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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비밀스러운 꽃 (2)화 (3/113)

2화

가장 크게 다친 곳은 오른쪽 다리였다. 칼날이 관통한 흔적이 있어서 그곳을 집중적으로 치료했다. 다행히 다른 자잘한 자상은 깊게 베인 건 아니어서 회복이 빠른 편이었다.

“지혈은 어느 정도 되었으니 이제 안쪽 상처가 곪지만 않도록 잘 관리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움직여도 되는 건가요?”

“아직 걷는 건 힘들 것 같고, 마차로 이동하는 건 괜찮을 겁니다.”

벌써 이 마을에 머문 지 닷새가 넘어가고 있었다. 본가에서 어머니 소식을 기다리고 계실 아버지가 걱정되는데. 거의 다 회복하긴 했어도 저 남자의 상태가 묘하게 신경이 쓰여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분명 누군가와 사생결단을 내기 위한 칼싸움에 휘말렸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눈을 뜬 이후로 누구를 찾는다거나 본인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꺼내지 않았다. 아예 입을 뻥긋도 하지 않아서 혹시 정신적인 충격으로 목소리를 잃었나 싶기도 하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일단 그의 의사를 들어보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하여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곳에서 너무 오래 지체를 하여 그만 떠나야 하는데. 혹시 갈 곳이 있나요?”

“…….”

“대답하기 어려우면 고개를 젓거나 끄덕여주겠어요?”

그러자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갈 곳이 없다면 설마 나처럼 가족을 잃은 건 아닐지. 그냥 의사에게 금액을 더 얹어주고 회복될 때까지 머물도록 부탁할까? 그건 또 제대로 치료나 해줄지 의문이고. 그렇다고 정체 모를 사람을 본가에 데려갈 수도 없는 노릇인데.

“그럼 의탁할 만한 다른 곳은……?”

라고 묻는 찰나, 그가 손을 뻗어와 내 옷자락을 꽉 잡았다. 마치 길 잃은 어린아이가 도와달라는 그런 눈빛을 하고 말이다.

차마, 그 손을 내칠 수가 없었다. 무엇이든 충동적으로 결정해본 적이 없는데.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 사력을 다해 움켜쥔 그 커다란 손이 내 마음을 크게 흔들어버렸다.

“……그럼 나랑 갈래요? 당신이 나을 때까지 보호해줄 수는 있어요.”

방금까지 그를 데리고 갈 수가 없다고 망설였었다. 출신도 모르는 남자를 옆에 둘 수는 없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했다. 아무 기력도 없이 축 늘어져 있기만 하던 그가 내 옷깃을 잡는 행동에 강한 삶의 의지가 느껴져서. 그가 무사하게 회복되는 것을 끝까지 지켜보고 싶어졌다.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으니까. 잘만 회복하면 저택의 사용인으로 계약할 수도 있을 테고. 물론 그가 원한다면 말이다.

다행히도 그가 내 권유를 받아들이겠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린다. 해서 나는 그를 조심히 마차로 옮겨 태우고 본가로 데려갔다.

“아가씨! 왜 이제야 오시는 겁니까!”

내가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유모가 한달음에 달려 나와 눈물을 흩뿌리며 종알종알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행여 무슨 변고라도 생긴 것이 아닌가 해서 수도로 사람을 보냈는데 아가씨는 이미 본가로 향하셨다 하더랍니다. 그런데 어찌 지금껏 소식 한 자락 없으셨던 겁니까!”

“그럴 일이 있었어. 마차에 병자가 있으니 큰 소리는 삼가 주길 바라.”

“벼, 병자요?”

놀란 눈으로 마차 안을 흘끔 살핀 유모가 두 눈을 크게 끔뻑거렸다.

“웬 남자입니까?”

“돌아오는 길에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치료를 하고 오느라 늦었던 거야. 바로 치료하지 않았으면 목숨이 위태로웠을 거고.”

“아시는 분인 겁니까?”

“……아니.”

