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금, 갠소]
1화
쾅!
문이 닫히자마자 남자가 다연을 벽으로 밀어붙였다.
다급한 행동이었지만, 손길은 부드러웠다.
남자의 두 팔 사이에 갇힌 다연은 눈을 들어 그를 올려다보았다. 길게 내려앉은 검은 속눈썹, 쌍꺼풀 없이 길게 찢어진 눈. 자신을 바라보는 그윽한 눈은 몹시도 섹시했다.
그의 눈동자에 빠져들고 있을 때, 뜨거운 숨결이 다연의 귓가를 쓸고 지나갔다.
“하아읏.”
그녀의 입에서 야릇한 탄성이 터지자, 어깨로 향하던 숨결이 목덜미를 타고 올라와 다시금 그녀의 귓가에 머물렀다.
그는 아까보다 조금 더 깊고 정성스럽게 그녀의 귓가를 간질였다.
그와 동시에 다연의 몸이 활처럼 휘어졌고, 남자는 마치 그녀의 성감대를 찾았다는 듯 그곳에 오래도록 머물렀다.
습기 가득한 그의 간지러움이 계속되자 다연의 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남자는 마치 그걸 알기라도 하듯 잠시 행동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애를 태우기라도 하듯.
“예뻐.”
남자는 풍성하게 내려앉은 다연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속삭였다.
그의 모든 손길이, 귓가에 속삭이는 모든 음성이 다연의 세포를 하나하나 깨우는 것 같았다.
다연이 참기 힘들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자, 남자가 그녀의 귓불을 살짝 깨물었다. 처음 느껴보는 생경한 촉감에 다연이 움찔 놀랐다.
그러자 남자는 커다란 손을 들어 그녀의 작은 몸을 품에 안았다. 마치 그녀를 안심시키기라도 하듯.
포옹은 마술처럼 다연을 안심시켰고 또 그녀를 과감하게 만들었다.
다연은 작은 손을 들어 남자의 셔츠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그러자 남자도 기다렸다는 듯 그녀의 블라우스 단추를 풀었다.
짧은 사이 두 사람이 걸치고 있던 셔츠와 블라우스가 벗겨졌다.
손바닥만 한 브래지어가 다연의 가슴을 지켰지만, 남자의 상체를 지키고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양쪽으로 쭉 뻗은 쇄골과 떡 벌어진 어깨, 선이 분명한 단단한 복근만이 보일 뿐.
다연이 넋을 놓은 듯 그의 몸을 바라보고 있을 때, 남자의 손은 점점 아래로 향했다. 아래로, 아래로 향하던 그의 손이 머문 곳은 다름 아닌 다연의 치마 버클 위였다.
“괜찮겠어?”
생크림처럼 부드러운 음성이었지만, 말투는 꽤 공격적이었다. 마치 거절하지 말라는 듯. 거절은 거절한다는 듯.
하지만 다연은 거절할 생각이 없었다. 치마 지퍼를 내리고 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를 만큼 순진하진 않았다.
처음은 아니었지만, 경험이 많은 편도 아니었다. 조금 떨렸고 또 조금 기대도 되었다.
“괜찮아요.”
다연이 대답하자, 남자가 다시 물었다.
“난 한번 시작하면 절대 멈추지 않아. 정말 괜찮겠어?”
허락을 구하는 사람이 뭐가 이렇게 저돌적인지.
다연은 살짝 미소를 머금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뚫어질 듯 자신을 바라보는 갈색 눈동자와 끈적한 눈빛은 무척이나 뇌쇄적이었고, 허벅지 사이로 느껴지는 성난 그의 몸은 다연을 흥분하게 만들었다. 제발 더 묻지 말고 나를 안아 달라고 애원하고 싶을 만큼.
다연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남자는 기다렸다는 듯 그녀를 번쩍 안아 침대로 향했다.
뻥 뚫린 창문 밖으로 야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촘촘히 박힌 건물의 불빛이 마치 별처럼 아름다웠다.
하지만 숨 막히도록 아름다운 야경을 볼 수 있는 시간은 잠깐뿐이었다. 남자가 곧 그녀를 침대에 눕히고 그녀의 시야를 모두 점령했기 때문이었다.
호텔 룸에는 불이 켜져 있지 않았지만, 밖에서 들어오는 불빛만으로도 충분히 밝았다.
