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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비밀스러운 꽃 (34)화 (35/113)

34화

고개를 숙여 목덜미에 붉은 자국을 흩뿌리던 그가 나를 빤히 쳐다보며 살살 눈웃음을 쳤다. 나는 슬쩍 눈을 내리깔고 마른 침을 꼴깍 삼켰다.

내 손으로 직접. 할 수 있을지. 조금 더 친해지려면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한데.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다는 게 문제고.’

나는 그의 눈치를 살피며 검지로 슬쩍 눌러보았다. 여유롭게 웃던 그의 얼굴에 미소가 사라지면서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뜨거운 숨결이 흘러나왔다.

“아…….”

왠지 흐뭇해진다. 나만 흥분하는 게 아니어서.

덕분에 조금 용기가 솟아올랐다. 기왕 할 거면 후회 없을 추억을 만들고 싶은 욕심도 들고.

“그럼 해 볼게요. 혹시 아프면 말해요.”

나는 까치발을 들고 아득한 쾌락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갔다. 감미로운 촉감에 취해 서로의 나직한 신음이 뒤섞인다.

그 순간, 갑자기 엄청난 바람이 불어와 삐걱거리던 나무문이 쿵! 소리를 내는 바람에 깜짝 놀라 몸이 휘청거렸다.

“앗!”

“슈아!”

갑자기 몸이 기울어지는 기분이 들어 잽싸게 팔을 뻗어서 그에게 매달렸다. 동시에 비명조차 지르지 못할 만큼 큰 충격에 휩싸여버리고 말았다.

“……하윽!”

온몸이 저릿저릿하다. 순식간에 치솟은 전율에 척추를 타고 정수리까지 소름이 돋아났다. 엄청난 압박감과 쾌락으로 얼룩진 통각에 몸이 절로 경련하듯 떨려왔다.

전신의 감각이 크게 요동치는 나와 다르게, 그는 아주 침착하게 안정을 되찾았다. 새삼 그가 참 대단한 정신력을 가진 남자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슈아, 괜찮습니까? 많이 놀란 것 같은데…….”

내 상태를 확인하려고 손으로 턱을 살짝 들어 올려 표정을 본 그가 말끝을 흐리면서 입꼬리를 씰룩거린다. 그러더니 내 눈가에 맺힌 눈물방울을 살짝 닦아내 주면서 손바닥으로 등을 다독여주었다.

“그렇게 서럽다는 듯 쳐다보면 내가 큰 죄를 지은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픕니다. 날 미워하는 건 아니지요?”

대답이 제대로 나올 것 같지 않아서 고개만 가로로 저으며 끙, 앓았다.

‘과해. 너무, 과하다고.’

다행히 아픈 느낌은 없었다. 그보다 더 요상한 감각에 휩싸여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정말, 부드럽고 뜨겁군요. 그 어떤 부드러운 케이크를 맛보아도 이런 기분을 느끼진 못할 테지만.”

확실히 그냥 평범한 침대에서 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쾌감이었다. 누구에게 들킬지도 모른다는 긴장감을 비롯하여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낡은 오두막에서의 위태로운 정사라니. 이따금 들려오는 새소리가 너무 명확하게 울려 퍼져서 그때마다 흥분감이 쉴 새 없이 차올랐다.

“슈아…….”

달콤한 속삭임이 흥분을 더욱 고조시켰다. 이따금 입술을 맞추어 집요한 키스를 퍼부을 때마다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는 건 착각이 아닐 것이다.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 빛을 받아내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뜨거운 공기도. 뒤섞인 시큼한 땀 냄새도.

그건 생각보다 더 커다란 열망을 끄집어내어 억누르지 못할 만큼의 희열에 한없이 휘둘려버리고 말았다.

못된 짓이라는 것을 아는데도 은근히 빠져들게 만들었다. 끝내고 싶지 않았다. 더, 더 깊게, 더 나를 괴롭혀주길 바랐다. 아랫배에 고이는 열기가 점점 폭풍우처럼 휘몰아쳐 정신없이 나를 농락한다.

“하, 너무 좋아하는데? 버티기가 꽤 힘들군요.”

나를 탓하려는 게 아님을 알고 있는데도 괜히 쑥스러워서 붉어진 얼굴이 더욱더 빨갛게 달아오른다. 그가 이런 야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뱉어낼 때마다 수치심보다는 그저 기쁘기만 했다.

그가 나를 그만큼 진지하게 느끼고 있다는 뜻이니까.

“당신이, 좋아서 그래요.”

“허억!”

시야에 격정적인 불꽃이 번쩍, 드리워지면서 한순간 정신이 혼미해졌다.

서서히 차오른 전율이 한순간 절정으로 뒤바뀌어 나를 점령하던 그때, 온몸에 힘이 서서히 빠지면서 축 늘어졌다.

‘대체 이게 뭐라고 이렇게 지치는 건지.’

그는 내 정신이 온전히 돌아올 때까지 그저 내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가 이마와 정수리에 입을 맞추며 다정한 웃음소리를 흘렸다.

“나를 쥐어뜯는 힘이 정말 대단했습니다. 하마터면 이성을 잃어버릴 뻔했어요.”

“……왜요? 난 좋았는데.”

슬쩍 그를 올려다보았는데 나와 눈이 마주친 그가 픽 웃으면서 가볍게 입을 맞춰오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나를 이리도 쉽게 도발할 수 있는 사람은 당신밖에 없을 겁니다. 두 번째는 지금처럼 쉽진 않을 테니, 마음의 준비가 되면 알려주십시오.”