그러자 이번에는 두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란다. 나도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는 해. 아무리 다쳤다 한들, 내가 낯선 사람에게 이만한 호의를 베푸는 건 살면서 처음 보았을 테니까.

“흠, 아무튼 당분간 더 쉬면서 치료를 계속해야 하니 주치의를 불러주고. 그 남자는 손님방으로 옮겨줘. 최대한 조심히. 나는 아버지를 뵈어야겠어. 안에 계시지?”

“……서재에 계십니다만. 아니, 아가씨, 저하고 이야기를 좀……!”

해가 서쪽에서 뜨는 날이 온 것이냐는 유모의 눈빛이 부담스러워서 일단 피하고자 못 들은 척하기로 했다. 그리고 마차에서 어머니의 유골함과 서찰을 품에 꼭 안고 울컥하는 마음을 추스르며 저택 안으로 들어왔다.

저택의 2층, 계단을 올라 왼쪽은 내 방과 언니들이 사용하던 방이 있었고, 반대편 복도는 부모님의 공간이었다. 나는 오른쪽 복도로 걸음을 옮겨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아버지의 서재로 향했다.

“아버지, 저예요. 들어가겠습니다.”

살짝 노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가자 책상 의자에 등을 기댄 채로 눈을 감고 계신 아버지의 얼굴이 굉장히 수척해 보인다. 늘 단정하던 아버지였는데, 나와 같은 검은색 머리카락은 엉망으로 헝클어져 있었고 삐죽삐죽 튀어나온 수염도 정리가 되지 않은 채다. 저렇게 흐트러진 모습은 처음 본다.

왕국이 역병으로 엉망진창인 데다가 어머니마저 그리되었으니, 아버지의 마음도 얼마나 곤비할지.

“늦어서 죄송합니다. 오는 길에 생사를 넘나드는 사람을 만나게 되는 바람에 다급히 치료를 해야 했어요.”

“……그랬구나. 왕국이 봉쇄되었다는 이야기는 이미 전해 들었다. 너도 고단할 텐데 가서 쉬거라.”

“아버지는 괜찮으신 거지요?”

괜찮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걱정이 되어 여쭈었다. 그러나 별다른 대답 없이 그저 눈을 감은 채로 호흡만 고르신다.

해서 나는 아버지에게 조용히 다가가 책상에 유골함과 서찰을 내려놓았다.

“수도 백작저의 하녀장이 준 어머니의 유골함이에요. 어머니를…… 평온히 보내드릴 수는 있을 것 같아서 다행이라 생각되어요.”

그제야 아버지는 천천히 눈을 떠서 유골함을 바라보았다. 왠지 그 모습을 보고 있기가 힘이 들어서 시선을 내리깔았다.

“정식으로 장례절차를 밟아야겠지요? 때가 이러하니 아버지와 저만 참석하여 조촐하게 치르는 것이 어떨까요.”

“……생각해 보마.”

잔뜩 갈라진 아버지의 목소리에 물기가 어려 있다. 아버지에게도 시간이 필요하겠지. 나는 말 없이 가볍게 묵례를 건네고 서재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며칠 뒤, 아버지는 내 뜻에 따라 사유지에 어머니의 무덤을 세웠고 아주 간소한 인원만 추려 장례를 치렀다. 유골함이 땅속에 묻히는 장면을 보니 어머니가 이제 세상에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실감했다.

‘부디 그곳에서는 평안하시기를.’

다행이라면 다행이랄지, 슬픔에 잠겨있을 새도 없이 온종일 바쁘게 보냈다. 다친 그의 곁을 지키며 간호에 힘썼고, 행여나 괴로워 보이면 바로 주치의를 불러서 치료를 부탁하였다.

가끔은 그의 존재가 고맙기도 했다. 아마 혼자였다면 어머니의 빈자리를 느끼며 하루 종일 울기만 했을 테니까.

“아가씨. 저 알지도 못하는 남자에게 왜 그렇게 마음을 쓰시는 겁니까?”

