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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비밀스러운 꽃 (57)화 (58/113)

57화

“아닐걸? 그런 이야기는 금시초문인데.”

“확실해?”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형제는 있어. 에쉬보다 세 살 아래. 같은 혈연관계인 황자 중에 같은 나이인 사람은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거의 죽었고.”

“아니, 똑같이 생긴 형제 말이야. 어렸을 때 있었는데 죽었다든지.”

그 말에 불현듯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지난번 욕실에서 보았던 에쉬와 똑같은 외모를 가진 남자. 너무 똑같아서 진짜 에쉬인 줄 알았지만 에쉬처럼 자상의 흔적이 남아있질 않았고 느낌이 조금 다르긴 했었다.

그리고 갑자기 사라졌었지. 게다가 에쉬가 황궁에 놓고 왔다던 내 목걸이를 내게 보이며 의미심장하게 웃었었다.

마법석으로 실체화를 할 수 있는 마법사이자 유령. 그리고 카시안이 그 유령을 알고 있다고 했지. 그럼 정말 에쉬가 쌍둥이일 가능성이 크다. 어렸을 때 죽은 형제일지도.

하지만 봉인된 건 어렸을 때였다며. 유령은 자신이 죽었던 나이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을 텐데.

“언니, 그 유령이 실체화를 할 때에는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바꾸어서 나타날 수도 있을까?”

“마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가능할지도 모르지. 마력은 무궁무진한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 ……왜? 너도 본 적 있니?”

“그게…….”

나는 언니에게 그 유령을 본 것 같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물론 욕실에서 봤다고는 차마 말을 하지 못하겠어서 대충 둘러댔지만.

“그게 언젠데?”

“오래된 건 아니야. 제국에서 사절단이 방문했던 그 시기였으니까.”

“분명 무슨 꿍꿍이가 있기는 한가 보네. 아까 그 남자가 그 유령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했으니 저분, 황제 폐하께서도 모르진 않을 거야. 이미 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면 더욱 조심해야 해. 그 미친놈을 네게서 어떻게 떼어낸담?”

머릿속이 엉망진창이다. 유령이 실체화를 할 줄 알고, 그 모습을 바꿀 수도 있다면 얼마든지 다른 사람으로 변하여 내게 접근할 수도 있는 노릇이니까. 어쩐지 소름이 일어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주룩 흘렀다.

게다가 언니가 마법사였다니.

“그런데 언니는…… 언제부터 마법을 쓸 줄 알았던 거야?”

“조상 중에 마법사가 존재했다면 확률적으로 마법사가 태어날 가능성이 크지. 너는 아마 모르겠지만, 어머니가 과거에 왕실 전속 마법사였어.”

“……뭐?!”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싶다. 어머니가 마법사였다니. 우리 왕국 왕실에 마법사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처음 듣는다. 내 어머니가 마법사인 것을 그 누구도 거론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둘째 언니는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라는 듯 소파에 등을 기댄 채로 태연하게 설명해주었다.

“어머니는 떠돌이 마법사였대. 어쩌다가 선왕을 만나게 되어 비밀리에 왕실을 돕고 있었는데 아버지와 서로 첫눈에 반하여 혼인하게 된 거였고, 어머니의 출신을 조작해주었다지.”

“정략혼이셨다며?”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알려져 있으나 어머니가 마법사였다는 것을 숨기고 싶으셨대. 알려지면 골치 아파지니까. 그런데 둘째인 내가 어머니의 마력을 타고난 거야. 그래서 내가 어느 정도 말귀를 알아들을 때까지 본가에서 조용히 지냈다고 해.”

둘째 언니가 마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제국에 빼앗길까 봐 어쩔 수 없었다고. 어머니도 원래 제국 마도원 소속이었으나 그곳을 벗어나서 도망치듯 이리저리 유랑하고 다녔던 것임을 알게 되었다.

