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약이 발린 곳이 불에 닿은 것처럼 뜨거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저 뜨겁기만 한다면 참을 수 있는데, 강한 열기와 함께 찌릿한 자극이 끊임없이 전해져 숨을 쉬기도 힘들어졌다.
그가 쾌락에 취해 잔뜩 흥분한 나를 심각하게 바라보고는 땅이 꺼져라 깊은 한숨을 뱉어냈다.
“평범한 진통제가 아니었군.”
빨리 뭐라도 했으면 좋겠는데. 도저히 참을 수도, 그렇다고 분출되지도 않는 이 어이없는 상황이 너무 억울해졌다.
‘브링, 너 진짜…… 이번에는 가만 안 둬!’
저 약을 건네주고 뒤에서 얼마나 짓궂게 웃었을지 생각하면 울분이 치솟아 올랐다.
“조금 더 당신을 기쁘게 해주려고 했는데. 나도 이제 더는 한계라서.”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그가 무릎걸음으로 하체를 밀착시킨다. 팔뚝부터 어깨와 뺨에 짜릿한 소름이 일어 바짝 굳어버렸다.
아까부터 침착함을 유지하던 에쉬의 표정도 조금씩 풀어지는가 싶더니 조금 탁한 빛을 띠는 연갈색 눈동자가 잘게 흔들린다. 그의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는 나직한 신음이 그 어떤 천상의 소리보다 아름답게 들렸다.
“에쉬, 빨리 해 줘요. 당신을 빨리, 느끼고 싶어.”
확실히 제정신은 아니었다. 제정신이면 절대 말하지 못했을 부끄러운 말이 너무 자연스럽게 뱉어졌다.
그리고 그것이 스스로를 제어하고 있던 그의 고삐를 놓아버리게 만든 원인이 되어버린 걸 나중에 알았으나 후회는 없었다.
그만큼 나도 급했으니까.
열망이 가득 차오른 그의 눈동자가 짙은 화염에 휩싸이면서 입꼬리가 스륵 올라갔다. 분명 웃고 있는데 커다란 맹수가 으르렁거리는 느낌이라 덜컥 겁이 났다. 이대로 내 목덜미가 물어뜯길 것 같아서.
“슈아. 지금 나를 도발하는 겁니까? 방금 내 심장을 한번 쿡 찌른 것 같은데.”
그가 얼마나 참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의 진짜 모습을 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내가 모르는 그의 본성이 궁금했다. 유혹에 넘어가 흥분을 참지 못하고 잠깐씩 드러나는 바로 이 모습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눈가를 파르르 떠는 그가 붉은 혀를 슬쩍 내밀어 자신의 입술을 느릿하게 핥는다. 그렇지 않아도 뜨거워서 전부 타버릴 것 같은 하체가 불에 지진 듯 더 화끈거렸다. 뜨겁게 달군 쇠꼬챙이를 가져다 댄 것처럼.
“그 말, 후회하지 마.”
황홀해 보이는 미소 뒤에 어딘지 모를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는 건 내 착각일까?
다행히 지난번처럼 아프진 않았다. 그 대신 낯선 감각이 뱃속을 강타한다. 아찔한 쾌감에 취해버리고 말았다.
거친 파도를 헤치고 전진하는 것처럼 서로의 생살이 엉켜 들고 맞붙는 감각은 아주 특별했다. 그와 첫 관계를 치를 때는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쾌락에 눈을 떠버리고 말았다. 그의 입술과 혀로 애무 당하던 그것과는 또 별개였다.
평생 닫혀있던 꽃봉오리가 단번에 만개하여 세상에 다시없을 아름다움을 드러내 버린 것처럼.
심장이 수십 번 팽창하며 살랑살랑 부드럽게 흔들렸다. 조금씩 자근자근 그에게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먹히는 기분이 너무나 좋았다.
“에쉬…….”
