 서로 바빠진 데다 키니라스가 3년이나 멀리 다녀오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멀어진 경우였다.

‘아니, 사실은…… 내 탓도 좀 있지.’

어렸을 때 키니라스는 나보다 작고 귀여웠었다.

특히 볼살이 탱탱해서, 자주 만지작거리곤 했다.

하지만 사막 나라에 3년간 파견을 갔다 온 키니라스는 과거와 아주 많이 달라졌다.

나보다 한 뼘이나 더 커졌고, 어깨는 그야말로 떡 벌어졌다.

무엇보다 몸이 기사답게 엄청난 근육질이 되었다.

새하얗던 얼굴도 구릿빛으로 그을리고, 새까맸던 머리카락도 흑갈색으로 탈색되었다.

통통한 볼살은 당연히 사라졌으며 순했던 눈빛은 강렬해졌다.

당연히 적응이 안 됐다.

‘많이 어색하기도 했고…….’

때마침 내가 제3 기사단의 회계 부팀장으로 승진하면서 아주 바빠진 탓에 그가 돌아온 지 한 달이 흘렀는데도 제대로 말도 못 해 봤다.

그런데 방금, 키니라스가 내 사무실로 찾아왔다.

좀 당황했지만 일단 사무실 안으로 들였는데, 난 허둥지둥하다가 책상에 쌓여 있는 서류철을 넘어뜨리고 말았다.

키니라스는 날 도와서 서류철을 정리해 주다가 우뚝 멈추었었다.

‘왜 그러나 했더니.’

이 남자 알몸 그림을 본 거였다!

그 뒤로 난 키니라스를 바로 사무실 밖으로 쫓아냈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중이었다.

‘으아아아아!’

다시금 머리를 쥐어뜯어 보았으나 해결책이 떠오를 리 만무했다.

‘정말 죽고 싶네…….’

사실, 키니라스는 내 첫사랑이었다.

그가 머나먼 사막 나라로 떠난 뒤에야 깨달은 감정.

그 후로 3년 동안 난 그가 돌아오길 간절하게 기다렸다.

‘돌아오면 데이트 신청을 할까 했는데.’

이제 변태로 보일 테니, 연인이 되기는커녕 데이트도 안 받아줄 게 뻔했다.

당장 앞으로 얼굴을 보는 것도 걱정이었다.

“으으…….”

난 한참을 신음하다가 서류철을 꼭 닫고 책상 위에 올린 뒤 일어섰다.

얼굴, 아니 온몸이 뜨끈뜨끈하니 일단 차가운 물에 세안할 생각이었다.

사무실 문을 연 순간, 소리 없는 비명이 나왔다.

“……!”

키니라스가 앞에 서 있었다.

그는 내가 정말로 소리치기 전에 잽싸게 들어와 등 뒤로 문을 꼭 닫았다.

“뭐, 뭐, 뭐 하는 거야?”

“뭐 하긴, 이야기하려는 거지.”

키니라스는 씩 웃더니 툭 물었다.

“방금 왜 쫓아낸 거야?”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안 그래도 빨개진 얼굴에 열이 더욱 올라버렸다.

“너 얼굴색이 잘 익은 사과 같네. 그림을 들킨 게 부끄러워서 그러는 거지?”

“……!”

“나 이만 가 봐야 하거든. 이따 퇴근하고 데리러 올게. 같이 저녁 먹으면서 이야기하자. 그 그림에 대해서.”

“너, 너!”

“일곱 시에 봐.”

키니라스는 그 시간이 기대된다는 듯, 더욱 크게 웃고는 바람처럼 사라졌다.

난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눈을 깜빡였다.

‘으아아아!’

마음속으로 비명을 지르고, 머리를 쥐어뜯어도 변하질 않았다.

첫사랑에게 몰래 그린 남자 알몸 그림을 들켰다는 사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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