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의 비밀스러운 꽃 (33)화 (34/113)

33화

백작저를 벗어나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좁은 길목으로만 길을 잡는 에쉬를 향해 진지하게 물었다. 무언가 비밀스러운 곳을 잠입하려는 것처럼 주변 눈치를 살피는 에쉬의 행동 때문에 더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인적이 드문 골목만 찾아다녀서 조금 오싹하기도 했다.

“에쉬? 어디 가냐니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가고 싶은 곳이 있던 거 아니었어요?”

도저히 영문을 모르겠다. 아무리 내 남자라지만 이렇게까지 생각을 모르겠는 표정을 가진 사람은 처음 본다. 얼굴은 숨은 범죄자를 수색하는 것처럼 진지했다.

단 하나, 눈동자만큼은 열의에 불타올라 있었지만.

그런 그가 주변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며 한쪽 입꼬리를 삐뚜름하게 끌어 올린다.

“당신과 함께라면 어디든 상관없지만, 그래도 둘만의 데이트인데 아무 곳이나 갈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둘만의 데이트.

가슴이 설레면서 전신의 혈액이 빠른 움직임으로 도는 게 느껴진다. 생각해보니 그와 함께 외출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정원과 후원 산책이 전부일 뿐이었고, 가끔 내 일을 도와줄 때를 제외하고는 바빠서 느긋하게 대화를 나눌 시간도 줄어들긴 했다.

함께 있는 시간이라고는 저녁 식사 이후뿐이었다. 그마저도 에브린과 함께 지내다 보니 오롯이 둘만의 시간을 가지는 건 아주 부족했다. 에브린도 눈치 보면서 자리를 피해 주긴 하지만, 손님이라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으니까.

그래서 지금 이렇게 그와 단둘이 한적한 길 위에서 함께 말을 타고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뻤다. 그가 육체적으로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나와 조금 더 가까워지기를 원한다는 의지가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니.

“매일 큰길만 다녔는데 이런 좁은 길로 오니까 느낌이 또 다르네요. 우리 내려서 걸으면 안 돼요?”

“내리면 안 됩니다.”

“왜요? 다시 타기 힘들어서?”

“지금 내가 걷질 못하거든요.”

“왜 못 걸어요? 어디 아파요?”

그가 다쳤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아까 말을 타기 전에 걷는 것을 보았을 때도 문제없었고. 갑자기 다친 다리가 재발한 건가 싶어서 걱정이 차올랐는데, 그는 그저 흐뭇하게 웃기만 했다.

“문제가 있는 곳은 다리가 아닙니다.”

“……그럼요?”

머리를 열심히 굴려보았지만 그 말의 의미를 영 모르겠다. 엉덩이가 닿고 있는 곳이라면 그의 다리 중앙인데.

“내가 아프게 했어요?”

“당신 앞에서 어기적거리며 걷는 꼴은 보이고 싶지 않습니다.”

아아. 남자들의 생리적 현상이라는 거구나.

새로운 사실을 깨달아 고개를 끄덕거리면서도 어쩐지 아랫배가 뜨겁게 달아오르는 느낌이다. 다각, 다각, 걷고 있는 말 위에서 계속 밀착되어 막을 수는 없었다. 조금 피해 주고 싶어도 내 허리를 팔로 감싸고 있는 그의 힘 때문에 움직이는 것도 어렵다.

“저기, 에쉬? 괜찮겠어요?”

“불편합니까?”

“내가 불편한 게 아니고 당신이 불편해할 것 같아서요. 저도 사실…… 흥분한 채로 계속 애무만 받으면 좀, 못 참을 것 같거든요. 당신도 똑같지 않을까 싶어서.”

매일 밤 그의 손길을 느끼면 몸이 절로 달아올랐었다. 성감대를 매만지지도, 닿지도 않았는데 서로 밀착한 채로 안고만 있어도 애가 탔던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나는 참을 수 있었고, 그는 그렇지 못함을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다는 거지. 하지만 직접적으로 그의 손이 성감대를 자극하면 아마 나도 나를 제어하지 못해 그의 옷부터 벗기지 않을까 싶은데.

“그래서 장소를 물색하고 있었습니다. 어디에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뭐, 뭐라고요?!”

서로 불편해지니 나를 좀 떨어트려 놓으면 괜찮지 않겠냐는 말을 돌려서 한 건데. 그는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장소를 물색해? 덕분에 나는 할 말을 잃고 경악한 얼굴로 입술만 달싹거렸다. 그러나 아주 금방 침착함을 되찾았다.

사랑을 나누는데 안이냐 밖이냐를 따질 이유는 없긴 하지. 보는 눈이 있는데 대놓고 하는 게 아닐 테니까. 그렇지 않아도 저택에서조차 내 신음이 방문 밖으로 새어 나간다는데, 하게 되면 차라리 사람이 아예 없는 깊은 숲속이 낫지 않을까?

“에, 에쉬. 그럼 가문의 사유지 근처로 가는 게 어때요?”

“……정말 허락해주는 겁니까?”

“……농담이었어요?”

“쉽게 허락해줄 거라고는 생각 못해서. 그래서 어떻게 수습을 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아, 물론 장난을 치려던 건 아닙니다. 경멸 어린 눈으로 쳐다보지 않아 주어서 그저 감사할 따름이고요.”

