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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비밀스러운 꽃 (51)화 (52/113)

51화

그 물음에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느릿하게 주억거렸다. 마음의 준비는 이미 외출을 하기 전부터 하고 있긴 했었지.

만족스럽게 웃음을 흘리는 그의 손이 내 등을 더듬거리면서 드레스의 끈을 위에서부터 하나씩 풀어냈다.

“이번엔 어디가 좋겠습니까? 소파 위? 아니면 저 테이블 위는?”

“……침대가 아니고요?”

“아니면 저 발코니? 창문 앞에서도 꽤 자극적이겠군요.”

저기 새하얀 천으로 덮인 커다란 침대가 떡하니 있는데 그의 선택 문항에는 없었다. 머릿속에도 침대는 그냥 잠만 자는 곳으로 여겨지는 모양이다.

새삼 놀라운 것도 아니지만. 내 고정관념이 철저하게 부서지는 순간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싫거나 거부감이 들진 않았다. 오히려 그 말이 더 자극적으로 느껴져 절로 샘솟는 열락을 반겼다. 그가 나를 얼마나 황홀하게 만들어줄지, 어떤 방법으로 견딜 수 없는 쾌감에 젖어 들게 해줄지.

“대답해보세요, 슈아. 어디가 좋겠습니까?”

“어디든 상관없는데. 그래도 오늘은 우리 가문과 연관되어있지 않는 장소라서 마음이 놓이기는 하네요. 당신을 위협하려는 사람들만 아니면 아무도 방문하지 않을 테니까요.”

대수롭지 않게 뱉어낸 말에 에쉬가 픽 웃으면서 목덜미에 입술을 가볍게 얹었다. 말랑한 감촉과 따스한 숨결이 내려앉아 허리가 살짝 떨렸다.

“응…….”

“조금만 서두르겠습니다.”

그도 마음이 다급한가 보다. 나도 마찬가지지만.

등 뒤에서 느껴지는 그의 손길이 짜릿하다. 조금 서둘러서 매듭을 풀어낼 때마다 드레스가 서서히 흘러내렸고, 심장 박동이 더욱 거세지면서 폭주하는 기분이다. 낯선 장소, 그러나 그에게 의미 있는 이곳에서 둘만의 추억을 또 하나 쌓게 되어 뛸 듯이 기뻤다.

고개를 돌리자 그가 내게 입술을 겹쳐와 가뿐 키스로 이어갔고, 나는 손으로 그의 가슴을 더듬으며 손에 걸리는 단추를 힘겹게 풀어내 주었다.

나보다 그가 더 빠르긴 했지만.

그가 나를 두 팔로 꽉 끌어안았다. 맞닿은 그의 몸이 얼마나 뜨겁던지.

“응, 하아…….”

작은 입속을 자유롭게 헤집고 다니던 두툼한 혀가 조그마한 입술을 한번 핥고 목 아래로 서서히 내려가 쇄골을 지분거렸다.

차분하게 애무를 건네는 그가 허리를 감싼 손바닥으로 척추를 타고 부드럽게 쓸어내린다. 부드러운 것 같으면서도 조금 강하게 느껴지는 악력에 어울리지 않는 아찔함에 취해버렸다.

“나는 당신이 이만큼 흥분되어 있을 때마다 기분이 좋습니다. 그만큼 나를 원한다는 의미니까.”

하체에서 치솟는 열기가 목까지 차올랐다. 앞이 보이지 않는 흐릿한 시야 속에서 배회하는 것도 꽤 지치는 일이라 그저 두 눈을 꾹 감았다. 그러나 그가 나를 두 팔로 번쩍 안는 바람에 놀라서 두 눈을 번쩍 뜨고야 말았다.

“……에쉬?”

“청결을 중시하는 당신이 편하게 나를 받아들일 수 있는 곳이 몇 군데 없군요. 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시도해 볼 생각입니다.”

씨익 웃는 에쉬의 표정에 약간 소름이 인다. 나를 향한 저 탐욕스러운 눈빛은 언제 봐도 굶주린 맹수 같아서 조금 무섭다.

