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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비밀스러운 꽃 (6)화 (7/113)

6화

그러던 어느 날, 로안트 후작 부인인 둘째 언니는 수도로 돌아가기 전에 우리 영지에 방문했다.

“슈아! 우리 막내, 괜찮았어? 잘 지냈니?”

“보고 싶었어, 언니.”

“한 번만 안아보자, 내 동생. 그새 살이 더 빠진 거 아니야?! 이러다가 뼈밖에 없겠어, 너!”

오자마자 호들갑을 떨며 내게 반가운 인사를 건네는 둘째 언니는 여전히 활발하였다. 보기만 해도 웃음꽃이 절로 피었고 삽시간에 주변까지 환하게 만드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서로의 생사를 확인하며 우리 마르엘 백작 가문의 선산에 묻힌 어머니의 무덤에 함께 찾아가 추억을 곱씹었다.

자신의 세 딸을 한없이 사랑해주신 어머니께서 본가와 영지에 얼마나 큰 애정을 베푸셨는지. 부드러운 봄바람처럼 언제나 기분 좋은 미소를 보여주신 자상한 어머니였다는 것도.

“어머니처럼 자식에게 늘 다정한 친구가 되고 싶은데, 막상 내 아이한테는 그러기가 어렵더라. 애가 조용하면 사고를 치고 있고…… 대체 어머니는 그걸 보고도 어떻게 단 한 번도 화를 내지 않았을까 싶더라고.”

“첫째가 벌써 다섯 살이라고 했나?”

“응. 날 닮아서 너무 활발해. 그런데 그이도 어렸을 때 사고뭉치였다고 하더라고.”

둘째 언니도 꽤 행복해 보였다. 아들이 둘이나 있는 어머니라고 믿겨지지 않을 만큼 젊고 아름다운 둘째 언니는 우리 중에서 가장 어머니와 똑 닮았다. 그래서 솔직히 첫째 언니보다는 둘째 언니에게 더 친근감이 느껴지고는 했다.

“그보다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슈아 너, 그 남자 누구야?”

“에쉬?”

“이름이 에쉬야?”

“응.”

나는 둘째 언니에게 에쉬와 만나게 된 경위를 설명해주었다. 어머니의 유골함을 안고 본가로 가는 도중에 만나 다친 그를 치료해주면서 뭔가 정이 쌓인 것 같다고.

“어쩐지. 너나 그 사람이나 서로 보는 눈빛이 좀 남다르긴 하다 싶었어.”

“그래 보여……?”

“신분이 확실하지 않아서……. 아니지, 아버지가 너한테 가문을 물려주겠다고 하신다면 뭐, 신분이 중요한가? 사람 됨됨이가 중요하지. 맺어지기만 해도 백작위가 보증되는걸?”

언니는 나만 사랑해주는 남자면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다고 했다. 남자의 눈빛이 악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고.

그러더니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작게 웃으면서 손뼉까지 친다.

“좀 재미있긴 하더라. 그 남자, 널 보는 게 마치 나를 보는 우리 아들들하고 똑같았거든.”

“무슨 의미야, 그거?”

“자식은 어머니를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안정된다고 해. 놀다가도 내가 그 자리에 있는지 확인하러 왔다가 나를 보고 나서야 마음 놓고 다시 달려 나가더라니까? 그 남자가 너를 볼 때 그런 마음인가 봐.”

“……좋은 거야?”

“원래 남자는 자기 어머니와 같은 여자를 본능적으로 찾는다고 하더라. 그 사람도 가족을 잃었다며? 너를 보면 어머니 생각이 나나 보지. 그러니까 그런 눈빛을 보이는 게 아닐까?”

가끔 자기 남편도 어리광을 피운다고, 아들만 셋 키우는 느낌이라며 농담까지 던지는 둘째 언니가 부럽기도 했다. 나도 그렇게 행복해지고 싶은 욕심도 났고.

그렇게 추운 겨울을 보내고 따뜻한 봄이 오려던 어느 날이었다. 해가 뜬 낮에도 아직 쌀쌀한 바람이 불어서 겨울 망토를 두르고 눈이 소복이 쌓인 조용한 정원을 에쉬와 함께 걷고 있는데.

