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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요리해줘-67화 (67/74)

외전 3화

“매형이라니?”

“둘이 아는 사이야?”

“어떻게?”

“그러게. 다훈이 네가 서 서방을 어떻게 알아?”

“태준 씨, 내 동생 알아요?”

정은과 다연은 쉬지도 않고 질문을 던졌고, 가만히 지켜보던 다훈은 자연스럽게 식탁 앞에 앉으며 그녀들의 질문에 대답했다.

“우리 친해.”

“친해? 언제 봤다고 친해? 어떻게 친한데?”

다연이 알기로 둘 사이에는 접점이 없었다. 물론 16년 전에 별장에서 몇 번 보긴 했지만, 그때 다훈은 아주 어렸고, 태준은 그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난 3년 동안 다연은 태준을 만난 적도, 연락한 적도 없었다. 거기에 핸드폰 번호에 사진까지 그의 흔적은 싹 다 지웠는데, 다훈과 어떻게 안다는 걸까?

“빨리 대답해봐. 둘이 어떻게 아는 사인데? 왜 친한데?”

궁금했던 다연이 재촉하자, 다훈이 장어를 입에 쏙 집어넣으며 대답했다.

“내 오피스텔에서 잤으니까?”

“태준 씨가 네 오피스텔에서 잤다고? 어떻게?”

다연과 정은은 식당 인근에 집을 얻어 함께 지냈고, 다훈은 조금 떨어진 곳에 오피스텔을 구해 혼자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태준이 거기서 함께 지냈다니?

다연이 의아하다는 눈으로 태준을 쳐다보자, 그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전에 우연히 처남을 만났거든.”

“허. 처남이래.”

서 서방과 장모님 그리고 매형에 이어 처남까지. 오늘 다연은 낯선 호칭 때문에 여러 번 놀라고 있었다.

“어디서? 어떻게 둘이 만난 거야?”

이번엔 정은이 묻자, 다훈이 깻잎에 장어와 생강을 싸서 입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며칠 전에 길 가다가 우연히 만났는데, 딱 보니까 매형이더라고. 그래서 그때 같이 술 한잔하고 우리 집에서 잤어.”

“둘이 같이 술도 마셨어?”

“우와. 우리 매형 술 세던데? 그렇게 먹였는데도 안 취해.”

“네가 매형한테 술을 왜 먹여?”

정은이 등짝을 때리자, 다훈이 아프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버지가 안 계시니까 나라도 먹여봐야지. 술 먹고 혹시 개…… 아니, 술버릇이 나쁜지 확인 좀 해봤지.”

다연은 며칠 전 아침에 찾아와 양평 해장국을 시켰던 태준을 떠올렸다.

“술을 마셔서 그런가. 오늘은 해장국이 먹고 싶네.”

그때 다연은 몹시도 궁금했다. 어젯밤 태준은 누구랑 같이 술을 마셨는지, 누구랑 얼마나 즐겁게 술을 마셨기에 저렇게 얼굴이 밝아졌는지, 왜 웃음이 많아졌는지.

얼굴도 모르는 상대가 너무도 궁금했고 말도 안 되는 질투까지 느꼈다. 그런데 그게 다훈이었다니. 동생과 함께 술을 마신 것도 모자라 거기서 잠까지 잤다니. 어쩐지 식당 주변에 잘만한 숙소도 없는데, 새벽부터 찾아오는 게 이상하긴 했다.

“그럼 여태 다훈이 집에서 지냈던 거예요?”

“응. 잘 곳이 마땅히 없었는데 다행이었지.”

태준은 친근하게 다훈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하자, 다훈이 자연스럽게 술잔을 내밀었다.

“매형. 나올 때, 문 잘 닫고 오셨죠?”

“당연하지. 근데 로션 다 떨어졌더라?”

“그래요? 하나 사야겠네.”

“내가 사 줄게.”

“콜! 비싼 거로 사 주세요.”

“오케이. 방세는 내야지.”

로션까지 같이 쓰는 걸 보아하니, 며칠 사이 둘은 꽤 많이 친해진 모양이었다.

어쩐지 내 남자한테서 동생 놈의 냄새가 나는 것 같더라니.

“매형. 오늘도 우리 집에서 잘 거죠?”

“어? 으응. 아마도?”

태준은 다연을 힐끔 쳐다보며 대답했다.

“내일 쉬는 날인데, 술 한잔 거하게 해요. 그동안 출근 때문에 찔끔찔끔 마시느라 아쉬워 죽는 줄 알았네.”

오늘은 크리스마스고 내일은 토요일이다. 일요일까지 계속 쉬는 날이라 다훈은 오늘 아예 날을 잡고 코가 삐뚤어지게 술을 마실 생각이었다.

“받으세요, 매형.”

다훈이 태준의 잔에 소주를 따르려고 하자, 정은이 다훈의 손에 들려있는 소주병을 빼앗았다.

“왜, 엄마?”

“마실 거면 이거 마셔.”

정은이 소주 대신 내민 건 바로 복분자주였다.

