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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비밀스러운 꽃 (104)화 (105/113)

104화

내일, 그리고 내일 모레에 모든 판세가 뒤집어질 것이다. 어느 쪽이든 승자와 패자로 갈리겠지.

“황태후 폐하는 아직도 궁에 들어오지 않은 상태인가요?”

“들어오고 싶어도 틈이 없어 들어오지 못하는 상황이 아닐까 싶군요. 살인사건에 대한 이유로 그쪽에 황궁 기사들을 배로 배치하였으니까. 아마 그 삼엄한 경비를 뚫고 들어오는 건 쉽지 않을 겁니다.”

아마 지금이 역대 가장 안전한 황궁일지도 모른다며 너스레를 떠는 에쉬가 꽤 신이나 보였다. 그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되는 것이, 나 역시 황태후가 여태까지 저질러왔던 질 나쁜 행태에 대해서 많은 것을 듣게 되었으니까.

“그럼 계획대로 내일 동이 트자마자 제가 라이온 백작 부인의 마차에 몰래 숨어 입궁하면 되는 건가요?”

“예. 시종장에게 언질을 해두었으니 그를 따라 나를 찾아오면 됩니다.”

이미 며칠 동안 함께 방법을 궁리하며 계획을 착실하게 세워두었다. 하지만 아무리 철저한 계획이라도 변수는 있기 마련이기 때문에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지는 않을 수가 없었다.

카시안이 있으니 에쉬의 안전은 보장이 되고, 나는 유령의 방어마법이 온몸을 감싸고 있어서 누구도 건들지 못하는 상태이기는 하지만.

“지하세계에서 피눈물을 흘리고 계실 선황 폐하와 당신의 어머니가 우리를 도와줄 거라고 믿어요. 죄를 지은 이들이 그 죗값을 톡톡히 치를 수 있기를 바라요.”

부디 모든 일이 우리의 뜻대로 되기를.

에쉬는 오늘 밤부터 비밀리에 진행될 우리의 계획을 다시 한번 점검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나와 무사히 황궁에서 재회하길 바란다는 말을 남기고 다시 돌아갔다.

그날 밤. 그날따라 유독 잠이 오질 않았다. 거사를 눈앞에 두고 있어서겠지만, 전에 왕국을 떠나 제국으로 몰래 오던 그날처럼 갑자기 가슴이 선뜩해지기도 하여 불안감이 휩쓸고 지나가기도 하였다.

‘그저 기우겠지. 불안한 건 당연한 거야. 목숨을 보존할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실하게 알 수가 없으니까.’

그렇게 스스로를 위안하며 양을 수백 마리 세고 나서야 겨우 잠에 빠질 수 있었다.

그러다가 이상하게 잠을 오래 자는 기분을 느꼈다. 분명 오늘 동이 트자마자 백작 부인과 함께 황궁으로 입궁하기로 하였는데.

늦게 잔 만큼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신경을 약간 곤두세우고 있었건만. 주섬주섬 일어나서 앉은 채로 보이지도 않는 주변을 두리번거렸으나 주변은 너무도 조용했다. 아침에 항상 들려오던 작은 새소리조차 들려오지 않아서 왠지 예감이 좋질 않았다.

“밖에 아무도 없나요?”

내가 머물던 방은 꽤 넓은 편이어서 말을 한다고 울리는 법은 없었는데, 지금은 내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허공을 떠다니고 있었다. 그제야 원래 있던 실내의 쾌적한 공기가 아닌 꿉꿉하고 습기가 가득 찬 공기가 흐르고 있음을 깨달았다.

대체, 여기는 어디지?

“미안하지만 잠시 여기 있어 줘야겠어. 입궁은 아직 좀 이르거든.”

갑자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면서 또 오싹한 소름이 돋아났다. 그 유령이다. 그렇다는 건, 지금 내가 있는 곳이 그 저택은 아니라는 뜻일 터.

“지금 이게 무슨 짓이에요. 왜 자꾸 우리 계획을 수포로 돌리는 건데요?!”

“말했듯 네가 입궁하는 건 일러. 아직은 때가 아니야. 지금 입궁하면 네 존재를 바로 들킬 거거든.”

