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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비밀스러운 꽃 (19)화 (20/113)

19화

불안해하는 그의 손을 잡고 정원 산책로 입구를 들어서면서 그를 슬쩍 떠보았다.

“남동생 미워하는 거, 그 내용 들킬까 봐 그런 거예요?”

“……아니라곤 말 못하겠습니다.”

“그럼 파빌리엔의 말이 다 진짜예요?”

그의 연갈색 눈동자가 갈 곳을 잃고 정신없이 방황한다. 혼자 끙끙 앓는 모습에 내 마음이 휩쓸리는 것 같았다.

“솔직하게 말해줘요. 만약 당신이 거짓말을 한다면, 나는 굉장히 속상할 것 같아요.”

“맞습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진심입니다. 나 역시 당신을 처음 봤을 때부터 특별한 마음을 품게 되었다는 건,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사실입니다. 믿어주십시오.”

“믿어요. 사랑을 담은 마음은 절대 거짓말로 꾸밀 수 없거든요.”

나는 그 자리에 서서 그를 마주 보고는 두 팔로 그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리고 그의 가슴팍에 뺨을 기대고 두 눈을 감았다.

쿵, 쿵, 그의 몸속에서 터질 듯 빠르고 크게 울리는 심장 박동 소리가 미약하게나마 전해졌다. 격렬하게 발작하는 그 울림에 담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그를 믿을 수 있었다.

사람의 몸 중에서 가장 솔직한 곳이 눈과 심장, 그리고 하체니까.

“당신이 나를 빼앗은 게 아니에요. 그건 성립될 수 없는 단어예요. 나는 파빌리엔에게 일말의 관심도 없었고 마음을 준 적도, 담은 적도 없었으니까요.”

“슈아…….”

“내가 생애 처음으로 마음에 품은 남자는 당신이 유일해요. 당신이 나를 배신하지 않는 이상 그 마음이 변하지 않을 자신 있어요.”

나는 지금도 믿는다. 그는 어머니가 나를 위해 보내온 사람이라고. 그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나는 눈과 귀를 전부 닫고 막아 아무것도 듣지 않을 자신도 있다. 그가 나를 죽이기 위해 온 암살자라고 해도, 기꺼이 목숨을 내어줄 의향도 있고.

그만큼 그의 존재가 내 세상의 전부였다. 그가 없는 세상은 이제 상상할 수도,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슈아.”

그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내 이름이 너무도 듣기 좋았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따뜻한 봄바람이 나를 부드럽게 감싸는 그런 느낌처럼.

그가 두 손으로 내 뺨을 감싸 쥐고 나를 똑바로 마주 보았다.

“절대, 내 목숨이 위협받는다고 해도 당신을 배신할 일은 없습니다. 그렇게 쉽게 죽지도 않을 거고요. 끝까지 살아남아 당신 곁에 머물 겁니다.”

“믿어요. 전부 다.”

“또한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당신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나에 대해서 전부 털어놓지 못한 건 내가 부끄러워서입니다. 파빌리엔의 말처럼, 내 어깨에 짊어진 모든 것을 떠넘기고 온 건 사실이라서…….”

본인의 의지이긴 해도 그게 나 때문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겠지. 그랬다고 하여 그를 원망하거나 타박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오히려 그가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어려운 결단을 내린 거라고 생각하면 그저 고맙고 대견할 뿐.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세요. 나는 에쉬에 대한 모든 것을 받아줄 마음도 활짝 열려 있으니까. 언제든 마음의 준비가 되면 내게 당신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길 바라요. 기다려줄 수 있어요. 얼마든지.”

어차피 세상에 비밀은 없다고 했다. 마음만 먹으면 파빌리엔에게서 그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지만, 다른 사람이 아닌 본인에게서 듣고 싶다.

그게 서로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에쉬. 오늘 밤에는 내가 에쉬 방으로 갈게요.”

“……오늘 밤, 말입니까?”

“네. 혹시 싫어요?”

“그럴 리가.”