“어? 복분자주네? 이거 귀한 거라고 손도 못 대게 했잖아?”

고창에서 얻어온 복분자로 담근 거라며 호시탐탐 노리는 다훈을 철통 방어했던 정은이었다. 그런데 이 귀한 걸 꺼내다니.

“사위 사랑은 장모다, 이건가요. 최 여사님?”

다훈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묻자, 정은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장어에는 원래 복분자주야. 둘이 세트라고, 세트. 안 마실 거면 내놔.”

“안 마시다뇨. 잘 마시겠습니다, 어마마마.”

다훈이 장난스럽게 애교를 부리며 태준의 술잔에 복분자주를 따르자, 정은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누나는? 누나도 한잔해.”

“그래, 너도 한잔해.”

다훈이 다연에게 술을 권하자, 정은이 옆에서 딸을 부추겼다.

“엄마가 웬일이셔? 술을 다 권하시고.”

평소 술이라면 질색이었던 정은이었다. 1년에 한 번 마실까 말까 했던 그녀였고, 자식들에게도 웬만하면 술은 마시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어쩐 일로 술을 권하는 걸까?

“좋은 날이잖아. 크리스마스고.”

“그럼 엄마도 한잔해요.”

다연이 엄마께 술을 따라드리자, 모두의 손에 보랏빛이 감도는 예쁜 복분자주가 들려있었다.

“엄마가 건배사 해요.”

“건배사?”

“처음으로 태준 씨랑 다 같이 마시는 술이잖아.”

다연의 말에 정은은 무슨 말을 할까 생각하더니 뭔가 떠오른 듯 목을 가다듬었다.

“흠흠. 새해에는 모두 건강하고, 다들 하는 일 잘 되길 바란다. 그리고 다연이랑 서 서방. 어렵게 다시 만났으니, 이제는 헤어지지 말고 새해에는 좋은 소식 전해주길 바라네.”

정은의 말에 다연과 태준은 식탁 밑으로 맞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새 식구를 환영하며, 또 다른 가족의 탄생을 기대합니다. 건배!”

“건배!”

정은의 건배사가 끝나자, 모두 술잔을 높이 들었다.

“캬하. 복분자가 좋은 거라서 그런지 맛도 좋네.”

술을 원샷한 다훈은 젓가락을 들어 장어 꼬리를 집었다. 그리고 입에 쏙 집어넣으려는 순간, 무언가가 그의 머리를 강타했다.

“아야! 누구야?”

“나다.”

“엄마? 갑자기 왜 때리고 그래?”

다훈이 황당해했지만, 정은은 아랑곳하지도 않고 장어 꼬리를 접시에 모아 태준의 앞에 살포시 놓았다.

“이거 서 서방이 다 먹어.”

“엄마! 매형 입만 입이고, 내 입은 주둥이야?”

“네가 장어 꼬리를 먹어서 뭐 하게? 밤새 게임만 하는 놈이.”

“그러는 매형은? 밤새 책만 읽던데. 장어 꼬리 활용 못 하는 건, 나나 매형이나 똑같거든요.”

눈치는 밥 말아 먹었나. 왜 저렇게 눈치가 없어.

정은은 차마 그 말은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아들을 째려보고는 핑계를 댔다.

“서 서방이 너무 말라서 그래.”

“다이어트하나 보지.”

“예전엔 어깨 깡패에다가 덩치가 이만했었다고.”

“응. 요즘 여자들 마른 남자 좋아해.”

“못 먹어서 얼굴에 핏기 하나 없는 것 봐.”

“뱀파이어처럼 얼굴 하얀 남자가 인기야.”

“야! 이놈의 시키가!”

결국, 정은의 손이 다훈의 등짝을 강타했고 다훈은 들고 있던 젓가락을 내려놓아야만 했다.

“아야! 아으윽…….”

다훈이 아파서 말도 잇지 못하는데, 정은은 아랑곳하지도 않고 장어 꼬리를 태준에게 내밀었다.

“이거 서 서방이 먹어.”

“처남이랑 나눠 먹어도 되는데요.”

“아냐. 서 서방 다 먹어. 여기까지 오는데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겠어. 이게 다 내 마음이다, 생각하고 먹어. 응?”

어른께서 권하니 먹기는 먹어야겠는데, 옆에서 노려보고 있는 다훈을 보니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다연이 나섰다.

“태준 씨, 엄마 손 민망하게 하지 말고 먹어요.”

“그래. 내 손 민망하다.”

정은은 아예 장어 꼬리만 있는 대로 싹 담아 쌈을 싸서 태준의 입에 넣어주었다.

“엄마!”

그 모습에 다훈이 소리쳤다. 예전에는 좋은 거, 맛있는 건 다 다훈의 몫이었다. 자나 깨나 아들밖에 몰랐던 엄마였는데, 태준이 나타나자마자 이렇게 밀려나다니.

“아이고, 우리 사위 잘 먹네.”