어쩐지 어머니가 친정하고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하여 지금까지 어머니의 가족을 만나본 적도 없었는데. 그런 이유가 있었구나.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건 가족들과 집사 정도일걸? 네게 딱히 비밀로 하려던 건 아니었겠지만 굳이 알려야 할 이유가 없다고 보신 것 같고.”

“모르는 게 더 나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 우리 집안에 그런 엄청난 비화가 있을 줄은…….”

“좋다 나쁘다를 논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괜히 이번 일로 너까지 피해를 입을까 봐 걱정된다. 분명 그 유령, 황제 폐하와 관련이 있고 그 관계를 계속 유지하다 보면 언젠가는 또 만나게 될 것이 분명하거든.”

“에쉬하고도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게.”

“그래. 혹시 또 보게 되면 내게 언제든 말해줘. 나는 아버지를 뵈어서 이번 일에 대한 것을 말씀드려야겠어.”

이쪽 일이 더 급하다는 듯 외출하신 아버지께 편지를 보냈고, 둘째 언니는 아버지가 오실 때까지 기다린다고 하였다. 해서 나는 일단 에쉬와 카시안의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 싶어 응접실을 빠져나왔다.

마치 내가 자신을 찾을 거라는 것을 알았는지 에쉬는 응접실 근처에서 카시안과 함께 대기 중이었다.

“에쉬. 당신 방으로 가서 이야기해요, 우리.”

“……예.”

왠지 기운이 없어 보이는 에쉬와 함께 그가 머무는 손님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나는 그 방 안의 욕실에 발을 디뎠다.

그래, 분명 그날 여기에서 ‘그것’을 보았었다. 에쉬인 줄 알았으나 에쉬가 아니었던 그것. 단지 내가 헛것을 보았다고 생각했었지만 그러기엔 너무도 생생했었다. 목소리도 형체도, 상의 단추를 풀어 자신의 목에 걸고 있던 내 목걸이를 보여주려던 행동도.

“내가 지난번 당신과 똑같은 누군가를 이곳에서 보았다고 했었지요? 에쉬는 그때 내가 잘못 본 것이라고 했었고요. 기억하나요?”

“그때는…… 그런 줄 알았습니다. 이곳에 나타날 리가 없을 거라고 여겼기 때문에. 설마 했었던 일이기도 하고. 그런 과거가 있었다는 것도,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보아하니 에쉬도 그 유령에 대해서 알고는 있나 보다. 나는 가장 원초적인 질문부터 던졌다.

“혹시 쌍둥이인 거예요?”

“잘, 모르겠습니다.”

“무슨 뜻이에요?”

흥미진진하게 우리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만 있는 카시안이 팔짱을 낀 채로 벽에 등을 기대어 섰다. 카시안도 무언가를 알고 있는 듯 보였으나 이번만큼은 나서지 않겠다는 듯 여유롭게 웃는 얼굴로 에쉬를 바라보았다.

그런 카시안을 잠깐 흘겨보던 에쉬가 한숨을 푹 내쉬면서 소파에 주저앉아 손바닥으로 얼굴을 거칠게 문질렀다. 그러고는 바닥을 응시하며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솔직히 당사자가 아니어서 확인된 바는 없습니다. 그 당사자의 증언에 의하면 저와 함께 어머니의 배 속에서 자랐다고 하더군요.”

“그럼 쌍둥이가 맞는 거예요?”

“태어날 때에는 저뿐이었습니다. 과거 어머니께서 회임한 채로 독이 섞인 음식을 드시게 되었는데 어머니와 저를 살리기 위해 태내에서 마력을 이용하여 본인이 독을 흡수하였고, 그렇게 명을 달리했다고 들었습니다.”

그게 가능한 일이야? 현실성이 너무 떨어지는 이야기인데. 일단 태아에게 그런 판단력이 있다니? 마법사는 좀 다른 건가. 만약 저게 사실이라면 에쉬에게는 생명을 구해준 은인이 될 테고.

