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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비밀스러운 꽃 (10)화 (11/113)

10화

“방금 조금 상처받을 뻔했습니다. 당신이 내 몸을 닦아줄 때도 나는 피한 적이 없었는데.”

“미안해요. 그냥 조금 놀라서, 읏.”

진지하게 사과의 말을 뱉어내는데, 그가 하체를 조금 더 밀착하면서 가볍게 눌러왔다.

“정말 미안하면 이번에는 거부하지 말고 나를 받아주세요. 부디 기쁘게.”

“……헉!”

마치 벼락 맞은 느낌이었다. 엄청난 이물감과 함께 누군가가 피부를 세게 잡아당기는 통증에 숨이 턱 막혔다. 나는 비명이 나올 것만 같아 입술을 꾹 깨물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아파…….’

통증에 몸이 굳어지는 것 같아서 어떻게든 힘을 풀어보려고 했으나 힘을 풀어도 감각은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그도 힘들어 보였다. 흥분감으로 물든 연갈색 눈동자가 연신 흔들린다.

“르슈아. 괜, 찮습니까?”

나를 걱정하는 그의 목소리에 힘겨움이 느껴졌다. 내가 힘든 만큼 그도 힘들구나 싶어 또 미안해졌다.

“그냥…… 그냥 해요, 에쉬. 빨리.”

첫 경험은 아플 수도 있다고 했다. 보통 혼인한 귀족 여자들은 첫날밤을 보낼 때에 마취제가 약간 섞인 진통제를 바르고 관계를 치른다고 했다. 미처 준비할 시간이 없기도 했고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던 내가 안일했던 거다.

하지만 여기에서 그만둘 수는 없다. 그 아무리 괴로운 일이어도 그와 시작한 일이니 이 관계의 끝을 함께 맺고 싶었다. 우리 둘만의 소중한 시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도 내 생각을 이해했는지 내 등에 팔을 밀어 넣어 어깨를 꽉 잡아 고정했다. 순간 몇 번이나 정신을 놓아버릴 뻔했다.

그냥 아프기만 하면 하지 말라고 울면서 애원이라도 하겠는데, 또 이상하게 아픈 만큼 알 수 없는 전율이 치밀어 쾌락에 빠져들어 버리니까.

한참 집중하던 그가 움찔거리더니 갑자기 뒤로 완전히 물러나 버렸다.

“아윽, 에쉬?”

“정말이지…….”

잇새로 나직하게 신음을 흘리는 그가 숨을 고르면서 나를 똑바로 내려다봤다. 설마 화가 났나 싶어 가슴이 철렁하는데, 허탈한 웃음소리가 들려와서 어리둥절했다.

“왜 웃어요……?”

“내 생각이 짧아 당신을 힘들게 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영 좋질 못합니다. 다음에 진통제를 구해 와서 다시 해야겠습니다. 오늘은 무효로 하지요.”

“뭐라고요? 무효라니. 그런 게 어디 있-”

“당장 죽을 것 같은 얼굴을 한 쪽이 누군지 곰곰이 생각해봐요. 아무튼 나는 이 이상 못합니다. 같이 죽을 수는 없잖습니까?”

그게 무슨 의미인지 깨닫게 된 건, 이어서 두 번째 정사를 치르던 어느 날이었다.

***

반쯤 이뤄진 아쉬운 첫날밤을 보낸 다음 날. 이른 아침.

“으읍, 읏……. 아, 살살……. 천천히!”

“쉿. 목소리가 너무 큽니다, 르슈아.”

오늘도 여지없이 떠오른 태양의 따사로운 햇살이 방 안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열린 창문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침실 커튼을 어지러이 흔들어놓았다. 뜨거운 여름이긴 해도 내 방 뒤쪽은 산이라서 제법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끈하게 달아오른 침실을 식히는 건 역부족이었다.

나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푹신한 침대에 엎드려 있었다. 달달 떨리는 몸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이불을 꾹 말아 쥐었다. 베개를 이로 꽉 물어 소리를 내지 않으려 애를 썼지만, 목구멍 밖으로 새어 나오는 통증 어린 신음을 완전히 막아낼 수는 없었다.