정은은 태준을 보며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어렵게 이어진 인연이라 그런지 정은은 두 사람이 더 애틋하고 짠했다. 내 딸을 살려준 생명의 은인에, 저렇게 둘이 좋아 죽겠다는데, 정은은 그 누구보다 두 사람이 잘되길 바랐다.

“다시 예전처럼 살이 좀 올라야 할 텐데.”

“그러게. 태준 씨 살이 너무 많이 빠졌어요.”

“난? 엄마, 누나. 난 요즘 어때?”

다훈이 또 눈치 없이 끼어들자, 두 여자는 별 관심 없다는 듯 대답했다.

“응. 괜찮네.”

“그래. 뭐 봐줄 만은 하다.”

그리고 그녀들의 관심은 금세 태준에게 향했다. 살이 너무 빠졌다느니, 그동안 마음고생이 많았겠다느니, 그래도 미모는 여전하다느니. 이야기의 결론이 결국 태준의 칭찬으로 끝나자 다훈의 입술이 댓 발 튀어나왔다.

“잘 데 없대서 재워주고, 밥해주고, 누나에 대한 정보까지 줬는데. 매형, 나 너무 홀대하는 거 아니에요?”

어느새 다훈의 공격 대상이 태준으로 옮겨갔다. 아무리 찔러봐야 엄마와 누나의 관심을 못 받을 거라는 계산이 섰기 때문이었다.

그제야 다훈의 감정을 눈치챈 태준이 그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그럴 리가. 난 언제나 처남 편인데. 한잔해.”

“역시. 매형이 변할 리가 없지. 이따 집에 가서 게임 한 판 어때요?”

“게, 게임……?”

태준은 ‘내가 오늘 너랑 게임하게 생겼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을 아꼈다.

다훈이 하는 사업마다 망했다고 들었는데, 왜 그랬는지 알 것 같았다. 눈치가 없어도 저렇게 없을까. 오랜만에 재회한 누나와 오붓하게 보내고 싶어 하는 마음도 모르고, 게임이라니.

너 같으면 모니터 앞에 앉아 시커먼 남자애들이랑 침 튀겨가며 게임 하고 싶겠니? 응?

속 시원하게 말하지 못하고 있을 때, 정은이 나섰다.

“오늘은 안 돼. 나 오늘 너희 집에서 잘 거야.”

“엄마가? 왜?”

“내일 아침 일찍 시내에서 모임 있어.”

“모임이 얼마나 빨리 있길래. 아침에 모시러 올게.”

“싫어. 오늘 아들 집에서 잘 거야.”

“나 오늘 매형이랑 게임 할 거라니까.”

“됐고. 일어나. 집에 가게.”

정은은 아예 다훈을 일으켜 세우며 집에 가자고 재촉하고 나섰다.

“벌써?”

“졸려.”

“아직 7시도 안 됐어.”

“몰라. 암튼 졸려. 하아암.”

정은은 나오지도 않는 하품을 억지로 하며, 안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다훈을 일으켰다.

“우린 피곤해서 먼저 갈게. 서 서방, 고생스럽겠지만 다연이랑 같이 좀 치워주게.”

“고생은요, 뭘. 근데 피곤하셔서 어떡해요.”

“얼른 가서 쉬면 돼. 가자.”

“나 더 먹고 싶은데.”

“아, 글쎄. 가재도!”

“그럼 매형은 어디서 자? 매형도 데리고 가야지.”

“그걸 왜 네가 신경 쓰냐고!”

“엄마, 더 놀다 가시지. 왜 이렇게 빨리 가?”

다연도 말리자, 다훈이 누나를 거들었다.

“그래. 더 놀다 가자. 크리스마스인데.”

“엄마 피곤하다니까! 빨리 안 나가?”

정은이 서둘러 다훈을 끌고 나가자, 식당 안이 조용해졌다.

한바탕 전쟁이 끝나고 간 것처럼 테이블은 엉망이었고, 얼이 빠진 다연과 태준은 서로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나 모르는 사이, 둘이 많이 친해졌나 봐요?”

“왜? 처남이 네 비밀이라도 말했을까 봐 무서워?”

“치. 비밀 없거든요. 한잔 더 할래요?”

“그럴까?”

토종닭에 장어까지. 엄마가 사위 몸보신시켜준 덕에 배불리 먹은 다연은 상큼한 게 먹고 싶었다.

주방으로 간 다연은 냉장고 안을 살피며 물었다.

“과일 먹을래요?”

“아니.”

“간단하게 치즈?”

“싫어.”

“음. 그럼 과자…… 어?”

두 손에 과자를 들고 뒤를 돌아본 다연은 어느새 제 앞으로 다가온 태준의 가슴에 부딪히고 말았다.

“깜짝이야. 소리도 없이 언제 왔어요.”

“방금.”

“뭐 먹을지 빨리 말해요. 과일이랑 치즈 그리고 과자밖에 없어요. 뭐 먹을래요?”

다연이 빤히 올려다보며 묻자, 태준이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왜 대답 없이 웃기만 해요? 어서 말해요, 뭐 먹을래요?”

“너.”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태준이 다연의 입술을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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