“왜요. 힘들면 그만할까요?”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속삭이면서 미지의 영역에 진입한 그에 의해 숨이 턱 막혔다. 순간 폐가 위로 밀린 느낌이었다.
그의 입술 사이로 거친 호흡이 터져 나왔다.
“말해 봐요. 그만할까? 어떻게 해줄까요, 응?”
멈추라고 한 적 없는데. 일부러 심술부리는 것 같아서 기가 찼다. 마치 다른 사람을 보고 있는 느낌이다. 굉장히 낯선데 약간 정신줄을 놓았는지 히죽거리는 표정이 그렇게 싫지 않았다.
조금, 귀엽게 보이기도 하고.
“그만하고 싶어요, 에쉬? 난 아직, 충분하지가 않은데.”
나는 살짝 풀린 초점을 맞추려고 노력하며 그를 따라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손바닥으로 울룩불룩하게 춤을 추는 그의 단단한 복근을 어루만졌다. 내 손길이 닿는 부위가 움찔움찔 경련하며 반응을 보인다. 그가 떨리는 숨을 뱉어내고 두 눈동자를 파르르 떨었다.
“윽, 슈아.”
“내 걱정할 때는, 아닌 것 같아요. 우리 이번에는…… 끝까지 가기로 했잖아요?”
한 가지 확실한 건, 그가 아직 자신의 욕구를 전부 풀지 않았다는 거다. 그럼에도 그는 혹시 내가 다칠까 봐 꽤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안다.
‘이 귀여운 남자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
지금도 굉장히 참고 있는 중일 텐데, 아직 이런 농담이나 할 여유가 있는 그가 괘씸해졌다. 지금도 안달이 난 그가 저런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게 놔둘 생각은 없다.
“큭.”
그런데 왜 그가 아닌 내가 더 흥분해버리는 건지.
순간 엄청난 전율이 머리끝까지 내달렸다. 욱신거리는 짜릿한 충격이 전신에 퍼졌다.
아무런 생각조차 할 수가 없었다. 에쉬도 내 위로 무너지듯 내려와 나를 꽉 끌어안는다.
도저히 그냥 버틸만한 자극이 아니었다. 분명 기분은 좋은데, 그 좋은 강도가 너무 크고 엄청나서 온전한 정신을 가지고는 절대 견뎌낼 수 없는 것이었다.
비명조차 지를 수 없는 기묘한 통증에 그대로 굳어버리고 만다. 와장창 부서져 흩어진 정신과 함께 모든 신경세포가 과한 전율에 휩싸여 절정의 순간을 만들어냈다.
에쉬 역시 그대로 멈췄고, 나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러다가 오늘 안으로 부서져 망가져 버릴 것 같습니다.”
도무지 제정신을 차릴 수 없어서 혼미한 나와 다르게 그는 여유롭게 웃으며 눈가에 맺힌 눈물을 혀로 할짝거리고 입을 맞췄다. 붕 떠버린 정신이 온전히 돌아오지도 않았는데 또 한 번 시야가 새하얀 빛에 물들어 버린다.
“그, 그…… 그만.”
“끝까지 가기로 약속했으니 끝까지 가야지요. 나는 아직 끝을 보지 못했습니다.”
왠지 아까 내가 한 말, 후회하게 해 주겠다는 그런 뉘앙스를 담고 있는 것 같았다.
“아, 그렇다고 겁먹진 마세요. 아프게 하진 않을 테니. 나는 지금 기분이 굉장히 좋거든요. 당신을 끝까지 안을 수 있어서 아주 기쁩니다. 나와 마찬가지로 당신도 즐겨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태연하게 웃으면서 열망을 가득 담은 눈빛으로 나를 위로하듯 속삭이는 그가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려는 듯했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한번 절정에 사로잡혔던 육체의 감각이 더뎌지는 건 아니었다.
한껏 고양되어 외설스러운 쾌락에 빠져들었다. 그는 꽤나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는 내게 수없이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다.
