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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비밀스러운 꽃 (102)화 (103/113)

102화

황궁 내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진 거라면 절대 가벼운 이야기는 아니다. 그것도 황태후궁에서, 황태후를 노린 거라면 제국 전체가 발칵 뒤집힐 일이니까.

“자세하게 말해 봐요.”

“정확히 내가 이곳에 머물던 늦은 새벽에 발생했답니다. 라이온 백작에게 그들이 황제궁을 염탐하려 하니 주의 깊게 상황을 살피라 전했던 건 알지요? 해서 유심히 보았는데 정문으로는 누구도 출입하지 않았답니다. 그런데 제 집무실에는 누가 다녀간 흔적이 있긴 했더군요.”

“집무실이면, 휴게실을 찾으러 온 거군요.”

“맞습니다. 결국 못 찾은 것 같지만 오전에 돌아가 확인하니 집무실 내부를 몰래 뒤진 것처럼 서류가 흐트러져 있었습니다.”

휴게실 창문은 안쪽에서만 열 수 있는 구조로 되어있었다. 그러니 창문으로 올라갔다 해도 밖에서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황제궁에 누군가 숨어들어온 건 사실이라는 거네요.”

“아마도 그렇겠지요. 비밀문서는 따로 보관해두니 아무것도 얻은 것은 없겠지만. 게다가 황태후궁에서 중대한 사건이 터졌는데도 황태후는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지난번에 황태후가 대역이라 했던가요? 그렇다면 조만간 진짜 황태후가 몰래 입궁을 하겠네요. 살인사건은 아무리 황태후여도 피해갈 수는 없을 테니까.”

“참 희한한 노릇입니다. 황태후궁의 시종이 끔찍하게 살해되어 방치되어 있던 것은 대체 누구의 소행인지. 가벨론 공작 측에서는 누군가 모함을 하기 위해 벌인 발칙한 짓이라 하더군요.”

가벨론 공작이 몰래 반역을 꾸미고 있는 게 사실이라면 이런 상황은 달갑지 않겠지. 황제궁도 아니고 황태후궁에서 사람이 죽었다면 황태후가 의심을 받을 테니까. 만약 황태후가 궁을 지키고 있었다면 본인 선에서 수습을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꼭 범인을 색출해내길 바라요.”

“오늘 종일 추적을 해보았으나 실마리 하나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더 이상한 건, 그 사망한 시종이 궁에 들어와 일을 시작한 지 고작 삼 일째라는 겁니다. 황궁의 다른 이들과 친분을 다질 시간도 없었고, 그에게 원한이 있을 법한 사람조차 없다고 하니.”

궁에 들어온 지 삼 일 된 황태후궁의 시종. 그렇다면 가벨론 공작 쪽에서 심어둔 사람인 걸까? 내가 제국에 몰래 입성한 지 오늘로 엿새쯤 된 것으로 알고 있으니까.

“에쉬, 설마…… 집무실을 염탐하러 온 이가 그 죽은 시종인 건 아니겠지요?”

“그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지만, 그건 자살이라 할 수 없는 흔적이었습니다.”

“그야 아무 정보도 얻지 못했으니 이대로 보고를 올리면 자신의 목숨도 보장하지 못하니까, 타살이라면 명령을 하달한 윗사람이 있었을 거고. 아니, 그렇게 따지면 또 하필 황태후궁에서 살해를 하진 않았을 거고……. 아니면 정말 공작가에 에쉬의 편이 있는 거 아닐까요?”

지난번 에쉬에게 공작의 행태를 낱낱이 밝혀낸 이가 공작의 측근이라고 하였지. 그렇다는 건 그 측근이 방해할 생각으로 자신의 수족을 심어 일부러 그런 짓을 벌이진 않았을까?

“그 사람이요. 그 가벨론 공작의 측근, 그 사람이 무언가 수를 쓴 걸지도 모르잖아요. 이미 에쉬에게 훗날의 안전을 약속받았다고 했으니까 진짜 에쉬를 도우려는 걸지도요. 어떻게 생각해요?”

