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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비밀스러운 꽃 (109)화 (110/113)

109화

국혼조차 제대로 치르지 못하고 얼떨결에 정식으로 입궁하여 황후의 자리에 앉게 된 지 벌써 한 달째.

생각했던 것보다 모든 일이 너무 무난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예상했던 그 일들이 전부 한 치의 어긋남 없는 사실이어서 속속들이 밝혀지는 모든 진상이 놀랍지도 않았다.

가벨론 공작의 수하가 역병이 발생되었던 왕국에서 쥐를 몇 마리 잡아 우리 왕국에 풀었단다. 그러니까 가벨론 공작이 우리 왕국에 역병을 일으킨 것. 그것이 왕궁에 숨어 있던 에쉬를 노린 짓이었음도 드러나게 되었다. 또한 에쉬에게 보낸 암살자도 전부 가벨론 공작의 사병이었다.

그것을 전부 증언한 이는 시온. 가벨론 공작의 측근이자 에쉬에게 반역 사실을 몰래 고발한 그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 외에도 악행이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라 전부 기억하지도 못했다.

사람이 그만큼 악한 마음을 품을 수도 있구나 싶기도 했고.

가벨론 공작과 반역을 함께 도모했던, 결코 적지 않은 인원인 스물세 명의 귀족들은 각자 저지른 죗값대로 교수형에 처하게 되었고, 가벨론 공작은 일일이 나열하기도 어려운 죄명이 너무도 많아서 삼 일 후에 단두대에서 그 목이 잘릴 예정이다.

그 재판에 자리하지 못해 직접 듣진 못했지만. 에쉬가 재판 내용에 대해서 나름 상세하게 설명해주어 어느 정도 상황파악은 할 수 있었다.

[그래도 타국의 이목이 신경이 쓰이긴 했었는지, 나를 몰아내고 그 자리에 타국의 왕자 중 한 명을 앉히려고 했었나 보더군요. 그 왕국과 몰래 결탁하여 대리 황제를 세우고 막내딸을 황후로 보내 태어날 아이를 황태자로 만들려 했다는 정황이 드러났습니다.]

[아주 철저하네요. 그럼 그 왕국도 반역에 가담했다는 뜻이 되려나요?]

[듣자 하니 그 왕국에 왕자들이 꽤 많은가 봅니다. 그중 가벨론 공작과 결탁한 왕자를 제국으로 넘겨 꼬리를 자를 생각인 모양이더군요. 워낙 제국에 우호적인 왕국이라 이번만큼은 속아 넘어가 주기로 했습니다.]

그 왕국의 무기 및 물자를 지금까지 빼돌린 국가 자금으로 구입했다고. 또한 몰래 키웠다던 사병들 역시 그 왕국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인간의 욕심이 끝도 없는 미궁과도 같다는 생각에 혀를 내둘렀다. 에쉬는 자신을 위협하는 이들이 없다면 탐내지도 않았을 자리를, 왜 그리 가지고 싶어 안달인지 모르겠다면서 쓴웃음을 흘렸다. 그를 위로해줄 수 있는 말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저 아무 말 없이 꼭 안아주기만 하였다.

또한 황태후는 과거 선황을 보필한 황궁 최고의 위치에 있었던 만큼 쉽게 사형을 내릴 수가 없어서 그 작위를 박탈하여 유폐하기로 결정하였다. 게다가 황태후궁에서 오랜 시간 황태후와 함께한 이들 역시 전부 사형에 처하거나 평생 감옥에 갇힌 채로 죽음을 맞이하게 했다.

특히 에쉬의 어머니를 죽음까지 내몰았던 황태후의 시종은 아주 특별한 처벌이 결정되었다는데, 에쉬가 그에 대한 이야기는 대충 넘기길래 알아봐야 좋은 것이 아니구나 싶어 묻지도 않았다.

“제국을 집어삼키고 싶다는 야망을 품었던 꽃이, 결국은 저렇게 지고 마는군요.”

나는 맞은편에 앉아 한숨과 함께 중얼거리며 차를 호록 마시는 마리아를 향해 싱긋 웃었다. 그 옆에 앉아 눈만 도륵도륵 굴리면서 아랫입술을 삐죽 내밀고 있던 레이니드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아직도 에쉬의 부인 자리에 앉아 있는 내가 못마땅한 모양이다. 언제쯤이면 친해질 수 있을지.

“세상에 완벽한 비밀은 없다고 하지요. 욕심이 과하면 화를 불러일으킨다고도 하였으니 스스로 자처한 거라고 생각해요.”

