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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비밀스러운 꽃 (24)화 (25/113)

24화

깊은 관계의 문제는 아님을 알았다. 수없이 나를 집어삼키던 전율이 문제였다. 도무지 버티기 힘든 감각에 아득해지면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 경직되어버리니까. 이 세상 모든 결혼한 여자들에게 존경심마저 들었다.

어떻게 밤새 그렇고 그런 일을 하고 낮에 멀쩡히 돌아다닐 수가 있는 거냐고!

더 큰 문제는 저 남자의 지치지 않는 체력이다. 그의 탄탄한 육체만 보아도 그가 대단한 검술 실력을 갖추었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지만. 그 엄청난 힘이 이런 데다 쓰기 위해서 만들어진 건 아닐 텐데.

물론 그게 나쁘다는 뜻은 아니지만. 허벅지가 튼튼할수록 정력이 뛰어나다던 이야기가 실감이 난달지.

어제의 기억이 조금이라도 머릿속에 떠오르면 자꾸만 숨이 벅차올랐다. 그 감촉들이 아직도 제법 생생해서 몸이 간질간질, 이런 감각을 느끼는 건 생애 처음이라 자꾸만 입술이 바짝바짝 말라갔다.

[여기? 슈아, 이렇게 해주면 돼?]

[아, 안 돼, 으응……!]

거대한 불꽃을 터트린 것처럼 몇 번이나 환한 빛에 휩싸여 몸을 떨었는지. 상황을 확실하게 기억하는 건 아니지만 전신의 신경에 남아있는 반응은 단 하나도 잊혀지지가 않았다.

괴로우면서도 기쁜 쾌락에 빠져 허우적거렸던 나를. 나비가 허물을 벗고 나오는 것처럼 꿈틀거리던 그 수많은 자극까지.

[그거 알아요, 슈아?]

[아, 몰라. 몰라몰라. 힘들어어……!]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아직 움직이지 않고 있잖습니까.]

그래놓고 내가 좀 쉬었다 싶으면 다시 예고도 없이 움직이곤 해서. 언제 다시 시작할지 몰라 긴장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런 초조한 나와 다르게 아주 여유로운 웃음을 흘리는 그의 입술이 내 어깨 위로 내려앉았다.

[힘들다는 말치고 당신이 나를 놔주지 않아서. 곤란해지는 건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왜 이렇게 어여쁜 겁니까? 이 허기짐이 조금도 가시질 않아 너무 힘이 듭니다만.]

그 중얼거림이 얼마나 오싹한 공포를 안겨다 주었는지. 그는 모를 것이다. 하면 할수록 한 가지 확실하게 느낀 게 있다. 그의 성욕은 끝이 없다는 것을.

‘정력을 감소시키는 음식을 좀 알아봐야겠어.’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들키면 곤란하다. 그와의 정사는 좋았지만, 일단 내가 좀 살아야겠다. 나는 내 옆에 앉는 에쉬를 향해 수줍게 웃어주며 머리카락을 귀 뒤로 꽂았다.

곧 집사가 바로 본식과 와인을 내왔다. 늦은 새벽까지 격렬한 밤일에 시달린 나는 체면이고 뭐고 다 제쳐두고 일단 주린 배를 채우는 데 집중했다. 간혹 에브린이 ‘나는 간밤에 네가 한 일을 알고 있다’라는 표정으로 웃어 보여서 입에 머금고 있는 음식이 원형 그대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뻔.

어느 정도 식사가 끝났을 때, 집사가 조용히 들어와 내게 묵례했다.

“아가씨. 어젯밤에 영지 내에서 좀도둑으로 보이는 이를 잡았다고 합니다.”

“누구지? 영지민인가?”

“보고에 의하면 작년 역병사태 이후 영지에 머물기 시작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일은 백작께서 직접 처분을 내려주십사 부탁을 하더군요.”

아버지는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으니 대리로 내가 가야 하는데. 영양분을 채우긴 했어도 다리는 아직 내 의지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해서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데, 에쉬는 망설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슈아. 제가 대신 확인하러 다녀와도 괜찮겠습니까?”