사실 나도 아쉽다는 생각을 하고 있긴 했었다. 그래서 두 번째를 예고하는 그의 말이 너무도 기쁘게 들려왔다.

“얼마든지 해요. 당신이라면 언제든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으니까.”

그날 숲속에서의 정사는 해가 완전히 져서 달빛이 없으면 길이 보이지 않을 시간까지 이어졌다. 간혹 몇 번 위기를 맞기는 했었지만 그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혼자 힘으로 나를 제어했다.

위기의 순간에서 어떻게 대처하는지에 대한 것만 봐도 그 사람을 얼마나 의지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던데. 상황이 조금 웃기기는 하지만.

“……에쉬. 이제 그만 돌아갈까요? 너무 늦은 것 같아요.”

“식사 때를 놓쳐서 허기지겠군요. 아쉽지만 오늘만 날이 아니니까.”

땀에 젖어 엉망인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는 그가 이마에 입을 맞추고도 아쉬워서 뺨과 코끝에 연달아 입술을 맞대고 살살 비볐다. 온몸에 힘이 빠진 상태라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든데도 그의 다정한 입맞춤이 좋아서 절로 웃음이 났다.

몇 번째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정력이 워낙 남다르다는 거야 잘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까지 달려놓고도 혼자만 멀쩡해서 더 놀랍다.

‘이 남자, 인간이 아닐지도 몰라.’

그런 우스운 생각을 하다가 그가 내게서 떨어져나가는 순간, 뒷골이 짜릿해진다. 게다가 그와 나의 흔적에 의해 드레스 안쪽이 그야말로 엉망진창이다. 이건 숨길 수도 없겠다는 생각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불편하겠지만 조금만 참으세요.”

오두막을 벗어나 말에 오를 때까지 에쉬가 나를 부축해주었다. 뻣뻣하게 굳은 다리가 욱신거리는 것도 문제였고 감각도 꽤 불편했다.

다시 말을 몰아 저택으로 향하는 내내 입술을 바짝 말아 물었다. 다른 것보다 자꾸 방금 저지른 야한 행위가 떠올라 더 민망해졌다.

다행히 숲과 저택의 거리가 멀지 않았고, 그가 속도를 내어 달려주어 금세 저택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마구간 근처에 말을 세운 에쉬가 먼저 내렸는데, 그가 잠시 움찔거리다가 굳길래 절로 웃음이 터지려는 걸 겨우 참았다.

“왜 그래요, 에쉬?”

“……아닙니다. 아무것도.”

애써 아닌 척해도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는 눈치다. 결국 터져버린 웃음을 흘리며 디딤대를 딛고 말에서 내려오자마자 그와 똑같이 움찔거리며 바짝 굳어버리고 말았다. 저릿한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풀썩 주저앉을 뻔한 걸 겨우 버텼다.

“……내일도 걷는 건 무리일지도 모르겠네요.”

“크흠, 확실히 무리였나 봅니다. 다음에는 당신이 도발해도 참아낼 수 있게 노력을 해봐야겠군요.”

아마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이날의 일이 잊을 수 없는 또렷한 추억으로 남겠지. 그와의 추억이 한 겹 한 겹 쌓이고 있다는 사실이 그저 유쾌하다.

젖 먹던 힘까지 끌어모아 열심히 걷는 일에 집중하며 어떻게든 저택 안으로만 들어가자고 서로 격려했다. 손을 맞잡고 비틀거리면서 조용해진 현관 안으로 들어가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도록 살금살금 2층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마침 초조하게 2층을 배회하던 유모와 딱 마주쳐버리고 말았다.

“아가씨! 어딜 다녀오셨길래 이리도 늦으신 겁니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걱정했습니다.”

“어……. 잠깐 에쉬와 할 이야기가 있어서 산책을 다녀왔어. 내가 너무 늦었지? 에브린은?”

“저녁 식사를 혼자 드셨습니다. 오늘 피곤하다고 일찍 들어가 주무신다고는 하셨고요.”

우리 어머니 기일이라고 오늘 에브린이 펑펑 울기는 했지. 그래서 더 피곤할 거다. 의외로 눈물이 많다는 새로운 사실도 깨달았고. 그래서 정이 좀 많은 걸지도.

“그래. 그럼 우리 식사는 내 방으로 가져다줄래? 나도 피곤해서 일단 좀 씻어야겠어.”

“목욕물을 채워드리겠습니다.”

“에쉬 방에도 목욕물을 채워주면…….”

“저는 괜찮습니다. 아가씨의 목욕은 제가 알아서 할 테니 목욕물만 채워다 주십시오.”

내 말을 딱 자른 에쉬가 유모에게 어서 가보라는 손짓을 한다. 뒤늦게 에쉬의 말을 이해한 유모의 얼굴이 발갛게 변하면서 재빨리 묵례를 하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이젠 뭐 이런 상황이 놀랍지도 않고.

“잘했어요. 그렇지 않아도 유모한테 못 보일 꼴을 보이는 것 같아서 혼자 해야 하나 고민했었는데.”

“그럴 줄 알고 미리 차단한 겁니다. 이 정도면 꽤 유능한 남편이자 보좌관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겨우 이 정도라니. 꼭 인정받고 싶다는 듯 두 눈을 반짝거리며 내 대답을 기다리는 그는 진심이었다.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능력을 가진 인재라는 것을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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