“르슈아.”

말없이 나란히 걷기만 하던 그가 나를 불렀다. 곧 내 생일이기도 하고, 그의 생일은 나보다 보름 뒤였다. 생일도 비슷해서 진짜 운명이려니 싶어 이제 슬슬 그와 관계를 진척해볼까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네?”

“잠시 고향에 좀 가봐야겠습니다. 말은 하고 가야 할 것 같아서.”

그가 떠나겠다는 말에 가슴이 찬바람을 머금은 것처럼 싸늘하게 식어갔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저 그를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아직 이곳에 정착하겠다는 말을 듣지 못했는데. 정말 떠날 생각인 것일까?

그가 꽤 오래 이곳에 머물렀기 때문에 그냥 이대로 지내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니.

그렇다고 식량만 축내는 사람도 아니었다. 몸이 회복된 이후부터는 영지의 일이라면 발 벗고 먼저 나서서 도왔고, 아버지가 못 미더워했지만 꽤 신뢰할 정도로 맡은 일을 열심히 해내곤 했다.

그래서 너무 당연하게 그가 내 곁에 남아줄 거라고 여겼었나 보다. 왠지 조금, 서운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예, 가는 건가요? 돌아오지 않겠다는, 그런 뜻이에요?”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나와 마찬가지로 그 자리에 서서 나를 내려다보는 연갈색 눈동자가 투명하게 빛난다. 바닥에 쌓인 눈에 햇빛이 반사되어 더 신비로운 자태로 가늘게 흔들렸다.

그 아름다운 눈동자를 다시는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왜 이렇게 서운하고 가슴이 아프던지.

나는 떨리는 손을 가슴에 얹고 침착하게 다시 물었다.

“장담할 수 없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제 개인 소유의 목장이 하나 있습니다. 꽤 오래 그곳을 비워둬서 어떤 상황인지는 확신할 수가 없습니다. 최근 근방에 굶주린 맹수가 자주 출몰했거든요.”

“내가 도와주면 안 돼요?”

“위험합니다. 지금 거의 방치상태라서 더 위험할 거고요.”

고개를 젓는 그가 심각하게 저를 바라보고 있는 나를 향해 늘 보이는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무사히 정리되거든 꼭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만약 다시 돌아온다면…… 그때는 당신과 인연을 맺어 평생 함께하고 싶은데. 그래도 되겠습니까?”

심장이 저릿해지면서 온몸에 전율이 돋아 간질거린다. 내가 잘못 들은 것이 아니라면 그도 나와 마찬가지로 내게 연심을 품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가 나를 선택해 주었다는 그 기쁨. 아예 떠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격하게 치미는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물론. 물론이에요. 기다릴게요. 계속. 당신이 돌아올 때까지.”

진지하게 내 마음을 피력하며 나는 떨리는 손으로 목에 걸린 목걸이를 빼내 그의 손에 쥐여주었다.

“이거 내 어머니의 유품이에요. 이제 내 거지만, 꼭 무사히 돌아와서 다시 내 목에 걸어주었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귀한 것을…….”

“그만큼 당신을 좋아해요, 에쉬. 꼭 당신과 행복해지고 싶어요.”

처음으로 그에게 진심을 고백했다. 아직 그에 대한 것을 전부 파악하진 못했지만, 마음만큼은 숨길 수가 없었다. 더는, 그가 진심일지 아닐지 걱정하면서 애를 태우고 싶지가 않기도 했다.

그의 상처투성이인 뺨이 조금 붉게 달아오른다. 매서운 바람 때문은 아니었다. 듣고 싶었던 고백에 기분이 좋다는 듯 가지런한 치아가 드러날 정도로 환하게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두 팔을 뻗어와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 단단한 품에 처음 안겨 당황하기도 잠시, 그가 고개를 숙여와 멍하니 저를 바라보고 있는 내게 입술을 가볍게 포갰다.

온기가 느껴지는 말랑한 감촉이 얇은 피부 위에 녹아내린다. 서늘한 공기마저 후끈하게 만드는 입맞춤이 가슴을 촉촉하게 적셨다.