“……충분히, 가능성은 있다고 봅니다. 아직 완전하게 믿을 만한 상대는 아니라고 보지만, 라이온 백작이 이 이야기를 들었다면 확실하다는 결론을 내릴지도 모르겠군요.”

픽 웃는 에쉬가 나직하게 한숨을 뱉어내었다. 에쉬의 반응도 이해는 간다. 황제의 자리에 있으나 그 누구도 쉽게 믿어서는 안 되는 위치다 보니 섣불리 확신할 수 없겠지. 더군다나 어쨌든 반역을 시도하려는 무리에 밀접하게 소속되어있는 상대라면 나라도 믿지 못할 것 같다.

그러나 분명, 이번 일은 우리 편에 선 누군가의 도움일 가능성이 크다. 아니면 공작 측의 누군가가 크게 실수한 경우겠고.

“그자를 다시 만나봐야겠습니다. 미안합니다, 슈아. 조금 더 머물고 싶지만, 당신의 안전을 생각하면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군요.”

“어차피 지금 당신 얼굴도 못 보는 걸요? 이렇게 눈앞에 있는데도 만지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건, 고문과도 같아요. 조속히 이번 상황들이 해결되기를 바랄 뿐이에요.”

“……정말 형님을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아주 정확하게 내 심리를 꿰뚫어 보았더군요. 내게 이런 시련을 내리는 것이 복수라 여길 줄이야. 세상에 그 어떤 고문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잔인합니다.”

에쉬가 말하기를 그 유령이 머리가 좋은 편은 아니라고 했는데, 사람 골탕 먹이는 장난을 꾸미는 건 아주 손에 꼽을 정도로 유능한 것 같다. 차라리 그와 닿아본 적이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아쉬움이 남진 않았을 텐데.

“어서 가요. 가서 꼭 모든 사실을 밝혀내고 부디 당신의 앞날에 방해가 되는 이들이 전부 스스로 자멸하기를 바라요.”

“그러겠습니다, 슈아. 불편하겠지만 조금만 참아주세요.”

“하나도 안 불편해요. 라이온 백작 부인이 제게 얼마나 많은 힘이 되어주는데요? 나중에 꼭 그 백작 부부와 당신의 관계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고 싶어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별건 아니지만 두 사람이 워낙 재미있는 관계다 보니. 언젠가 기회가 되면 그들의 연애 시절에 있었던 일화도 몇 가지 털어놓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내게 입이라도 맞추고 싶은데 그러질 못해 유감이라는 듯 입맛을 다시는 그가 나직하게 좋지 않은 말을 짓이기면서 방을 나갔다. 아마 유령에 대한 욕설쯤 되려나?

에쉬가 떠나고 나서 살짝 아차 싶었다. 라이온 백작 부부가 오랜만에 만나 두 시간이나 함께 있는 것을 허락받았는데, 시간을 채우지도 못하고 백작이 끌려 나가게 생겼으니.

‘나 원망받는 거 아닌지 몰라.’

그렇게 잠시 뒤, 백작 부인이 내 방으로 돌아왔고 예상대로 잔뜩 서운하다는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래요? 갑자기 급하다며 가봐야 한다고 그이를 끌고 가는 바람에 키스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어요. 이건 마치 맛있는 음식을 딱 한입 맛보았는데 그대로 빼앗긴 기분이라고요.”

“황궁에 좀, 큰 사건이 벌어졌다고 해요. 황궁 내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바람에…….”

“사, 살인사건이요?!”

백작 부인은 그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듣지 못한 것 같았다. 해서 나는 에쉬에게 들었던 상황을 털어놓되, 범인이 누구인지 예상했던 부분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았다.

백작 부인이 어느 정도까지 알고 있는지도 모르고, 백작은 자신의 부인에게 황궁의 일을 자세히 알려주진 않는 것 같았다. 그녀는 내가 아는 것의 절반의 절반도 듣지 못한 듯이 보였다. 괜한 걱정을 끼치게 하고 싶지 않아서인지, 원래 황궁 내에서 일어난 일은 함부로 발설하는 것이 아니긴 하지만.