“혼자 가게요?”

“저 녀석. 세상 교육을 시킬 겸 데리고 가겠습니다.”

턱짓으로 파빌리엔을 가리키는 에쉬의 행동에 파빌리엔의 미간이 확 좁아진다. 형에게 어린아이 취급받는 게 상당히 불쾌하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별다른 불만을 표하지 않고 순순히 일어나 에쉬의 뒤를 따른다. 나가기 전에 나와 에브린을 한번 슥 스치듯 보던 그 푸른 눈동자가 영롱하게 반짝거리면서 부드럽게 흔들렸다.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어물쩍거리더니 그냥 나가버린다.

‘내가 아니라 브링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보였는데.’

두 남자가 집사와 함께 나가고 나서, 나는 고개를 돌려 에브린과 시선을 마주쳤다. 방실방실 웃기만 하는 에브린을 향해 눈을 가늘게 뜨며 조용한 목소리로 추궁했다.

“파빌리엔하고 무슨 일 있었어, 너?”

“아니? 일은 무슨. 나는 나 좋다고 매달리는 남자 아니면 손끝 하나 건드릴 생각 없어.”

“그럼 다행이지만…….”

“너야말로 너무했어. 나 그래도 손님인데 집주인이 두 손님을 그렇게 방치해도 되는 거야? 아주 2층이 그냥 후끈후끈해서 근처만 가도 데이겠더라.”

훅 들어온 정곡에 나는 달아오른 뺨을 손바닥으로 감싸 쥐며 입맛을 다셨다. 그러다가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다시 미간에 힘을 주며 뾰족한 말투로 쏴붙였다.

“너 그 약 뭐야? 에쉬한테 준 약 말이야.”

“약? 아, 그거……? 아니 그 남자가 진통제를 구한다고 들어서 내가 가지고 있는 걸 준 것뿐이야. 무슨 문제 있어?”

“재, 재료가 뭐냐고.”

“재료? 상처 지혈에 효능이 있는 약재에서 즙을 내어 꿀하고 섞은 건데? 그 약이 왜?”

약재와 꿀만 섞은 것을 발랐다고 감각이 예민해지는 건 아닐 텐데. 그렇다고 에브린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이걸 솔직하게 이래저래 해서 물어보는 거라고 말도 못하겠고.

의심 어린 내 표정을 유심히 살피는 에브린이 알만하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상체를 내 쪽으로 숙여왔다.

“뭐야? 그거 써봤어? 나는 그냥 상처가 날 때 지혈할 생각으로 가지고 있던 거긴 한데. 어때? 그거 효과 좋아?”

“……너 거기에 뭐 섞었지?”

“내가 섞은 거 아니고 원래 그런 용도랬어. 첫날밤에 통증을 억제시키면서 엄청 흥분되게 한다던데. 아! 그래서 둘이 밤새 달릴 수 있었던 건가?!”

“조, 조용히 해!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흐음, 아주 약효가 좋은가 보네. 비싼 값을 하니 만족스럽다. 후기 고마워, 슈아.”

왜 부끄러움은 내 몫이 되어버리는 건지. 괜히 목이 바짝 타들어 가서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래서, 내가 알려준 그 방법도 써 봤어? 남자 홀리는 방법.”

“풉!”

입속에 머금었던 물이 허공에 분사되어 식탁 위로 흩뿌려진다. 연타로 공격을 받은 충격에 의해서 추태를 보이고야 만다. 둘만 있으니 망정이지, 여기 다른 사람이 있었더라면 당장 자리를 박차고 도망쳤을 거다.

“브, 브, 브링!”

“자 여기 냅킨. 내건 안 젖었어.”

꼭 내가 당황하는 것을 즐기는 것 같았다. 에쉬나 에브린이나. 둘 다 이런 면에서는 비슷한 구석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나는 에브린이 건네준 냅킨으로 얼굴을 정리하고 테이블보에 젖은 부위를 닦는 척하면서 어제의 기억을 되살려보았다. 딱 한 번, 에브린이 알려준 그 방법을 썼다가 하마터면 돌아가신 어머니를 뵐 뻔했었지. 그를 자극한 뒤 후폭풍을 떠올리니 등줄기에 소름이 일었다.

