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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비밀스러운 꽃 (42)화 (43/113)

42화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그가 내 손등에 가벼이 입술을 맞추고는 은근슬쩍 한 팔을 허리에 둘러 감싸 안는다. 그 은근한 손길이며 나를 지그시 내려다보는 뜨거운 눈빛에 심장이 두근두근 크게 울렸다.

“그럼…… 모처럼 만의 여유로운 시간이 생겼으니, 어디로 모실까요? 나의 귀여운 아가씨?”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몸이 굉장히 피곤한 상태이긴 했다. 긴 시간 마차를 타고 이동하여 하루 푹 쉬어야 괜찮아지는데, 거기에 하루는 종일 말을 타고 다녔으니. 게다가 수도로 오기 전날에는 에쉬와 아주 평범치 못한 정사를 거하게 치렀고.

그런데도 이상하게 몸이 달아올랐다.

‘자, 자연스러운 반응인 거지? 이상한 게 아니고.’

에쉬가 저런 야릇한 눈빛으로 바라보면 내 몸에 변화가 생긴다. 특히나 하체가. 내 의지에서 완전히 벗어나 제멋대로 흥분하고 그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듯 체온이 상승하고 있었다.

“응? 슈아, 왜 말이 없습니까?”

“혹시…… 아까 내가 한 말 때문에 화 많이 났어요? 기분 상한 건……?”

그가 내 대답을 기다려주지 않고 재차 묻던 지금, 나는 보았다. 부드러운 미소 위를 스치고 지나가던 낯선 그림자를.

어쩐지 느낌이…… 잘못을 저지른 아이를 향해 치미는 화를 애써 억누르면서 훈계를 하려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러자 더 입꼬리를 끌어올리면서 환하게 웃는 그가 섬세한 손길로 내 머리카락을 조심히 쓸어 넘긴다.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고. 화도 나고 기분도 상했는데 이상하게 화를 낼 수가 없어서 복잡한 심경일 뿐입니다. 이 얄밉고 어여쁜 아가씨를 어떻게 벌줘야 하나 싶고.”

“……미안해요. 아까도 말했듯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잘 모를 만큼 혼란스러웠어요. 그렇다고 당신을 지옥 불구덩이 속으로 등 떠밀 수는 없으니까.”

“그 일의 결정권은 내게 있는 겁니다. 당신이 등 떠민다 해서 밀리지도 떠나지도 않아요. 아직도 나를 모릅니까?”

나를 지그시 내려다보면서 느린 동작으로 고개를 숙여오는 그가 입술을 가볍게 맞췄다. 그리고 부드러운 입술 사이로 말캉한 혀가 자연스럽게 침입하여 입 안 구석구석 진득하게 헤집고 휘저었다. 지금 그의 복잡한 감정만큼 거친 키스였다.

“응, 읏……! 하으…….”

격렬하게 구석으로 몰아세우듯 집요하게 옭아매는 바람에 현기증이 일었다. 그에게 매달리듯 옷깃을 잡아채고 휘청거리는 몸을 밀착시켰다. 그 행동이 그의 본능을 부채질했는지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이어서 더 깊게 혀를 밀어 넣어 점차 더 농밀한 키스로 이어지게 되었다.

거친 키스도 마냥 좋았다. 숨을 고를 시간도 주지 않는 집요함에 흐물흐물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그게 그의 사랑표현이라고 생각하니 더 감격스러워 눈시울이 촉촉하게 젖어 든다.

어떻게 그와 헤어질 생각을 다 했을까? 참 안일했던 아까의 나를 매우 혼내주고 싶었다. 그가 존재하므로 인해 내 심장이 뛰고 있음을 망각했으니까.

“키스가 그새 익숙해진 것 같군요. 처음에는 도망치기 바쁘더니, 이제야 함께 즐길 수 있게 되어서 아주 기쁩니다.”

다시 가볍게 입을 맞춘 뒤에 귓불을 살짝 빨아낸다. 이어 목덜미로 내려가 보드랍게 핥아 올렸다.

