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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비밀스러운 꽃 (86)화 (87/113)

86화

그런 나를 보고 흐뭇하게 웃는 에쉬가 내 손등을 감싸 쥐고 손바닥에 입술을 파묻었다. 그러고는 혀로 가볍게 핥아서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손을 빼내려 했지만 그가 이미 내 반응을 알고 있었다는 듯 꽉 붙들고 있었다.

“도발하는 당신의 뇌쇄적인 표정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는 있습니까? 그 어떤 암살자를 마주하는 것보다 더 짜릿하고 긴장되는 것을.”

“……저는 당신을 보고만 있어도 그래요. 이래도 되는 건가 싶은 생각이 절로 날 정도로요.”

빨리 그와 부부가 되어 이러한 접촉이 자연스럽게 보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직은 표면적으로 약혼 상태라 손등 키스만으로 만족해야 하니까.

물론 남들 모르게 이런 비밀스러운 행위를 치르는 것도 굉장히 긴장감 넘치는 일이라 더 흥분되기도 하고.

고혹을 한껏 담은 그의 미소를 넋 놓고 바라보는 사이, 그가 빠른 손놀림으로 드레스를 살짝 벗겨냈다.

“오랜만의 감동적인 재회인데 이런 식으로 회포를 풀게 될 줄은 몰랐지만, 조금만 서두르겠습니다. 나를 꽉 잡아요.”

서로의 피부가 맞닿는 그 순간, 뒷골이 찌르르 울리면서 아찔한 쾌감에 사로잡혀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생경한 감각에 온 신경이 살아 날뛰는 것 같았다.

익숙하면서도 익숙해지지 않는 그 열락에 흠뻑 빠져 정신이 혼몽하다. 덜컹거리며 움직이는 마차 안이라서, 불안한 자세와 예상치 못한 자극이 더해져 머릿속이 온통 새하얗게 물드는 기분이었다.

어떻게든 신음이 새어나가려는 걸 막으려고 노력했으나 그게 어디 내 뜻대로 되는 일이던가. 마치 에쉬가 내 목구멍을 활짝 열어놓으려는 듯 더욱 집요하게 나를 괴롭혔다.

“아윽! 그, 그만…… 거긴……!”

“왜 참는 겁니까? 당신답지 않군요. 부끄럽습니까?”

“흑, 누가…… 들으면 어떡, 아!”

“누가 듣습니까? 들어도 입 밖에 뱉어낼 사람은 없으니 안심하십시오. 여기 사람은 우리뿐입니다.”

그 우리에 마부도 포함되어 있는 건 아니겠지? 나는 힐끔 떨리는 눈으로 마부석을 쳐다보았고, 그제야 에쉬가 알았다는 듯 너털웃음을 흘렸다.

“아, 제가 말해주지 않았군요. 이 마차를 모는 건 카시안입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카시안이, 마차도 몰 줄 알아요?”

“저래 봬도 말을 제어하는 건 수준급이라서요. 또한 절대 사람이 다닐만한 길로 가진 않으니 안심하십시오. 마음껏 그 예쁜 목소리로 울어주었으면 합니다. 상당히 듣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아까부터 계속 성감대를 지속적으로 자극하며 나를 괴롭힌 거였구나. 하여간 이 짓궂은 남자 같으니라고.

“그래도 카시안이 있는데…….”

“국혼으로 부부가 되면 매일 들을 텐데요. 그냥 없는 놈으로 취급하거나 장식품이라 여기면 편합니다.”

황족은 항상 근접 호위가 붙어 부부관계를 치르는 합궁 날에도 단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없을 거라고 했다. 그건 아직도 끔찍한 미래라고 생각하지만, 에쉬라면 카시안을 제외한 누구도 곁에 두지 않을 것 같아서 안심이랄지.

어차피 카시안이 평범한 인간은 아니라고 했으니까.

그나마 마음이 조금 놓여서일까? 행여 외부로 새어 나갈까 봐 잔뜩 긴장했던 몸이 풀어지면서 그를 더욱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수없이 키스를 하고 수없이 서로의 육체를 탐하였다. 한껏 달아오른 체온으로 마차 내부가 열기로 가득 찼고, 습기로 뿌옇게 변한 작은 창문에 송골송골 맺힌 물방울도 점차 더 늘어났다. 그게 왜 이렇게 야해 보이던지.