“어머니는 그의 존재를 전혀 모르시더군요. 저는 어릴 때부터 늘 함께 지내기는 했습니다.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았고, 오직 저와 카시안의 눈에만 보였지요. 셋이서 자주 놀던 기억이 있습니다.”

“에쉬 당신도, 유령이 보여요?”

“아, 다른 유령은 본 적 없습니다. 아마 어머니의 태내에서 함께 자랐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생긴 것도…… 닮았나요?”

“카시안의 말에 의하면 아주 똑 닮았다더군요. 제가 봐도 닮기는 했습니다.”

확실하다. 내가 본 그 남자가 에쉬와 쌍둥이로 태어날 뻔한 이임을. 아니, 그런데 어떻게 태어나지도 않은 이가 지금 성인인 에쉬의 모습을 하고 있던 거야?

“혹시, 유령이라는 게 원래 모습을 바꾸기도 하나요?”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확실히 신기한 게, 최근 모습이 저와 같은 나이 또래로 변하긴 했더군요.”

“최근?”

“열 살 때였나……. 수업 시간에 계속 방해를 하여 크게 싸웠던 적이 있었고 어느 순간부터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신경을 끄고 살았는데 정확히 일 년 전에 갑자기 나타났지요. 성인이 된 제 모습으로 말입니다.”

어렸을 때 헤어져 그간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것은 우리 저택 고목에 봉인되었던 상태였기 때문이리라. 그러다가 봉인이 풀려 나타난 게 일 년 전이면, 나와 만나게 된 그 시기 아닌가?

“아마 봉인을 걸어둔 분이 슈아 당신의 어머니가 아닌가 싶은데. 역병으로 인해 숨이 끊어지면서 봉인도 풀리고, 그 이후에 왕국에 머물던 저를 찾아온 것이 아닐까요.”

“그 유령이 그런 이야기는 해주지 않았나요? 지금껏 어디서 뭘 하고 있었다는?”

“딱히 궁금하지도 않았고 본인 말로는 지하세계에 다녀왔고, 그곳에서 재미있는 도구를 몇 개 챙겨놨다는 이야기만 들었습니다. 사실 일일이 귀담아듣진 않아서 잘 모릅니다.”

정말이지 현실성이 떨어지는 이야기라 혼란스럽다. 평생 엮일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전부 얽히고설켜 정신이 하나도 없다.

숨겨진 가족사도 놀라움의 연속이었으나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다. 어머니도 원해서 마력을 가지고 태어난 건 아니었을 것이고, 그것이 어머니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았기 때문에 숨겼겠지.

그래서 국왕 전하께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혼인을 반대했던 거였구나. 이제야 두 분의 이야기가 조금은 이해되었다.

그것보다 에쉬의 쌍둥이 형제라던 그 유령. 처음 보았던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니 치가 떨린다. 그때 내가 보았던 그 행태가 너무도 얄미워서. 에쉬의 모습을 하고 내게 접근했을 때 보이던 음흉한 미소가 너무도 끔찍하다.

만약 에쉬의 얼굴에 상처가 없었더라면 내게 접근하는 그가 에쉬라고 속았을 거고, 내게 함부로 손 대게 만들었을지도 모르니까. 게다가 그때 분명 나는…… 알몸이었다고! 다른 남자에게 벗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겠다고 약속한 날이었건만!

“그 유령, 실체화를 할 수도 있고 마력도 사용할 줄 안다면 위협이 될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단 한 번도 위협적일 거라고는 생각 못했으나, 방금 후작 부인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조금 위기감을 느낍니다. 제게는 지금까지 도움을 주었으면 주었지 해를 끼친 적이 없어서.”

그래서 저렇게 불안해했던 건가 싶다. 현실성 떨어지는 이야기를 내게 굳이 전하지 않았던 건, 유령이 보인다는 말은 아무리 연인사이어도 믿기 어려울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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