“아……!”

정수리부터 시작해서 발가락 끝까지 간질거려 허리가 배배 꼬인다. 살짝 부은 입술 사이로 뜨거운 숨이 터져 나왔고 온몸이 화끈거렸다. 그의 혀와 입술이 닿는 곳에 작은 불꽃이 내려앉는 것처럼 굉장히 자극적이었다.

“보아하니 침대까지 갈 여유는 없을 것 같고. 이 후원을 탐색했을 때, 용도 모를 작은 창고가 하나 있던데…….”

창고가 있었던가? 그의 말을 곱씹으며 후원에 있을 만한 창고를 떠올려보았다.

“아, 거기는 아주 예전에 예배당으로 쓰였대요. 창고는 아니고…….”

말하면서도 지난번 본가 사유지의 숲에서 낡아빠진 오두막의 일이 떠올라 가슴이 벌렁거린다. 에쉬도 이미 내 생각을 안다는 듯 히죽 웃고는 혀로 아랫입술을 슥 훑으며 내 손을 잡아끌어서 조금 더 깊숙하고 어두운 나무 사이로 진입했다.

나는 그저 입술을 말아 물고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푹 숙인 채 그를 따랐다.

곧 울창한 숲에 가려진 비어있는 예배당에 도달했다. 혹시 누군가 있진 않을까 주변을 경계하며 안으로 들어간 그가 매의 눈으로 안쪽도 전부 살핀 뒤에 안심하고 나를 한쪽 벽에 세워두었다. 앞으로 다가올 쾌락에 마음이 조급해지면서 목구멍이 바짝 말라버렸다.

“슈아. 지금 나와 약속해주세요.”

“어떤 거요……?”

“다시는 나와 헤어지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기로. 사랑하기 때문에 떠나보낸다는 그 이기적인 생각 따위로 나를 괴롭히지 않겠다고. 그리고…….”

한 발자국 더 다가와 하체를 밀착한 그가 목덜미에 입술을 가볍게 얹어 쪼옥, 길게 입을 맞추면서 말을 이었다.

“나 이외의 그 어느 누구에게도 당신의 속살을 내보이지 않겠다고. 당신의 벗은 모습을 내게만 보여주겠다고 약속해줄 수 있습니까?”

“……목욕도 혼자 해야 하나요?”

진지하게 질문한 건데, 그는 생각지 못한 대답을 들었다는 듯 동그랗게 뜬 눈으로 눈꺼풀만 끔뻑거렸다. 그래서 나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벅찬 호흡을 다시 고르면서 설명했다.

“헤어지겠다는 생각, 절대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어요. 조금 아까 키스하면서 결심했거든요. 그리고 내 몸에 손댈 수 있는 건 목욕시중을 드는 하녀나 유모, 그리고 당신뿐인데 뭐, 혼자 목욕하는 법을 익히길 바란다면 그렇게 할게요.”

주절주절 늘어놓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가 작게 웃음을 터트린다.

“내 말의 의미를 모르진 않을 텐데요. 동성이 아닌 이성에 해당되는 약속입니다.”

“그거라면 얼마든지 약속할 수 있어요. 당신 아닌 누구도 내 몸에 손대지 못할 거고, 만약 그런 일이 생기면 정조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끊을 각오도 되어있고요. 에쉬는요?”

“내게 손댈 수 있는 건 나의 사랑하는 슈아 뿐입니다. 게다가 이놈은 당신 아닌 그 누구에게도 반응을 보이지 않아서요.”

힐끔 자신의 하체를 내려다보고는 삐뚜름하게 웃는다. 나 역시 그를 따라 자연스럽게 시선이 내려갔고, 콩닥콩닥 뛰는 심장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서 숨이 벅차오른다.

“약속은 약속이고, 이제 당신이 했던 실언에 대한 벌을 받아야겠지요? 일단 벗어요.”

“……내, 내가요? 직접?”