“당신 대체 누구 편이에요? 이쪽도 저쪽도 그 어느 곳에도 몸담지 않은 채로 왔다 갔다 하는데, 내가 그 말을 어떻게 믿어요? 내게 복수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상대를 대체 어떻게 믿냐고요!”

가장 중요한 순간에 훼방을 놓는 그가 너무 밉다. 거의 매일같이 에쉬가 없을 때 나 혼자 있는 방으로 찾아와 깐족거리기만 하는 유령 주제에. 그의 의도를 전혀 알 수 없어서 갑갑했다.

내 비명 같은 외침이 꽉 막힌 실내를 가득 메웠으나 유령은 대수롭지 않게 맞받아쳤다.

“뭐, 내 복수는 내가 알아서 하는 거고. 일단은 내 복수가 이뤄지려면 너와 내 동생이 살아 있어야 하니까. 지킬 건 지켜야지. 다 널 살리려고 이런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 건데 협조하지 않으면 강제할 수밖에 없어.”

도리어 구박에 협박이라니. 어처구니가 없어서 쓴웃음이 절로 지어졌다.

“그럼 에쉬에게 상황을 전해주기라도 해줘요. 내가 갑자기 사라지면 불안해할 거예요.”

“이미 알걸? 카시안 그놈이 걸어둔 마력을 뚫고 나오느라 좀 고생했거든. 마력을 건드렸으니 네가 내 보호를 받고 있다는 건 눈치챘을 거다.”

보호라니. 이게 보호란 말인가. 어쩐지 잠들기 전부터 느낌이 이상하더라니. 그저 기우이길 바라면서 아무 방비 없이 잠드는 게 아니었는데.

“오늘 국혼을 치르기 위해 왕국에서 내 대역이 입궁할 거예요. 에쉬가 다른 여자와 국혼을 올리게 둘 생각인 건가요? 설마 이것도 하나의 복수로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요?”

“아, 그 방법도 꽤 재미있겠는데?”

“……전 세계의 퇴마사를 불러다가 당신을 꼭 지하세계로 보내버릴 겁니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까칠하기는.”

저 유령을 상대하면 할수록 내 수명이 깎이는 기분이다. 목구멍에서 재수 없다는 말이 절로 나오게 하는 능력도 다른 의미로 지나치게 대단하다.

내가 씩씩거리면서 이를 가는 모습이 꽤나 재미있는지, 유령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지금 웃음이 나와요?!”

“나중에 나한테 고맙다고 감사 인사나 거하게 할 준비부터 하지 그래? 그때 화내서 미안하다고 사과도 하게 생겼는데?”

“대체 뭘 믿고 그런 말을 하는 겁니까?”

“말했듯 황궁에 가벨론 공작과 황태후가 심어둔 간자가 총 스물이 넘어.”

“스물이…… 넘는다고요?”

황궁에 사람이 워낙 많기는 하지만. 그쪽에서 심어둔 첩자들이 그렇게나 많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기껏해야 다섯 손가락 안에 들 거라고만 여겼는데.

“그 명단도 확보했고, 반역을 계획한 문서들과 그에 가담한 자들의 명단 또한 이미 동생의 손에 들어갔지. 바로 조금 전에 말이다.”

“……대체 당신은 그런 걸 어떻게 다 알고 있는 거예요?”

“내가 지휘했으니까.”

잠시 생각 회로가 끊어지듯 멍하다가 번뜩 정신이 들었다. 저 유령의 하는 짓이 건달처럼 보여서 그렇지, 황제의 대리인 자리에도 있을 만큼 제법 머리가 돌아가기는 하는구나.

그렇다는 건 설마 그 공작의 측근이라던 사람이 에쉬의 편에 서도록 회유한 것도 유령일까?

“그쪽 의도를 모르겠어요. 언제는 적인 것처럼 굴다가 지금은 아군인 척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데, 그런 당신을 누가 어떻게 믿어요?”

“나야 내가 직접 나서는 건 아니고 나의 대리인이 또 있지. 그 녀석이 내 명령을 받아 움직이니까. 또 굉장히 신뢰할 수 있는 녀석이거든.”

대리인을 세워 움직이는 것도 에쉬에게 배운 거겠지. 일단 에쉬의 목숨을 위협하는 건 아니어서 조금 안도하였다. 그래도 온전히 마음을 놓을 수는 없지만.

