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읍…….”
태준의 혀가 작게 벌린 다연의 입안을 침투했다.
찰나의 사이. 다연이 그의 침투를 막기 위해 입을 다물려고 했지만, 그는 아주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그녀의 입안으로 들어왔다.
두 혀가 겹쳐지며 끈적한 마찰음을 냈고, 거친 숨결이 두 사람을 에워쌌다.
놀란 다연이 작은 손을 들어 단단한 그의 가슴팍을 밀어냈지만, 태준이 한 손을 들어 그녀의 여린 두 손을 옭아매 버렸다.
그의 품에서 벗어나려 했던 그녀의 노력은 수포가 되었고, 남자의 키스는 더욱 뜨거워졌다.
다연이 고개를 돌리려고 하자 태준이 그녀의 턱을 그러쥐었고, 그녀의 입안 더 깊숙이 숨결을 불어넣었다.
거친 그의 숨결이 그녀의 목젖까지 닿았고, 작은 입안에서 도망치는 다연의 혀는 금세 태준에게 잡혀버렸다.
그의 품에서 빠져나오려고 애쓸수록, 그는 더 깊숙이 그녀의 안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다연은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와 수많은 키스를 했고 또 수없이 사랑을 나누었지만, 이렇게 거친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의 눈빛도, 손길도, 입맞춤도, 부드러웠던 입술마저도 오늘은 너무도 낯설게 느껴졌다.
태준은 그녀를 잡아 삼킬 듯 빨아들였다. 그녀의 입술뿐만 아니라 그녀의 모든 것을 잡아먹기라도 하려는 듯, 거침없었고 거리낄 것이 없어 보였다.
다연은 머리가 아찔해져 두 다리로 제 몸을 지탱할 수가 없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아 고꾸라지듯 태준의 넓은 가슴에 몸을 기대었다.
“하아. 하아. 하아.”
다연이 가쁜 숨을 내쉬고 들이마시자, 가슴이 아래위로 빠르게 움직이며 태준의 가슴을 간질였다. 얇은 셔츠 위로 닿는 그 감촉이 태준을 미치게 했다.
그녀를 갖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지금 당장.
“도대체 왜 이래요?”
다연이 힘겹게 묻자, 태준이 되물었다.
“호텔에서 둘이 무슨 얘기 했어?”
“대수롭지 않은 얘기 나눴어요. 서태훈 대표님이…… 흡!”
다시금 그에게 먹혀버렸다.
태준은 짐승처럼 달려들어 다연의 여린 속살을 헤집고 들어갔다.
그에게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태준은 그녀를 놓아주지 않고 더 깊숙이 들어갔다. 그의 숨결이 거센 파도처럼 안으로 밀려 들어왔고, 다연은 그게…… 싫지 않았다.
다정한 그도, 대형견처럼 꼬리치는 그도, 귀여운 그도 좋았지만, 지금은 더 좋았다. 한없이 거칠고 밑도 끝도 없이 야성적인 그의 키스가 다연을 더 흥분하게 만들었다.
키스만으로 멈출 수 없었는지, 태준의 손이 다연의 블라우스 위로 향했다. 그간은 단추를 하나씩 풀었던 그였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
태준은 두 손으로 블라우스 양쪽을 잡았고 가볍게 잡아당겼다. 힘을 살짝, 아주 살짝 주었을 뿐인데, 블라우스에 달린 단추는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져 버렸다.
블라우스 사이로 뽀얀 속살이 드러났고 검은색 브래지어 레이스 뒤로 도톰한 가슴이 살짝 모습을 드러냈다.
태준은 그녀의 가슴을 덮고 있는 속옷을 들춰내고는 말캉한 가슴을 한 입에 삼켜버렸다.
“하읏……!”
그의 혀끝이 가슴에 닿자 다연의 잇새 사이로 옅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오랜만에 느끼는 촉감에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것 같았다.
그는 때론 부드럽게 또 때론 거칠게 그녀의 가슴을 핥았고 집어삼켰으며 그 위를 지분거렸다.
“다시 말해봐. 호텔에서 둘이 무슨 얘기 했는지.”
