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죽고 싶었다.
정말로, 죽고 싶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하필 키니라스에게 들키다니!’
난 한참 동안 머리를 쥐어짰다.
‘어떻게 해야 하지?’
아무리 애써도 해결책은 떠오르지 않았다.
기실, 당연했다.
‘그런 그림을 그리는 걸 들켰는데!’
난 파르르 몸서리를 치면서 바닥에 어지러이 널려 있는 서류철 중 하나를 손에 들었다.
『제국 제3 기사단의 4분의 1분기 예산 심사에 대한 심층 예측 보고서』
겉만 보기엔 중요한 서류 중 하나로 보이리라.
하지만 서류철을 열면 안에는 그림이 있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남자의 완벽한 알몸 그림이.
‘아니, 완전히 알몸인 건 아니지.’
한 곳을 제대로 그리지 못했으니까.
난 아직 떨리는 손끝으로 그 부분을 톡 건드렸다.
남자의 다리 사이에 존재하는 것.
그러니까, 성기.
그걸 제대로 못 그렸다.
‘정확히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니까!’
난 회계 담당이지만 기사단 소속이라 여러 기사들의 벗은 몸을 본의 아니게 목격한 적이 몇 번, 아니, 사실 꽤 있었다.
하지만 하체까지 홀딱 벗은 건 본 적이 없으므로 성기가 정확히 어떤 모습인지 몰랐다.
그러니 그림이 이렇지만, 분명 키니라스는 내가 남자의 알몸을 그렸다는 걸 눈치챘으리라.
‘하필 키니라스에게 들키다니!’
내 오랜 소꿉친구.
하지만 지금은 가깝지 않았다.
싸우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나이가 들면서 서로 바빠진 데다 키니라스가 3년이나 멀리 다녀오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멀어진 경우였다.
‘아니, 사실은…… 내 탓도 좀 있지.’
어렸을 때 키니라스는 나보다 작고 귀여웠었다.
특히 볼살이 탱탱해서, 자주 만지작거리곤 했다.
하지만 사막 나라에 3년간 파견을 갔다 온 키니라스는 과거와 아주 많이 달라졌다.
나보다 한 뼘이나 더 커졌고, 어깨는 그야말로 떡 벌어졌다.
무엇보다 몸이 기사답게 엄청난 근육질이 되었다.
새하얗던 얼굴도 구릿빛으로 그을리고, 새까맸던 머리카락도 흑갈색으로 탈색되었다.
통통한 볼살은 당연히 사라졌으며 순했던 눈빛은 강렬해졌다.
당연히 적응이 안 됐다.
‘많이 어색하기도 했고…….’
때마침 내가 제3 기사단의 회계 부팀장으로 승진하면서 아주 바빠진 탓에 그가 돌아온 지 한 달이 흘렀는데도 제대로 말도 못 해 봤다.
그런데 방금, 키니라스가 내 사무실로 찾아왔다.
좀 당황했지만 일단 사무실 안으로 들였는데, 난 허둥지둥하다가 책상에 쌓여 있는 서류철을 넘어뜨리고 말았다.
키니라스는 날 도와서 서류철을 정리해 주다가 우뚝 멈추었었다.
‘왜 그러나 했더니.’
이 남자 알몸 그림을 본 거였다!
그 뒤로 난 키니라스를 바로 사무실 밖으로 쫓아냈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중이었다.
‘으아아아아!’
다시금 머리를 쥐어뜯어 보았으나 해결책이 떠오를 리 만무했다.
‘정말 죽고 싶네…….’
사실, 키니라스는 내 첫사랑이었다.
그가 머나먼 사막 나라로 떠난 뒤에야 깨달은 감정.
그 후로 3년 동안 난 그가 돌아오길 간절하게 기다렸다.
‘돌아오면 데이트 신청을 할까 했는데.’
이제 변태로 보일 테니, 연인이 되기는커녕 데이트도 안 받아줄 게 뻔했다.
당장 앞으로 얼굴을 보는 것도 걱정이었다.
“으으…….”
난 한참을 신음하다가 서류철을 꼭 닫고 책상 위에 올린 뒤 일어섰다.
얼굴, 아니 온몸이 뜨끈뜨끈하니 일단 차가운 물에 세안할 생각이었다.
사무실 문을 연 순간, 소리 없는 비명이 나왔다.
“……!”
키니라스가 앞에 서 있었다.
그는 내가 정말로 소리치기 전에 잽싸게 들어와 등 뒤로 문을 꼭 닫았다.
“뭐, 뭐, 뭐 하는 거야?”
“뭐 하긴, 이야기하려는 거지.”
키니라스는 씩 웃더니 툭 물었다.
“방금 왜 쫓아낸 거야?”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안 그래도 빨개진 얼굴에 열이 더욱 올라버렸다.
“너 얼굴색이 잘 익은 사과 같네. 그림을 들킨 게 부끄러워서 그러는 거지?”
“……!”
“나 이만 가 봐야 하거든. 이따 퇴근하고 데리러 올게. 같이 저녁 먹으면서 이야기하자. 그 그림에 대해서.”
“너, 너!”
“일곱 시에 봐.”
키니라스는 그 시간이 기대된다는 듯, 더욱 크게 웃고는 바람처럼 사라졌다.
난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눈을 깜빡였다.
‘으아아아!’
마음속으로 비명을 지르고, 머리를 쥐어뜯어도 변하질 않았다.
첫사랑에게 몰래 그린 남자 알몸 그림을 들켰다는 사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