밖에서 영지를 돌보다가도 누워있을 그가 걱정되어 최대한 일찍 저택으로 복귀했다. 집에만 오면 일단 그의 거처에 방문해서 간호를 자처하는 내 행동에 유모가 조심히 묻는다.

동물 이외에 사람을 가까이하는 편이 아니었던지라 내가 사람에게 관심을 주고 있는 것이 신기했던 모양이다.

나는 깊게 잠이 든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면서 절로 번지는 미소에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렸다.

“나도 몰라. 그냥…… 마음이 쓰여. 얼마나 아팠을까? 그 엄청난 상처를 품고 살기 위해서 젖 먹던 힘까지 끌어모아 나와 우연히 만났던 걸 생각하면, 왠지 기특하기도 하고. 이렇게 살아준 것만 해도 너무 감사하고.”

“꼭 집 나갔던 애완동물이 돌아온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그랬어?”

대화 한번 나눠보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어쩐지 조금 친숙하기도 했다. 왠지 이제는 그의 목소리가 궁금해지기도 하고.

사실 무엇보다 내 마음을 동하게 한 것은 맹목적으로 내게만 고정되어 있는 그의 시선이었다. 약 기운에 몽롱한 정신 속에서도 내가 상태를 확인하러 들어오면 어떻게든 나를 집요하게 바라보는 그 눈빛이 꼭, 주인을 잃은 강아지 같아서.

안쓰럽기도 하고, 애틋하기도 하고.

“어디 보자, 오늘은 얼마나 회복되었을까요? 상태를 좀 확인해볼게요.”

간호를 맡긴 다른 하인들은 그렇게 경계하면서도 내가 나타나면 싸늘하던 연갈색 눈동자에 열기를 띄웠다. 그 온도 차이가 한눈에 보일 정도라 웃음이 절로 난달지.

너무 누워만 있으면 안 된다고 그를 일으켜서 앉히거나 이리저리 자세를 바꿔주었다. 몸이 얼마나 무겁던지, 확실히 나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거구라 그를 도울 때마다 땀을 한 바가지는 흘린 것 같았다.

주치의가 날이 더우니 상처가 덧나지 않게 붕대를 자주 갈아주어야 하고, 하루에 두 번씩은 꼭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내야 한다고 했다. 계속 하인들을 시켰었는데 환자를 너무 조심성 없이 다루는 것 같아서 괜히 마음이 쓰였다.

그날도 곤히 잠든 그를 씻기려고 준비하는 하인들을 지켜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할 테니까 나머지는 놓고 가봐.”

“혼자서는 힘드실 겁니다, 아가씨.”

“염려 마. 혼자 할 수 있어.”

어렸을 때부터 동물에 관심이 많아서 목장관리인에게 많은 것을 배웠었다. 아픈 동물을 진단하고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치료 정도는 거뜬히 해내곤 했다. 사람에게 하는 건 처음이지만 다를 게 뭐가 있나 싶어 의욕이 활활 불타올랐다.

나는 하인들이 나간 뒤에 의료용인 하얀 앞치마를 두르고 소독된 장갑을 꼈다. 상처에 균이 들어가지 않도록 철저하게 소독하지 않으면 여태까지 치료한 것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제 피가 거의 배어 나오지 않는 붕대를 다 풀어내고, 물수건으로 상처 자국을 피해서 몸을 꼼꼼히 닦아주었다. 오랜 기간 제대로 씻지 못한 그에게서 퀴퀴한 냄새가 나긴 했어도 역하진 않았다. 시체를 태우는 새까만 연기로 뒤덮인 수도의 공기에 비하면 기분 나쁘진 않았으니까.

혹시 깰까 봐 조심조심 두 팔을 닦고 가위로 상체에 묶인 붕대를 잘라내 풀어냈을 때, 그의 두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며 회색 속눈썹이 움직인다.

“아, 깼어요? 그렇지 않아도 땀을 많이 흘리는 것 같아서 몸 닦아주고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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