“……황제 폐하와 정말 천생연분이시네요. 전에도 이런 기분을 느끼긴 했었는데. 선황 폐하와 지금의 황제 폐하를 낳아주신 그 여자가, 두 분과 꼭 빼닮았어요. 칼같이 날카롭고 냉정할 것 같은데…… 그 속은 참 따뜻했지요.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폐하의 어머님을 잘 아시나요?”

“잘 알다마다요. 우연찮게 같은 날 같이 입궁했는데, 그 여자는 하녀였고 저는 선황 폐하의 조모이셨던 황태후 폐하를 모시는 시녀였거든요.”

하녀와 시녀의 계급 차이는 상당히 컸다. 황궁의 잡일을 도맡아 하는 하녀는 대부분 평민이었고, 시녀는 귀족가의 자제들만 가질 수 있는 자리였으니까. 해서 에쉬의 어머니가 황후의 수석 시녀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아주 큰 공을 세워 특혜를 받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분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하게 들을 수 있을까요?”

“평민치고는 꽤 영민하고, 맡은 일에 아주 열정적이어서 주변인들에게 시샘을 많이 받았었습니다. 게다가 당시 황태자 전하였던 선황 폐하와의 친분도 있었기 때문에 뒷소문도 꽤 많았지요. 오죽하면 당시 황태후 폐하께서 몰래 불러다가 호통을 치시기도 하셨답니다. 황태자의 앞길을 막지 말라고요.”

“아……. 그래서요?”

“그 여자도 일부러 더 황태자 전하를 피했고, 당시 황후 폐하께서조차 더는 마주치지 못하도록 아예 구석진 곳으로 배정하기도 하였답니다. 하지만 원래 마음이라는 것이 마음대로 끊어내기가 쉬운 것은 아니지요. 결국 다시 몰래 만나 사랑을 키워갔지만, 그것을 알게 된 황태후 폐하께서 크게 노하시며 황태자비로 가벨론 공작가의 여식을 불러들였답니다.”

말하다가 목이 막히는지 다시 차를 한 모금 마신 마리아의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기는 한데, 말하기 어렵다는 느낌이었다.

해서 나는 먼저 말을 꺼낼 때까지 그저 조용히 기다리기만 하였다.

“사실…… 황태자 전하께서 워낙 외모가 출중하시다 보니 많은 황궁 시녀가 그분과의 사랑을 꿈꾸었지요. 저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래서, 두 사람이 만나는 것을 제가…… 고자질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랬군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당시 황태자비께서 그 여자를 자신의 수석 시녀자리에 앉혀두어 얼마나 말이 많았는지 모릅니다. 저 역시 전하께서 제정신인가 싶기도 했고, 자신의 부군이 아끼는 이를 홀대할 수 없다기에 참으로 선한 분이구나 생각했었지요. ……그 악랄한 속마음을 너무 뒤늦게 깨달았지만요.”

아까보다 더 그늘진 얼굴이 안타까워 무어라 위로를 해주어야 할지 고민했으나, 마리아는 자조하듯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여자를 미워했습니다. 그 여자가 선황 폐하의 정부가 되었을 때에도 빼앗긴 기분이었고, 그리 다정했던 황후 폐하를 아프게 만들어 더욱 미웠습니다. 해서 황후 폐하의 제안을 받아 거짓 황자를 낳았지요. 내 아들은, 선황 폐하의 아이도 아니었고…… 내 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레이니드가 선황 폐하의 딸이 아니야? 파빌리엔과 특히나 쏙 빼닮아서 당연히 황족인 줄 알았는데.

레이니드도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듯 그저 눈을 내리깐 채 뾰로통한 표정으로 과일주스를 홀짝홀짝 마시기만 하였다. 과연 에쉬도 이 사실을 알고 있을지.

“선황 폐하와 밤을 보냈다는 거짓 상황을 만들어 정부가 되었고, 꽤 안락하고 편안한 생활을 하였지요. 그러다가 승마를 하던 도중, 낙마 사고로 인해 당시 배 속에 있던 첫 아이를 유산하게 되었습니다. 임신 사실도 몰랐고, 황후 폐하께서 그러더군요. 제가 탄 말에 약을 탄 자가 바로 그 여자라고요.”

“정말, 그분이 그랬나요?”

“그 여자가 사망하고 몇 년 더 지나서 알게 되었지요. 그게 전부 다 황후의 모략이었다는 것을요. 진작 알았어야 했는데……. 제가 한 짓들이 죄 없는 사람들의 목숨을 수없이 위태롭게 만들었다는 것을, 왜 몰랐는지…….”