남자는 그 불빛에 의지해 누워 있는 다연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았다. 그리고 손을 들어 그녀의 몸을 부드럽게 두드렸다. 마치 피아노 건반을 누르듯.
발바닥에서 시작된 연주는 왈츠를 연주하듯 빠르게 종아리로 올라왔다. 검지와 중지가 다연의 종아리를 간지럽히다가도 엄지가 '쿵' 하고 부딪쳐 와 긴장감을 놓지 못하게 했다.
종아리에서 허벅지로, 허벅지에서 허리를 타고 연주하던 남자의 손이 어느새 다연의 등 뒤에 머물렀다.
그리고 스르륵. 너무도 자연스럽게 다연의 상체를 지키고 있던 마지막 속옷이 톡- 하고 풀려버렸다.
예상치 못한 전개에 다연이 놀란 듯 두 팔로 가슴을 가리자, 남자가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치워버렸다.
“뭘 그렇게 봐요? 뚫어지겠네.”
“예뻐. 네 몸.”
남자는 예쁘게 굴곡진 다연의 몸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가늘게 내려온 목선, 작은 어깨, 봉긋하게 솟은 가슴, 그리고 잘록한 허리까지. 눈으로 보기만 했을 뿐인데도 그의 중심에는 힘이 더 들어갔다.
그녀의 몸이 부드러운 찹쌀떡 같았다면, 그의 몸은 딱딱한 초콜릿 같았다. 초콜릿은 희망했다. 자신의 온몸이 찹쌀떡으로 에워싸이길. 찐득한 찹쌀떡 안에 들어있는 달콤한 초콜릿이 되길 바랐다.
“그만 봐요.”
다연은 창피했다.
남자도 자신처럼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건 마찬가지인데, 그래서 다연도 그의 다부진 몸을 보고 있는데, 왜 나만 부끄러움을 느끼는 건지.
다연이 이불로 가슴을 가리며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남자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말했지? 난 한번 시작하면 멈추지 않는다고.”
섹시한 음성이 다연의 귓가에 내려앉았다.
남자는 황홀할 정도로 좋은 목소리를 가졌다. 휘핑크림처럼 부드러우면서도 에스프레소처럼 향이 깊은 목소리였다. 들으면 들을수록 빨려 들어가는 목소리.
“난 멈추지 않을뿐더러, 놓치지도 않아.”
그 말과 함께 남자는 다연의 입술을 빨아들였다.
“하아…….”
작은 탄성과 함께 벌어진 그녀의 입안으로 열기로 가득한 낯선 촉감이 들어왔다. 두 사람의 입술 사이로 끈적한 숨결이 터져 나왔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끌어안았다.
다연의 가슴 위로 빠르게 뛰는 남자의 심장이 느껴졌다. 숨 막히도록 따뜻하고, 아찔할 정도로 묵직했다.
가녀린 다연의 몸 위로 올라온 남자는 정신없이 뒤엉킨 숨결을 고르고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나…… 져.”
거친 숨결과 함께 내뱉어져 정확한 말은 들리지 않았지만, 다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해. 나…… 거지?”
남자가 확인이라도 하겠다는 듯 묻자, 다연이 대답했다.
“응. 그럴게. 그럴게요.”
그러니 어서 나를 안아줘.
그녀의 대답에 남자가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다시금 그의 입맞춤이 이어졌다.
남자의 입맞춤은 그녀의 입술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는 마치 ‘이제 넌 내 거야’라고 도장이라도 찍듯 다연의 몸 곳곳에 입을 맞췄다.
입술과 목덜미, 어깨와 겨드랑이, 가슴과 배, 배꼽과 더 밑, 더 밑으로…… 그의 키스는 계속 이어졌다.
그의 입에서 촉- 하고 야릇한 소리가 났다. 그녀의 배꼽에서 한 뼘 정도 내려간 곳과 닿으며 난 소리였다.
순간 아찔해진 다연은 두 손으로 이불을 꽉 움켜쥐었다.
***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눈을 뜬 다연은 낯선 천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웬 샹들리에?”
고급스러운 샹들리에가 떠오르는 태양에 비쳐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다.
집에서 눈 뜨면 보이는 네모반듯한 LED 등이 샹들리에로 둔갑한 건 아직 꿈에서 안 깼다는 뜻일까, 아니면 집에 아닌 다른 곳에서 깼다는 뜻일까?