“그래서 여기는 또 어디예요? 어디 지하 감옥쯤 되는 건가요?”

“음, 드레곤의 레어?”

“……미쳤어요?! 아니, 지, 진짜예요?!”

“아직 수면기라 안전해. 여기만큼 안전한 곳도 없으니까.”

농담인지 진담인지. 드레곤의 레어라니. 살면서 절대 올 일이 없을 거라고 여겼던 위험천만한 장소에 와 있다고 생각하니 아찔하다. 에쉬와 만나면서부터 경험해본 적 없던 세계에 너무 자주 발을 들이는 것 같아서 이러다 지하세계도 다녀오게 되는 거 아닌가 싶어 덜컥 겁이 났다.

“그럼 얌전히 있어. 괜히 돌아다녔다가 드래곤의 수염이라고 밟게 되면 너는 물론이고 근처 왕국들이 뼈도 못 추릴 테니까.”

“이, 이봐요! 잠깐……!”

옅은 바람과 함께 다시금 고요함이 찾아와 그대로 얼어버리고 말았다. 지금 나를 드래곤의 레어에 두고 혼자 가버린 거야? 제정신이야, 저 유령?

덕분에 나는 정말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내가 앉아 있는 곳은 그래도 넓은 침대였는데, 그 위에서 누웠다가 일어나 앉았다가 뒹굴뒹굴하기만 하면서 유령의 말대로 얌전히 기다리기는 했다.

꼬르르륵ㅡ

한참 동안 그러고 있다가 웃기게도 배꼽시계가 요란하게 울려서 내가 살아는 있구나 싶어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사람이 아무것도 할 것도 없이 방치되어 있으면 무기력해지고 잠만 자게 되는 건 당연한 결과인 것 같다. 여기가 드래곤의 레어라는 사실에 겁이 났던 것도 이제는 뒷전이 되었다.

“배고파…….”

몇 시간을 쫄쫄 굶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에쉬는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까? 오늘 오후면 국혼 행렬이 도착할 거고, 진짜 이러다가 에쉬가 다른 여자와 손잡고 결혼서약서를 작성하게 되는 건가 싶어서 울적해진다.

아무리 위험하다고 해도 에쉬의 곁에는 꼭 내가 서고 싶었는데.

“자. 어서 가서 준비시켜.”

“……아, 아가씨! 아이고, 이런!”

침대에 늘어져 한숨만 푹푹 내쉬고 있을 때, 유령의 목소리와 오랜만에 듣는 유모의 외침이 귓가에 꽂혔다. 호들갑을 떠는 유모가 거의 뛰다시피 내게 다가와 손을 대려기에 몸을 흠칫거렸다.

지금 내게 유령의 마력이 걸려있어서 손대면 안 되는데?

“세상에, 이게 다 무슨 일이랍니까? 네? 우리 귀한 아가씨께서 어쩌다 이런 엉망인 몰골이랍니까……!”

그런데 내 얼굴을 더듬더듬 만지며 며칠 제대로 빗질을 하지 못하여 엉망이 된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는데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유령이 내게 건 방어마법을 풀어낸 걸까?

“시끄럽고 어서. 시간 없으니까 들어가 씻기고 옷이나 갈아입혀.”

유령의 단호한 명령에 유모가 입을 꾹 다문 채로 나를 조심조심 어디론가 데리고 들어갔다. 드래곤의 레어에 이런 침대가 있는 것도 놀라웠는데, 물이 나오는 욕실이 있는 것도 어리둥절했다. 레어에 이런 것이 대체 왜 필요한 건지.

“이게 다 무슨 일이야, 유모?”

“저도 모릅니다. 이번 국혼 행렬에 소수의 인원만 붙었고, 저는 본가에 머물고 있었는데 갑자기 저분이 나타나서는 아가씨의 단장을 맡기셨습니다.”

“……아버지는?”

“국혼 행렬을 직접 이끌고 가셔서, 저는 그쪽 상황을 잘 모릅니다.”

갑자기 내 단장을 맡겼다는 건, 단장하고 나를 황궁으로 데려가는 걸까? 그쪽 상황을 알지 못해 답답하다. 유모는 본가에 있었다면 알고 있는 것이 없을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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