처음 파정한 에쉬는 한 번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자세를 바꾸면서 계속 이어갔다. 오랜만의 쾌락이라 나 역시 그를 놓아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가 정신을 놓았던 것 같다. 잠을 제대로 자지도 못했고, 갑작스럽게 이어진 정사는 너무도 큰 체력을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슈아. 슈아?”

깊은 잠에 취해있는 내 귓가에 에쉬의 목소리가 들려와 겨우 암흑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으응……. 에쉬?”

졸린 눈을 겨우 떠서 그의 얼굴을 확인하고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려 주변을 확인하였는데, 낯선 공간의 실내가 시야에 들어온다. 정리를 하긴 했지만 상당히 허름한 곳이었다. 지난번에 그와 머물렀던 작은 마을의 빈집처럼.

“여기, 어디에요?”

“예전에 몸을 피하면서 몇 번 묵었던 곳입니다. 그나마 안전한 곳이기도 하지요. 원래 가려던 몬드로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외진 숲속이기도 합니다.”

마을로 향하는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다. 하긴, 에쉬는 함부로 얼굴을 내보여선 안 되는 입장이라서 최대한 눈에 띄지 않는 장소만 다녔을 테고.

주섬주섬 누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너덜너덜한 속바지 안쪽이 끈적끈적해서 상당히 민망해졌다. 조금 부은 느낌도 적나라하다.

“어디 아픕니까?”

“아, 아니에요. 그냥 좀…… 당신하고 사랑을 나눴다는 것이 현실이었다는 걸 느껴서 그래요.”

피식 웃는 에쉬가 내 뺨에 쪽 입을 맞춰주었다. 그 가벼운 입맞춤으로도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때,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나무문이 열렸고 그 사이로 카시안이 성큼성큼 들어왔다.

“주변은 조용합니다, 주군. 야생동물이 몇 보이기는 하지만 큰 위협이 될 것 같진 않습니다. 오? 아가씨가 깨어나셨군요.”

무표정을 일관하던 카시안이 나와 시선을 마주하더니 한쪽 입꼬리를 삐딱하게 올렸다. 그게 또 에쉬만큼 짓궂은 표정이라서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실실 웃어대서 괜히 더워진달지.

애써 시선을 피해 손부채질을 하며 얼굴의 열기를 식히고 있는데 에쉬는 아무렇지도 않게 미소를 담은 채로 내 엉망인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정리해주었다.

“야생동물이 가장 위험한 거 아니었나? 이곳에서 늑대를 몇 보긴 했었는데.”

“어슬렁거리긴 하더군요.”

“근처에 얼씬도 하지 못하게 막아.”

“옙. 그럼 두 분도 아까처럼 즐거운 밤 보내시길 바랍니다. 씻을 곳이 마땅치 않아 아가씨께서 조금 곤란하시겠군요.”

낮은 웃음소리를 흘리면서 다시 밖으로 나가버리는 카시안이 너무 얄밉다. 굳이 저렇게 콕 집어서 그런 이야기를 꺼내야 하는지.

내가 입술을 불퉁하게 내밀면서 양 뺨을 붉게 물들이고 있으니 에쉬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당부하였다.

“저 녀석 말은 듣지도 마음에 담아두지도 마십시오. 자기가 한 말을 금세 까먹는 단순한 뇌를 가지고 있어서 신경 써봐야 괜한 감정소비입니다.”

“네. 그래도 그런 말을 들은 당장은 좀 민망하긴 하네요.”

“흠, 이 근처에 작은 호수가 있기는 하던데.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라 깨끗하더군요. 찝찝하면 가서 조금이라도 씻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깨끗한 호수라……. 확실히 이 상태로는 잠을 자는 것도 불편할 테고. 다리라도 좀 씻고 싶은데 걱정되는 건 딱 하나였다.

“마음대로 막 나가서 돌아다녀도 돼요?”