그가 아직 모르는 게 있다면, 내가 그의 말 한마디마다 무척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사실이다. 그가 원하는 건 다 해주고 싶고, 그가 하자고 하는 건 다 해줄 마음이 들었다.

모든 신경세포가 유독 한 사람에게만 반응하는 이 느낌이 그저 좋았다. 이게 헤어 나올 수 없는 사랑의 늪이라는 사실에 기뻤다. 그 상대가 에쉬라서 더 행복했다.

“왜 경멸할 거라고 생각해요? 당신이 좋으면 나도 좋아요. 그리고 유혹은 내가 먼저 한 건데.”

일부러 눈웃음을 지으며 손바닥으로 그의 가슴팍을 끈적하게 쓸어내렸다. 얇은 상의 아래 숨겨진 단단한 근육이 미약하게 꿈틀거리는 게 느껴져 아주 흐뭇했다.

내 손길에 반응해주는 그가 너무도 사랑스러웠으니까.

“여기에서 왼쪽으로 가면 작은 숲이 하나 있어요. 버섯을 재배하는 곳인데 지금 이 시간에는 아무도 출입하지 않을 거예요. 그쪽으로 가요.”

그는 주저 없이 방향을 돌렸고, 아까보다 조금 더 빠르게 말을 몰았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그의 허리를 꽉 잡아 몸을 밀착시켰다.

그의 숨소리가 점점 더 거칠어지는 건 비단 속도가 빨라서는 아니었다. 서로의 몸이 닿으면 닿을수록 더욱 열기를 띄고 있었기 때문임을 그도, 나도 잘 알고 있었다.

어느새 우리 백작가의 사유지로 들어서는 숲길 입구에 진입했다. 좁은 오솔길의 중간에 다 허물어져 가는 오두막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 앞에 말을 세워 내린 우리는 그 오두막 안으로 들어가 누가 뭐라고 할 것도 없이 서로의 입술을 맞췄고, 벌어진 입술 사이에서 축축한 혀가 얽히면서 자연스럽게 키스를 나눴다.

“으응, 아…….”

반쯤 부서져 있는 창문 사이로 더운 바람에 섞인 숲의 진한 내음이 실려 왔다. 그것이 오늘따라 향기롭다. 코끝에 머무는 그의 체취와 비슷한 느낌인 것 같았다. 그의 손길만큼 다정하고 키스만큼 달콤하면서 서서히 치솟아 오르는 열기만큼 부드러운 온기까지.

익숙해지지 않는 키스이지만 충분한 만족과 기쁨이 느껴진다. 아마 모든 것을 전부 다 통틀어서 가장 행복함을 느끼는 행위가 아닐까 싶다. 부족하지도 지나치지도 않은 쾌락에 심취하면서도 정신만큼은 안전하게 품고 있을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알고 있다. 키스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그것은 그의 커다란 손이 닿으면서 발동되었다. 얇은 속바지가 그의 손길을 방해해서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았을 때, 갑자기 몸이 휘청거렸다.

“앗!”

깜짝 놀라 중심을 잡으려고 삐걱거리는 나무 벽을 짚었다.

“에쉬?”

“여기서 이렇게 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뭐가? 뭐를?

그의 말뜻을 헤아리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여기서, 어떻게 하겠다는 거예요?”

“마땅한 장소도 없고, 여기는 아무래도 오래 비었던 곳 같아 먼지가 꽤 많으니 누울 수도 없으니까요.”

사랑을 나누는 데 장소 따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장소가 아니라 자세가 문제일 거라고는 조금도 상상해본 적 없다. 이게, 가능할까?

장소보다 현실적인 문제가 더 걱정되었다. 하지만 그는 별다른 문제가 전혀 없어보였다.

조금 긴장으로 움츠러들었던 어깨에 힘을 빼며 깊은숨을 뱉어냈다.

“좋아요. 뭐, 새로운 시도도 해봐야겠지요? 부탁인데 나 넘어지지만 않게 해줘요.”

“나만 믿어요.”

생글생글 기분 좋게 웃는 그가 잽싸게 바지 버클을 풀어냈다.

‘볼 때마다 느끼지만, 저만한 크기가 내 몸속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어.’

두 눈으로 빤히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민망해서 시선을 잠깐 든 사이, 그가 몸을 밀착해온다.

“아…….”

“불안하면 다리를 내 몸에 감아요.”

그의 말대로 허공에 뜬 한쪽 다리를 그의 몸에 얹고 그의 어깨를 답삭 잡았다. 그에게 닿은 곳이 화끈거려 허리가 움찔거렸다.

“나를 이만큼 기다렸던 겁니까?”

“나쁜, 거예요?”

“좋은 겁니다. 적어도 나한테는.”

아주 미약한 전율이 느껴져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의지할 곳은 에쉬 뿐이었기 때문에.

솔직히 서로 착의를 한 상태로 닿고 있는 이 상황이 어쩐지 배덕하게 느껴져 더 달아오르는 느낌이다. 누가 보더라도 우리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한 눈에 알 수 있을 테니까.

“간지, 간지러워요…….”

“어디가?”

“……어디라고 정확하게, 짚진 못하겠는데.”

왠지 부끄러운 일을 들킨 것 같아서 심장이 벌렁거린다.

“이런. 별수 없군요. 더 애를 태우다가 거부당하면 큰일이니. 슈아, 직접 해보겠습니까? 내 손은 자유롭지 못해서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