다연은 떨리는 눈동자를 좌우로 굴려보았다.
고급스러워 보이는 벽지, 값비싼 가구들, 호텔에서나 볼법한 이불과 눈부신 햇살이 들어오는 전면 창. 그리고 잔뜩 화가 난 남자의 등 근육까지. 온통 처음 보는 것들뿐이었다.
잠깐! 남자? 남자라니?
침대에 누워 눈동자만 떼르륵 굴리던 다연은 다급히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집이…… 아니다!
집이 아닌 곳에서 눈 뜬 것만으로도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인데, 웬 낯선 남자와 나란히 누워 있다니!
입술 사이로 ‘미친 년’이라는 말이 절로 흘러나왔다.
남자는 하얀색 이불로 아슬아슬하게 하체만 겨우 가리고 있었다. 벌거벗은 그의 상체를 보자 바위처럼 커져 버린 불안함이 그녀를 덮쳤다.
‘설마…… 아니겠지?’
제발 아니길 바라며 다연은 덮고 있던 이불을 꽉 움켜쥐었다. 어서 이불을 들춰내고 자신의 상태를 확인해야 하는데, 용기가 나지 않았다.
연다연은 술 먹고 남자와 원나잇 하는 그런 여자가 아니다. 그런 여자가 아닌데, 그럴 리가 없는데, 천지개벽할 그런 일이 내게…… 일어났다!
다연은 이불 속에서 펼쳐진 살구색 향연에 차마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미쳤어, 미쳤어! 연다연!”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옷을 벗은 채로 남자와 나란히 누워 있었지만, 섹스는 하지 않았다고 믿고 싶었다.
‘술 먹고 뻗어서 잔 걸 거야. 그냥 순수하게 잠만. 더워서! 그래! 자다가 더워서 옷만 벗을 걸 거야. 옷만!’
속으로 그렇게 우겨보려고 했지만, 하체에서 뻐근함이 느껴졌고 온몸에서 근육통이 올라왔다.
뭘 얼마나 격정적으로 했는지, 몸 곳곳에 사랑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제야 다연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저 남자랑 내가…… 했다, 했어!’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지르며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고 있을 때, 남자가 뒤척였다. 순간 다연은 잽싸게 침대에서 내려와 몸을 낮췄다.
남자의 움직임이 멈춘 것을 확인한 다연은 주섬주섬 옷을 챙겼다. 속옷과 스타킹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바람에 옷을 줍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꽤 걸렸다.
도대체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은 이따가. 지금은 어서 이곳에서 나가는 게 중요했다.
아등바등 스타킹 속에 두 발을 집어넣고, 치마 버클을 겨우 채우고, 낑낑거리며 재킷을 걸친 다연은 가방을 챙겨 들고 신발을 신었다.
밖으로 나가기 위해 묵직한 문의 손잡이를 잡은 다연은 몸을 돌려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검은 머리카락이 얼굴의 반을 덮고 있었지만, 잘생김을 가릴 수는 없었다.
정말…… 잘생긴 남자였다. 하지만 모르는 남자이기도 했다.
“미친 게 틀림없어. 연다연.”
다연은 중얼거리며 밖으로 나가버렸다.
쿵. 문 닫히는 소리가 낮게 울리자, 태준이 눈을 떴다.
더듬더듬, 침대 옆자리를 매만지던 태준은 비로소 다연이 없다는 것을 알아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없다. 아주 잠깐 잠든 사이, 그녀가 사라졌다.
어젯밤 흥분으로 가득 찼던 방안은 텅 비어 있었고, 열기로 뜨거웠던 침대는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평소에는 불면증으로 잠도 한숨 못 자던 내가 왜 하필 이럴 때 잠이 들었는지.
잠든 지 고작 30분 사이, 그녀가 사라져 버렸다.
“하아……. 연다연.”
처음이었다. 자신을 이렇게 뜨겁게 만든 여자는. 그리고 자신의 모든 처음을 가진 여자는.
그래서…… 놓아 줄 수가 없다.
태준은 휑한 침대를 바라보며 작게 읊조렸다.
“네가 나한테서 도망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내가 널 어떻게 찾았는데.”
다연이 나가버린 문을 바라보는 태준의 붉은 입술이 호선을 그리며 말려 올라갔다.