“나, 다시는 그런 짓 안 하려고.”

“해봤구나?! 어땠는데? 그 남자가 좋아했어?”

“……몰라.”

“왜 몰라? 별로 못 느꼈어?”

“절대.”

“정말? 그럼 뭐 딱히 그 방법을 쓰지 않아도 되겠네. 왜 네가 그렇게 비명을 질렀는지 이해가 돼.”

“다…… 들렸어?”

“그 방 근처에 갔다가 들었어. 비엔이 불쌍해서 어쩐다?”

“브링 너 자꾸……!”

“뭐, 어쨌든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완전히 빼앗겨 버렸으니 그 속이 얼마나 썩어 문드러질지. 안쓰러워 죽겠네.”

가재는 게 편이라더니. 아니, 짝사랑하는 남자가 좋아하는 다른 여자를 포기하면 본인에게 좋은 거 아니야?

가끔 에브린의 정신세계는 가늠하기 어렵기도 하다. 그보다…….

“설마, 너 어제 파빌리엔하고 같이 있었어?”

“같이 와인잔을 기울여주었지. 시도도 해보지 못하고 실연당한 그 뼈아픈 속을 아주 잘 알거든. 그리고…… 비엔이 생각보다 금방 취해서. 내 품에서 새근새근 잠이 든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두 손으로 뺨을 쥐고 몸을 배배 꼬며 좋아라하는 에브린의 말에 나는 경악을 하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파빌리엔이 취하면 개가 되는 성향이 아니라서 다행인 걸까. 하마터면 큰 사건이 터졌을 수도 있었겠다 싶어서 심장이 철렁한다.

“어제 파빌리엔하고 무슨 이야기 했는데?”

“사람 사는 이야기지 뭐. 보니까 형제간의 사이가 나쁜 건 아닌 것 같고, 형이 동생을 일방적으로 미워하는 쪽이라던데?”

아무래도 두 형제간에 오해가 있는 것 같다. 에쉬가 파빌리엔에게 굳이 그런 소소한 이야기까지 다 털어놓진 않았을 거고. 원래 사람과 사람은 대화가 중요한 법인데, 둘이 선천적으로 완전 반대되는 성향이다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꽤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어.”

“흥미로운 이야기?”

에브린이 두 형제에 관해서 어떤 비밀을 알아냈는지 심히 궁금해졌다.

에쉬는 이미 자신의 과거를 전부 버리고 와서 굳이 내게 설명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진 못하는 것 같았다. 나도 그가 새 출발을 할 수 있도록 과거에 연연하지 않기로는 했지만. 이렇게 그의 연결고리가 나타난 이상 알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이지.

그래서 최대한 태연함을 가장하며 자연스럽게 물었다. 하지만 에브린은 이미 내 속마음을 눈치챈 듯 조금 뜸을 들이려고 눈동자를 데구르르 굴렸다.

“아, 뭐더라? 갑자기 기억에 혼선이 오는 것 같네?”

“……그럴 거면 하지 마.”

“에이, 삐쳤어? 우리 슈아는 삐쳐도 예쁘고 귀여워서 막 깨물어주고 싶다니까? 그러니까 그 남자가 너한테 푹 빠져서 헤어 나오질 못하지. 이해해.”

상체를 숙여 두 팔꿈치를 식탁에 대고 손깍지를 껴 그 위에 턱을 얹어둔 에브린의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지질 않는다. 그게 순수한 미소가 아니라서 은근 얄미웠다.

“솔직히 나는 그 형제, 배다른 형제가 아닐까 생각했었거든? 그런데 둘이 부모님이 같대. 진짜 형제라는 거야.”

“나도 그건 에쉬한테 들었어.”

“그 둘이 고위 귀족이라는 이야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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