밤에 찾아가겠다는 의미를 모르진 않다는 듯 조금 시무룩하던 그의 얼굴에 활기가 돌았다.

‘정말 이 남자, 왜 이렇게 귀여운 거람?’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어 조금 얼떨떨하다가도 금방 웃음꽃이 피는 그를 보고 있노라니 괜히 내가 더 뿌듯했다. 눈치 없이 올라가려는 광대와 입꼬리를 다잡으려고 부단히 노력하는데 맘처럼 쉽지 않다는 모습조차 귀여웠다.

들떠 보이는 그의 마음이 내 마음과도 같아서 그를 따라 환한 미소가 절로 번진다. 나는 그의 가슴에 손바닥을 조심히 얹어 옷 속에 숨겨진 단단한 몸을 느끼며 최대한 요염하게 보일 수 있는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브링에게 양해를 구하고 갈 거니까 깨끗하게 목욕하고 기다려요. 알았지요?”

“꽤…… 긴 기다림이 될 것 같군요.”

그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그게 내 심장을 하염없이 쥐락펴락한다는 사실을, 그는 알까?

지난 첫날밤을 완벽하게 치르지 못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웃기게도 그렇게 힘들고 아팠는데도 내 몸은 그와 닿을 때마다 애가 타서 간질거리고 제멋대로 달아올랐다.

슬슬 한계가 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오늘 제대로 그와 나의 관계를 아주 튼튼하게 엮어야겠다는 결심이 생겼다. 그 어떤 것에도 휘둘리지 않도록.

수줍은 약속을 한 이후에 우리는 조금 더 둘만의 시간을 가지기 위해서 꽤 오래 산책을 이어갔다. 어머니께서 정원 산책을 좋아하신 덕분에 특별히 잘 가꾼 정원이 뜨거운 태양을 영양분 삼아 온통 초록빛으로 물들었다. 

“아, 에쉬. 저기 봐요.”

정원의 끝자락에 오래된 떡갈나무를 무심코 올려다봤는데, 잎이 넓은 나무의 가지 끝에 노란빛이 도는 녹색의 작은 잎이 촘촘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그건 겨우살이였다. 올해 봄이 오기 전의 겨울 끝 무렵, 그러니까 에쉬가 나를 떠나기로 했던 그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이후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짧은 산책을 하다가 본 그 겨우살이가 그대로 자라난 것이었다.

“기억나요? 당신이 떠나던 그날 함께 봤던 건데.”

“……기억납니다. 겨우살이 아래에서 키스하는 연인은 행복해진다던 그 이야기.”

그도 잊지 않았구나.

나는 기분 좋게 웃으며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겨우살이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그가 내게 잠시 이별을 고했던 그날.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고 가벼운 입맞춤에 잔뜩 들뜬 상태로 마지막 산책을 이어갔을 때였다. 추운 겨울이라 잔뜩 쌓인 눈과 매서운 바람조차 포근하고 따뜻하게 느껴지던 순간.

[어? 저건……?]

내가 잘못 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보통 깊은 산 속에서 자란다는 겨우살이를 정원 한가운데에서 보게 될 줄이야.

내가 어렸을 때 딱 한 번 저 떡갈나무에서 자라난 겨우살이를 본 적이 있었다. 어머니와 함께 산책하던 봄에 봤던 걸로 기억한다. 그 이후로는 한 번도 보지 못했었는데.

[에쉬. 저기 겨우살이예요.]

떡갈나무 꼭대기 가지에 자라난 겨우살이를 가리키자, 그가 고개를 들어 그곳을 쳐다봤다. 나는 그의 단정한 옆모습을 올려다보며 쑥스럽게 뺨을 붉혔다.

[저 겨우살이 아래에서 키스하는 연인은 무조건 행복해진다는 설이 있대요.]

[정말입니까?]

[어머니가 해주신 말이긴 한데. 지어낸 말일 수도 있지만……]

순간 시야에 까만 그림자가 덮였다. 달콤한 체취를 담은 숨결이 뺨에 내려앉았고, 그의 말랑한 입술이 내 입술 위로 포개어졌다.

