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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비밀스러운 꽃 (8)화 (9/113)

8화

그래서 위험하다는 것도 잊은 채 달려 내려가 그의 품에 뛰어들어 와락 안겼다. 내 행동을 예상했다는 듯 나를 가볍게 받아낸 그가 몸을 돌려 벽에 어깨를 대어 중심을 잡았다.

“그러다가 넘어집니다, 르슈아.”

자그맣게 웃음을 터트리는 그가 나를 더욱 세게 끌어안아 주었다. 그 단단한 품속이 그리웠다. 다정한 목소리도. 그의 품에서 느껴지는 달콤하고도 시원한 체취도.

“이거 꿈 아니죠? 정말, 정말 돌아온 거 맞죠?”

“장담할 수 없겠는데.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나도 잘은 모르겠거든요.”

그가 왔다. 정말, 꿈에서처럼 손대면 사라지는 그런 환상이 아닌 진짜 그가.

애타게 기다렸던 그 힘든 시간이 포옹 하나로 충분히 보상되는 느낌이었다. 다른 건 아무것도 필요 없었다. 가족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이만큼 걱정이라는 걸 해본 적이 없던 것 같았다. 언니들이 무사하다는 소식에도 이렇게 심장이 날뛸 정도로 기뻐하진 않았으니까.

“그런데 잠들다 말고 왜 발코니에 나온 겁니까?”

“당신이 왔다는 것을 마음이 알려주었나 봐요. 그냥 오늘따라 굉장히 보고 싶어서 잠이 오질 않았거든요.”

나는 그의 가슴팍에 뺨을 비비다가 행여 누가 이 장면을 볼까 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버지에게조차 이렇게 안겨본 적이 없는데. 에쉬에게 보란 듯이 안겨 있는 것을 사용인이나 기사들에게 들킨다면 괜히 입방아에 오를지도 모르니까.

“흠, 에쉬. 일단 올라가요. 당신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도 있어요.”

에쉬 역시 주변을 경계하며 나와 함께 조용히 2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빠르게 발을 놀려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다시 그를 와락 껴안았다.

“갔던 일은, 잘 마무리 했어요?”

여전히 믿어지지가 않아 그를 빤히 올려다보기만 했다. 행여나 꿈처럼 또 사라질까 봐 조바심이 난다.

그런 내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 그가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내 이마에 입을 맞췄다.

“마음이 조급했습니다. 빨리 정리하고 돌아오려 했는데 목장의 새 주인을 찾는 일이 생각보다 늦어져서요. 당신은, 잘 지냈습니까?”

“네. 아주 잘 지냈어요. 당신이 없어서 허전했던 것만 빼면. 아참, 방을 다시 꾸몄어요. 당신이 돌아오면 머물 당신의 방도 따로 만들어두었고요.”

“방이 따로 필요하진 않을 것 같은데. 그냥 방을 함께 쓰면 안 되는 겁니까?”

“아. 그, 그건…….”

그렇지 않아도 갈무리가 되지 않는 심장이 또 제멋대로 날뛴다. 떠나기 전에는 이런 뉘앙스의 말을 조금도 하지 않았던 그였는데, 너무 당돌하게 저런 말을 하니까 적응이 되질 않았다.

그저 바라기만 했었다. 떠나기 전에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고백했던 그이니, 돌아오면 내게 애정을 드러내 주기를 기대했다는 건 부정하지 않는다.

단지 그게 진짜 현실로 나타나 직접 듣게 되니 얼떨떨하기만 하다.

“르슈아?”

“그, 그래도 혹시 모르니 당신이 머물 방은 있어야지요. 몰래 제 방을 방문하게 되더라도…… 흠흠, 침실이 매일 따뜻해지겠네요.”

긍정을 다해 고개를 힘차게 끄덕거리며 수줍게 웃었다. 싫다고 하기는 싫고, 안된다고 하면 또 밤마다 매일 그를 그리워할지도 모른다.