“하아, 당신은 당신 성정만큼이나 뜨겁고 다정해. 세상 그 무엇을 가져도 이보다 기쁠 수는 없을 겁니다.”
“이제 그만…… 에쉬, 그만…….”
“이런. 아직 멀었는데. 조금만 더 해요, 내 사랑.”
몇 번째 절정에 다다랐는지 셀 수도 없다. 수없이 경직과 이완을 반복했다. 관능적인 분위기가 사그라지지 못했다.
“흑, 다리…… 다리 아프다고…….”
다리에서 욱신거리는 근육통이 느껴졌다. 이대로 계속했다가는 또 걷지 못하게 될 거다.
내가 훌쩍거리면서 통증을 호소하자, 그가 아쉬운 한숨을 뱉어내며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별수 없군요. 당신이 이렇게 울먹거리는 걸 보는 것도 좋지만 아프게 하지는 않기로 했으니. 그보다 슈아, 당신 안에 내 흔적을 남겨도 됩니까?”
“……상관, 없어요.”
며칠 뒤면 달 손님이 찾아온다. 임신이 될 확률은 희박할 거고. 아이가 생겨도 상관은 없지만, 오늘처럼 오래 즐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내가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그는 알까?
“허락해주니 기쁘군요. 내 진심을 전부 받아주세요.”
아랫배가 지끈거리고 정신이 혼미해져 초점이 전부 풀려버렸을 때, 흐트러진 시야에 폭죽이 터져 알록달록 어여쁜 불꽃이 작열한다. 머릿속 깊은 곳까지 치솟는 절정에 기절할 것만 같았다. 집요하게 나를 좇는 자극이 소용돌이쳐, 숨통이 졸리는 느낌이었다.
“큭, 헉!”
숨조차 쉬지 못하고 그를 받아내던 어느 순간에 그가 거친 숨결을 토해내며 연신 움찔거렸다. 그러더니 두 팔로 나를 일으켜서 자신의 허벅지 위에 앉혀두고 꽉 끌어안았다.
“슈아, 슈아…….”
그가 부르는 내 이름이 너무도 달콤했다. 꿀통을 한가득 뒤집어쓴 것처럼.
그처럼 나도 내 진심을 담아 그의 이름을 불러주고 싶었으나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그 뜨거운 체온과 다정한 손길을 온전히 느끼기도 전에, 새까만 어둠에 시야가 뒤덮이더니 그대로 정신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그건 내 의지와 상관없는, 말 그대로 아주 자연스러운 기절이었다.
***
고요하고 잔잔한 어둠의 물결 속에서 유영하던 나를 일깨운 건 두피에서 전해지는 묘한 느낌 때문이었다. 간질간질, 누군가 내 머리카락을 매만지는 것 같았다.
“으음…….”
“깼어요, 슈아?”
에쉬의 다정한 목소리가 귓가를 점령한다. 듣기 좋은 나지막한 웃음소리와 함께.
무겁게 내려앉은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 올리자 낯선 천장이 시야에 들어왔고, 그 위로 에쉬의 얼굴이 불쑥 등장했다. 굉장히 상큼한 미소를 담은 표정은 아주 해사했다.
“잠든 모습은 아기처럼 귀여웠는데, 눈뜬 모습은 가슴이 설렐 만큼 아름다워서 새삼 반하겠군요.”
그의 단단한 손가락이 내 머리카락을 아주 섬세하게 매만지며 뒤로 넘겨준다. 그가 닿자마자 내가 그와 아주 뜨거운 정사를 치르고, 견디지 못할 절정에 이르렀다가 순간적으로 정신을 놓아버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부끄러운 감각에 순간 몸서리가 쳐진다. 이십 년 만에 처음으로 느낀 엄청난 쾌감은 좋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두려운 것이었다. 그가 만약 나를 살살 달래가며 더 진행했더라면 그대로 숨이 멎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날아갈 듯 기쁜 마음으로 죽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