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굳게 닫힌 왕국 성문 앞.
“죄송합니다, 아가씨. 당장 모든 것을 불태워야 한다고 해서 남은 건 이것뿐이었습니다.”
수도의 백작저를 관리하던 하녀장이 울음을 참아가며 멍하니 서 있던 내게 곱게 접힌 서찰과 유골함을 건네주었다. 그것은 어머니의 유언이 담긴 짧은 편지와 어머니의 유해를 태우고 남은 뼛조각과 가루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는 거지?
“아가씨!”
순간 눈앞이 어지러워 비틀거리는 나를 하녀장이 잽싸게 붙잡아주었다. 그 참혹하고도 난데없는 상황에 가슴이 뻐개지는 기분이었다.
올해 유난히도 무더웠던 한여름. 갑작스럽게 수도에 역병이 창궐하여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찬바람이 불기 전까지는 왕국 수도를 봉쇄한다는 왕명이 있어 들어가지도 못했다.
주기적으로 개최하던 살롱을 준비하기 위해 수도에 홀로 머물고 계셨던 어머니께서 역병에 걸렸다는 서찰을 받자마자 부랴부랴 찾아왔는데. 도착했을 때는 이미 사망한 이후였다. 혹시 모를 전염을 예방한다고 하여 시체를 전부 태워버리는 바람에 마지막 가시는 길조차 지켜드리지 못했다.
그렇게나 우아하고 아름답던 내 어머니가 한순간에 고작 한 줌의 재로 변한 이 상황이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던지.
“어서 돌아가세요. 수도는 안전하지 못한 곳입니다. 이 이상 오래 머물다가 아가씨조차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죽어서도 백작 부인을 뵐 면목이 없어집니다.”
“다들…… 무사해?”
“아무것도 묻지 마시고, 수도가 다시 안정될 때까지는 돌아오시면 안 됩니다. 꼭 명심하세요.”
하녀장이 마지막 인사와 함께 건네준 그 유골함과 편지만 품에 꼭 안고, 결국 어쩔 수 없이 마차를 돌려야 했다.
가족 중 유일하게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던 사람이 어머니인데. 그만큼 의지하고 사랑하던 이가 예고도 없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그 공허함의 깊이가 심연과도 같았다. 그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비통하여 눈물이 멈추어지질 않았다.
한 번 역병의 신이 스치기만 하여도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이 현실.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자연재해라 하지만, 내 가족이 휘말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영지에서 출발하여 오는 내내 그래도 한 가닥의 희망은 품고 있었는데. 아직, 어머니를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조차 하지 못하였는데.
‘이렇게 갑자기 떠나시면, 저는 어떡해요…….’
저 멀리 봉쇄된 수도 안에서 피어오른 새까만 연기가 며칠 동안 하늘을 덮고 있었다.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참혹한 광경이었다.
과거에도 역병이 돌았던 역사가 있었는데, 거의 인구의 절반이 목숨을 잃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병이라고 했다. 사람뿐만 아니라 가축과 야생동물들조차 피해갈 수 없다던 잔인한 전염병이 하필 이때 수도를 강타하게 될 줄이야.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허무함과 그리움을 담아, 본가로 되돌아가는 내내 손수건을 전부 적실 정도로 슬픔에 잠겨있었다.
“아가씨, 괜찮으십니까. 그러다가 탈진이라도 하실까 저어됩니다.”
함께 온 마부와 하인의 걱정스러운 염려에도 울음이 멈추어지질 않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 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셨다는데,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갑작스러운 이별을 겪은 왕국민도 다 내 마음과 같을 테지. 아버지는 어머니가 역병에 쓰러지셨다는 보고를 받자마자 며칠째 병상에 누워 일어나지도 못하고 있었다. 다행히 두 언니는 빠르게 수도에서 벗어나서 무사하다던데.