그것은 무척이나 애틋하고 숭고한 입맞춤이었다.

[그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나는 신의 가호를 받아 무사히 살아 돌아올 수 있겠지요. 돌아오면 그때, 꼭 이곳에서 제대로 키스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때의 대화가 생생하게 떠올라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저 겨우살이 아래에서 우리는 헤어졌고, 다시 만나 이 자리에 함께 돌아왔다. 그날의 일이 단지 달콤했던 추억 한 자락으로 잊혀지지 않게 되어 매우 기뻤다.

“당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내게로 돌아온 그 대단한 결심을, 나는 절대 잊지 않을 거예요.”

“슈아 당신이 없었다면 아마 그 목장은 계속 방치된 채로 남아있었을 겁니다.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었어요.”

“그럼 내게 상을 주세요. 우리가 약속했던 그거.”

그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내게 고개를 비스듬히 숙여와 입술을 포갰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의 목에 팔을 둘러 끌어안았다.

그의 거친 숨결은 당장에라도 음습한 속살을 격렬하게 휘젓고 싶다는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침착하게 이 순간을 즐겼다.

“하아, 에쉬…….”

축축한 혀가 내 아랫입술을 살살 문질러와 애가 닳는 쪽은 나였다. 찌릿한 감각이 전신의 신경을 타고 발끝까지 퍼져 정신이 혼미해진다. 타액으로 젖은 아랫입술을 살짝 물어 쪽, 빨아내는 자극에 허리가 바짝 세워지면서 가느다란 신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그런 내 허리를 팔로 감싸 안은 그가 자신의 하체를 밀착시켰다. 서로의 얇은 옷감 사이로 뜨거운 기운이 느껴져 허벅지 사이가 후끈 달아올랐다.

곧 입술을 가르고 깊숙이 혀를 밀어 넣은 그가 섬세하게 조각을 하는 장인처럼 구석구석 샅샅이 핥고 빨아냈다.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쾌감이었으나 황홀한 그 세계에서 빠져나가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당장 서로의 온기를 느끼고 그를 품고 싶어졌다. 진득하게 결합되던 감각이 떠올라 두 다리가 파르르 떨렸다.

“아무래도 당신 계획은 실패한 것 같은데요? 오히려 저 두 사람을 더 불붙여놓은 것 같기도 하고.”

그때, 심드렁한 에브린의 목소리가 들려와 깜짝 놀랐다. 반사적으로 입술을 떨어트리고 고개를 돌리자, 못 볼 꼴을 보았다는 듯 두 손바닥을 겹쳐 눈두덩 위에 올려놓은 에브린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 옆에 짜증 나는 표정으로 서 있는 파빌리엔이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젓고 있었다.

왜 꼭, 꼭! 에쉬와 내가 키스만 하면 저렇게 귀신같이 알고 오는 건지!

나는 벌렁거리는 심장을 안정시키려 노력하면서 목을 가다듬었다. 에쉬 역시 또 방해를 받아 아쉬워하면서 파빌리엔을 찌릿 노려보았다.

“슈아. 저 녀석과 잠시 이야기를 좀 해야 될 것 같은데, 친구 분과 먼저 돌아가 식사를 하고 계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럴게요. 그래도 남동생이고 혈육이니까 다치게 하면 난 매우 슬플 것 같아요. 화내지 말고 대화로 잘 풀었으면 좋겠어요.”

“……노력해보겠습니다.”

에쉬의 검술 실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아서 진짜 마음만 먹으면 동생이라도 해칠 수 있을 것 같았다. 파빌리엔을 보는 눈빛에 담긴 살기는 진짜였으니까.

그래도 이렇게 말해놨으니 최악의 상황까진 가지 않겠지. 저 위태로운 두 남자를 놔두고 가도 되나 싶다가도 형제간의 대화에 내가 끼어들 수는 없겠다고 여겨 미련 없이 에브린과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나저나 에쉬와 키스한 걸 두 번이나 보이고. 민망해 죽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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