“저나 카시안이 동행하면 얼마든지. ……아니 그런데 그런 건 왜 묻는 겁니까? 누가 보면 내가 당신을 감금이라도 하는 줄 알겠습니다.”

난감하다는 듯 눈썹 끝을 축 내리는 그가 행여 자길 나쁜 사람으로 볼까 봐 걱정하길래 나는 여상히 웃으며 그의 뺨을 가볍게 쓸어내렸다.

“에쉬 당신에게라면 감금당해도 좋은데요? 종일 당신하고 같이 있을 수 있다면 그게 더 행복할 수도 있다고 봐요.”

농담 삼아 이야기했지만 진심도 크게 한 스푼 담겨 있었다. 아무도 없는 섬에 식량을 잔뜩 비축해놓고 그와 며칠이라도 함께 머물고 싶은 마음이 든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테니까.

그래서 아쉬움을 한껏 담아 긴 숨을 흘렸는데, 그가 내게 짧게 입술을 맞추며 해사하게 웃는다.

“국혼을 치르고 조금이나마 정리가 된다면 긴 휴가를 받아야겠습니다. 제국 정세가 거의 안정되었으니 이제 들끓었던 벌레를 살충하기만 하면 모든 것이 뜻대로 되겠지요. 그때까지 조금만 참아요, 내 사랑.”

예전부터 느낀 거지만 정말 그는 나를 위해서라면 제국을 팔아넘길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그만큼 나를 사랑해주는 건 내 입장에서 아주 기쁘고 행복한 일이지만, 왠지 내가 정신을 단단히 차리지 않으면 제국이 크게 흔들릴 수도 있어서 걱정이 되기도 하고.

“그럴게요. 일단 조금은 씻어야 하니 그 호수로 안내해주시겠어요?”

“내게 안겨요. 그 상태로는 숲길을 걷기 힘들 겁니다.”

내 상태에 무슨 문제라도 있나 싶어 딱딱한 나무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시도하려다가 깨달았다. 허벅지가 욱신거리면서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이 감각, 전에도 몇 번 느꼈던 것이라서.

해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에게 얌전히 안겼다. 자제할 줄 모르는 건 둘 다 마찬가지라서. 그런데 왜 매번 내 다리만 이렇게 되는 걸까? 나도 검술이나 좀 배워야 할까 싶다.

나를 안은 채로 나무문을 발로 밀어 밖으로 나가는 에쉬가 익숙한 듯 한 방향으로 걸었다. 그러자 눈앞에 갑자기 무언가 휙 떨어져서 비명을 지를 뻔했다.

“어디 가십니까?”

카시안은 왜 대체 매번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걸까. 평범하게 나타날 수도 있는 것 같은데, 사람 간덩이가 얼마나 튼튼한지 시험해보려고 작정한 것처럼 굳이 저래야 하는지.

에쉬는 항상 너무 익숙하다는 듯 조금의 동요도 하지 않은 것이 더 신기했다. 저런 식으로 나타나 누군가 공격을 하면 어떡하라고.

“호수. 나 이외에 다른 사람 앞에서 그렇게 갑자기 나타나지 마라. 그러다가 우리 슈아 심장 멈추면 네가 책임질 거냐?”

“설마 이 정도로 심장이 멈추겠습니까? 곧 황후가 되실 분께서 고작 이런 등장에 놀라면 앞으로 어찌하시려고.”

어쩐지 핀잔을 주는 것 같아서 속이 쓰렸다. 그래서 이게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지 않냐고 반박하려다가 그냥 입을 다물었다. 틀린 말은 아닌지라.

“그러네요. 제가 부족한 탓인 것을 누굴 원망하겠어요? 저를 죽이려는 이들이 그렇게 갑자기 나타날지도 모르니까, 앞으로는 갑자기 튀어나오는 상대의 급소에 발차기라도 날려야겠네요. 만약이라는 상황도 있고, 제 목숨은 소중하니까요.”

아주 조금 사심을 담아 경고를 날리자, 카시안의 눈썹이 파르르 떨리면서 꿈틀거렸다. 에쉬는 아주 만족스럽게 웃으며 카시안을 지나쳐 바로 호수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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