이미 많은 사람이 피난을 떠난 뒤라 본가로 가는 길목은 한적했다. 얼마나 울었는지 새빨갛게 부은 눈두덩이 잘 떠지지 않을 정도라 두 눈을 감은 채 머릿속을 최대한 비우려고 노력할 때.
갑자기 마차가 급정차하면서 마부의 당황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뭐야?!”
나야말로 뭐야 싶어서 부은 눈을 겨우 떴는데, 순간 마차 문이 벌컥 열리면서 웬 피범벅의 남자가 안으로 들어와 비명을 지를 뻔했다.
“헉……?”
비릿한 혈향이 바람을 타고 들어와 코끝을 스친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붉은 피를 뒤집어쓴 채라 괴물인 줄 알았다.
“잠시, 잠시만…… 큭, 몸을 좀 피하게 도와…….”
괴로워하는 남자가 비틀거리면서 마차 의자에 주저앉아 신음을 흘린다. 온몸을 적신 피가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는 모습에 그저 경악하기만 했다.
자세히 보니 칼날에 스쳐 옷이 너덜너덜 찢긴 것 같았다. 그 사이로 수많은 자상의 흔적이 엿보였다. 곳곳에서 피가 흘러, 저러다가 죽는 것도 시간문제겠다 싶었다.
‘역병은 아닌 것 같은데. 근처에서 싸움이 난 건가.’
이대로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이 남자에게 처한 상황은 모르겠지만 일단 치료가 먼저라고 생각했다.
또다시 누군가 죽는 걸 보고 싶지 않았으니까.
“아가씨…….”
“출발해. 당장. 이곳에서 가장 근접한 마을로 가자. 치료부터 해야겠어.”
생면부지여도 목숨은 소중한 법. 일단 본가로 가는 길목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의 의사를 찾아 남자의 상태를 살피게 했다.
그는 이미 너무 많은 피를 흘린 채라 숨만 겨우 붙어있었다.
“지혈이 먼저인 것 같습니다만. 지혈을 한다 해도 무사할지는…….”
“일단 치료부터 하세요. 비용은 걱정하지 말고.”
“저, 혹시 왕국에서 오신 것은 아니시겠지요? 지금 역병이 퍼진 상황이라 수도에서 오신 분들을 받기가 조금 저어됩니다.”
충분히 이해는 되었다. 역병은 전염이 강해서 마을 하나쯤은 쑥대밭으로 만들고도 남을 테니.
나는 의사에게 귀족패를 보이고 차분하게 설명하였다.
“삼 일 전, 마르엘 백작령에서 출발하여 수도 근처에서 성문이 닫힌 것을 확인하고 오는 길입니다. 저 남자분 역시 오던 길에 발견하였고, 성문이 봉쇄된 건 어제라고 들었습니다만.”
“아……. 무,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최대한 빠른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내가 귀족임을 확인한 의사가 방금까지 거만하던 태도 대신 넙죽 엎드린 채 빠른 진료를 시작하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입 안이 썼다. 만약 내가 평민이었다면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 저 남자의 치료는커녕 거들떠도 보지 않아 목숨이 위태로웠을지도 모르니.
깨끗한 물에 적신 수건으로 피를 닦아내면서 남자의 머리카락이 붉은색이 아니라 옅은 회색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온몸에 새하얀 붕대를 감은 모습이 꼭 관에 넣기 전의 시체 같아서 조금 오싹하기도.
“저…… 아가씨, 눈이 많이 부으셨는데. 이걸로 좀 가라앉히세요.”
“고맙습니다.”
그사이에 나는 다른 직원이 건네준 얼음주머니로 부은 눈을 가라앉혔다. 그곳 사람들이 나와 남자의 관계를 의심하긴 했으나 신경 쓰지 않았다. 귀족이 눈물을 보일 정도면 대단히 아끼는 사람이겠거니 생각할 테고, 그럼 더 신경 써서 치료를 해 줄 테니 말이다.