“윽, 읍, 응……. 에쉬, 아흑……!”

내 등 위에 올라탄 에쉬의 숨죽여 웃는 소리가 다 들린다. 덕분에 괜히 귀 끝까지 뜨겁게 달아올라 버렸다.

대체 어쩌다가 이런 상황이 왔는지 모르겠다. 정말 억울해서 미치고 팔짝 뛰고 싶은데 그럴 기운조차 없어서 속상하다.

분명 새벽까지는 이렇게까지 아플 줄 몰랐는데.

“많이 아픕니까?”

“당신이 내 근육을, 후……. 난도질하고 있는 느낌이에요.”

“미안해지는군요. 대신 아파줄 수도 없고.”

그러면서도 자꾸만 픽 웃는 소리를 낸다. 얄미워서 흘겨봐주고 싶었지만, 지금은 목과 어깨를 쉽게 움직일 수도 없었다.

바로 어제. 우리 백작저를 떠나있었던 에쉬가 근 넉 달 만에 다시 내 곁으로 돌아왔다. 무사히 돌아오면 자신을 연인으로 받아달라던 그와 어젯밤, 그토록 고대했던 첫 정사를 치렀었다.

첫날밤에 대한 솔직한 견해를 털어놓자면…… 그래, 남들이 말하는 것처럼 몸이 찢어지는 기분이긴 했다. 예상은 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아플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달콤하고도 진한 키스와 아찔한 감각을 전해준 애무에 정신이 혼미해지는 쾌락을 고스란히 느꼈다. 그 어떤 산해진미를 맛보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기쁜 행위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았다.

하지만 남녀의 비밀스러운 문을 열고 서로 만나는 과정은 만만치가 않았다. 온통 처음 경험해보는 일이라 어리둥절하기도 했으나, 그를 받아들이는 것만큼은 똑똑히 기억한다.

‘그게 크긴 했지. 무척.’

생애 처음 꿰뚫어진 느낌은, 마치 얼어붙은 땅에 말뚝을 박는 것과 흡사했다. 정말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고 너무 아팠다. 기절하지 않은 게 다행일 정도로.

마음 같아서는 발로 뻥 차고 싶었으나 서로의 처음으로 기억될 이 날을 망치고 싶지 않아 애써 참았다. 덕분에 지금 몸이 남아나질 않는 느낌이다. 어깨도 뭉치고 허리도 아프고.

결국 끝까지 하지 못하고 그와 나란히 누워 그간 서로를 그리워했던 지난날을 위로해주며 알콩달콩한 시간을 보냈었다. 그러다가 소록소록 잠이 들었고, 자는 사이에 뒤척거리다가 욱신거리는 근육통을 느끼면서 강제로 잠에서 깨버리고 말았다.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은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내 마음대로 되질 않았다. 에쉬가 열심히 마사지를 해주어서 그나마 풀리기는 했지만.

“어깨가 참 많이 뭉쳤습니다. 근육통이 심해질 것 같으면 약이라도 얻어올까요?”

“됐어요. 내가 아프다고 하면 유모가 이것저것 캐물을지도 몰라요.”

엎드려 있는 내 위에 올라타 어깨를 조물조물 주물러주는 그의 손길은 굉장히 부드러웠다. 어제 내 몸을 어루만지던 그 야릇한 손길이 다시 상기될 정도로.

참 이상하지? 그렇게나 아프고 괴로웠는데 피부에 닿는 그의 체온과 손길에 서서히 아랫배가 뜨거워졌다.

“르슈아.”

“읏!”

야한 감각과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던 찰나, 에쉬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와 흠칫 놀랐다. 동시에 허리가 또 한 번 욱신거려 끙, 앓고 말았지만.

“왜 그렇게 놀랍니까? 무슨 야한 생각이라도 하고 있었습니까?”

작게 웃는 그가 마치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짓궂은 질문을 해온다. 괜히 가슴이 벌렁거리고 목구멍이 바짝 말라왔다.