나는 조금 머뭇거리다가 가벼운 치맛자락을 주섬주섬 들어 올려 힘겹게 벗었다. 벗은 옷을 바닥에 대충 쌓아두고 섰다.

매번 그가 직접 해주던 일을 내 손으로 하려니 이상하게 수치심이 생겨 부끄러워졌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그의 기분이 풀릴 수 있다면 못할 것도 없지.

나는 바짝 마른 입술을 혀로 가볍게 핥고는 떨리는 손으로 치맛자락을 조금씩 말아서 들어올렸다. 한여름의 밤공기가 체온보다 서늘한지 밖으로 드러난 허벅지 사이로 냉기가 흘러 몸이 가늘게 떨려왔다.

“슈아.”

평소처럼 달달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른다. 자연스럽게 새어나온 신음성에 에쉬가 아주 만족스럽다는 듯 웃으며 내게 천천히 다가왔다.

“그만큼 나를 애타게 기다렸다니 매우 기뻐서 행복하군요. 점점 나와의 관계를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 아주 흡족합니다.”

“아직도 내게, 화났어요?”

“말했듯 화를 내고 싶어도 화가 나지 않아서요. 다만 당신의 요 맹랑한 생각이 괘씸해서. 절대 나를 포기하지 못하게, 나를 잊지 못하게끔 색다른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어졌습니다.”

씨익 웃는 그가 내 앞에 서서는 그대로 쪼그려 앉았다. 그러더니 내 양쪽 발에 신겨진 구두를 벗겨내 옆에 가지런히 놓았다.

“에쉬?”

“당신 체취, 상당히 향기로워서 중독될 것 같아요.”

서서히 치솟는 희열이 정신을 마구 뒤흔들었다.

그가 닿는 곳곳마다 열꽃이 피었다. 예민해진 감각이 제 역할을 너무 과하게 해서 뱃속이 자글자글 끓어올랐다.

“에쉬, 에쉬…….”

그 야릇한 자극에 안타까움을 호소하였으나 에쉬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점점 더 간지러운 감각이 짙어져 온몸이 배배 꼬였다.

“당신이 불러주는 내 이름이 듣기 좋습니다. 더 불러주세요.”

“에쉬…… 너무, 간지러운데…….”

떨리는 눈을 겨우 움직여 그와 눈을 마주쳤지만, 그는 그저 나른하게 웃으며 입술을 엄지손가락으로 슥 닦아낸다.

“참는 것도 배워야지요. 나 역시 당신만큼 참고 있으니까. 인내하는 만큼 열매는 달게 느껴지는 법 아니겠습니까?”

그게 이럴 때 쓰는 말인가 싶어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러나 새빨간 불꽃을 담은 연갈색의 눈동자는 진심이었다.

조짐이 좋지 않았다. 짧은 쾌감이 벼락처럼 훅 치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짜릿한 감각을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이를 악물었다. 숨이 가빠지고 점점 몸이 경련하듯 떨려왔다. 몸이 터져버릴 것 같아서 점차 두려워졌다.

그렇게 고양된 쾌감이 자극을 이기지 못하고 한순간 폭발해버리고 말았다.

“……!”

눈앞에 번개가 내리친 것처럼 눈부신 새하얀 빛이 시야를 완전히 덮쳤다. 쾌감을 동반한 통증 같은 야릇한 느낌이, 마치 폭풍우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것 같았다.

“안됩니다.”

“하윽, 그게……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 흑!”

심장이 터질 듯 뛰면서 이대로 숨이 멎어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과한 전율이었다. 그 어떤 자극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널뛰기를 하듯 한순간 치솟은 기묘한 쾌감이 내 기운을 앗아가며 순식간에 가라앉는다.

“또 인내하는 법도 배워야지요. 이럴 때일수록 더 참아낼 수 있는 능력도 길러야하지 않겠습니까?”

인내를 이럴 때 쓰는 건가 싶어 픽 웃음이 나와 버리고 만다. 이게 참으라고 참아지는 거였으면 애초에 이만큼 혼돈의 세계에 빠져버리지도 않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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