결국 마리아도 이용당했었구나. 상대의 감정을 자신의 입맛대로 이용하여 악랄한 짓은 남의 손에 맡기고 정작 본인은 고고한 척. 그야말로 정말 악인의 행태가 아닌가.

“그 여자에게도 용서를 구하고 싶다는 생각은 했으나,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기도 하고, 유골함은 본국에 모셔두었다 하여 엄두도 나질 않았습니다. 황제의 정부는 평생 정해진 곳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까요.”

“꼭 용서를 가서 구해야 하는 법은 없지요. 평생 자신의 잘못을 절대 잊지 마셔야 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래도 일단, 지금의 황후 폐하께 먼저 용서를 구하고 싶습니다. 저를 벌하신다 하여도 달게 받을 생각입니다.”

“제게요? 무슨……?”

“오 년 전, 제 딸이 셋째 황자 전하의 와인에 독을 타게끔 유도한 건 바로 저입니다. 사실 여부를 말씀드리자면 당시 황후 폐하께서 셋째 황자 전하가 황태자의 자리를 위협한다며 제게 도움을 요청하셨고, 그때까지도 그 죽은 여자만 생각하던 선황 폐하가 너무 밉기까지 하여 가담하게 되었습니다.”

아……. 그래서 레이니드가 지금까지 범인을 말하지 못하고 입을 꾹 다물고 있었던 거였구나. 왠지 그럴 거라고 생각은 했었는데, 그게 다 황태후의 계략이었음을 확인받고 나니 가슴에 묵직한 돌덩이가 사라진 기분이었다.

비록 황족 시해로 벌을 받아야 마땅하겠지만, 그건 에쉬가 판단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왜 황제 폐하께 직접 용서를 구하지는 않는 건가요? 제게 용서를 구할 일은 아닌 것 같은데.”

“그러게요. 황태후께서 저를 공범으로 끄집어내면 조용히 처벌받으려 했는데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그냥 폐하와 가장 가까운 황후 폐하께 솔직히 토로하고 싶은 욕심이랄까. 이기적인 생각일지 모르나 그 죄를 덜어놓고 싶었습니다.”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네요.”

“겁쟁이라서요. 황제 폐하께서 만약 제게 벌을 주시겠다 하시면, 조용히 사람을 보내 제 목숨을 거두게 해주십사 부탁을 좀 드려도 되겠습니까?”

의도를 모르겠다. 정말 죄를 좀 덜고자 하는 건지, 뻔뻔한 건지. 처벌이 두려운 건 누구나 똑같겠지만, 내게 인정을 구하고 싶은 걸까?

“제겐 결정 권한이 없으니 폐하께 전달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황후 폐하.”

정말 너무 감동했다는 듯 눈가에 눈물이 촉촉이 고인 표정을 보니 마음이 조금 약해지기도 하고. 워낙 순한 얼굴이라 이 얼굴로 그런 독한 짓을 했다는 것도 믿어지지가 않는다.

“황후 폐하. 황제 폐하께서 당도하셨습니다.”

그때 마침 에쉬가 도착하였다는 소식에 기쁘면서도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이래저래 참 힘든 사랑을 하지 않으셨나 싶어서 몇 번 울컥하기도 하였는데. 지금도 괜히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이를 꽉 깨물고 참아내기 위해 애를 썼다.

곧 응접실 문이 열리고 조금 피곤해 보이는 에쉬가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나 역시 환하게 웃는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맞이하였다.

“지금 재판 중인 거 아니에요, 에쉬? 온다는 기별이라도 했으면 준비를 했을 텐데요.”

“잠시 휴정을 선언했습니다. 손님이 와계신 줄은 몰랐군요. 요즘 황궁에 자주 오십니다, 마리아? 레니는 오늘 평소와 조금 다르구나. 설마 내가 부인을 들였다고 아직도 삐쳐있는 게냐?”

그러고 보니 국혼 전까지만 해도 에쉬만 보면 달려들어 폭 안기곤 했었는데, 국혼 이후로는 그런 태도를 볼 수가 없었다. 오히려 에쉬를 낯선 사람 취급하며 눈도 잘 안 마주치려고 하였다.

게다가 오늘은 진짜 화난 것처럼 아랫입술을 오리주둥이처럼 삐죽거리고는 눈물까지 글썽거려서 조금 놀랐다. 에쉬가 결혼한 게 그렇게 충격적인 걸까? 아니면 정말 내가 그 정도로 마음에 들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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