꽤 시간이 흐른 뒤에야 남자의 치료가 끝났고, 피가 묻은 손을 닦아내는 의사가 식은땀을 흘리며 내게 조심스럽게 고하였다.
“최선을 다해 치료는 했으나 이제 나머지는 저분의 몫입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리셔서 살 수 있다고는 장담하기가 어렵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추이를 지켜봐야겠군요.”
가망이 없다는 느낌이 역력했다. 하지만 나는 그가 이대로 죽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피칠갑을 한 채로 마차에 올라 괴로워하면서도 나를 똑바로 쳐다보던 연갈색 눈동자에서 강한 삶의 의지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본가에 가야 한다는 생각도 잊은 채 그곳에서 남자를 보살폈다. 왜 그랬냐고 이유를 묻는다면, 많은 변명이 있었으나 그 영롱하던 아름다운 눈동자를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다.
“살아나요. 꼭. 제발…….”
다행히 지혈은 되었고 전보다 숨 쉬는 것도 편해졌는데 도무지 눈을 뜰 생각이 없어 보였다. 지쳐서 휴식을 취하고 싶은 걸까?
본가까지 가려면 앞으로 마차를 타고 이틀은 더 달려야 했다. 그를 이곳에 혼자 두고 가자니 발이 떨어지지도 않았고, 내 마음대로 마차에 옮겼다가 상처가 벌어질까 봐 그러지도 못했다.
그렇게 전전긍긍하던 어느 날.
“정신이 들어요?”
그가 삼 일 만에 눈을 떴다. 깊은 잠에 빠졌다가 깨어난 것처럼 초점을 잃은 눈동자이긴 했지만.
나는 그와 눈을 맞추려고 노력하면서 그의 손을 꼬옥 잡아주었다.
“당신이 크게 다친 채로 내가 타고 있던 마차에 올라탔어요. 기억나나요? 상처를 치료하기는 했지만 아직 다 아물진 않았으니 과격하게 움직이면 곤란해요.”
다정하게, 그가 낯선 사람과 낯선 주변 환경에 놀라지 않도록 아이를 다독이듯 차분하게 설명했다. 느릿하게 눈꺼풀을 깜빡거리다가 갈 곳을 잃어 헤매듯 이리저리 굴러다니던 눈동자에 다시금 생기가 돌면서 나와 시선을 맞춘다.
순간 심장이 격렬하게 뛰었다.
마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신비로운 구슬 같았다. 금가루가 뿌려진 것처럼 유난히 빛나는 연갈색 눈동자는 그 어떤 보석보다 어여뻤다. 자세히 뜯어보니 상처로 엉망인 얼굴도 제법 근사했다.
곧게 뻗은 회색빛의 속눈썹. 날카롭게 찢어져 올라간 눈매. 늘씬하게 뻗은 코가 높게 솟아올라 있었고, 갈라 터진 입술마저 예쁜 분홍색이었다.
멋지다는 표현보다는 아름답다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남자였다. 나는 그를 향해 환하게 웃다가 순간 어머니 생각에 코끝이 찡해지면서 눈물을 쏟아내고야 말았다.
“살아줘서…… 고마워요.”
치료할 수 없는 역병에 손도 쓰지 못하고 돌아가신 어머니가 너무도 가여워졌다. 만약 그마저 눈앞에서 잘못되었더라면, 이 상처 어린 가슴이 빠르게 회복하진 못했을 것 같았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었지만 다쳐서 움직이지도 못하는 그가 꼭 상처 입은 커다란 강아지 같아서 마음이 쓰였으니까.
다행히 목숨을 건진 그는 거의 하루 종일 깊은 잠에 빠지곤 했다. 깨어있을 때면 너무 괴롭다는 듯 이를 악문 채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해서 진통제와 수면제를 약하게 복용시키기로 했다.
차라리 잠을 자는 것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훨씬 나을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