대체 나를 또 어떻게 미치게 할지 궁금하기도 하고.

잠시 고민하던 그가 나를 데리고 간 곳은 창가 쪽 벽에 놓인 커다란 테이블이었다. 그 위에 덮어놓은 하얀색 천을 거둬내자, 고동색의 두꺼운 상판이 놓인 테이블이 모습을 드러낸다.

에쉬는 나를 그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고, 바닥에 널브러진 자신의 망토를 주워와 테이블 위에 깔아주었다.

“여기 이렇게. 아니, 무릎 꿇어서 앉는 게 편할 겁니다. 옳지, 옳지. 잘했어요.”

구두를 벗겨내는 그가 자세를 잡아주는 대로 얼떨결에 움직였다. 망토가 깔려 있는 테이블 가장자리에서 그를 등지고 무릎을 꿇은 자세로 앉았다.

“으, 이건 좀…….”

“이게 그나마 편할 겁니다. 쾌락에 취한 당신은 똑바로 서 있는 걸 굉장히 힘들어하니까.”

서로 밀착한 피부에서 끈적함이 느껴져 더 진득하게 들러붙는 기분이다.

“긴장 풀고. 부디 내게 길을 열어주세요.”

한 손으로 내 옆구리를 잡아 고정시킨 그가 서서히 밀착했다. 숨이 턱턱 막히고 시야가 하얀빛에 물들면서 온몸이 데일 듯 뜨거워졌다.

확실히 이제는 아픈 감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아픈 것과는 다른 쾌감에 온몸이 경련하듯 떨려온다. 뱃속에서 폭죽이 파밧, 튀는 느낌이었다.

그의 거친 숨소리도 자극적이었다. 한 손으로 등 뒤의 머리카락을 오른쪽 어깨 아래로 모아 내리고는 훤히 드러난 등에 입술을 가볍게 포갠다.

그를, 그의 표정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가 없어서 더 불안해졌다. 그 불안함이 더 신경을 예민하게 만들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오늘따라 척추를 타고 흐르는 전율이 평소보다 빠른 것 같았다.

“아까, 당신이 한 말을 기억합니다. 어머니가 외롭겠다는 그 말.”

“응, 으응, 에쉬…….”

그가 기분 좋게 웃으며 귓가에 대고 다시 중얼거렸다.

“어머니처럼 죽어서도 홀로 외롭지 않으려면, 내가 내민 손을 절대 놓지 마십시오. 꼭 명심하길 바랍니다. 아시겠습니까?”

그건 간절함이 담긴 경고였다. 만약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너도 죽고 나도 죽겠다는 그런 느낌으로 이해했으니까.

슬프게도 그에 대한 대답을 해주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그가 대답을 바란 건 아니었는지 나를 다시금 쾌락의 파도 속으로 밀어 넣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사냥감을 발견한 맹수와도 같았다. 차곡차곡 빠르게 쌓여가던 쾌감이 폭발하듯 터져버리면서 고개를 뒤로 젖히고 경련하듯 크게 떨었다. 머리카락이 쭈뼛 서버리고 등줄기가 오싹했다.

평소라면 어떻게든 교성을 참았을 텐데. 오늘은 그러질 못했다. 이건 도저히 참을 수가 있는 성질의 쾌락이 아니었다. 둘만 있는 곳이라서 더 안심이 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온몸의 근육이 다 굳어서 몸이 뻣뻣해질 때, 그도 거친 숨을 고르며 내 몸을 어루만지고 입을 맞춘다. 경직된 몸을 풀어주기 위한 애무였다.

“당신의 표정을 보지 못해 유감이군요. 세상에서 그만큼 아름다운 장면은 또 없는데 말입니다.”

어미 개가 갓 태어난 새끼 강아지를 핥아주듯, 그가 내 피부를 부드럽게 핥아주고 섬세한 손길로 다독여준다. 한껏 달아올랐던 열기가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하면서 정신이 조금은 돌아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끝낼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것을 증명하듯 이번에는 자신을 마주 보게 자세를 고쳤다. 조금 풀린 연갈색 눈동자에는 여전히 커다란 열망이 존재했다.