솔직히 떨어져 있는 건 싫었다. 이미 자그마치 4개월간 그가 없는 생활을 해보았다. 대체 그를 만나기 전에는 어떻게 지냈는지도 모를 만큼 내 삶에 아주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어머니도 그랬지. 정략혼이긴 했어도 아버지를 만나 처음으로 사랑이 어떤 것인지 배우게 되었다고. 그저 보기만 해도 흐뭇하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런 상대를 만나면 주저 없이 붙잡으라고 하셨다. 물론 상대가 거부한다면 아픈 사랑이 되겠지만.

그는 나를 사랑한다고 했으니 나와 같은 마음일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떠나기 전에, 내게 했던 말 기억하고 있어요?”

“물론. 내가 뱉은 말에 책임을 지려고 그 지옥 같은 곳에서 살아 돌아온 겁니다. 이제 두 번 다시는 당신을 떠나지 않을 겁니다.”

아주 만족스러운 대답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나를 똑바로 내려다보는 그 연갈색 눈동자가 변함없이 말갛기만 하다.

싱긋 웃는 그가 두 손으로 내 뺨을 조심히 감싸 쥐었다. 그 따스한 온기가 피부를 파고들어 와 화끈거렸다.

“보고 싶었습니다, 르슈아.”

그 다정한 말 한마디에 눈시울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나만 마음을 졸였던 것이 아니었음을 확인해서 일지도 모르겠다. 그간 억눌러왔던 감정이 한순간 터져서 일수도 있겠고.

자연스럽게 이어진 키스는 솔직히 말해 조금 짰다. 그와의 아름다운 첫 키스가 눈물 맛으로 기억되는 건 상당히 부끄러운 일이었지만, 그건 아주 잠깐일 뿐이었다.

그의 성정만큼이나 애틋한 키스에 흠뻑 빠져들었으니까.

눈물에 젖어 촉촉해진 입술을 가르는 두툼한 혀를 받아내면서 아찔한 감각에 허리가 파르르 떨렸다. 입천장의 주름을 혀끝으로 가볍게 문지르는 자극이 간지러워서 순간 웃음이 터질 뻔했다. 덕분에 호흡이 흐트러져 거친 숨이 대신 터져 나왔다.

“하, 응…….”

그때부터였다. 키스가 단순히 입맞춤처럼 좋은 기분만을 남겨줄 거라고 착각했던 생각이 한순간 뒤집어진 것이.

음습한 입속을 거침없이 유영하는 그의 혀는 매우 뜨거웠다. 그 열기가 순식간에 나를 집어삼키는 기분이었다. 뜨거운 물에 오래 몸을 담그고 있어서 어지러운 그런 느낌.

여린 점막에 닿을 때마다 섬뜩하리만큼 묘한 쾌감에 사로잡혔다. 후끈한 감각이 나를 에워싸고, 강렬하면서도 향긋한 숨결에 취해버릴 것만 같았다. 마치 수컷이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페로몬을 흘리는 것처럼, 그의 체취가 잠들어 있던 온몸의 신경들을 깨우고 있었다.

생경한 키스에 방황하는 내 혀를 부드럽게 휘감아 또 한 번 찌릿한 전율이 퍼졌다.

“아……!”

커다란 손으로 내 몸을 어루만지듯 가볍게 쓰다듬으며 키스도 끊임없이 이어갔다. 단지 그 손길 하나만으로도 아랫배가 서서히 뜨거워지면서 전신에 열꽃이 피었다.

‘이런 기분인 거구나. 좋아하는 사람이 만져주는 거.’

확실히 내 손으로 만질 때와는 느낌 자체가 아예 달랐다. 온 신경이 곤두세워져 감각들이 짜릿하게 춤을 추었다.

“르슈아.”

입술을 떼어낸 그가 나를 부르는데도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겨우 숨을 고르며 자꾸만 초점이 흐트러지는 것을 겨우 다잡기 바빴다.

“이제 나는 당신이 있는 곳 아니면 갈 곳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청산한 뒤라 가진 것 하나 없는 빈털터리나 마찬가지라서…….”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그의 얼굴에 불안함이 깃들어 있었다. 혹시 지참금 하나 없이 돌아오게 되어 내게 버려질까 봐 걱정하고 있는 걸까?

그렇다면 좀 바보 같은 생각이라고 핀잔을 줄 것 같다. 내가 그에게 재물을 바라고 마음을 주게 된 건 아니었으니 말이다.