태준이 다연의 풍성한 가슴을 움켜쥐며 묻자, 그녀의 입에서 뜨거운 입김이 빠져나왔다.
“흐흣…… 별다른 얘기 안 했어요. 서태훈 대표님이…… 으읍!”
그녀의 입에서 태훈의 이름이 흘러나오자 태준은 다시금 다연의 입술을 막아버렸다.
태준은 입술로 다연의 입을 막았고, 그녀의 가슴을 감싸고 있던 손은 점점 밑으로 내려갔다.
생경한 느낌이 치마 속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다연이 흠칫 놀랐지만, 그를 거부하지는 않았다. 아니, 그가 더 수월하게 들어올 수 있도록 엉덩이를 살짝 들어 틈을 만들어 주었다.
치마 속으로 들어온 태준의 손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녀의 하체를 덮고 있던 얇은 스타킹이 벗겨지는 느낌이 들었고 곧이어 레이스 달린 손바닥만 한 천이 아래로 툭 떨어졌다.
태준은 다연의 작은 어깨 위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다시 말해봐. 호텔에서 둘이 무슨 얘길 했는지.”
다연은 답답했다. 말하려고 하면 키스로 입을 막는 바람에 벌써 몇 번째 똑같은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었다.
도대체 이 남자가 원하는 게 뭔지 알 수 없었다.
“별일 없었어요. 별 얘기도 안 나눴고요. 그냥 호텔 베이커리 얘기하고, 신메뉴에 대한 얘기만 했어요. 서태훈 대표님도…… 으흡!”
다시금 그가 그녀의 입술을 집어삼켰다. 그는 더 거칠고 더 격정적으로 다연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의 키스를 받아내던 다연은 뭔가를 깨달았다. 그가 왜 이러는지, 왜 물었던 질문을 또 하고 입을 막는 걸 반복하고 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하아. 하아.”
입술이 떨어지자 다연은 혹시나 하는 눈으로 태준을 올려다보았다.
“네 입에 나 외에 다른 남자 이름 담지 마.”
정말 ‘서태훈’이라는 이름을 불렀다고 이러는 거였어?
그의 깊은 눈동자에는 질투와 시기, 집착과 소유욕이 검은 안개처럼 일렁거리고 있었다.
이 남자, 진심으로 질투하고 있었다.
다연이 맞선 보는 태준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고 있을 때, 이 남자는 다연과 태훈 사이를 질투하고 있었다.
다연의 의심이 머리에서 나온 것이었다면, 태준의 질투는 가슴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래서 더 아팠고, 더 쓰라렸고, 더 고통스러웠지만 참고 견뎠다.
처참하게 무너지는 다연의 표정을 보면서, 오해로 가슴 아파할 다연을 생각하면서, 태준은 버티고 또 버텼다. 하지만 아까 태훈과 정답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그녀를 보자 견딜 수 없는 감정이 폭발했다.
안다. 별다른 이야기를 나누는 게 아니라는 걸. 안다. 연다연이라는 여자는 나 외에 다른 남자에게 작은 틈도 주지 않을 여자라는 걸.
하지만 그걸 아는 것과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질투라는 것은 독점욕 강한 남자가 컨트롤 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감정이 아니었다.
“네가 다른 남자랑 있는 게 싫어.”
그건 다연도 마찬가지였다.
“네가 다른 남자하고 눈만 마주쳐도 미쳐버릴 것 같아!”
그 또한 다연도 마찬가지였다.
“네가 다른 남자를 보며 웃는 것도 싫어.”
집착에 가까운 질투와 소유욕. 그녀만 느끼는 감정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나만 봐. 나한테만 웃어달라고!”
당신과 난 똑같은 마음인데.
“약속해. 나만 보고 나한테만 웃어주겠다고!”
우린 같은 마음을 품고도 왜 서로한테 솔직하지 못하고 이렇게 안절부절못하는 걸까?
그런 의문이 들자, 다연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왜 웃지?”
태준의 목소리가 사뭇 살벌하게 들렸지만, 다연의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우린 내내 서로를 보면서도 서로의 관심을 갈구하네요.”