지금 이런 순간에는 항상 느끼는 것이 있다. 늘 시작하기 전에는 호기롭게 덤비지만 한번 절정을 느끼고 나면 이 행위를 너무 쉽게 생각했음을.

절대 잊을만한 감각은 아닌데, 참 이상하게도 힘들다는 단어 자체를 망각해버리는 것 같았다. 힘든 것보다 그로 인한 쾌감이 더 커서일까?

“왜 그렇게 겁이 난 표정입니까? 지금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게.”

뱃속이 묵직해지면서 전율이 물결처럼 퍼졌다. 이미 곤두선 감각이 더 예민하게 반응을 보인다.

“하, 정말…… 당신을 몇 번이나 가져도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부족해서. 채워지는 것이 가능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고.”

이 상황에서 그런 말이 나오나 싶어 조금 기가 차긴 했다.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나 역시 이 쾌락을 하루 종일 받아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어처구니가 없기도 했고.

목구멍에서 흘러나오는 신음이 멈춰지질 않았다. 온몸이 저릿해지는 달콤한 희열 속에 모든 것을 맡겨버렸다.

‘미칠 것 같아. 너무 좋은걸.’

온몸에 퍼지는 자극이 나를 격렬하게 휘저어놓는다. 겨우 몸을 지탱하던 팔에 힘이 풀려 휘청거렸지만 자세를 유지하려고 버텼다. 간혹 나를 빤히 올려다보는 거친 눈빛도 내게 전율을 안겨다 주었다.

서로의 체온과 땀 냄새가 섞인 후끈한 공기에 취해 정신이 아득하다. 쾌감을 착실하게 받아내는 육체가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또다시 쾌락의 파도가 나를 집어삼키기 직전.

“주군.”

몽롱한 정신을 단번에 끄집어 내리는 카시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애써 호흡을 고르며 상황을 파악했다. 어느새 소리 없이 활짝 열린 창문 안으로 들어온 카시안의 검붉은 눈동자를 마주하고는 비명이 나오려는 입을 턱 막았다.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리고 팔로 가슴을 가린 채로 고개를 푹 숙였다.

이 부끄러운 순간을 적나라하게 들킨 것보다 더 무서웠던 건, 붉은 핏물을 뒤집어쓰고 있는 카시안의 동요 없는 태연한 표정이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그리고 손에 든 황금빛 검에도 핏물이 흥건했다. 칼날을 타고 주룩 흘러내리는 핏방울이 바닥으로 뚝, 뚝, 떨어졌다.

“에, 에쉬 저기 피…….”

비릿한 피 냄새에 미간이 절로 구겨진다. 방금까지 흥분했던 몸이 순식간에 가라앉았고, 중요한 순간에 방해받아 불쾌한 얼굴의 에쉬가 한숨을 푹 내쉬며 내게서 떨어졌다.

“으읍…….”

이 상황에서도 착실하게 느껴져서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붉은 홍당무로 변한 내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추는 그가 바닥에 깔린 망토로 내 몸을 최대한 가려주며 평소보다 조금 더 살벌한 목소리로 나직하게 물었다.

“하이에나들이 내 눈에 띄지 않게 하라고 했지, 네가 여기 들어와도 좋다고 허락한 적은 없는데.”

“이번엔 작정하고 보낸 것 같아서요. 여기보단 저택이 안전하니 빨리 돌아가시는 게 서로 편하지 않겠습니까?”

“……몇 명?”

“스물다섯에 열일곱, 그리고 방금 아홉. 마지막 놈이 죽기 전에 또 마법석을 깨트렸으니 또 몰려올 것 같습니다만.”

두 사람의 대화를 유심히 듣자 하니 여전히 에쉬를 해치려고 오는 이들이 있나 보다. 그럼 그 많은 사람을 카시안이 저 칼로 죽인 걸까? 왠지 오싹해서 등줄기에 소름이 일었다.

‘이게 현실이구나. 에쉬가 평생을 겪어온 살해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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