“당신에게 줄 수 있는 건 나 하나뿐입니다. 그래도, 나와 결혼해 줄 수 있습니까?”

“당연한 거 아니에요? 당신이,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 해도 상관없었어요. 처음부터.”

단호한 내 입장을 밝히자 그의 걱정 어린 표정이 전부 사라졌다.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는 감격스러운 그 얼굴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그럼 지금부터 나는 오로지 당신의 것이 될 겁니다. 내 머리칼 한 올부터 피와 살과 뼈와 심장까지 전부 다.”

영롱하게 빛나기만 하던 연갈색 눈동자에 불꽃 하나가 작게 피어났다. 처음으로 마주한 그것은 어쩐지 위험해 보이는 욕망이었다. 섣불리 건드렸다가는 내 몸이 전부 불타버릴 것 같은 낯선 기분이었으나 한편으로는 설레기도 했다.

그것이 오로지 나를 향한 크나큰 애정일 테니까.

“그리고…… 나는 지금부터 당신의 모든 것을 가질 겁니다. 허락, 하겠습니까?”

“날 가져도 좋아요, 에쉬. 전부 허락할게요.”

조금도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소름이 일 만큼 나직한 그의 목소리가, 조금의 흔들림도 없는 눈동자에 구속되는 그 기분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짜릿한 환희를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에.

허락을 받아낸 그가 만족스럽게 웃으며 내 목덜미에 입술을 파묻었다. 아까의 키스와 손길로 예민해진 피부에서 참을 수 없는 야릇한 감각이 전해져와 허리가 절로 뒤틀린다. 목덜미를 가볍게 빨아냈다가 축축한 혀끝으로 가볍게 지분거리면서 천천히 어깨로 옮겨갔다.

어느새 그가 끈을 풀어냈는지 힘없이 늘어진 잠옷이 팔뚝과 가슴을 스치고 흘러내려 바닥에 툭, 떨어졌다. 이어서 분주하게 손을 놀려 자신의 셔츠 단추를 풀어내 상의를 훌렁 벗었다.

“에쉬…….”

후끈한 열기와 더불어 서로의 피부가 맞닿는 느낌은 신비로움 그 자체였다. 그가 병상에 누워있을 때 직접 몸을 닦아주면서 꽤 친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사람이 육욕에 취하면 그저 서로의 피부가 닿기만 해도 짜릿하게 느껴진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애매하게 기른 회색빛 머리카락이 피부를 간질였다. 그 오싹하고도 낯선 감각이 전신으로 퍼지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그 생경한 감촉이 순간 머릿속을 잠식하면서 몸이 휘청거렸다. 그런 나를 가볍게 안아 든 그가 침실 쪽으로 향했다. 나는 두 눈을 꾹 감고 입술을 깨물며 제멋대로 흘러나오려는 신음을 억누르고 삼켰다.

“예쁜 입술이 망가지겠습니다.”

행여나 깨질까 조심히 나를 침대에 눕혀두고 내 위로 자연스럽게 올라탄 그의 손이 옆구리를 쓸어내리며 골반을 더듬거렸다.

그가 중얼거린 말에 대꾸하고 싶은데, 생각과는 달리 목구멍은 가느다란 신음에 점령당한 채였다.

“상상했던 것보다 더 아름답고 예뻐요. 그윽한 체취를 머금어 한 떨기의 우아한 꽃송이처럼.”

칭찬은 칭찬인데 굉장히 부끄러운 칭찬이라서 민망해진다. 내 육체가 예쁘다는 소리는 누구에게도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터질 것 같은 큰 가슴을 가진 것도 아니라서 항상 무도회용 드레스를 입을 때마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겨우 두 개의 언덕을 만들어내곤 했다. 두 언니와는 다르게 워낙 살집도 없고 아버지를 닮아 마른 편이었다. 그래서인지 요즘 유행하는 드레스를 입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했고.

나조차 내 몸을 그렇게 아끼고 예뻐해 주진 않았는데, 내 몸을 내려다보는 그의 눈빛에 애정이 한껏 담겨 있어서 기분이 묘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내 남자가 어여쁘다는데.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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