“다, 당신 손이 너무 음흉하다는 생각은 안 해요? 에쉬야 말로 야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부정하진 않겠습니다. 당신의 이 고운 피부와 아름다운 육체를 보고만 있으려니…… 내 안의 작은 짐승이 멋대로 날뛰어서요.”

아무렇지도 않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그가 야릇한 숨결을 흘린다. 그의 새로운 모습이 왠지 기뻐서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처음에 은근 경계하면서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던 그때도 좋았지만, 지금 이렇듯 내게 애정을 갈구하는 그가 더 좋다.

“날뛰면 풀어놔요. 억누를 이유는 없잖아요?”

“……그러고 싶은 마음은 차고 넘치지만, 이 근육통이 다 나을 때까지는 참겠습니다. 당신을 더 아프게 하고 싶진 않으니까.”

정말 왜 이렇게 예쁜 말만 골라서 하는 건지. 조금 아쉽긴 하지만 왠지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밀려와 그것만으로도 만족했다.

‘그는 어머니가 내게 보내온 선물일지도 몰라.’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살면서 이렇게 아픈 적은 처음이라 억울해 죽을 맛이다. 해서 나는 여태껏 누구에게도 해본 적 없는 투정을 그에게 잔뜩 퍼붓고 말았다.

“허리가 아파서 걸을 수가 없다니. 이런 건 처음이라고! 나 좀 잡아 봐요. 좀 서봐야겠어.”

그의 손을 잡고 겨우 침대를 빠져나와 두 다리로 섰는데, 다리는 후들후들 떨리고 허리가 얼마나 욱신거리는지. 혼자 힘으로 서 있으려니 땀이 날 정도다.

나와 다르게 너무 멀쩡한 에쉬는 내 허리를 한 팔로 감아 자신에게 기대게 한 다음, 고개를 숙여 내 이마에 입을 쪽 맞췄다.

“난 분명히 힘 빼지 않으면 아플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나마 그 정도에서 끝냈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백작을 뵐 면목이 없어질 뻔했군요.”

“……진짜 어제 왜 하다 만 거예요?”

“지금 이 상황을 겪고도 몰라서 묻는 겁니까?”

부드럽게 웃는 그가 손가락으로 내 뺨을 톡, 건드렸다. 분명 어제 느꼈을 때에는 그 이외에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 같은데.

똑똑.

그때 방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와 깜짝 놀랐다. 설마 유모인가?

“흠흠, 아가씨. 기침하셨습니까?”

방문 너머에서 묻는 유모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어려 있었다. 평소대로라면 들어와서 물었을 텐데, 어제 에쉬가 도착한 것을 유모도 아는 걸까? 에쉬가 내 방에서 하룻밤을 지새웠다는 것도?

‘어쩐지 부끄러운 짓을 저지른 느낌이야.’

나는 내 옆에 서 있는 에쉬를 힐끔 보다가 슬금슬금 아래를 내려다봤다. 그의 근사한 나체가 보기에 너무 좋았으나 상황이 이러한지라. 괜히 목구멍으로 마른 침이 꼴깍 넘어갔다.

“……숨을래요?”

“제가 죄지었습니까?”

“아니 그건 아닌데, 유모에게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것 같아서요. 아니면 옷을 입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제야 그가 나를 다시 침대에 앉혀두고 드레스 룸으로 들어가 가운 하나를 꺼내왔다. 그걸 내게 걸쳐주고 허리끈을 매주면서 가볍게 입을 맞춰주었다.

“유모가 당신의 또 다른 어머니나 마찬가지라고 했던가요? 그분께 미움 받으면 곤란한 감이 없진 않겠습니다. 일단 먼저 씻고 나와요.”

“그럼 갈아입을 만한 옷과 당신의 방을 안내하도록 할게요. 당신도 씻어야 할 테니까요.”

방금 그 짧은 입맞춤이 아쉬웠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너무 아파서 푸념하기만 했던 내가 바보 같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에쉬. 키스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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