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의 비밀스러운 꽃 (92)화 (93/113)

92화

황궁, 그것도 에쉬의 집무실에 위치한 휴게실 안에서 숨어 지내는 일은 생각보다 지루하지 않았다. 그만큼 에쉬가 너무 많은 배려를 해주고 있었다. 제국에서 귀부인들 사이에 유명하다는 책들과 심심함을 달래줄 자수를 바로 준비해주었고, 놀랍게도 아버지께서 내게 보낸 편지도 전달해주었다.

그렇게 떠날 줄은 몰랐다고, 상황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섭섭함을 감출 수 없다며 국혼 이후에도 가능한 일 년에 한 번 본가로 찾아오란다.

‘황후가 친정을 찾아가는 경우도 있나 싶은데.’

왠지 에쉬라면 이 편지를 보고 당연히 보내줄 것 같은 느낌이다. 그것도 남들 몰래 조용히. 본인도 가겠다고 하겠지. 안 봐도 알 것 같은 기분.

그리고 일은 제대로 하고 있나 싶을 정도로 에쉬가 자주 들어왔고, 간혹 서류들을 아예 한 품에 안은 채로 들어와 책을 읽는 내 옆에서 작업을 하였다. 그러다가 종종 서류 내용을 내게도 보여주면서 제국의 실정에 대해 논의를 하기도 하였다.

“서남쪽은 워낙 가물고 건조한 지역이라 항상 흉작으로 유명하였는데, 올해는 비 소식이 꽤 들려오는군요. 그것이 새 황후 폐하를 맞이하여 기뻐하는 선황이 하늘에서 흘리는 눈물이랍니다.”

“으…… 아! 에, 에쉬…….”

“일단 결과는 지켜봐야 아는 법이니 흉작인지 풍작인지는 판단하기 어렵겠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슈아?”

한 손에 든 서류를 유심히 훑어보던 그가 나를 향해 빙긋 웃어 보이고는 고개를 숙여와 파르르 떨리는 내 아랫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경관이 워낙 좋아 창가 쪽에 소파를 놓으면 참 좋겠다고 한마디 했는데, 둘이 들어도 무거울 것 같은 기다란 소파를 카시안이 한 손으로 가볍게 들어다가 놓아주어서 얼마나 놀랐는지. 그 소파는 에쉬와 나란히 앉아도 여유가 있어서 가끔 낮잠을 잘 때도 유용했다.

그리고 지금처럼, 에쉬와 나란히 앉아 야한 짓을 하는 장소로 이용되기도 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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