“……!”
당신의 눈길은 항상 나를 향해있고, 나의 신경은 온통 당신을 향해 있어요.
수많은 사람 사이에 내가 섞여 있어도 당신은 단번에 날 찾아내고, 수많은 사람 사이에 당신의 목소리가 섞여 있어도 난 당신을 들을 수 있어요.
“태준 씨.”
다연은 작은 손을 들어 태준의 얼굴을 감쌌다.
차갑게 식었던 그의 피부에 다연의 손길이 닿자, 따뜻한 기운이 온몸으로 퍼지는 것 같았다.
“나 이제 알 것 같아요.”
“……?”
뜻을 알 수 없는 다연의 말에 태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나, 서태준 씨 사랑하는 것 같아요.”
잔뜩 찌푸렸던 태준의 두 눈이 갈 길을 잃은 듯 크게 흔들렸다.
“아무래도 나, 서태준 씨 사랑하는 것 같다고요.”
훅 들어오는 다연의 고백에 태준은 저도 모르게 요상한 표정을 지었다.
“뭐예요, 그 표정?”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고, 설레는 것 같지도 않고.
그의 얼굴은 당황 딱 그 자체였다.
“내가 하려고 그랬는데.”
“뭐라고요?”
태준이 작게 중얼거리는 바람에 다연은 그의 말을 정확히 들을 수가 없었다.
“내가 먼저 하려고 그랬다고. 고백.”
툭 내뱉는 그의 말 속엔 뭔가 억울하고 분함이 서려 있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다연은 그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억울해요?”
“그래. 억울해. 이번에는 내가 먼저 고백하려고 그랬다고. 이번만큼은 내가 먼저 사랑한다고 말하려고 했다고. 내가 먼저.”
그녀를 위해 아껴두었던 말이었다.
아무 때나 아무렇게나 할 수 있는 고백이 아니었기에, 정말 좋은 날 예쁜 꽃다발과 함께 전해주기 위해 꽁꽁 싸매고 아껴두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선수를 빼앗기다니.
태준이 다연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중얼거리자, 다연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뭐가?”
“이번에는 내가, 이번만큼은 내가 먼저 고백하려고 그랬다면서요?”
“……!”
아차 싶었다. 저도 모르게 속에 있던 말이 튀어나온 모양이었다.
“내, 내가 그랬나?”
“그랬어요. ‘이번에는’이라고. ‘이번에는’이라뇨?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의 모든 것의 처음은 다연이었다. 날카로웠던 입맞춤도, 잔망스러웠던 고백도, 애달픈 이별까지도.
다시 만나면, 그래서 만약 다시 시작하게 된다면 그녀의 모든 처음이 자신이길 바랐다. 떨리는 첫 경험도, 사랑한다는 고백도, 훗날의 프러포즈까지도.
그런데 벌써 두 가지나 실패했다. 그녀의 첫 경험은 자신이 아니었고, 사랑한다는 고백은 그녀가 먼저 해버렸다.
벼르고 별렀던 일을 다연이 훅 해치우는 바람에 태준은 당황했고, 그래서 저도 모르게 쓸데없는 말을 내뱉고 만 것이었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고백하려고 그랬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
그 얘긴 죽기 전까지 안 할 거야. 아니, 죽기 전까지 네가 몰랐으면 해. 몰라야만 해. 너와 나의 과거는 그냥, 나만 알게. 내 가슴에 묻어 두자.
“우리 예전에 만난 적 있어요? 왜 그런 말을 해요? 응? 말 좀 해봐요.”
다연의 다그침에 당황한 태준이 할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었다.
“말 안 해줄 거예요? 말 좀…… 흡!”
그녀의 입술을 집어삼키는 것.
태준은 곤란한 질문을 내뱉는 다연의 입술을 부드럽게 막아버렸고, 아까 마치지 못한 일을 계속 이어나갔다.
바닥에 떨어진 스타킹과 레이스 속옷 위로 다연의 치마가 내려앉았고, 그 뒤로 태준의 셔츠와 벨트와 바지와 속옷이 차례로 떨어졌다.
살과 살이 부딪치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