“나 역시 당신과 같은 마음입니다. 처음 당신이 타고 있던 마차에 오를 때부터 지금까지, 내 마음은 한결같았습니다.”

“마찬가지예요. 당신을 보자마자 운명을 느꼈다면 믿어주겠어요?”

“꼭 돌아올 겁니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돌아와 제대로 청혼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르슈아.”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이후, 그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바로 떠나버렸다. 유모는 참 매정하게 떠났다고 했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나와의 약속을 빨리 이행하기 위해서.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떨어지기 싫어질 것이 뻔하다고 생각했을 터.

‘설마 이런 소설 같은 일이 내게도 일어날 줄이야.’

나는 그날의 입맞춤을 떠올리며 매일매일 즐거운 마음으로 그를 기다렸다. 그가 아무 탈 없이 무사히 돌아오길 신께 간절히 기도하는 건 일상이 되었다. 그가 돌아오면 사용할 방을 새로 꾸미고, 결혼해서 함께 지낼 내 방도 다시 싹 바꿨다.

이곳을 자신의 집이라 여길 수 있도록.

추운 겨울이 지나 땅속에 잠들어 있던 새 생명이 다시금 피어나는 완연한 봄이 찾아왔다. 수도도 활성화되고 귀족들의 모임도 하나둘씩 부활해 수많은 곳에서 초대장이 쏟아져 들어왔다.

나는 그중에서 꼭 참석해야 할 중요한 모임이나 몇 개의 티파티만 골라 참석했다.

“오랜만이에요, 마르엘 영애. 살아서 다시 뵙게 되니 감회가 새롭네요.”

“영애도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파티에 초대해주셔서 감사해요.”

영지에서 바로 수도로 올라오는 길이라 예정 시간보다 조금 늦어져서 가장 마지막에 도착하게 되었다. 오늘 티파티를 주최한 테페른 백작 영애의 얼굴에 안도의 미소가 번진다.

그녀를 따라 파티 장소로 들어가 익숙한 얼굴들과 가볍게 인사를 한 뒤에 자리에 앉았다. 오늘 역시 대화의 주요 관심사는 제국에 대한 것이었다.

“제국은 아직도 엉망진창이래요. 벌써 몇 번이나 즉위한 황제가 승하했는지, 이번에 즉위한 황제는 얼마나 황위를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난리더라고요.”

“선대 황제께서 승하하신 이후로 황위가 바뀐 게 벌써 세 번째던가요?”

“맞아요. 2황자 다음으로 4황자였고, 이번에 3황자. 참 혼란스러운 상황이긴 해요.”

“역병이 창궐했던 우리 왕국만큼 끔찍하겠네요.”

우리 비엔트 왕국은 제국에 귀속되어있는 왕국 중 하나였다. 그래서 그 마젠티스 제국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모임이나 티파티의 주 관심사였다.

특히나 지금처럼 큰 파급을 지닌 위태로운 실정이라면 더더욱.

지금으로부터 3년 전. 갑작스러운 병환으로 서거한 황제 폐하의 뒤를 이어 새로운 황제의 자리에 오른 자는 황태자가 아닌 제 2황자라고 들었다. 갑자기 돌아가신 선황의 자리를 노리고 황자의 난이 일어났다는 뜻이다.

그 혼란스러운 제국의 상황에 불안했던 건 우리 왕국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당시, 어느 모임에서도 제국에 대한 이야기가 마를 날이 없었다.

물론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조용히 차를 마시며 그들의 대화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었다.

[사생아를 포함하여 황자가 무려 여섯 명이나 있다면서요? 그 2황자가 황태자를 죽이고 황위에 오른 뒤에 또 4황자가 새 황제를 암살했다던데.]

[이제 공식적으로 남은 황자가 3황자와 5황자, 그리고 6황자 세 명이네요. 그 세 분은 아직 생사조차 모른다던데.]

[또 모르죠. 다른 황자들 역시 황위를 얻기 위해 칼을 갈고 있을 지도요.]

[그러다가 황족이 다 죽어버리면 어떻게 되는 거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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