“그런 엄청난 일이……. 워낙 황궁이 위험한 곳이라고는 들었지만, 막상 들으니 그이가 참 험난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투정은 그만 부려야겠어요.”

조금 주눅이 든 백작 부인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아까도 투정을 좀 부렸나 보다. 나도 그 마음을 잘 알지. 도사리는 위험 속에서도 그 자리를 지켜야만 하는 에쉬 때문에 나 역시 항상 전전긍긍하고 있으니까.

“맞아요. 차라리 황족이든 귀족이든 아무것도 아니었으면 이런 기분을 느끼지는 못했을 거라고 가끔 생각은 해요. 권력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의 목숨이 더 소중하고 귀하다고 생각하거든요.”

“……폐하께서 제게 이 일을 맡기며 하신 말씀이 이제 이해가 좀 되네요. 영애는 뼛속까지 귀족인데 생각하는 건 조금 남다른 편이라 아마 저와 대화가 잘 통할 거라고 하셨거든요.”

에쉬도 가끔 그런 말을 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완벽한 귀족으로 보여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느낌이지만, 알고 보니 마음이 참 따뜻하다고.

솔직히 그런 말은 처음 들었다. 항상 차갑다는 말을 더 많이 들어서. 어머니도 나더러 아버지를 닮았다고, 겨울에 태어난 아이 아니랄까 봐 어쩜 그렇게 차가운지 모르겠다고 하셨건만.

나는 설핏 터져 나오는 웃음을 흘리면서 손가락으로 뺨을 긁적거렸다.

“폐하를 만나고 나서 좀 바뀌기는 했어요. 그전까지만 해도 세상을 단편적으로만 보았거든요.”

“사랑이라는 게 그렇더라고요. 나를 바꿀 수 있게 해주는 힘이지요. 저도 참 왈가닥이었는데, 연애를 하면서 점점 더 좋아하는 마음이 깊어짐에 따라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걸 느꼈어요.”

이런 이야기라면 나보다 에브린이 좋아라 할 텐데. 왠지 백작 부인과 에브린이 서로 더 잘 통할 것 같다. 갑자기 에브린도 보고 싶어지고.

정말 그날 늦은 밤에 잠들기 전까지 백작 부인과 함께 수다를 떨면서 식사도 함께하였다. 고작 반나절 함께 있었을 뿐인데 친근감이 느껴질 정도다. 워낙 백작 부인이 살갑게 말을 걸어주기도 했고. 나는 내가 먼저 말을 거는 성격이 아니어서.

에쉬의 일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을까?

그날 밤, 잠을 자다가 악몽을 꾸었다. 아무도 없는 깊은 숲속에 혼자 서 있을 때에 내 주위를 둘러싸던 그 검은 그림자. 그건 지난번에도 에쉬와 함께 있었을 때 꾸던 꿈이었다.

뭐지? 분명 에쉬와 함께 있어야 그 꿈이 내게로 옮겨지는 거라고 들었는데?

서서히 검은 그림자가 내 다리부터 나를 집어삼키면서 점차 체온이 떨어짐을 느꼈다. 마치 꽁꽁 얼어버린 얼음 속에 갇히는 기분이었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으나 목에선 아무 소리도 나오지 못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난번처럼 위협적인 느낌은 없었다. 한번 경험해봤기 때문일까? 어차피 꿈이니 나를 실제로 해치진 못할 거라는 생각 때문에?

천천히 가슴까지 올라온 그림자가 내 목을 타고 뺨과 귀를 덮기 시작하면서 묘한 대화 소리가 귓가에 퍼졌다.

[마셔라.]

[……싫습니다.]

[정녕 네 배를 갈라 끄집어내야 정신을 차릴게야?!]

[황제 폐하의 귀한 혈육이십니다. 저는 이 귀한 아이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고, 황후 폐하께서는 이 아이를 지켜주셔야 할 의무가 있는 법입니다.]

황제 폐하의 아이를 가진 여자. 그리고 황후 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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